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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여태껏 한 번도 본적 없는 친척들과 함께 있으려니 어색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분명 반겨
주지 않을 거라는 내 걱정과 달리 잘 왔다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의외의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아직 편한
사이는 아니지만 결국 이렇게 보게 될 거, 그땐 왜 그렇게 고집부리고 못되게만 굴었을까? 왜 그렇게 인정하기가 싫었을까.
"못본새 더 예뻐졌네~ 아줌마가 아니라 이제 진짜 아가씨 같다. 그동안 잘 지냈어?"
어른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해주겠다는 채서린을 따라 2층으로 향하는 중이였다. 그냥 내 착각일 수
도 있지만 내가 여기 왔다는 사실이 기쁜지 조금은 들떠보이는 채서린. 얜 내가 밉지도 않은가 보다. 그렇게 버릇없게 굴었
었는데도 이렇게 잘해주는 걸 보면. 예전에 내가 했던 행동들 따위 다 잊어버린 듯 스스럼없이 내 팔을 잡아끄는 행동에 저
절로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가 그냥 씩 웃으며 대답하는 나.
"그래봤자 아줌만데요 뭐."
그것도 애가 둘이나 딸린 아줌마.
"근데 태양이랑 햇살인..... 어...?"
뭐야. 벌써 와있었던 거야? 채서린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며 태양이랑 햇살이는 언제 오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문이 열리는 순
간 나와 눈이 마주친 햇살이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가 마치 제방인냥 침대 위에 편하게 누워있다가 천천히
문쪽으로 고갤 돌리는 태양이도 의외라는 듯 몸을 일으켜 세우면.
"차 준비해 올테니까 얘기하고 있어~ 그리고 아로하, 넌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왜? 나도 애들이랑 놀고 싶은데."
"잔말 말고 따라와 나랑 할 얘기 있잖아. 그것도 아주 중요한 얘기."
아주 중요한 얘기라... 지금 채서린이 말하는 중요한 얘기라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워져 있는 걸
보면 심각한 얘기는 아닌 듯, 결국 '금방 올께' 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끌려나가는 아로하였다. 이따 오면 물어봐야지.
"언니, 여긴 어떻게.... 잘 왔어. 진짜 잘 왔어!! 와줘서 고마워."
"응? 아니야~ 고맙긴..."
"언니 오니까 정말 좋다. 너무 좋아서 눈물 나려고 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심했으면 햇살이가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건지, 어쩌면 정말 당연한 건데.... 고맙다는 말 들을 일이
아닌데....
"야. 넌 누나 보고 인사도 안 하냐?"
괜히 나까지 눈가가 촉촉해질까봐 분위기 전환도 할 겸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태양이에게 말했다. 처음
엔 마치 니가 여기 왠일이야 라는 표정으로 햇살이보다 더 놀라는가 싶더니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침대에 드러누워 생
각에 잠겨있다가 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눈을 찡긋거리며 웃는 김태양. 뭔가 이상해... 진짜 이상해. 평소
랑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 뭘까?
"쟤 왜 저래?"
"그분이 오셨어."
"응?"
"왜 있잖아, 가끔 한 번씩 오는 또라이님. 이번엔 두분이 동시에 오셨어~ 말 없는 분, 눈웃음 치는 분."
"아...."
"갑자기 며칠 전부터 말 많은 남자는 매력 없다고 말도 잘 안 하더니 가끔 한 번씩 눈 마주치거나 말 걸면 저렇게 부담스럽
게 웃는다? 저게 멋있는 줄 아나봐."
"다른 여자들한텐 먹힐지도 모르지... 요즘 바쁘다길래 뭐하느라 그렇게 바쁜가 했더니, 진짜 할일 없나보다."
"아~ 왜 보자마자 잔소리실까 우리 누님."
"뭐야, 제비도 아니고. 그런 말투 쓰지마 완전 느끼해!"
"싫은데?"
"그래~ 니가 내 말을 들을리가 없지. 니 마음대로 해, 니 마음대로."
"안 그래도 그럴 거다."
아오.... 진짜 유치해서 정말. 하두 하는 거 없이 놀고 먹기만 해서 잔소리 좀 했더니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신경쓰지 말라던 김태양. 그때부터였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싫다고 하길래 말 안 듣는 동생은 싫다고 누나 말 좀 잘
들으라니까 청개구리처럼 더 삐딱하게만 구는 놈이다. 진짜 애도 아니고...
