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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읽기 35강 (53장)
(1) 제53장 원문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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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使) : 하여금. 시키다. 좇다. 해보라고 하다.
개연(介然) : 잠시(暫時) 동안. 미미하다(겸손의 말)
시(施) : 베풀다. 퍼지다. 널리 전해지다. 행하다. 하게 하다.
외(畏) : 두려워하다. 두렵다. 조심하다. 조심스럽다.
이(夷) : 오랑케. 평평하다. 평탄하다. 마음이 편하다.
경(徑) : 지름길. 빠르다. 작은 길. 가까움.
조(朝) : 아침. 처음. 시작의 때. 뵙다. 조정(朝廷). 관청(官廳).
심(甚) : 심하다. 정도가 지나치다. 매우. 몹시. 대단히.
제(除) : 덜다. 없애다. 제거하다. 깨끗하다. 깨끗이 쓸다. 내쫒다. 몰아내다.
무(蕪) : 거칠어지다. 잡초가 우거지다. 황폐하다.
창(倉) : 옥(獄). 창고.
채(綵) : 비단. 무늬.
대(帶) : 띠. 띠를 두르다. 허리에 차다.
리(利) : 날카롭다. 이롭다. 편리하다.
염(厭) : 싫어하다. 물리다. 족하다. 차다. 가득차다.
도(盜) : 훔치다. 도둑질.
과(夸) : 자랑하다. 과장하다. 겨루다. 뽐내다.
재(哉) : 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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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미미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를 (통치자가 되어 시행)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도(大道)를 갈 수 있다. (그러나 백성들을) 오직 이 대도(大道)로 가도록 할 수 없을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대도는 평탄해서 가기 편하건만 백성들은 지름길인 좁은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大道를) 심하게 몰아내고, (백성들의) 밭은 매우 황폐해 있으며, (이들의) 창고는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조정의 관리들은)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다니며, 물릴 정도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재화는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질하여 뽐낸다고 한다. 어찌 비도(非道)가 아니겠는가?
(3) 해설
이 장을 읽으면서 아동문학가인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 책에서 애벌레들이 더 높은 자리에 가려고 경쟁을 하다 보니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높은 탑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경쟁하는 애벌레들은 다른 애벌레를 짓밟거나 자신이 짓밟힌다. 짓밟히는 과정에 밀리거나 발을 헛디디면 밑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면 죽거나 불구가 되며, 혹시 성하면 또다시 그 대열에 끼어들어 고생한다. 이 애벌레들은 오직 정상에 가는 것이 목표다. 이런 애벌레 탑들이 곳곳마다 있다.
그런 중에 일부 애벌레는 그 대열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 또 일부는 목숨을 걸고 자신이 뽑은 실로 자신의 몸을 동여매면서 고치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이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비가 되면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애벌레를 밟지 않고도 높은 곳을 비롯해 어디든지 훨훨 날아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들에게 가서 맛있는 꿀을 먹으면서도 그들에게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니 꽃들이 반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쟁하는 애벌레의 그룹과 경쟁하지 않는 애벌레의 그룹으로 나눈다. 경쟁하는 그룹에서 승리하여 탑 정상에 이른 애벌레들은 그곳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허탈하게 된다. 그렇지만 정상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수많은 애벌레들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오히려 그 자리를 유지해가면서 그 정상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게 되면 탑이 무너지면서 자신들도 깔려서 죽는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52장의 내용과 견주어보면, 탑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애벌레는 위태롭고, 근심하며, 재앙을 만나게 된다. 이 애벌레들은 나비가 자신의 어머니인 시원(始原)인줄 모른다. 그래서 자신도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른다. 그러나 애벌레인 자신이 나비의 자식이라서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고치를 만들어가는(旣知其子 復守其母) 애벌레는 위태롭지 않고, 근심이 없으며, 재앙을 만나지 않게 된다.(沒身不殆, 終身不勤, 無遺身殃)) 왜냐하면 나비의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자신을 반기면서 꿀을 주는 꽃들이 많이 있으니 상대를 밟고 올라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이번에 독해(讀解)할 53장에 견주어보면, 노자 자신은 나비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경쟁 없는 평탄한 큰 길(大道)을 가겠지만(行於大道), 사람들을 오직 그 길로 가도록 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한다.(唯施是畏) 왜냐하면 이들은 경쟁해서 높은 탑 정상에 가는 좁은 길을 좋아해서(而民好徑)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탑 정상에 있는 사람들(朝廷)은 큰 길이 있다(나비가 된다)는 말을 (유언비어라고) 심하게 몰아낸다.(朝甚除) 그래서 (탑을 향해 올라가는) 백성들의 삶은 황폐하게 된다.(田甚蕪 倉甚虛) 그런데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관리)들은 정상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위협까지 한다.(服文綵 帶利劍) 그리고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재화도 남아돈다.(厭飮食 財貨有餘) 이들이 하는 모양은 도둑질하여 뽐내는 것이니 바른 길이 아니다.(是謂盜夸 非道也哉)
