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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May 16th, 2007 : the last day in England
Welcome to Hampton Court Palace
"영국 역사" 하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영국 역사의 절대 강자, 튜더 왕조.
그리고 그 무대에서 휘황찬란한 일대기를 보낸 헨리 8세.
오늘은 그를 만나러 가자.
런던 워털루 역에서 왕복 기차 티켓, 9.20 파운드.
애비앙 500ml 한 병, 오케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익은 빨간 사과 2개, 오케이!
좋아, 이만하면 됐어, 고고고~
아직 유레일 패스를 개시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기차타고 여행하는 거에 또또또 두근두근 콩닥콩닥"
뭐든 새로운 걸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으례 도지는 설렘증이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오오오, 간다, 가~
햄튼 코트를 향하는 기차가 중간에 윔블던 역에서 정차할 줄 알았다면
기차 출발과 동시에 잠을 청해버렸을텐데.
처음 탄 기차였고, 어디서 내려야하는지도 몰랐기에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창 밖만을 주시하던 내 레이다 망에 들어온 윔블던 역.
순간, 테니스 선수의 실제 사랑이야기를 다룬 애틋한 로맨스 영화, "윔블던"이 떠올랐다.
확 내려버려?! 내릴까, 말까, 내릴까, 말까...
짧은 몇 분간의 정차 시간동안 날 강하게 이끌던 유혹,
결국 그 유혹마저도 과감히 이겨내고, 40분을 달려 도착한 시골 분위기 물씬 풍기는 햄튼 코트.
윔블던까지 포기하고 왔으니, 오늘 최고의 서비스를 기대해 보겠어, 햄튼 코트!
궁전과 미로를 둘러 볼 수 있는 콤비네이션 티켓, 10.50 파운드.
와우, 여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
첫 시작이 좋은 걸? 오늘은 귀가 괴롭지 않겠어. 으흠, 좋아~
오늘의 궁전 관람 첫 스타트를 끊을 Clock Court.
저 위에 달린 시계가 햄튼 코트 궁전과 역사를 같이 한 산 증인쯤 되는 셈.
네모난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의 네 면의 벽에
튜더 시대의 주방, 조지아 왕조 때의 방, 헨리 8세의 방, 윌리엄 3세의 방 그리고 궁전 정원까지
이어지는 입구들이 각각 포진해 있다.
마음 끌리는 대로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 곳, 어디든 출발만 하면 오케이!
자, 나는 튜더 왕조때의 주방부터~
한 시대를 호령하던 절대 군주의 식사를 책임지던 곳으로
각 지방에서 각종 산해진미가 배달되어와 저장되고, 조리되어 왕의 식탁 위까지 서빙되는
옛 모습을 경로를 따라 거닐며 그려볼 수 있도록 재현되어 있었다.
스튜의 보글보글 끓는 소리하며,
실제 맡아 볼 수 있는 각종 조미료의 냄새가 그 당시 그 현장으로 어느새 나를 데려다 놓는다.
실제와도 전혀 구분 못할 정도의 사실감있는 음식 재료들은 눈 마저 즐겁기까지.
이번엔 햄턴 궁에서 살았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하며, 이 궁전을 소유한 최초의 왕이기도 했던
헨리 8세의 흔적을 찾아 순간 이동.
어마어마하리만치 장엄한 그레이트 홀엔
4-50여명의 유치원생들이 그 당시 튜더 스타일의 드레스를 하나씩 뽑아 입고 바닥에 앉아서는
궁전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등치 큰 내가 차마 그 곳에 보이지 않게 끼어 앉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이런 나를 위해 비치된 10여분간의 짧은 역사 비디오는 보다 만족스런 관람을 위한 절대 필수 코스!
이미 여행을 준비하며 헨리 8세 역사 비디오를 보고 온 나였지만
헨리 8세 이야기는 보고 또 봐도 역시나 흥미로운거~얼.
비디오의 장면들에서 맛 본 역사의 한 순간 순간들을 매치시켜가며 방을 둘러보니 정말 실감난다.
그렇게 죽을만큼 사랑했던 앤 불린을 끝내 사형시킨 뒤,
앤 불린이 유령의 형태로 자주 출몰했다던 복도를 거닐 때에는 등골마저 오싹해 왔다.
쯧, 겉으론 강한 군주였지만, 사랑 앞에선 한없이도 연약했던 헨리 8세.
그는 주변에 많은 여성들을 끼고 살았음에도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탔던 왕이었던 듯.
사랑하는 이를 옆에 두고도 끊임없이 또 다른 사랑을 갈구했던 헨리 8세.
당신도 영락없는 남자군요,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여길 와서 그의 흔적들을 더듬어 보고 나니,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궁전 안의 공식적인 방들은 왕과 여왕의 의식적인 생활을 위해 건축된 것이 대부분인 반면,
조지아 왕조의 방들에서는 왕과 여왕의 개인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1838년 빅토리아 여왕이 햄튼 궁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
왕족이 마지막으로 거주한 1737년의 모습을 그대로 느껴 볼 수 있는 곳.