아무리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어도 한 배를 타고 나왔는데 어쩜 쌍둥이가 이렇게 다를까? 정말 내 동생이지만 유치해도 너
무 유치하다. 게다가 고집도 쌔고, 소심하고, 평생 못 고칠 왕자병까지!! 도대체 쟬 누가 데려가.
"근데 꼬맹이들은 왜 안 데리고 왔어?"
"와서 뭐해, 그냥 집에 있는게 편하지."
사실, 나도 오늘 여기 오는 줄 모르고 있었지만.
"아아~ 보기 좋네."
"뭐가?"
"요즘, 돼지가 제철이지?"
쌩뚱맞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우리 누나 포동포동 살찐 거 봐. 그러니까 이제 진짜 돼지 같다~ 토실토실 엄마 돼지."
"뭐? 야아...!!!"
저게 진짜 죽을라고!! 나한테는 왜 보자마자 잔소리냐더니 겨우 1키로 찐거 가지고 놀려대는 통에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라
도 한대 쥐어박아줄 생각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간발의 차이로 허공에서 붕 떠
버린 내 손. 그리고 곧 문이 열리면, 그 작은 문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아빠...!?"
맙소사. 생각지도 못한 아빠의 등장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냥 말문이 막혀버린 나. 그리고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
고 받는 세 사람을 보고 완전히 벙쪄버렸다. 지금....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지애 너 거기서 뭐해?"
"어?"
"그 손."
"아.... 아니야, 아무 것도."
바보 같이, 아빠가 여기 왠일이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정말 바보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는 나. 이럴 수가... 내 머리가 이렇
게 나빴던가? 아직도 도무지 이해 안 가는 상황에 태양이를 때리려고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다시 한
번 얼떨떨한 얼굴로 모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게 꼭 나만 놀란 것 같은 상황.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정말
나만 어색하고 나만 적응 안 되는 것 같은 그런 상황.
"아저씨, 오늘 넥타이 예뻐요."
"그럼~ 누가 선물해준 건데."
뭐야 진짜.... 언제 나 모르게 만난 적이라도 있나? 점점 이해 안 가는 상황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편하게 말을 주고 받는
햇살이와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가볍게 웃으면서 내 팔을 잡아 당겨 침대에 앉히더니, 마치 뒤에서 안아주듯이
가볍게 팔로 어깨를 감싸고 내 어깨 위로 턱을 괴는 태양이.
"앉아, 서있지 말고."
"그래 앉아있어~ 아빤 또 내려가봐야 돼. 이따 보자!"
"어...? 아빠....!!"
쿵!!! 조용히 들어와서 요란하게 나가는 아빠를 뒤늦게 소리쳐 불러보아도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벌써 발걸음 소리조차 들
리지 않았고, 뭔지 모르게 괜히 기분 나쁜 상황에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오빠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달래듯이 얘기하는 김태양.
"왜 그래? 꼭 밥그릇 뺏긴 똥강아지마냥."
"몰라, 기분이 이상해."
"이게 전부터 누나가 바라던 거 아니였어? 아예 모르는 채 사는 거 싫어했잖아."
"그렇긴 한데....."
헐.
"너 왜 갑자기 계속 누나누나해?"
이것도 청개구리 심보인가? 그렇게 하라고 할 땐 안 하더니 이제 아주 자연스럽네, 적응 안 되게. 그동안 나 몰래 연습이라
도 했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만 열면 너너 하던 애가 갑자기 계속 누나라고 하니까 이것도 기분이 이상하다. 뭐 금방 익
숙해지겠지만. 어쨌든 꽤나 놀라운 마음에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바라보면, 바로 코 앞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 있는 김태양
얼굴.
"누나 맞잖아."
"응. 근데...."
"하지 말까?"
"아니이~ 좋아. 계속 누나 할래."
"...바보."
내가 정말 너무 바보 같이 웃었던 걸까? 피식 웃으면서 아프지 않게 내 머리를 살짝 쥐어 박으며 나한테서 떨어져 벽에 기
대 앉는 태양이.
"근데 아빠랑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그냥, 제사 때마다 봤더니 자연스럽게 좀 편해진 것 뿐이야."
"아빠가... 제사 때마다 여기 왔었어?"
"응. 근데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걸? 이제 결혼도 하셨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뭔지 아주 잘 아시는 분이니까."
"그래...?"
