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상 속에서
조금은 느리더라도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김바나바, 노진준, 박영호, 송태근, 이재훈, 이찬수 목사 강력 추천!
『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의 저자 류인현 목사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들보다 느리다. 하지만 춤을 즐기고 노래를 많이 부른다. 이들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혹등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만으로도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사실 ‘바다의 수호천사’로 불릴 만큼 착한 성격을 가졌다. 바닷속 작은 동물들을 큰 동물들에게서 보호해 주기도 하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주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한다. 그뿐인가? 혹등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으로 먹고 싸면서 바다의 유기물을 순환시켜 해양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돕기도 하고, 죽고 나면 사체가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심해 생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 저자 소개
류인현
젊은이들이 행복한 뉴프론티어교회의 담임목사다. 복음과 도시와 청년을 사랑하는 그는 맨해튼의 ‘코리안 팀 켈러’(Korean Tim Keller)라고 불린다. 뉴프론티어교회에서 사역하는 17년 동안 1만여 명의 청년들을 만나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배우고 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의 비전에 따라 지난 10월에는 젊은 가정 중심의 뉴저지 캠퍼스도 설립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B.A, 독어교육)와 웨스트민스터신학교(M.Div, Th.M)에서 공부했다. 현재 미국 코스타의 공동대표로, 소래선교회, KPM선교회, 하나로복지회 등 여러 선교회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삶을 고민하는 이 시대의 모든 청년을 위해 『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두란노)를 썼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들과 함께 뉴저지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Part 1.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은혜의 복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Day 1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기
Day 2 자기라는 감옥에서 해방되기
Day 3 효율만 따지는 세상에서 사랑하기
Day 4 낯선 인생길에서 ‘주’신감으로 살기
Day 5 실패의 한복판에서 다시 일어서기
Day 6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Day 7 성장 사회에서 선을 선택하기
Part 2. 소박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은혜의 복음이 나를 새롭게 한다
Day 8 할 일이 태산일 때 잠시 멈춰 보기
Day 9 다 끝난 것 같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기
Day 10 절망한 자아에 참 평안을 더하기
Day 11 버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기
Day 12 세상이 두려울 때 주님을 바라보기
Day 13 나를 뽐내는 삶에서 돌아서기
Day 14 탐욕의 시대에서 자족을 배우기
Part 3. 자유롭게, 그리고 용기 있게: 은혜의 복음이 나를 넘어서게 한다
Day 15 경계선에서 꽃 피우기
Day 16 자아 과잉의 도시에서 우정을 나누기
Day 17 풍요 속 빈곤이라는 갈증을 해소하기
Day 18 내 생각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공감하기
Day 19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은혜로 살기
Day 20 ‘당연’의 반대말, ‘감사’로 살아가기
Day 21 주어진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가기
에필로그
📖 책 속으로
우리에게 참 자유와 행복을 주시려는 예수님을 팔로우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기 부인, 곧 자기 자신을 ‘언팔(unfollow)’하는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메시지들을 한번 들어 보라.
결국 자기가 주인 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들은 다 자기가 주인 된 삶이 참 행복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그럴까?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와 같은 삶은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행복이 왔다고 해도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불완전할 뿐이다. 왜일까? 삶의 모든 것을 오롯이 자기 스스로, 다 독박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버겁지 않은가? 내가 내 삶을 모조리 다 책임져야 한다니….
