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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퇴직연금제도 활성화의 근본 기제는 운용성과 제고다. 제도 일원화나 중도인출 제한 등의 현안 과제에 있어 세제 혜택을 통한 유인기제나 법적 강제 등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수익률이다. 자산운용에서 수익률 제고의 핵심은 자산배분이다. 합리적인 자산배분을 통해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투자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는 근로자 개인의 역량과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운용 목표다. 연금자산의 운용은 개인의 직접투자가 아닌 간접운용이 기본인 이유다. 자산배분전략이 내재된 효율적인 간접투자 대안(solution)을 제시하는 것이 연금제도가 자산운용업에 부여한 임무이자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퇴직연금 시장은 공모펀드 형식의 자산배분펀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디폴트옵션제도에서 자산배분펀드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디폴트옵션의 경우 자산배분을 포함하여 자산운용에 수반되는 모든 의사결정이 외부 전문가에게 위임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해외사례를 보면, 적립 단계에서의 대표적인 자산배분펀드는 TDF와 TRF이나, 우리의 경우 TRF 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TDF 위주의 디폴트옵션 시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전지정운용으로 설계된 우리 디폴트옵션제도에서는 TDF 구조의 자산배분펀드가 부적절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디딤펀드라는 공동 브랜드로 퇴직연금에 특화된 자산배분펀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자산배분펀드의 성공적인 운용성과를 기반으로 우리 퇴직연금 운용체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들어가는 말
평균수명 100세를 이야기한다. 소득이 있는 근로기간보다 소비만 하는 은퇴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100세 시대의 도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기 위한 키워드는 연금자산이다. 이른바 다층연금체계를 통한 은퇴 이후 평생소득 확보의 필요성이다. 1층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2005년 도입된 우리 퇴직연금제도 역시 내년이면 벌써 20주년이다. 적립금도 빠르게 증가하여 작년 말 382조원을 기록하였으니 현재는 40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선 국민연금기금과 함께 전 국민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사적연금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국민연금기금 적립금 1,000조원에서 640조원은 기금 운용에 의한 수익금이다. 특히 최근 5년 동안은 연평균 7.2%의 수익률로 284조원의 수익을 기록하여 적립금 축적에 큰 기여를 하였다. 최근 5년은 글로벌 자산운용 시장의 동반 침체로 국민연금 역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하였던 2022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장기성과라 할 수 있다. 동기간 퇴직연금의 5년 평균 수익률은 1.5%로 보고된다. 적립금 규모를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운용에 의한 누적 수익은 23조원 미만일 것으로 추산된다. 전형적 장기투자인 연금자산의 운용에서 이러한 수익률 차이로 인한 복리효과는 극명하다. 예를 들어 특정 근로자가 근로기간 30년 동안 매달 30만원을 납부하였다면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의 경우 은퇴 시점에서 3억 6천만원을 수령하는 반면 퇴직연금 수익률이라면 1억 4천만원에 불과하다. 이를 종신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전자는 매월 150만원의 급여 지급이 가능한 반면, 후자는 60만원에 불과하다. 은퇴 이후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annuity)으로 수령하는, 이른바 연금화(annuitization)의 의지가 갈리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회 차원의 공적연금개혁 과정에서 퇴직연금제도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적 개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세제 혜택을 통한 유인기제 강화나 법적 강제화 방안 등이다. 하지만 연금제도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운용성과(performance) 제고다. 제도 일원화, 중도 해지 및 인출 제한, 그리고 일시금이 아닌 연금 수급 의무화 등 퇴직연금제도의 현안 과제 대부분은 사실 적립금의 운용수익률 제고로 해소 또는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 연금 제도로 평가되는 미국의 401k 또는 호주의 슈퍼에뉴에이션(superannuation) 등에서 확인되는 근로자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제도 참여가 이를 방증한다.
