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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 2
스 7:21-28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스 7:21-28 / 그리고 아닥사스다왕은 해당 기관에 에스라의 일을 지원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유브라데강 서쪽 지방의 모든 재무관들에게 나 아닥사스다왕이 직접 명령한다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학자이며 제사장인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삭감하지 말고 공급해 주어라. 22) 그 한계선은 내가 직접 정해 놓겠다. 은은 100달란트까지, 밀은 22킬로리터까지, 포도주와 기름은 각각 2200리터까지이고, 소금은 필요한 대로 얼마든지 주어라. 23) 하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대어 주어서, 그분의 분노가 이 왕과 왕실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24) 그 밖에도 세금에 대하여 밝혀 두겠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나 성가대원이나 성전 문지기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직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어떤 명목의 세금도 거두지 말아라.' 25) 에스라는 서기관과 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는 조서도 받았다. `그대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지혜에 따라 재판관들을 세워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이들을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재판할 관리로 세워 강 서쪽 모든 백성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잘 가르쳐 주어라. 26) 그러나 하나님의 법도 지키지 않고 이 나라 왕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법정으로 끌어다 놓고 죄에 따라서 사형에 처하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가두어라.' 27)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다] 에스라는 이제 히브리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것을 왕의 마음에 넣어 주셔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영화롭고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28) 내가 왕에게서 은총을 얻게 하시고 궁중의 모든 참모와 이 나라의 대신들에게서 총애를 받게 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내 머리 위로 손을 펴서 도우시고 용기를 일으켜 주셨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이스라엘 가문의 어른들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성전을 관리하는 데 필요하다면 왕의 국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성전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까지 면제해 주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21-23)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의 방향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도 에스라가 구하는 무엇이든 신속히 시행하라는 후속 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귀환하는 함께하는 모든 일행이 도중에 필요한 식량 등을 조달할 수 있게 하는 조치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 전을 위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을 행하는 것에 무엇이든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공급의 한계를 정한 것은 창고지기와 지역 권력자들이 이를 핑계로 행해지는 부정부패를 막으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약 조서가 이행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아닥사스다 왕과 자신의 왕자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입니다.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24-26) 아닥사스다 왕은 후속 조치 명령을 연이어 내립니다. 그것은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딤 사람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 등에게서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말고 면세하라는 명령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법의 통치와 정의, 그리고 질서 유지를 위한 행정 조직과 통치기관을 만들어 강력히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27-28) 에스라는 이스라엘 조상 대대로 함께해 오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섭리하고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시니 바벨론 제국도 다스리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도 다스리시므로 그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에스라 자신에게도 아닥사스다 왕과 그의 보좌관들과 권세 있는 고관들에게서도 총애받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굳건히 설 수 있었고, 은혜를 풀어주셨기에 지도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고,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적용: 에스라의 신앙고백, 곧 제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왕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배우면서 오늘도 주님 앞에서 당신은 어떤 신앙고백의 삶을 살아내어야 할지 깊이 숙고해 보세요.
전 세계에 성경을 배포하는 국제기드온협회의 헨더슨 총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안에 결실을 보려거든 나무를 심고, 50년 안에 결실을 보려거든 사람을 키우십시오. 그러나 영원의 결실을 맺고 싶다면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구원의 길, 의의 길, 악의 유혹을 이기는 길, 사랑과 봉사의 길 등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와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고 성경을 통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 설 교 >
에스라의 여호와 송축
스 7:21-28 / 푸른교회( CTS TV QT)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27절).
에스라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한 내용입니다.
① 그는 먼저 왕의 마음에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② 자신으로 하여금 왕과 보좌관, 방백들로부터 은혜를 입게 하신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③ 여러 지원자들을 허락하사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는 힘을 주신 사실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고 송축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왕의 가슴에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재건할 뜻을 심으셨습니다.