근데 왜 그동안 나한테 말 안 했을까? 제사 때마다 왔었다는 거.... 예전처럼 내가 싫어할까봐, 그래서 그랬나? 이제 괜찮
은데.... 나 정말 괜찮은데. 바보.
"언니, 새 엄마가 잘 해줘?"
"응. 엄청 엄청."
"다행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그만큼 생각하시는 거겠지."
"응. 근데 햇살아, 아까 그 넥타이 니가 선물한 거야?"
"아, 그거~ 내가 산 거 아니야."
"그럼?"
"오빠가. 오빠가 백화점 가서 직접 골랐어."
"야. 너도 갔이 갔었잖아!"
"어쨌든, 아저씨한테 감사하다고 오빠가 먼저 사자고 한 거잖아. 언니 앞이라고 괜히 부끄럽냐?"
"아니야! 그런 거..."
"맞구만 뭐."
"우와... 태양아아. 진짜야? 진짜 니가 산 거야?"
정말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질랑말랑한 얼굴로. '나 지금 감격했어요' 라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그런 건 뭐하
러 얘기하냐는 듯 약간 심통이 난 채로 홍익인간이 되어 뒤로 기대 앉아있는 태양이를 바라보다 와락 끌어안고는.
"고마워. 진짜 고마워. 평생 안 잊을께."
"...."
"나 진짜 감동했어 태양아. 넌 역시 너무 착해."
"하.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
"이 순간 만큼은 진심이야!"
그래, 정말 이 순간 만큼은.
"아... 이 누나는 차를 만들러 갔나, 왜 이렇게 안 와!?"
어머. 얘 봐라? 진짜 부끄러움 타는 건가? 귀엽게시리... 얼굴은 완전 빨개져서 나랑은 눈도 안 마주치고 이제 아예 딴소리
만 하는 태양이. 괜히 없는 사람한테 투정이다.
"오래 기다렸지? 이거 먹으면서 놀아~"
그리고 바로 그때 마냥 기분이 좋아서 눈가에 찔끔 고여있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코를 한 번 훌쩍이고 있을 때 과일
과 함께 차를 준비해온 채서린. 태양인 그런 채서린에게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괜히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채서린은 어이
가 없다는 듯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한마디 한다.
"맥북."
"어차피 사줄 것도 아니면서 그만 울궈먹어 이 마귀 할멈아."
"그래? 그럼 그냥 반품하지 뭐."
"반품...? 아, 미안해 누나!! 내가 완전 잘못했어. 완전!! 이제 안 까불께."
"또."
"마귀 할멈이라고 한 거 취소. 세상에서 누나가 제일 예뻐!! 천사야 천사."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네. 그럼 당장 내일부터 출근해."
"아.... 이건 또 무슨 작전이야. 내가 왜?"
"왜?? 말 나온김에 그냥 지금 다 하자. 너 도대체 커서 뭐 될래?"
"벌써 다 컸거든요~"
"말 장난 하지 말고."
"걱정하지마. 아무리 배고파도 누나한테 먹여살리라곤 안 할 테니까. 그나저나 내 맥북 어딨어?"
이미 머리 속엔 온통 맥북으로 가득 차서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는 태양인 빠르게 방 구석구석을 훑으며 맥북을 찾기 시작
했지만, 얼마 안 가 이어지는 한마디에 다시 진지해진 표정으로 얌전히 침대에 앉는 태양이.
"지애도 알아? 너 학교 그만 둔 거."
뭐...??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태양이가 학교를 그만 둬?? 처음 듣는 소리에 놀란 얼굴로 태양일 바라보면 걱정
하지 말라는 듯 그저 어색한 얼굴로 살짝 웃음지으며 괜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김태양.
"학교가 수준에 안 맞아서 싫다는 말은 천재들이나 하는 소리지 너처럼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할 말은 아니야."
"못 하니까 더 할 수 있는 말인데 왜 그걸 몰라? 이래서 많이 배워봤자 다 소용 없다니까."
"니가 지금 제정신이야?"
"아닐지도 모르지."
"저게 진짜..."
"나랑 말 해봤자 누나 입만 아픈 거 알잖아. 한 번 때려친 학교 다시 가긴 싫고, 아까 들은 얘긴 못 들은 걸로. 오케이?"