내 인생을 내가 다 운전하고 경영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자유로운 삶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가 아니라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하다가 큰 고난이나 불행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할 참인가? 정신 승리를 외치거나,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라. 집 나간 탕자, 둘째 아들이 바로 자유의 역풍을 맞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유와 행복을 찾아 집을 떠났지만 그 결말은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는 거였다. 자기가 주인 된 삶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 p.28-30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주 넘어진다. 자주 실패의 쓴맛을 본다. 어릴 때는 달리다가 혹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면, 커서는 마음이 넘어진다. 자신의 실패나 실수가 드러나고 누군가에게 창피를 당할 때면 우리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붉어진다. 하지만, 실패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없어서 실패할 때가 사실은 더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프로 야구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치는 선수도 타율이 고작 3할대다. 투수가 던지는 공 열 개 중에 세 개 남짓 밖에는 안타를 못 친다는 뜻이다. 공격의 70퍼센트는 늘 아웃인 셈이다. 타자는 땅볼이나 삼진 아웃으로 쓸쓸히 퇴장한다. 만약 이 선수가 아웃을 당할 때마다 자책하고 좌절했다면 3할대 타자가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소명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그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실패한 자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소명의 자리로 변한다. 성도의 실패는 실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패는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 p.61-62
현대인들은 생각이 복잡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니 생각의 양이 많아지고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마감 시간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여기에 현대판 마르다들의 고민이 있다. 언제나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천국 같은 삶을 살고 싶지만, 눈앞의 현실에는 끊임없이 삶을 공격해 들어오는 독재자가 있다. 찰스 험멜(Charles Hummel)이 말한 ‘긴급한 일이라는 이름의 독재자’다.
24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책임을 완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오늘날의 마르다들에게 예수님은 잠시 멈추고 주님 발 앞에 머무르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원하신다.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고 바쁜 와중에 도대체 어떻게 예수님 발치에 앉아 여유롭게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걸까? 예수님을 섬길 에너지를 어디서 어떻게 충당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급한 일들을 다 하면서도 ‘더 좋은 편’을 택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한 가지 일이라도 족하다’라고 하신 말씀은,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철저히 시간을 관리하고 계획성 있게 살아 보라는 자기 계발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저 내게로 오라는 초대다. 즉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한 가지 일’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다.
--- p.88-91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삶의 컨텍스트와 이천 년 전 갈릴리를 비롯한 유대 지역의 삶의 컨텍스트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천 년 전이라는 시간적인 큰 간격과 중동이라고 하는 공간적인 큰 간극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이천 년 전 유대 사회와 닮은 꼴이 있다. 바로 백성들이 지쳐 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이 힘들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삶은 쉬지 않고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임마누엘하셔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이 땅의 지친 수많은 영혼들에게 참 생명과 안식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 영혼 구원을 통한 삶의 총체적인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 p.119-120
복음은 모든 인종적 편견과 감정적 대립이라는 장벽을 허문다. 복음의 가장 큰 특징은 선을 넘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장벽을 허물고 세상을 다시금 하나로 만든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늘의 선을 넘으심으로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이 땅에 오셨다. 하늘과 땅 사이의 선은 고층아파트와 반지하, 강북과 강남보다도 훨씬 더 넓고 크다.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의 선이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혹시 예수님의 복음을 나만 특별한 것, 명품, 희귀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 양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예수님 때에 ‘나는 특별하고 너희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바리새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복음은 나만 소유하는 소유물이 아니라 나를 통해 흘러가야 하는 유통물인데도 말이다.
복음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복음을 가졌기 때문에 무조건 천국에 간다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믿었으니 이 은혜의 복음을 살아 내다가 주님 앞에 서기를 소망해야 하지 않을까?
--- p.158-160
🖋 출판사 서평
희망을 품고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헤엄치는
이 시대의 혹등고래들과 떠나는 21일간의 여정
저자는 모든 이산화탄소를 끌어안고 심해로 내려가 죽는 혹등고래에게서 십자가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죽음을 맞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산화탄소처럼 죄를 끊임없이 배출해내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 커다란 덩치와 힘으로 작은 생물들 위에 군림하고 살 수 있지만, 혹등고래는 자신의 힘으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살리고 구원한다. 예수님도 무한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셨다. 그것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동물의 왕국처럼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공동체가 혹등고래처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행복, 곧 샬롬의 나라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예수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살아내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21일간의 묵상과 기도를 따라가보자. 그 끝에서 샬롬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