세월 차가 만들어내는 방들의 차이, 튜더 왕조의 방을 보다가 마지막 왕조의 방을 보고 있자니,
튜더 왕조의 방들은 그냥 저리가라다.
어쩜 이렇게도 세련되고 멋질 수 있을까. 미안해요, 헨리씨. -_ -
이제 겨우 세군데 둘러보았을까, 헉- 시간 너, 너무 빨리 가는거 아니니?!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은 왕실의 화려함에 혼이 뺏겨버린 김양.
엊그제 윈저성을 둘러 볼때도 세시간이 그냥 뚝딱이었는데,
윈저성을 네 다섯개 모아다 놓은 규모의 햄튼 궁을 보는 데는 어련하겠는가.
자자, 이제부터는 경보 모드로 관람하자고- hurry up!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중요한 바로크 스타일의 왕궁으로 손꼽힌다는 윌리엄 3세의 방들,
메리 2세를 거쳐 캐롤라인 왕비가 사용했던 방들,
햄튼 궁의 전체적인 역사를 다루는 전시실들을 재빠르게 하지만 꼼꼼히 둘러보고
다시 Clock Court 원점으로 back.
동서남북으로 포진되어 있는 입구들을 들락날락 거리느라 이 곳을 몇 번이나 거쳐 갔는지
이젠 셀 수도 없겠다. +_+
배고픔도 잊은 채 이어진 정원 탐험.
궁전의 방들을 구경하는 동안 또 한 차례 비가 퍼부었었나보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영국에서의 일주일간의 체류기간 동안 단 한 시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구나;;
정원의 자갈밭 위로 마르지 않은 물기가 여간 미끄러운게 아닌걸.
자칫 넘어졌다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함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조심, 또 조심.
윌리엄 3세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Privy Garden.
이번엔 반대로, Privy Garden에서 올려다 본 윌리엄 3세 아파트.
아담한 규모의 아늑함을 지닌 Pond Garden.
요것도 Pond Garden. 저 뒤에 보이는 건물은 각종 파티와 행사를 열었던 Banqueting House(연회장)
햄튼 코트의 대 하이라이트, Great Fountain Garden.
안그래도 단 거라면 사죽을 못쓰는 내 구미를 심히도 땡기는 초코송이 나무들.
배고픔도 잠시 미뤄둔채 나선 정원 탐험이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나무들이 초코렛 잔뜩 묻은 초코 송이들로 보여 큰 일이다.
내 앞에 아른아른 거리는 요녀석들, 손에는 잡히지도 않는 그림의 떡인 걸. -_ -
아차, 사과가 있었지. 후훗- 금새 사과를 꺼내들고 한 입을 크게 아작"
사과의 단 물이 지대로 흘러 주신다. 와우, 쓰러지시겠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거야?
아까 내 앞에서 알랑거리며 춤추던 초코송이 나무들은 금새 어디로 간게지..?ㅋ
Great Fountain Garden 중간에 난 길을 따라 끝까지 쭈-욱 가면 나오는 호수.
냠냠, 사과를 물어 들고 호숫가로 향하자,
자기네들에게 먹이라도 주는 줄 알고 나를 향해 무섭게 돌진해 오는 백조떼들.
헉- 순식간에 바로 내 앞에 몰려 들었다, 요녀석들.
예전 같으면 "우와~ 백조 너무 예쁘다!"하고 폴짝폴짝 뛰었겠지만, 오늘은 꿈도 꾸지마시라고.
떡 하나 떼어줄 마음, 요~~~만큼도 없으니까- -ㅠ-
자, 이정도면 배도 불렀고,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도 취했으니 또 다시 부지런히 길을 나서자구~
햄튼 궁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으로 손꼽힌다는 미로.
궁전에 왠 미로?!
그 옛날, 왕실에서는 왕비들이 성밖을 벗어나 세상 구경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탓에
이렇게 궁전에 미로가 있는 경우가 많단다. 아아~
한마디로 왕비들의 놀이터였던 셈. 이 곳엘 내가 안 가볼 수 있나.
나도 안다, 가봐야 나 혼자 놀아야 한다는 것을.
가족이나 연인과 가야 서로를 찾느라 "개똥아, 어딨니?", "나 여기있어~" 하며 재미라도 보지,
난 뭐,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내가 찾을 사람도 없고, 혼자서 미로 찾기 놀이나 해야 된다는 거.
그렇다고 혼자라고 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거다.
혼자라도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과감히 보여주겠다는 베짱으로 똘똘 뭉친 무대포.
역시나, 혼자 온 사람, 아무도 없다- -_ㅜ
"어디로 갈까요? 민영씨?"
"음~ 우리 오른쪽으로 가봐요~"
혼자서 지지고 볶고 알아서 다 해먹기, 늘어만 가는 건 비굴한 혼잣말-
그나저나, 난 왼쪽으로 가볼랜다. 누가 청개구리 아니랄까봐.