"난 몰라. 진짜 모르겠으니까 다른 애들처럼 공부를 계속 하던가 나와서 돈을 벌던가 둘 중에 하나 결정해. 이건 내 뜻이
아니라 할아버지 뜻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니가 계속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 언젠 뭐 얼마나 잘 해줬다고. 당장 내일부터 나가서 일하면 월급 한 10억씩 주나? 그런 거 아니면 나 설득할 생각
하지말라고 전해줘, 제발. 아~ 내 맥북 어딨어! 여기 있나??"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또 한 번 말을 잘라버리는 태양이를 보고 이제는 채서린도 더이상 할 말이 없는지 그저 한숨
만 쉬고 있고, 여태껏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충격을 받아 있는 사이 정작 가장 심각해야 할 본인
만 태평한 얼굴로 개구지게 웃으면서 물구나무를 서는 자세로 고개만 숙이고 침대 밑을 살피는 태양이. 그리고 정말 신기하
게도 '찾았다!!' 하며 침대 밑에서 맥북을 꺼내더니 아무 근심걱정 없는 얼굴로 바로 실행시키면.
"하아...."
정말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계속 한숨만 쉬는 채서린과 이런 모습 익숙하다는 듯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혀를 차
는 햇살이. 그리고 잠시 후 정말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채서린이 방을 나가면 그 뒤로 햇살
이도 따라 나서고.
"그만 좀 쳐다봐. 얼굴 닳겠어."
자꾸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하는 태양이.
"너... 나한테 할 얘기 없어?"
"응."
"진짜 없어?"
"와... 좋다 이거."
"태양아."
"왜?"
"나랑 얘기 좀 해."
"하고 있잖아."
"이렇게 말고, 진지하게."
"나 진지한 거 싫은데."
"...."
"알았어. 얘기해."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계속 장난만 치다가 이제서야 맥북을 닫고 내쪽으로 돌아앉는 태양이를 한참동안 그냥 바
라만 보았다.
"학교 휴학한 거 아니였어?"
"그랬었어."
"왜 그만뒀는데?"
"그냥."
"뭐?"
"워낙 그림에 소질이 많아서 재미도 없고, 파리.... 내 스타일 아니야."
"그럼 여기서 계속 배우면 되잖아."
"지금은 싫어. 아무 것도 집중이 안 돼."
"그래도..."
"너무 걱정마! 언젠간 꼭 다시 시작할 테니까. 지금 내가 제일 잘 그리는 거 말고 다른 걸 더 잘 그릴 수 있을 때... 그때
꼭 다시 시작할 테니까 너무 걱정마."
"진짜 걱정 안 해도 돼...?"
"응."
"진짜?"
"응."
"그래..."
근데..... 그래도 기분이 이상해. 태양인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꼭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해서 무지 속상한 기분. 내가 조금만 더 관심있게 지켜봐줬더라면 잡아줄 수도 있었던 걸 그러지 못
해서 내가 다 망쳐버린 느낌.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속상해 죽겠다. 난 왜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게 제일 미안해.
"미안..."
"뭐가?"
"그냥... 내가 니 누나라는게 너무 창피해, 오늘따라."
"난 니가 내 누나라는게 완전 짜증나게 싫어. 동생이라고 막대할 때마다 얼마나 억울한 줄 알아? 예전엔 쌍둥이의 운명이
이렇게 비극적인 건지 몰랐어. 아.... 내가 오빠로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다시 뱃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넌 지금 이 상황에 장난이 나와??"
"이 상황이 뭐 어때서? 그러지 말고 한달에 딱 한 번만 오빠라고 불러줘~ 그럼 눈 감고 잘 수 있을 것 같애."
"뭐??"
"몰랐어? 나 요즘 눈 뜨고 자. 햇살이가 벌써 다 말했을 줄 알았는데?"
아...... 머리야. 진짜 골고루 한다, 골고루 해.
"원래 그랬던 건 아니고?"
"아니야!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완전 환상이지만 잠버릇 만큼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어."
"하이고...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김태양 어린이."
"나 애기 아니라니까."
"애기랑 어린이랑 엄연히 다르거든??"
"아무튼."
원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가끔 보면 정말 덜떨어졌단 말이야? 얼굴이라도 잘생겨서 다행이지.
"언니! 오빠아!!"
"어...? 이거 햇살이 목소리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아까 채서린을 따라 나갔던 햇살이 목소리가 들려와 동시에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 동시에 문 앞으로 뛰
어가 문을 벌컥 열어보면 복도 끝 계단 위에서 우릴 향해 손짓하며 말하는 햇살이.
"빨리 와~ 이제 절 해야지."
