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변은 없다... 절대로!"
숙변 [宿便, stercoral] : 대장 내 반월 주름 사이에 엉겨 붙은 오래된 변… (중략)
이것이 있는 사람은 장이 연동운동을 하는 데 지장을 주어 아랫배가 늘 불편하다
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또 장 내에서 발효와 부패과정을 거치면서 페놀·아민·
암모니아·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과 유해산소를 만드는데, 이러한 물질이 혈액
을 통해 신체 각종 장기에 들어가 여러 증세를 일으킨다. 특히 혈관장애를 일으키
거나 간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드름·기미·두통·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포털사이트에 '숙변'이란 낱말을 넣어 검색을 해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사이트의 국어사전에도 "제때에 배설하지 못하여 장 속에 오래 묵어 있는 대
변"이라고 정의되어 있을 만큼 우리에게 낯익은 말이다.
수많은 사이트들이 '숙변 제거'에 자신 있는 전문기관임을 광고하고 있다.
한 두 업체가 아니다. 심지어는 관련 책도 있다.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숙변 제거에 관심을 둬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숙변만 제거해도 4~10kg은 거뜬히 뺄 수 있다고, 잡지나 온라인 등의 여러
사이트에서 관련 자료까지 제시하며 꽤 근거 있게 홍보하고 있을 정도인데 말이다.
비만뿐일까? '숙변 제거' 업체들은 숫제 한 술 더 떠 위 포털사이트의 지식백과에
적힌 것처럼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 등, 만병의 원인'으로 이 숙변을 지목하고
있다. 숙변 제거 약을 먹고 얼마간의 효과를 봤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숙변, 이젠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외과 의사이자 대장 내시경을 다루는 의사로서 단언컨대, 숙변 같은 건 없다.
숙변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에 불과하다." <똥꼬박사 남호탁>
외과의사인 남호탁이 <똥꼬 이야기>(부표 펴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숙변은 없다, 숙변제거제는 상술이 낳은 산물일 뿐
"대장수술이나 대장내시경검사를 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설사를 유도하는 약을
먹여보면 숙변의 존재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대장을 말끔히 비운 후 속을 들여다보면 발그스름한 색깔을
띤 대장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물론 눈을 씻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숙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숙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무게가 4킬
로그램에서 무려 10킬로그램까지 나간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책 속에서
저자는 대장항문전문의다. '똥꼬박사'란 별칭이 붙을 만큼, 더러는 '똥꼬박사'의 명
성을 듣고 치료받고자 먼 거리의 환자까지 저자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을 만큼
'똥'에 관한 한 국내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이니 말이다.
"실제로 발견되지도 않거니와 이론적으로 숙변이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대장의 가장 안쪽인 점막은 미끌미끌한 점막으로 덮여있을 뿐만 아니라 대장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꿈틀대는 연동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장에 무슨 수로 똥이 그리 오랜 시간 동안 달라붙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대장의 벽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천 년 만년 대장 벽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떨어져 나가 운명을 달리한다. 하물며 똥이라고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어 대장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수 있겠는가." - 책 속에서
그런데 숙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저자만이 아니란다. 저자는 "의학 문헌에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대장과 관련된 분야의 의사들도 하나같이 없다고 한다"라
고 덧붙이고 있다.
솔직히 숙변에 관한 이 글을 읽다가 은근히 부아가 났다. 나도 3년 전쯤 "숙변 제거
를 하면 몸속 쓸데없는 무게를 줄일 수 있어 몸도 발걸음도 훨씬 가볍다", "숙변이
내뿜는 독소까지 제거되니 피부가 고와진다", "그냥 두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
다" 운운하는 동네 약국 약사의 권유로 숙변제거제를 사먹은 적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약사나 아는 사람의 권유로, 혹은 약국에 붙은 '숙변 제
거'란 홍보 문구를 보고 한 번쯤은 사먹었음 직하다. 심지어 내 주변에는 한 술 더
떠 이 숙변제거제를 절대적으로 맹신, 기생충 약 먹듯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정말이지, 저자나 수많은 전문의들의 말처럼 숙변이 정말 터무니없는 존재요, 쉽
게 말해 약을 팔아먹자는 얄팍한 술수가 분명하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 당국
에 관련조치를 취하게 해야 함이 의사로서의 마땅한 소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똥'에 관한 가장 전문적인 이야기들, 똥은 내 몸을 가장 잘 안다
이 책은 모두 25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저자의 숙변에 관한 글은 꽤 길다.
이 숙변은 우리 사회가 좀 더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정신병으로 요양원에 있는 아들이 배설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도록 배설
을 돕는다는 것들을 사서 시시때때로 아들을 찾는다는 어떤 늙은 어머니의 사연
인 '(똥이)꽃처럼 아름답다우!'란 글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두 눈을 보지 못하는 한 사내가 오랫동안 고향 친구들의 도움으로 돈을 모아 오랜
고질병인 치질을 수술했다. 두 눈이 보이지 않으니 같은 병실의 환자들에게 도움
을 받아야 하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건만 사나이는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향기
로운 꽃으로 만들었다는 '전염되는 게 어디 병뿐이랴'는 이야기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방귀 때문에 이혼할 뻔한 어떤 부부, 직장암 수술을 받은 후 왕성한 발기 때문에
주책 바가지로 몰린 어느 할아버지는 유쾌하다.
"왜 하필 똥꼬의사냐?"며 따져 묻는 딸아이를 통해 대장항문전문의의 정체성을 묻
는 글에서는 우리가 터부시하는 똥을 상대로(?) 살아가는 의사의 소명감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들려주지 않는다. 병실에서 일어난 지갑 분
실 사건을 통해 명품 집착 현상을 꼬집거나 지방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을 통해 우리 사회 의료 현장을 되짚어 본다. '직장수지검사'보다 기계 검사를
맹신하는 의사나 환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한다.
숙변처럼 공공연한 의료 상식이 되어버린 것을 바로 잡으려는 저자의 소명감이 돋
보이는 이야기들이다. 더럽다고 터부시하며 고상한 척 '대변'(대변은 일본식 한자)
이라 말하는, 평소 더럽게 여기지만 변비로 끙끙대거나 치질로 고생하는 순간 지옥
이 따로 없어 절대로 나 몰라라 간과할 수 없는 '똥'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 몸을 돌아 나온 똥은 우리 몸을 가장 잘 안다." 내 몸을 제대
로 알고자 하는 사람, 변비나 치질, 대장질환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반
가운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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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유익한 정보네요..
대장내시경 받아봐야 되는데..게을러..겁도 나고
위장내시경 쌩으로 검사..수면 내시경 게운찬아..
건강 염려증..운동중독..같은 얘기...
속시원한 이야기네
글씨 한 걱정 덜었네유~~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정보에욤.
딱 와 닿네요. 다 옳은 것 같아요.
그런데 방귀는 왜?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