53장은 죽간본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노자가 직접 적었을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위정자(爲政者)들을 도적이라고 표현하는 등 문장 스타일이 다른 장에 비해 조금 거칠다. 그래서 이 글을 적은 사람은 당시 위정자들이 비도(非道)의 정치를 심하게 해서 백성들은 기근(饑饉)으로 굶어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사치와 폭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위정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들이 제시한 길이 잘사는 길이라면서 좋아하고 따르는 백성들(而民好徑)의 어리석음에 있으며, 그것을 깨트리기 어려움에 대해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런 일이 어찌 그 당시에만 있었겠는가.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말한 시(詩)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천명 백성의 피요, 옥으로 만든 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백성의 기름을 짠 것이니, 촛농이 떨어짐과 함께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풍악소리가 높을수록 원망소리도 높아진다.”(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낙, 가성고처원성고 :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들은 위정자들의 실정(失政)이나 부정부패를 들어 비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은 권력을 잡게 되면 실정을 하지 않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공헌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명분을 쌓아서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운다. 그러나 대부분 얼마가지 않아서 동일한 방식으로 그 정권도 물러난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패턴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위정자들이 경쟁하는 길로 가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남을 밀치고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대도(大道)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길이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길은 애벌레 탑처럼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길이 아니다. 남을 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이미 도적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떠 받쳐주고 있는 수고를 자신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자신이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도적이 아닌 사람들은 그 수고에 대해 정당한 대가(代價)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으면서 그 모든 재산과 권리를 마음대로 행사하면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심지어 잘난 듯이 행세하면 어찌 비도(非道)가 아니겠는가? 노력을 해서 이 자리에 올랐으니 대가를 이미 지불했다는 생각이 이들에게 있다. 이것은 마치 도둑놈이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담을 넘거나 여러 가지 준비를 철저히 했으니, 훔친 물건은 내가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그 높은 자리에 있게 한 백성들의 논밭이 황폐해지고, 곳간이 비어 있는데도 그것을 방관하면서 자신들이 배터지게 먹고, 좋은 비단 옷을 입으면서 돈이 넘쳐나고 있다. 이것을 일러 농사를 짓고, 비단 옷을 만든 자들의 노고를 도적질하고 나서 뽐내는 것(是謂盜夸)이라고 53장은 지적한다.
53장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소년이 어릴 때부터 대머리였다. 그는 이것으로 인해 주변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과격하게 행동했고 이것이 습관이 되어 깡패가 되었다. 그는 종교지도자를 찾아가서 “내가 종교를 믿으면 머리카락이 나느냐”라고 물었다. 종교지도자는 “머리카락이 난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종교를 믿었는데도 머리가 안 나면 당신을 죽여도 되느냐”라고 물었다. 종교지도자는 상대의 모습이나 말투에서 섬뜩했지만, 죽여도 좋다고 했다. 다만 진심으로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는 그 길로 종교를 열심히 믿고 종교지도자가 하라는 대로 실천했다. 그 깡패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 종교의 지도자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낫기 때문인가. 아니다. 종교를 실천하는 가운데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 자신의 삶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기 전까지 그 사람에게는 머리카락이 있고 없고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데 조금 더 큰 시야에서 자신을 보니 그것은 자신의 삶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장애라고 여겼던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장애였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이 못났다고 여긴 마음이 틀린 것이다. 이런 못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이상, 자신을 못났다고 지적하는 외부세계에 대해 과격해지거나, 자신의 내부세계로 틀어박히는 것은 모두 정신장애이다.