아...... 맞다. 절. 나 지금 제사드리러 온 거였지...?
"어떡해.... 나 갑자기 떨려."
심장이 이렇게 웃긴 거구나. 무지 행복했다가 금방 짜증났다가 또 금방 울적했다가 또 금방 이렇게 떨려버리면, 난 도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되니? 갑자기 제삿상 앞에 설 생각을 하니까 미치도록 떨려오는 마음에 방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날 지그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는 태양이.
"가자."
"응..."
막상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아직 자신 없어 하는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태양이를 따라 걸으며 긴장되는 마음을 가다듬었
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건지, 아님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전보다 더 넓어진 듯한 등을 바라보니 조금씩 안정이 되
어가는 느낌. 처음으로 태양이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던 순간이였다.
만약 지금 니가 내 옆에 없었다면... 아마 나, 이렇게 용기낼 수 없었겠지? 혹시 내가 또 머뭇거리면.... 자꾸만 못나게 굴
면, 지금처럼 니가 나 좀 이끌어줘. 어렵지만 이렇게 한발짝 한발짝 다가갈 수 있게 니가 내 등 좀 떠밀어 줘... 그래줄 수
있지? 꼭 그렇게 해달라고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넌 그래 줄 거지?
"돼지야."
처음 하는 제사도 아닌데 꼭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정신 없어 하다가 티 안나게 실수도 해가며 무사히 절을 마치고 30분 정
도 앉아있을 때였다. 진지한 거 싫다고 항상 장난기만 가득하던 태양이도 엄마 아빠 앞에서 만큼은 의젓한 아들이고 싶었는
지 오랫동안 자리도 뜨지 않고 그 어느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액자 속 사진만 바라보고 있더니 처음으로 내게 건넨 말.
"돼지야..."
"응?"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는 태양이를 따라서 방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앉아 무릎에 턱을 괴고 있다가 조용히 답했다. 그럼
또 한 번 아무 말 없이 내 이름만 부르는 태양이.
"돼지야..."
"왜...?"
"죽기 전에 딸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
"평생 자기 존재도 모르고 잊혀져 버리면..... 그거 진짜 아픈 거지? 죽어서도 아픈 거 맞지?"
"응..."
"넌 엄마를 많이 닮았데, 아빠를 많이 닮았데?"
"....아빠."
내가 어렸을 땐 엄마가 젊었던 시절이랑 똑같다고 누구한테 그렇게 전해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 모습이 내게 익숙하지 않
아서 그런지 내 눈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은 내 얼굴. 내가 특별히 아빠를 더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
게 느껴서였다.
"....나도."
"그치? 엄마는 햇살이가 많이 닮은 것 같애... 아까 사진이랑 같이 보니까 정말 그렇더라."
"응.... 근데....."
"응."
"근데...."
"응..."
"....."
왠지 모르게 마음이 너무 소란해서 이러다 괜히 눈물이라도 쏟아져 나올까봐 애써 괜찮은 척 검지 손가락으로 바닥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며 재미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중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아까부터 계속 말 끝을 흐리며 쉽사리 말을 잇
지 못하던 태양이는 힘 없는 웃음에 잔뜩 눈물이 베어버린 목소리로.
"난 왜.... 너네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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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ㅠ
어떻게 죄송하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늦는다는 말도 없이 이렇게 늦게 오게 되서 기다려주신 분들껜 정말 너무 죄송해요.
2010년 얼마 안 남았지만 올해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거의 7개월만에 병원에서 퇴워하셨던 아빠가 한달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시고,
그렇게 된지 얼마 안 돼 제 남편도 불미스러운 일을 겪어서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이틀 전에 퇴원했어요.
[아빠는 아직도 병원에 계시지만....]
이사까지 겹치는 바람에 이래저래 너무 정신이 없었답니다. [아직 집 정리도 다 못함 ㅠㅠ]
제 마음 하나도 돌보지 못해서 내가 이거 쓸 정신이 어딨냐며 그냥 포기할까도 했었지만
여태껏 믿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완결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왔어요.
맨날 기다리게만 하는 못난 작가라 미워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ㅠ
단지, 단 한분이라도 절 끝까지 응원해주신다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 [진심♥]
주변에선 액땜했다고 생각하라는데 도대체 뭐 이런 액땜이 다 있냐며.... -_-
그냥 가끔씩 혼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곤 하네요;;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놈의 2010년 얼른 끝나버렸으면. ㅠ
아......... 조회수가 얼마나 더 떨어질지 무지 기대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차 조심하세요. 겨울이라 발 삐끗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나구요.