어라, 여기 막다른 골목이네? -_ - 다시 원점으로 고고~
어머나, 깜짝이야, "oh, I'm sorry" 사람도 부딪쳐가며, 계속되는 미로 탐험~
몇 바퀴를 돌고 돌았을까.
봤던 사람 보고 또 보고, 이젠 만나는 사람마다 정겹기까지.
아직도 길을 못 찾았어요, 서로 머쓱해하며 만났다 헤어지기를 몇 번.
아오, 도무지 안되겠다, 이젠 지쳤어, "나 나갈래~ 나 좀 꺼내줘요~"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 나는 혼자라는 것.
들어올 때도 내 의지로 용감히 혼자 들어왔으니 나가는 길도 꿋꿋이 혼자 찾아내야 한다는 것.
가장 어두운 때가 태양이 뜨기 직전이라고 하더니
포기 일보 직전, 사막의 신기루처럼 탈출구를 알리는 이정표 발견!
됐어! 고고!! 금새 신~났다, 김양.
"훗- 보기보다 별거 아니군, 이거."
찾은 자의 거만스런 이 여유. 조금 전만 해도 꺼내달라고 소리치던 게 누군데,,
영악한 김민영씨. anyway Good job
미로 중심에서 발도장 찍고 턴~ 중심에서 바로 이어진 탈출구로 나오자
축하한다며 건네주는 "나 미로 정복했어요!" 스티커.
외로움과 싸워 얻어낸 소기의 승리.
미로 탐험하면서 느낀건데 말이지.
우리 인생도 미로 같은 게 아닐까.
늘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다른 누군가가 옆에서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엔 내가 결정을 내려 나아가야만 하고,
막다른 골목에선 좌절도 하지만 다시 기운을 차려 되돌아 나와야 하듯
인생에서 기대치 않게 마주하는 난관들에 절대 쓰러지지 않고 이겨내야만 하고,
미로를 헤매며 낯선 사람들과 부딪치고 또 부딪치듯
각자 인생에서 소중한 인연의 끈이 될 수많은 만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랜 시간 헤맬지 모르지만 미로에는 결국 끝이 있다는 거,
우리 인생도 스스로가 갖는 종착지의 이상이 무엇이든
각자의 꿈을 향한 기나긴 여정 끝에 환한 미로의 탈출구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영국에서의 일주일을 마무리 짓는 오늘,
앞으로 계속될 유럽 여행도 오늘의 미로 탐험만 같기를.
낯선 사람들과의 기분 좋은 만남들, 여행 중 겪게 될 수많은 난관들, 끝없이 선택해야 할 갈림길들.
그 끝에 과연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두근 콩닥콩닥" 나의 설레임을 가득 실은 기차는 어느새 런던으로 향하고 있다.
첫댓글 처음본 님의 여행기지만 제목 그대로 자기를 찾아 떠난 여행기답군요. 하루의 여행이지만 여행하는 태도와 준비를 보니 이여행을 끝내고 난 후의 님은 자신감과 여유 만땅의 모습으로 바뀌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헉- 너무 감동적인 리플이에요ㅠ 유럽여행, 준비하면서 한번, 직접 가서 한번, 다녀와서 찍어온 사진보며 한번, 총 세번을 한다고 하더니, 전 이렇게 무더운 여름, 여행기를 쓰며 여유있게 마지막 세번째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 이야기라 조금 지루한 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관심갖고 읽어주세요~ ^^
재밌네요. 어쩜들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늙은 내가 많이 배워요. 특히 혼자 떠날 용기. 나 아직도 무셔워^^
까메오님, 어디가 됐던지 한번 떠나보면 그 강렬한 매력에서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다는 데에 확신에 찬 한표 던집니다~ 나홀로 여행, 별거 아니에요~^-^
저두 님 여행기 날마다 감탄하며 읽구 있습니다 ^^ 블로그에서 보면 여기에 남기신 거 말구 다른 사진들이랑 글 보면 정말 그 느낌 있잖아요. 갑자기 확 뭔가 밀려오는 느낌이랄까 ㅎㅎ 글을 정말 이쁘게 쓰시는 것 같아요 ^ㅁ^ 세 번째 여행 열심히 달려보아요~
항상 힘이 되는 피드백을 사정없이 날려주시는 에스쁘와르님, 세번째 여행도 같이 달려주실거죠??
헨리8세와 튜더왕조 얼마전에 드라마 튜더스를 봐서 그런지 괜히 반갑네용ㅋㅋ
거기에선 헨리 8세가 너무 날씬하고 훈남으로 나오지요?? 실제 헨리 8세는 어마어마한 등치에 살도 좀 있던데,, 튜더스 한 번 보고 말았는데 재밌나요? 너무 선정적이어서 집에서 보기엔 엄마의 시선이 따갑기에 못 보고 이러고 있답니다-ㅋ
매우 선정적이었죠ㅋㅋ 헨리8세의 실체가.. 드라마에선 마여수님이 좀섹시하셔야 말이죠-ㅅ-ㅋㅋ 저도 띄엄띄엄 봤는데 스토리보단 시대배경 같은걸 보는 재미도 있어서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팬이기도 하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