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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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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 >
나는 물방울이 된다
추녀 밑에서 떨어지는
그 생명의 흐르는 리듬을
나는 안다
나는 접시가 된다
그것이 받드는
허전한 공간의 충만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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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믐달 >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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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설란 >
파도소리에 뜰이 흔들리는
그 뜰에 용설란
반쯤 달빛에 풀리고
반쯤 달빛에 빛나는 육중한 잎새
반쯤 안개에 풀리고
반쯤 안개에 살아나는 제주도
말의 깃자락에 소나기가 묻어오는
그 낭낭한 모음의 하늘에 한라산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 빚어
달빛에 반쯤 풀리고
달빛에 반쯤 살아나는 제주도
안개에 반쯤 풀리고
안개에 반쯤 살아나는 용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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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 송아지 >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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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인 길 다 가도
맘은 어두워
거리는 빛 없는
설움에 잠긴다
피오른 꿈 보람
이대로 스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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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대표작은 ‘나그네’지요?”
“야 그런 소리들 말아라.
나는 대표작을 오늘 저녁에 쓸거다.“
****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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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月과 文學이야기
내가 6살때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였는데
아버지는 글이쓰고 싶으셨는지
저녁을 먹고나서 얼마 지나지않아
아버지가 방에 상을 가지고 오라 하셨습니다.
책상이 없었던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으로 쓰셨습니다.
어머니는 행주로 밥상을 잘 닦아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책상에 원고지를 갖다놓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세살 된 여동생을 등에 업히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같은 포대기를 덮고
"내 옆집에 가서 놀다올께."하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글 쓰는 아버지 등 뒤에
붙어 있다가 잠이 들었죠.
얼마를 잤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깨워서 눈을 떠보니까
아버지였습니다.
통금시간이 다 되어도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가서
어머니를 좀 찾아 오느라
나는 자던 눈을 손으로 비비며
털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였고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집 저집 어머니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지치기도하고, 귀찮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 오려다가 갑자기 생각이났습니다.
어머니와 제일 친한 아주머니가 아랫동네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 집에 한 번만 더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 옆에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사람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동규야~"하고 불렀습니다.
보니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철철 맞으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보자기를 들추면서
"너 어디 가니?"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볼멘소리로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해서
아랫동네 아줌마 집에 가는 중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갑자기 내 귀에다 입을 대고 물었습니다.
"네 아버지 글 다 썼니?"
나는 고개만 까딱 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내 등을 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갈수록 내 머리속엔
몇 시간씩이나 눈 구덩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세 살된 딸을 업고 계시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세 살된 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시를 쓸 때 울어서 방해가 될까봐
그렇게 어머니는 나와서 눈을 맞고
서 계셨던 겁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을 다닐 즈음에
조금 철이 들어서
어머니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그런데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하고 힘들게
고생하면서 애를 업고 있었어?"
나는 어머니가 우리집 생활을 끌고 가는것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
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어가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이해 하는것은
바로 "시 한 편을 읽어보라" 하는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박동규
(박목월의 아들)
첫댓글 며칠 전 KBS1 TV ‘더 보다’에서
< 목월의 미공개 시, 세상 빛을 보다 >란 제목으로
46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박목월 시인의 미공개 작품들에 대하여 조명 하였습니다.
그 속에 언급되었던 시들 정리해 보았습니다.
'木月과 文學이야기'는 예전에 보관해 놓았던 자료이구요.
박목월 선생님 미발표 유작 166 편을 포함한
새로운 ‘박목월 전집’을 발간할 예정이며
그리고 노트에 기록된 시인의 일생을 바탕으로
‘박목월 평전’도 발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장사익님의 <나그네> 올리면서
다른 시노래도 세트로 ....^^*....
그러고 보니
목월의 작품을 여러편 읽은 기억이 없네요
...
유명한 작품은
제목만 알고 읽지는 않는다는
...
그런 예가 될런지
ㅎㅎ
저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ㅎㅎ
목월 선생님은 아주 순수한 '진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익 곡 들으니 샘 생각이 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