재산, 권력, 명예, 지위 등이 있고 없고를 인생의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신장애자가 아닌가. 이것으로 사람의 잘나고 못나고의 기준으로 삼고 조금이라도 이것들을 지니려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탑의 정상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애벌레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들이 자신의 귀중한 삶 자체에 비해 너무나 가치 없음을 안다면 허탈해질 것이다. 정상 가까이에 이른 애벌레들이 허탈해하는 것처럼. 이 허탈감을 메우기 위해 사치와 쾌락에 빠져든다면 더욱 못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쫒아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못난 사람이 아닌가.
부자(富者)라는 이름은 빈자(貧者)라는 이름과 대비되며, 부자를 긍정하면 빈자를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갈등상황이 오게 된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구분을 축소해서, 부자는 키가 크고 빈자는 키가 작음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면 갈등상황은 오지 않는다. 물론 이때도 키를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키의 크고 작음으로 갈등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키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우월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키의 크고 작음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키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재산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자와 빈자 모두 같은 사람이다. 어린아이는 재산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친구가 되며 함께 논다. 어린아이에게는 그냥 친구이지 부자 친구와 빈자 친구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를 긍정하고 빈자를 부정하는 어린아이의 부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빈자의 친구와 놀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간섭하려는지 모른다. 부자와 빈자를 구분해서 간섭하려는 부모는 자신의 생각이 성숙하며 옳고 어린아이의 생각은 미숙하며 옳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노자는 오히려 어린아이의 생각이 도(道)에 가까우며 훌륭하다고 말한다.
노자는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말라”(위복불위목, 爲腹不爲目)고 하면서 의식주가 해결되는 선에서 만족하고 그 이상의 재산, 권력, 명예, 지위 등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잘나고 못나고를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니 그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배를 위하고 남은 것(재산, 권력, 명예, 지위 등)들을 노자는 먹고 남은 잔밥(여식, 餘食)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먹고 남은 잔밥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밥 먹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만족을 아는 자가 진정한 부자다”(지족자부, 知足者富)고 말한다. 이런 진정한 부자들은 장애 없는 나비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산다. 이들이 사는 길이 대도(大道)이다. 그런데 대도를 놔두고 백성들은 잔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길인 소도(小道)로 달려간다. 자신은 대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지만, 자신에게 통치자로서의 지위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소도로 달려가는 이들을 대도를 가게끔 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고 노자는 말한다.
만약에 대다수 사람들이 노자가 말한 것처럼 배를 위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재산, 권력, 명예, 지위 등을 잔밥 정도로 여기면, 애벌레 탑과 같은 경쟁의 구도는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자연(自然)에서는 애벌레 탑 같은 것은 없다. 이러한 탑은 인위적(人爲的)인 것이 통하는 인간세계에만 있는 일인지 모른다. 권력과 지위는 학급의 주번 정도로 여겨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돈과 명예는 소풍이나 체육대회에서 특기를 잘 발휘해 상을 타는 정도에 머물 것이다. 이것은 거기서 상을 탓다고 해서 잘난 사람으로 우월감을 가질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4) 문제 제기
1. 노자가 통치자가 되었을 때, 실제로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건지 엄살을 떨거나 겸양의 모습을 보이는 건지 어느 쪽인가?
2. 현재 먹고 남은 잔밥에 해당하는 재산, 권력, 명예, 지위 등이라도 미래를 위해 확보해 놓아야 하지 않는가?
3. 권력은 필요악(무정부보다 나음)이 아닌가. 그렇다면 권력의 집중을 막을 수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