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1일은 장수읍민의 날 입니다
장수읍민의 날 이란?
1979년 5월1일 장수읍 승격일 기념을 하기위해서 매년 5월1일 많은 주민들이
모여서 상부상조 화합하며 즐기는 날입니다
동네별로 대표선수를 뽑아서 체육행사도 하고 기념식도 합니다
명실공히 장수읍 관,민이 하나되는 최대의 축제의 날 입니다
올해는 장수읍승격 제37주년 기념식 및 제19회 장수읍민 체육대회입니다
지난 5월1일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성공적인 읍민의 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행사후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부족하지만 아는 범위내에서
나름으로 쉽게 풀어보고자 노력해서 이 글을 올립니다.
먼저 장수읍의 유래를 알아야 이해가 빠르기에 유래를 간략히 소개합니다
장수땅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유물이 발견된바 있습니다
무작정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 없기에 최소한 간략하게 기록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말부터 기술하고자 합니다 널리 양지 바랍니다
지금의 장수읍은 조선시대 말에는 수내면과 수남면 2개의 면으로 나뉘었습니다
장수의 수(水)는 물을 표현합니다 아마도 금강의 발원지이자 긴 물줄기가 있어서
그런듯합니다 조선말 수내면과 수남면을 표기할 때 수내면은 물의 안쪽 동네라
해서 수내면(水內面)이라하고 수남면은 물의 남쪽에 있는 동네라 하여 수남면(水南面)
이라 지명 했다는 유래가 문헌상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수내면(水內面)은 현재 장수읍 기준 남쪽으론 남동부터 북쪽으론 왕대마을까지
동쪽으론 동촌마을 서쪽으론 송천마을까지 합쳐서 수내면이라 칭합니다
수남면은 지금의 개정리 구락리 용계리 주변 일대를 수남면이라 칭합니다
수내면과 수남면은 1914년 3월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개의 면(수내면,수남면)을
하나로 합쳐서 37개의 행정마을 장수면이 탄생한 것 입니다.
장수면은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서 1971년 4월에 원대성리에 출장소를 개설하여
사무실을 운영 하다가 1998년 10월1일자로 장수읍 대성출장소는 폐지 되었습니다
1979년 5월1일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1군에 최소 행정기관 1읍이 존재한다는 것)
으로 인하여 장수면을 장수읍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장수읍 승격후에 작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1994년 12월1일자로 천천면 장판리
판둔마을을 장수읍 노하리 판둔마을로 편입 시킨것입니다
또한 장수읍 장수리는 교촌(아건너포함), 준비(중비), 하비(해비전) ,남동, 북동
다섯 행정마을로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장수리 1구, 2구, 3구, 4구, 5구
이렇게 불러질때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근거는 기록되지 않아서 잘모르겠지만 어른들
증언에 의하면 일정시대 민족말살 정치에 의하여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으려는 일본의
횡포에 의하여 명산에 쇠말뚝을 박고 창시개명을 하면서 이때에 마을명을 일본식으로
표기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원치않은 개명을 했을것이라 추측합니다.
해방이후 세월이 흘러서 행정상에는 1구, 2구를 쓴적은 없지만 주민들은 오래토록
썻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전혀 쓰질 않습니다
이후 1987년 1월 1일 준비마을이 규모가 커서 준비와 중동으로 분동이 되었습니다
2009년 4월14일에는 북동마을이 주공아파트 370여세대가 포함되어 규모가 컷기에
북동과 관두(주공아파트)마을로 분동되었습니다
현재는 장수리에 7개의 행정마을(교촌,준비,중동,하비,남동,북동.관두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은 현재의 준비마을은 예전에는 중비마을로 불리워졌습니다
중비마을 유래는 조선시대에 장수리에 비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비석이 많이있는곳
비석을 둘러쌓여 중앙에 위치한 동네라 하여 중비라 명 하였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1976년 1월 1일자로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나 현재까지 준비마을로
표기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왜 준비라 했는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물론 흐르는 만큼 많은 변화도 가져옵니더 우리 장수읍도
예외는 아닙니다 2014년 12월 29일에는 선창리 근로자아파트가 원래 양선마을
소속이었는데 분동하여 남선마을이라 칭하여 선창리에 귀속했고 장수타워팰리스
아파트가 지어져 노하마을 소속으로 했었는데 2014년 12월 29일에 분동하여
서동마을이라 칭하면서 노하리에 귀속하고 송학뉴타운이라는 자연주택 전원마을이
생기면서 용추마을 소속으로 했었는데 2014년 12월 29일에 분동하여 송학골마을이라
칭하여 송천리에 귀속되었습니다.