누가 감히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에스라가 여호와를 송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칠고 완고하고 이교적인 이방 왕의 마음도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말씀 전문가인 율법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를 택하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하신 것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성전의 진정한 재건과 복원은 건물을 새롭게 세우는 일보다 하나님 말씀의 회복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의 아름다움이란 금은이나 대리석이나 상아, 백향목 같은 자재들에 있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이 되살아나야 하고, 말씀이 힘 있게 선포되고 백성들이 거기에 응답해야 거기에 진정한 성전 회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에스라로 하여금 귀환길에 오르게 하셨고, 또 그를 통해 무너진 말씀을 복원하게 하시고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부디 에스라의 찬양이 당신의 찬양, 에스라의 기쁨과 감사가 당신의 그것이 되기를 빕니다.
<적용>
-에스라의 여호와 송축을 간략히 정리해 보십시오.
-당신도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굳이 율법 학자 에스라를 택하사 귀환을 지휘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도>
주님! 에스라의 기쁨과 감격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이방인 왕의 마음을 움직이사 귀환조서를 내리게 하시고 모든 편의와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금은까지도 부족함 없이 헌상하게 하신 은혜에 깊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저희도 하나님의 그런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도 에스라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삽시다.
스 7:21-28 / 구례제자교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성전을 짓고 유월절을 지켰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갖춘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닥사스다왕을 통하여 에스라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계속해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 있는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조서의 내용은 왕과 왕의 자문관을 대신하여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에스라가 구하는 모든 것을 신속하게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조서 때문에 에스라는 그가 지나가는 지역의 창고지기들을 통해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식량과 물품을 지원받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에도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스릴 때에 바사의 법을 따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다스리라고 명령합니다. 거기에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그 죄를 정하여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을 통하여 이러한 은혜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아름답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은혜를 아름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_1
스7; 27-28 / 소원교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때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바로 목표가 있을 때와 문제가 있을 때입니다. 목표가 있어서 간절해질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또한 문제가 있어서 괴로울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은 이렇게 두 가지의 경우에서 하나님을 찾고,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분의 도우심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때는 그냥 평범할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때는 오히려 평범하지 않을 때입니다. 가장 기대할 때, 가장 간구할 때, 또는 가장 낙심될 때,가장 절망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생 중에서 이렇게 간절히 기대에 부풀거나, 혹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평상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가장 간절하고, 가장 괴로운 상황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손을 알게 된 때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었을 때 하나님의 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에스라 7:10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7:10 /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이러한 목표가 있는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은 놀랍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너무도 강력한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바로 아닥사스다왕의 마음을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열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부귀와 권세를 가지고 왕이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전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갑고 기쁜 일이었습니다.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21 나 곧 나 아닥사스다왕이 강 서편 모든 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율법의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신속히 시행하되
22 은은 일백 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일백 밧까지, 기름도 일백 밧까지하고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라고 강 서편의 모든 창고지기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행하도록 분부하였습니다. 또한 에스라에게도 직접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찌니라 하였더라”
아닥사스다왕은 에스라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가지고 백성 중에서 지역담당 관리(유사)와 재판관을 세우고 백성들을 판결하여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법권을 가지고 죄인들을 치리하라고 했습니다. 왕은에스라에게 재물과 권세를 주어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에스라가 하고자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명령까지 내려서 하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자 했던 에스라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을 더하사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에스라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27, 28절에서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27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송축할찌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하나님은 왕의 마음에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의 신하들 앞에서 왕의 은혜를 얻어서 높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힘을 얻어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잘 나서가 아니고, 그가 수완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한 그의 위에 있는 하나님의 손이 바로 그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여호와’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이루었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일의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손을 경험한 것처럼, 우리도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손의 도우심을 입어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우리가 그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른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에스라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손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손입니다. 오래 전 그때에도 하나님의 손의 능력이 있었고 지금도 그 손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하고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일을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손을 경험합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에 나아오게 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그 일에 하나님은 더욱 도움을 주십니다.
