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백마강에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고 전해오고 있다
꽃다운 나이에 치미를 덮어 쓰고 삼천명이 몸을던저 그시체가 치마와 어우러져
꽃이 흩날리는것 같다는 설화도 있다
과연 삼천궁녀가 사실일까?
낙화암에 가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지금도 두~세사람이 옆으로 걷기 힘든 좁은 길이다
하물며 백제 시대의 낙화암길은 어땠을까?
아마도 한사람 줄지어 올라가기도 힘든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 그러면 한사람 뛰어 내리고 다음사람이 뛰어내리는데 최소한 10초는 소비될것 같다
그러면 1분에 6명 투신
10분에 60명
한시간에 360명
3.000 명이 투신한다면 최소한 8시간~9시간을 쉬지않고 뛰어내려야 한다
또한 3.000명이 일렬종대로 서 있으면 아마도
낙화암부터 부여동리까지 줄서야 되지 않았을까?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일부분이겠지만
좀 과장된 설화가 아닌가 혼자 웃음지어본다
삼천궁녀가 아니라 한 삼십명 되지 않았을까?
첫댓글 내일 가서 현장실사하겠습니다. ㅎ
부여 낙화암에서 3천궁녀가 뛰어내렸다지요.
그야말로
황당무계라
해야 할까요
저도가보았지만
뛰어내린절벽이
직각이아니고
10도비슷한
경사에서 뛰어
내려봤자 강속으로들어가지
않을뿐더러 2ㅡ3십명뛰어
내리면사람위에
뛰어내리게되여
죽지도 않을거유
그당시강물이
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가서 봤을땐
2M도 수심이
안되보였어요 ㅎㅎ
은근히 열받네요
백제의 의자왕도
나라를 위해 혼신을 했겠지만
마지막에는 방탕한
왕이 되 버리고 처들어 온
나라가 당나라인지 그래저래 나라
빼앗기고 하니
여자들이 몸을 던졌을텐데
그렇게 좁은 공간에 한꺼번에
죽지 않거나
안 그렇다면
전해 내려 오는 속설인지
잘 모르지 않겠어요.
봤어야 말이지ㅎㅎ
제가 어렸을적에 한 의심이네요^^
울나라 궁에 그케많은 여궁녀가 있었을까?
300명이믄 몰라두요ㅠ.ㅠ
친정엄마에 고향이구 어렸을적부터 마니듣던곳에 내일가니 설래입니다~~
울 친구님들아 너무 열받지마오다
나둥 엇그제 백마강 에서 돚단배타고 한바뀌 돌고고란사들려 낙화암에서 삼천 궁녀 넉을기리고 왔다지요
10.31일 일명 시월의 막밤날 이라 해서리
카페에서 마침 부여에서 행사를 한다기에
잠시 고민도 했지만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요
코로나전에 충남방의 능성친구님이 부여연꽃구경 하러 오라기에
연꽃구경하고 낙화암으로 이동 네명이서 황포돗단배를 탄 기억이 새롭다요
내일은 평일이라 친구님이 시간내기가 어려울것 같아
부여로 오라 얘기도 못하고 혼자 다녀오니
서운해하기 없기 하자요 ..ㅎ
@믹스 사진은 귀신같이
잘 끄집어 내는 믹스님
대단하십니다.
막밤 잘 보내셔요.~~^^
@믹스 언제쩍 사진~~~?
장항댁도 잘계시지요
@능성 언제적은 코로나있기전 2019년 시월막밤 행사날이니
우이동 젊은 니티나무에서
그러니까 딱 4년전이다요 ..ㅎ
여기는 부여
해설사 설명에 의하면
고려 때 이 색 선생님 부친께서 재밌게 쓰려고...
아래 산 나리친 글 참조 하세요.
전철서 쓰려고 보니 있넹
역사를 잘 알고 가는 날 이였습니다
궁녀가 그리 떨어져 죽은것이 아니고 많은 백성이 뒤쫒는 적에게 잡히면 노비가 되는 상황이니 노비로 살다 죽느니 차라리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마음으로 빠져 죽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이 빠져 죽은 것이라 합니다
무언가 눈에 띄어 흥미를 일으켜야 볼수 있는 이야기 꺼리가 되게 하기 위해 삼천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 제목이 필요 해서 그리 한것이라 합니다
결국은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치다 수세에 몰려 죽을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그리 되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