운용성과 제고의 핵심은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이다. 이는 학문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충분히 검증된 주장이다. 이는 수익률 제고를 위한 운용 체계 개편의 방향은 오롯이 효율적 자산배분의 문제로 정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퇴직연금제도 활성화의 시작과 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근로자 개인의 역량과 노력만으로는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운용 목표다. 해외사례에서도 확인되듯이, 연금자산의 운용은 직접투자가 아닌 외부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간접투자가 기본인 이유다. 따라서 외부의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간접투자 수단은 효율적 자산배분의 과정을 반드시 포괄하여야 한다. 연금자산의 운용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또한 가장 어려운 의사결정이 자산배분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사업자가 제시하는 연금 상품이 자산배분펀드 위주로 설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퇴직연금의 자산구성
퇴직연금 적립금의 저조한 수익성과의 원인으로 과도한 원리금보장상품 치중이 지적된다. 따라서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전체 자산구성에서 실적배당상품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당면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를 위하여 확정급여형(DB)에서 적립금운용위원회 및 투자정책서(IPS) 작성을 의무화하고 확정기여형(DC)에서는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도적 제약요인으로 인해 애초에 의도했던 정책 목적이 온전히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 퇴직연금제도의 현실이다. 한편으론, 현 상황에서 이렇게 실적배당상품 비중 확대를 독려하는 것만으로 과연 장기수익률 제고가 담보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크지 않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실적배당상품의 실현 수익률은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risk premium)을 제대로 시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채권 중심의 전통자산으로 구성된 현행 실적배당상품은 위험성향 측면에서 그 자체로 극히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비체계적 위험(idiosyncratic risk)이 제거된 최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지 못하여 개별 자본시장의 변동성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2023년 말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은 382.4조원 규모다. 이 중 87.2%가 원리금보장상품에 예치되어 있으며, 실적배당상품 비중은 12.8%로 49.1조원 규모다.1) 흔히 원리금보장상품은 안전자산으로, 실적배당상품은 위험자산으로 인식되나 이는 적절한 분류가 아니다. 자산군(asset class)에 기반한 자산배분의 관점에서 안전자산은 채권을, 위험자산은 주식 및 대체투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퇴직연금 실적배당상품은 그 자체로 안전자산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현재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원리금보장상품은 운용자산이 아닌 자금의 일시적 보관을 위한 예치금(현금)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하지만 연금자산의 운용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정보라 할 수 있는 자산배분 관점의 자산구성에 대한 통계는 어디에서도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퇴직연금제도의 현실이다.
감독 당국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퇴직연금 운용 현황에서는 자산군 단위의 자산배분 통계가 아닌 상품별 편입 정보만 제시하고 있다. 퇴직연금 통계에 의하면 전체 실적배당상품의 87.3%에 해당하는 42.8조원이 보험 상품을 포함한 집합투자증권(펀드)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이는 일반 공모펀드 분류 방식인 주식형, 혼합형, 채권혼합형, 채권형으로 나누어 각각 14.5조원, 7.1조원, 8.7조원, 9.0조원 규모로 분류된다.2) 하지만 이러한 상품 단위의 운용 통계로는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정확한 위험수익특성(risk return profile)을 파악하기 어렵다. 연금자산에 대한 합리적인 운용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자산군 단위의 자산 구성(asset mix)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연금자산의 운용에서 60:40이라는 주식과 채권 비중의 황금 규칙(golden rule)이 여전히 유효한가, 대체투자 비중은 어디까지 확대하는 것이 최적인가 등이 해외 퇴직연금 시장의 최근 이슈다. 하지만 우리 퇴직연금 적립금은 주식 비중이 얼마인지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등 운용 측면에서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라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필자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우리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서 주식 비중은 4.3% 미만이다. 금액으로는 382조원 중 16.3조원 미만이 주식 자산에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 실적배당형상품의 경우 주식과 채권 비중이 대략 30:70으로 추정되어 앞서 언급한 연금자산 운용의 황금 규칙과는 매우 괴리된 자산 구성을 보인다. 이는 현재 원리금보장상품에 치중된 퇴직연금 운용 행태가 실적배당형으로 전환되더라도 기대수익률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국내주식 시장의 수급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역할 역시 매우 미미하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전체 주식 자산에서 해외주식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국내주식에 대한 자산배분 비중은 1.6% 미만으로 추정된다. 금액으로는 7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연금자산의 확대가 자국의 뮤추얼펀드 시장의 비약적 성장을 견인하였다는 미국 401k 사례를 우리는 기대하기 힘든 양상이다. 사회복지학 관점에서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구조적 결함이 많은 제도다. 자산배분을 포함하여 초장기 투자인 연금자산 운용의 어려움을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 퇴직연금제도는 선택형 기업연금이 아닌 법적 강제연금임을 감안하면, 자산배분펀드 중심의 효율적 디폴트옵션 제공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 할 수 있다.