오래 전에 교회재정이 너무 어려워서 괴로워하면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는데 재정이 바닥이 나서 도저히 더 이상 운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척초기에는 늘 바닥이 나면 교회를 폐쇄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항상 공급이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내왔는데, 어느 해에는 정말 바닥을 쳤습니다. 그렇지만 도저히 교회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한 사람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는 저의 큰 형이었습니다. 종교가 달라서 늘 갈등이 있었던 그 형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가능성은 없어 보였지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서 찾아뵙겠다고 하고, 집에 방문해서 돈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정말 그 돈을 아무말 없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저는 하나님의 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으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사역을 하면서, 심방을 하면서, 상담을 하면서, 우리들은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하나님의 손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 손의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게 하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시는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러한 삶에 대해서 목표를 가지고 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전혀 새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일에 대한 목표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원대한 목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느끼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목표를 이룰 때에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지만,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느낄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괴로움 가운데서 더 진정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에스라가 가장 먼저 당면한 문제는 인력의 문제였습니다. 일할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8장에 보면 이스라엘 여러 지파들 가운데서 예루살렘으로 갈 사람들을 불러모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8:15절입니다.
“8:15 /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장막에 유하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지라”
왜 아닥사스다왕의조서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데 이런 어려움이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게임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골프를 치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에스라도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없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8장 17절 하반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17… 잇도와 그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거한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주고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수종들 자를 데리고 오라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여기에서 다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냥 할 말을 일러주고 데리고 왔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데리고 온 사람들은 말리 자손 중 한 사람, 세례바와 그 아들들과 형제 18명, 하사뱌와 여사야와그 형제와 그 아들들 20명, 느디님사람 중 22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들을 총 합하면 259명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군의 부족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동일한 문제를 경험합니다. 교회에는 늘 사람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한번도 사람이 넉넉한 적이 없습니다. 설사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정말 쓸만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추수할 일군을 더 보내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간구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점입니다. 일할 사람들이 없어서 일군이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필요합니다라고 간구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일군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군이 없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때에 하나님은 그 일군들보다도 우리와 더 친밀하신 분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할 일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일군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부 잠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은 일군없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같았으면 아마 아무런 일도 못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마치시고 났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감당할만한 힘을 얻게 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강하여졌을 때 나중에는 기도하는 제자들을 얻었습니다. 일군이 없어서 일을 못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때 일하는 일군을 얻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렇게 일할 사람들이 부족합니다. 우리 중에는 레위 자손도 많이 없고, 문지기도 많이 없고, 찬양하는 사람도 많이 없고, 느디님 사람들, 성전 봉사자들도 많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적게라도 모인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손으로 우리를 모아주셨던 것입니다. 적은 인원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더 커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없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손을 붙들 때에 일군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들을 모아주셨다는 것은 그가 사람들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손의 힘을 힘입어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진실한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겪었던 또 다른 문제는 ‘악인들의 방해와 공격’이었습니다. 사람이 제일 문제이지만 사람만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환경의 열악함이라는 문제가 있고 악인의 공격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문제를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어려움조차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8장 31절입니다.
“8:31 정월 십 이일에 우리가아하와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에스라가 사람들과 성전기물들을 가지고 간다는 소식에 그 지역 도적들은 에스라 일행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라의 일행을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무사히 예루살렘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대적들에게서 그들을 지키셨을까요? 또한 매복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피해나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그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기가 문제입니다. 에스라는 애초에 문제를 예측할 때부터 하나님께 간구를 했습니다.
스 8:21 /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그러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함이 있었기 때문에 평안하게 길을 통과 할 수 있었을 때에 에스라는 그 감사를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의 문제와 환경의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습니다. 이 환경은 악한 자들의 존재이기도 하고, 불안한 정치상황이기도 하며, 암울한 경제상황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흐름의 불확실성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은 바로 그 삶 속에 있는 우리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자꾸만 평안함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자 할 때 그 도우심을 얻게 됩니다. 그 어떤 심각한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원대한 목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 저의 딸애와 함께 바다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바다를 보며 우리 딸은 혼자서 소꿉놀이만 했습니다. 바다에서 저만치 떨어져서 말이지요. 그러다가 여러번의 설득 끝에 아빠와 같이 바다에 들어갔을 때 저희 딸은 제 목을 있는 힘껏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그건 이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행동이었습니다. 목은 아팠지만 마음은 좋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절대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끝도 아닙니다. 그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뿐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원했을 때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 속에서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손을 붙잡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목표를 가지고 뭔가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뭔가 문제가 생겨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한다면 역시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가장 진실하게 하나님을 붙드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인 ‘하나님을아는 것’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목표 때문이든 문제 때문이든 그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