1979년 장수읍 승격 이전에 37개 단위(행정)마을 이었던 곳이 읍 승격이후로
6개 단위(행정)마을(판둔,중동,관두,서동,남선,송학골)이 늘어나서 현재는 43개의
단위(행정)마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장수읍승격 제37주년 기념식 및 제19회 장수읍민 체육대회입니다
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9년 읍승격 이후에 매년 기념식을 가졌기에 올해 2016년 이므로 37주년이
되는 것입니다
1979년 읍승격부터 1996년까지는 읍승격 기념식만 거행 해왔습니다
이듬해인 1997년 읍민의 날 부터 기념식 및 체육대회를 통합하기로 하면서
이때부터 장수읍민의 날 기념식 및 읍민체육대회 공동으로 행사를 한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장수읍민 체육대회는 올해로 19회 맞습니다.
그전에 읍민화합 체육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범 국민적인
축제의 일환으로 우리 장수읍에서도 8.15광복절 행사로 매년 8.15일에는 리별 축구
대회를 했습니다 1996년까지 8.15일에 축구대회를 했던 것이 1997년부터는 5월1일로
옮겨서 명실상부 장수읍의 최대의 축제를 하고 있다고 사료합니다
그러나 1997년 이후에 매년 5월1일에만 장수읍민의 날 행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많은 주민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베려하여 읍민의 날 행사를 변경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우왕좌왕 갈팡질팡 제대로 날자를 잡지 못하고 또한 읍승격
기념 및 축하와도 맞지않다는 여론에 의하여 원래의 취지대로 매년 5월1일에 날자를
고정하여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체육대회 종목도 8.15 전신인 축구만을 쭈욱 하다가 마을별 젊은이들이 부족하여
사정에 맞게 배구를 포함하여 민속경기등 여러종목을 해보면서 현실에 맞게 수정하여
현재는 족구, 투호, 고리걸기, 공차넣기, 제기차기, 윷놀이 6개종목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식은 처음에 실내행사로 단조롭게 했습니다 1997년 체육대회와 통합하면서
실외행사로 바꾸면서 규모도 커졌습니다
현재는 기념행사와 더불어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어르신들을 선발하여 수상하는
장수상(남.여)을 신설하여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장수읍 발전에 지대한 공이 있는분을 추천받아 애향장, 효열장, 산업장
문화체육장을 수상합니다.
장수읍 유래 현황
조선시대 말 – 수내면과 수남면으로 구분
1914년 3월 - 수내면과 수남면을 통합 장수면 이라칭함
1971년 4월 – 장수면 대성리 출장소 신설
1979년 5월 1일 – 장수면을 장수읍으로 승격(37개 행정마을 형성)
1987년 1월 1일 - 장수리 2구(준비마을과 중동마을 분동함)-중동신설
1994년12월 1일 – 천천면 장판리 소속 판둔마을 장수읍으로 귀속
1998년12월 1일 – 장수읍 대성리 출장소 폐지
2009년 4월 14일 – 장수리 관두마을 신설
(장수 북동주공아파트 101동/102동/103동/104동 378세대)
2014년 12월 29일 – 선창리 남선마을 신설(장수근로자아파트 가동/나동 62세대)
2014년 12월 29일 – 송천리 송학골마을 신설(송학골 뉴타운 75세대 – 전원주택)
2014년 12월 29일 – 노하리 서동마을 신설(장수 타워펠리스 1동 89세대)
장수읍 법정리 마을현황 13개 법정리와 43개 단위(행정)마을
1. 장수리(교촌, 준비, 중동, 하비, 남동, 북동, 관두마을)
2. 노하리(노하, 신기, 왕대, 판둔, 서동마을(장수타워팰리스))
3. 동촌리(동촌마을)
4. 두산리(두산마을)
5. 선창리(양선, 음선. 남선마을(근로자아파트))
6. 덕산리(덕산, 범연마을)
7. 수분리(수분, 송계마을)
8. 노곡리(신리, 대리, 상중, 하중, 신촌, 하리마을)
9. 용계리(용계, 안양마을)
10. 송천리(송천, 이교, 구락, 용추, 송학골마을(송학뉴타운))
11. 개정리(개정, 농원, 하평, 와동마을)
12. 대성리(원대성, 대덕, 구평, 필덕마을)
13. 식천리(식천마을)
참고로 예전에는 부락이란 마을 썻는데 일정시대 표현이라 합니다
현재는 마을 또는 동네라 표현함이 마땅하다고 사료합니다.
- 장수에서 호롱불 최용표 -
첫댓글 내 고향의 유래를 읽어보니
역사가 나름 깊네요
그냥지나쳤던 마을 이름도
재밌네요...ㅎ
친구덕분에 지리,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