자산배분형 퇴직연금펀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금자산 운용의 키워드는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이른바 자산배분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자산별 그리고 지역별로 제시되는 다양한 상품을 조합하여 개인의 최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자본시장의 변동에 따라 배분 비중을 상시적으로 리밸런싱(rebalancing) 하여야 한다. 확정기여형에서 근로자 개인이 직접 30년 이상의 장기에 걸쳐 이러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지속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연금자산 운용의 기본은 외부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간접투자다. 우리 퇴직연금제도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기초자산에 대한 직접투자를 규제 또는 지양하고 가능한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수단을 유도하고 있다.
간접투자는 자산운용에 수반되는 일련의 투자의사결정(investment decision making)을 외부 전문가에게 위임(discretion)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접투자에서 의사결정의 위임은 그 범위와 깊이에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예를 들면, 주식형 펀드에 대한 간접투자는 개별 기업의 고유위험(idiosyncratic risk)을 상쇄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종목선택(stock selection)에 대한 의사결정을 외부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개별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가 허용되지 않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서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간접투자 수단은 대부분 이러한 종목선택의 위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 근로자 개인의 전체 운용성과는 어떤 펀드 상품을 선택했는가 보다는 어떤 펀드 유형에 얼마나 많이 배분하였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산운용의 장기 운용성과는 전략적자산배분(SAA)으로 결정된다는 논리다.
퇴직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간접투자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종목선택이 아닌 자산배분에 대한 의사결정이 전문가에게 위임되어야 한다. 자산배분을 외부 전문가에 위임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일임위탁이다. 확정급여형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OCIO(Outsourced CIO) 위탁운용이나 확정기여형의 로보어드바이저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퇴직연금 적립금을 간접투자 하는 기본적인 수단은 공모펀드 형식의 집합투자증권이며, 일임위탁은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 수단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4) 이 부분이 공모펀드 형태로 제공되는 자산배분형 퇴직연금펀드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퇴직연금 자산배분펀드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첫 번째는, 자산별 그리고 지역별로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투자포트폴리오가 구축되어야 한다. 주식 또는 채권의 단일 자산이 아닌 시장에서 운용 가능한 모든 전통자산과 대체투자 자산을 포괄함으로써 개별 시장의 위험을 최대한 분산하여야 한다. 특정 자산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하고 이로 인한 투자 신뢰 저하가 반복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위험의 분산은 국가별 또는 지역별 배분을 통한 수익률의 변동성 완화를 의미한다. 종합하면, 여러 국가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포트폴리오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투자포트폴리오에 대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이 펀드에 내재되어야 한다. 개별 자산배분형펀드는 특정 위험수익특성을 표방하는데,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특성치가 유지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간접투자를 통해 개인의 연금자산 운용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완결된 형태의 자산배분형펀드가 단일 상품으로 제시되어야 하며, 대다수 확정기여형 근로자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이를 통해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폴트옵션의 적격상품은 반드시 자산배분펀드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사례를 보면, 퇴직연금 시장의 대표적인 자산배분형펀드는 TDF(Target Date Fund)와 TRF(Target Risk Fund)다. TDF는 분산된 위험의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전제로 사전에 설정된 글라이드패스(glide path)에 따라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량을 조정하는 자산배분펀드의 대표적 유형이다. 디폴트옵션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연금 선진국에서 확정기여형 적립금의 대부분이 TDF로 운용된다. 사전지정운용제도로 설계된 우리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의 적격상품 역시 대부분 TDF의 조합(포트폴리오)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개별 근로자의 위험성향에 따른 적합성 원칙이 그대로 준용되는 우리 사전지정운용제도에서 TDF의 조합으로 제시되는 자산배분형펀드는 다분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5)
우리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실행 구조를 감안할 때 적격상품에 적합한 자산배분펀드는 TRF 유형이다. TRF는 특정 위험량을 목표로 다양한 운용 자산의 조합과 상시적 리밸런싱을 제공하는 단일 상품으로서의 자산배분펀드를 의미한다.6) 적합성 원칙에 따른 위험성향을 준수하며 분산된 위험의 투자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적격상품에는 극히 소수의 TRF 상품만이 편입되어 있다. 퇴직연금의 적격상품으로 승인 받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검증된 운용실적(track record)이 필요한데, 우리 공모펀드 시장에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TRF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검증된 성과의 우수한 자산배분펀드를 제공하는 것이 자산운용업의 시급한 당면 과제다.