뒷통수 조심하란 말........ 괜히 있는 말 아니더군요. =_= 조심하세요.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정말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음;
전 여러분 오래 기다리게 한 만큼 앞으로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겠어요!
그럼. ㅠ_ㅠ
[업쪽=숫자]
첫댓글 19 태양아 설마 지금 잘그리는 그림이 지애는 아니징??....... 마지막 태양이대사 의미심장한 말은 몰까요??ㅋㅋ 잘봣어여~
그게 무슨 뜻인지 지애가 알아들을 수는 있을 런지 ㅋㅋㅋㅋ
77 오늘도 잘 보고가요ㅋㅋ작가님 힘내세요ㅋㅋ
감사합니다 ㅠ 지금 노래 들으면서 정신 수양 중. ㅋㅋㅋㅋㅋㅋㅋㅋ
22 아빠를 안닮았다니...무슨 말일까요? 작가님 담편도 기대 할게요~
악 ㅠㅠㅠ 아직 진실을 모르시는군요 =_=........이런;;; 예전에 몇번 나왔었는데.....ㅋㅋ 감사합니당. 담편도 기대해주세요~~
11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ㅠㅠ 김내세요!
네. 김낼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당. ㅋㅋ
액땜하셨으니 내년엔 좋은일생기시길
태양이에게 무슨일이있는건가요ㅜ
연재가 늦다 보니 내용이 잊혀지고 있나 봅니다 ㅠㅠ 태양이가 왜 저러는지 저만 알고 있는 거 보면 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해요 ㅠ 내년엔 정말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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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ㅠ 집에 가는 길에 아빠한테 전화한통 해야겠습니당. 감사해요!
1777 너무 오랜만이라 전에 내용 찾아봐야겠다;;
그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ㅠ 연재도 너무 느려서 앞에 내용 다 까먹으셨을듯;;
77777완전보고싶엇어용 ㅠㅠ..힘내세요! 담편 폭풍기대+ㅁ+!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그럼 담편도 기대해주세용 ㅋㅋㅋ
123 올해 너무 많은 일이생기셔서 많이힘드셧겟어요 내년엔 좋은일만생기세요 화이팅 !!
꼭 그러길 바래야죠 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제 퇴근 준비를....ㅋㅋㅋ
7777777기다리고있었어요!!ㅋㅋㅋㅋㅋ업쪽보고바로왔어요ㅋㅋㅋ
마지막에 태양이가 한말은 무슨 뜻? 다음편 빨리보고싶네요ㅋㅋ 2011년도엔 좋은일민 생기실거에요!ㅋㅋㅋ
다음편에서 뵈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다려주신 분들땜에 제가 힘이 난답니당 ㅋㅋㅋ 담편에서 뵈요!
777 작가님 기다렸어요 잉.ㅠㅠㅠ
기다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 ㅠㅠ
333 ㅠㅠ 아 열심히 기다렸어용 ㅋㅋㅋ 걱정마세요 작가님 천천히 쓰셔두 돼용 ㅋㅋ 언제오시든 업쪽 만 날려주시면 바로 슝 날라올게용 ㅋㅋ 힘내세요^^
아우 ㅠ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ㅠㅠ 더 힘내야 겠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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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ㅠㅠ 으앙 ㅠㅠ 태양이가 완전 ㅠㅠ 오메오메 ㅠㅠ 눈물나온다요 진짜 ㅠㅠ 히히 유ㅠㅠㅠㅠㅠ 오랜만이에요!1작가님 ㅋㅋㅋ
그쵸 ㅠㅠ 너무 오랜만이에요. 보고싶었어용. ㅋㅋㅋㅋㅋㅋ
123 너무 오랜만이에용 ㅠㅠ 맨날맨날 확인했다능.. ㅠㅠ 재밌숴용 ~~~~~
우와. 매일매일 찾아봐주셨다니.....감사합니다. 감동이에요! ㅠㅠ
8282완전오랜만이에요~
넵 너무 오랜만이에요 ㅠㅠ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29 재밋게봣어요 ㅋㅋㅋㅋ 오랜만이네요 ~
77 잘봤어요~ 넘 오랜만에 오셨어요~ 담편 기대할게요~~~!!
언제 오시나요 ㅠㅠㅠㅠㅠㅠ
연재중단인가요 흐그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