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정체성의 정체를 되묻다 - 김범수展 』
Kim Beomsoo Solo Exhibition :: Painting
▲ 김범수, 자 웃어요 130x130cm, Acrylic on Canvas, 2018
전시작가 ▶ 김범수(Kim Beomsoo 金範秀) 전시일정 ▶ 2018. 06. 08 ~ 2018. 06. 25 초대일시 ▶ 2018. 06. 08 PM 6:00 관람시간 ▶ Open 10:30 ~ Close 19:00 ∽ ∥ ∽ 미광화랑(MIKWANG GALLERY)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 172번길2 T. 051-758-2247 www.mkart.net
● 얼굴-정체성의 정체를 되묻다
★김소라(미술비평) 김범수 작가는 얼굴을 그린다. 얼굴은 흔하고 일상적이다. 그래서 평범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그 보편성이 담고 있는 진실 때문에 특별한 소재이기도 하다. 얼굴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정체를 보증하는 결정적인 증명이다. 그런데 그 누구라도 자신의 얼굴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얼굴의 아이러니한 운명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자기에게로 돌아가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유지하려 애쓰는 인간존재의 운명과 닮았다. 얼굴은 세계와 자아가 첨예하게 만나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른바 문제적 지대인 것이다.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이 지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말하자면 세계와 나, 보편과 개별 사이의 관계를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다. 김범수 작가의 얼굴그림도 그 지대에 있다.
▲ 김범수, 길게자란 손톱 48.5x47cm, Acrylic on Canvas, 2018
▲ 김범수, 두 사람의 대화 48x36cm, Acrylic on Canvas, 2018
▲ 김범수, 모든것이 불안하다 128x92cm, Acrylic on Canvas, 2018
▲ 김범수, 불편한것은 아름답다 90x90cm, Acrylic on Canvas, 2017
▲ 김범수, 산복도로-40계단 41x32cm, Mixed Media, 2018
김범수 작가의 얼굴 그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커다란 눈이다. 큰 눈은 긴 속눈썹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예쁜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눈동자로 인해 무척 장식적으로 보인다. 눈과 입의 모양, 그리고 눈동자의 위치에 따라 각각의 얼굴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변주된다. 손짓이나 간혹 등장하는 소품들이 뭔가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실상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만한 요소들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반면에 머리카락과 의복, 그리고 배경을 채우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무늬들은 무척 풍성하고 과감하다. 화면은 생생하고 자유분방한 시각적 유혹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그 얼굴들은 한껏 나를 매혹하지만 정작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려하면 나를 외면한다. 어쩌면 애초부터 나에게 무관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제 서야 나는 그 눈동자에 담긴 꽃무늬가 인물이 바라보는 외적 대상의 반영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것은 어쩌면 인물의 내면이 눈이라는 창을 통해 비쳐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인물들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인물들의 눈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을 향한 눈이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눈이다.
이 지점에서 이 얼굴그림들이 대부분 김범수 작가 자신의 자화상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바처럼 그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은 거울을 이용한다. 거울에 반영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일이다. 마치 다른 사물이나 타인을 대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일이다. 이러한 대상화는 실제 얼굴과 화폭 위에 그려진 얼굴을 객관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유사성이 자화상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김범수의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한 흔적이 매우 적다. 작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면 속 얼굴들에서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코 재현적으로 닮지 않았고 고유하고 단일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의지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종종 그림 속 얼굴이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예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성별이나 정체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김범수의 자화상은 무엇을 향해 있는 것일까?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범수의 얼굴그림들도 다르지 않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 주체가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한 주체가 말하는 자기 이야기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주체의 기억과 상징과 언어들로 이루어지고 그러한 것들이 담고 있는 문화적 기호들을 해석하면 그것이 바로 정체성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조금 확대해석하면 곧,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불변의 본질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일치와 불일치의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화가에게 이야기는 그림이고, 더구나 자화상은 더욱 분명한 자기 이야기다. 십년 가까이 현재와 같은 패턴으로 작업하고 있는 김범수 작가의 수많은 얼굴그림들은 그 모두가 각각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며 정체성의 발현들이다. 김범수 작가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다양하게 변모하며 드러나는 자기 자신을 수많은 얼굴그림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의 자폐적 인물들은 우리의 섣부른 정체 포착 시도를 따돌리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새롭고 다양한 방식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전통적인 의미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정체성’의 정체에 대해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 사족이다. 근래에 들어 작가는 작업 할 때 수시로 눈이 무겁고 초점이 흐려진다고 한다. 급기야는 그림을 그릴 때 눈이 뾰족한 것에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도 한다. 작가는 그러한 경험을 작업에 투영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본 작가의 최근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있는 자화상 연작이다. 화가에게 눈은 생명과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김범수 작가에게 세상을 재현하기 위한 눈은 이제 완전히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러한 고통을 보면서 스스로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방랑하지만 오히려 새롭고 다양한 자기 자신으로 계속해서 거듭나는 자, 오이디푸스를 떠올린다면 나의 과한 의미부여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 김범수, 스스로 지탱하기 위한 선택 90x90cm, Acrylic on Canvas, 2017
▲ 김범수, 언제나 당신곁에 90x90cm, Acrylic on Canvas, 2015
▲ 김범수,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74X54cm, Acrylic on Canvas, 2018
▲ 김범수, 이상해 오지마! 90x90cm, Acrylic on Canvas, 2017
작가노트 |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지만 인물들의 디테일에 기울인 재미있는 변화들로 반짝인다. < 숨길 수 없는 마음>, <턱을 괴고 있는 여자> 시리즈,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이나 간혹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은근한 변형의 묘미들이 있다.
나는 얼굴을 다룬다. 마치 대화를 하면서 가까이에서 포착한 사람들인 듯 상반신의 포즈와 커다란 얼굴이 주요 테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 곧 자화상 작업을 계기로 이 같은 화풍이 시작되었다. 감정은 절제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사를 인물화를 통해 담아내면서 현재의 스타일이 자리를 잡았다. 타자와의 관계와 소통을 시도하려는 유희적인 해석들은 절제된 색채와 이미지는 얼굴에 스며든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들은 작가의 판단 영역 속에 갇히지 않고 관객들의 향유의 시간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일찍이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 얼굴을 놓고 완벽한 상호성이라는 측면에서 눈, 코와 귀를 논했다면, 나는 관계를 타고 흐르는 우리들의 내밀한 감정과 욕망들을 조금 더 감추거나 조금 더 확대하면서 관조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미묘한 차이들로 강조되는 눈과 입, 턱을 괴거나 팔짱을 낀 포즈. 눈과 입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표정들은 그래서 정지된 인물들의 내면에 드라마를 형성한다. 얼굴에 스며든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들은 나만의 판단 영역 속에 갇히지 않고 관객들의 향유의 시간을 향해 열려있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