결론 및 시사점
퇴직연금제도의 소관 부처는 고용노동부다. 퇴직연금은 노동 및 사회복지제도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의 설립 목적은 근로자의 퇴직소득에 대한 수급권 강화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도산으로부터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충분한 규모의 연금자산을 축적하여 은퇴 이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소득보장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의미로 확대되어야 한다. 제도 입장에서 금융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퇴직연금사업자가 아닌 자산운용사에 제도가 요구하는 역할은 연금자산의 유의미한 증식이라 할 수 있다. 퇴직연금의 수익률 제고는 상품 제공자인 자산운용사의 임무이자 과제라는 뜻이다. 자산운용사가 수익률을 적극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수단은 종목선택이 아닌 자산배분이다. 따라서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에 있어 자산운용사의 경쟁 구도 역시 개별 운용사의 자산배분 역량에 집중하는 경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금융투자협회는 최근 디딤펀드라는 이름으로 연금시장에 TRF 유형의 자산배분펀드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디딤펀드는 다양한 자산군을 대상으로 운용사 고유의 역량이 반영된 자산배분 전략을 통해 안정적인 중장기 수익을 추구하는 연기금형 자산배분펀드로 정의된다. 디딤펀드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운용사별 자산배분형 대표 펀드라 할 수 있다. 운용사는 기존 TRF 상품을 활용하거나 신규 상품으로 설계하여 제시할 수 있다. 호주의 마이슈퍼(MySuper)와 유사하게, 자산운용사별로 한 개의 디딤펀드만을 출시토록 하고 디딤펀드라는 공통 브랜드로 협회가 통합 관리함으로써 홍보와 마케팅을 효율화한다는 전략이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시장에서 자산배분펀드의 의미와 효용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TDF 중심으로 구축된 기존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효율적이고 검증된 자산배분펀드의 제공은 퇴직연금시장에서 자산운용업 본연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수요자인 고용노동부와 근로자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관련 시장 참여자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
1) 고용노동부, 2023년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 2024년 5월
2) 리츠 등의 기타 유형이 3.5조원 규모이다.
3) 펀드의 유형 분류 기준으로 가늠한 저자의 추정치이며, 최근 펀드평가사인 FnGuide가 개별 펀드의 구성 종목에 기반한 퇴직연금 운용 통계를 작성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적립금의 OCIO 위탁운용은 투자일임이 아닌 사모펀드 구조로만 가능하며, 확정기여형 근로자에 대한 로보어드바이저 위탁운용은 규제 샌드박스 일환으로 현재 시범 운용 중이다.
5) 특정 위험량을 맞추기 위한 TDF의 빈티지 조합에는 아무런 경제적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위험량이 변동되는 TDF의 특성상 정기적으로 적격상품이 재승인 되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6) 미국 401k 제도의 디폴트옵션 적격상품(QDIA)에서 제시하는 BF(Balanced Fund)와 동일한 개념이다. BF를 TDF와 TRF를 포괄하는 용어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QDIA에서 TRF와 BF를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의 BF는 TRF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최근 OCIO펀드라는 이름의 공모펀드가 이와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기존 공모펀드 유형 중 일반 혼합형펀드는 주식과 채권의 비중이 고정되어 있으며 상시적 리밸런싱 기제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자산배분펀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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