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야근NO> 카페를 통해 야근의 일상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작은 결과물을 내는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래 <잃어버린 10일>은 우연한 기회에 나오게 되었지만, 한국사회의 '불연속적인 최소' 휴가 문화, 장시간 노동문화를 해체하는데 작은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소개해 봅니다.
잃어버린 10일: 경영 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 정치
여느 나라와 비교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한국의 휴가 총량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프랑스처럼 긴 바캉스를 떠나지 않고, 떠날 수 없다. 기껏해야 3~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이다. 휴가는 그저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회복하는 데 소비될 뿐이다. 우리는 왜 2주 연속 휴가를 부자연스럽게 여길까? 우리는 왜 "쉴 수 있는 휴가는 많은데, 쉰 휴가는 별로 없다."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을까?
이 책, 『잃어버린 10일』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이 책은 휴가를 대가로 한 한국의 장시간 노동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탐구이며, 한국 사회에서 박탈당한 잃어버린 10일(2주 연속 휴가를 사용할 권리가 있으나 통상 3~5일의 여름휴가 혹은 하루 이틀의 단절적인 휴가만 사용하기 때문에 통상 10일 정도를 박탈당하고 있다)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다. 이 책은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노동 현실과 휴가 문화를 들여다보며 지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일상적 사회현상을 역사적-논리적으로 허문다.
추천글_자유 시간을 향한 여정(김원)
책을 내면서
제1장 장시간 노동 문화 읽기 1절 장시간 노동 문화 해체하기 1. 장시간 노동 문화라는 모순 덩어리 2. 불연속적 최소 휴가의 문제 2절 경영 담론으로 본 휴가 1. 경영 담론의 휴가 2. 담론 분석 3절 분석 틀 및 책의 구성
제2장 휴가를 둘러싼 논의 1절 휴가를 둘러싼 이론적 논의 1. 근대성의 시간 구조와 휴가 2. 소득효과론 및 개인선호론 비판 3. 노동시간과 여가 시간의 증감 논쟁 비판 4. 일과 삶의 균형 논의 비판 2절 시간을 둘러싼 경험적 논의 1. 톰슨의 시간을 둘러싼 투쟁 2. 차크라바티의 전 자본주의적 시간 규율 3. 라이드의 시간 합리화 과정
제3장 통제적 휴가 정치: 1970년대 초~1980년대 말 1절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와 공장새마을운동 1.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의 형성 2. 공장새마을운동과 작업 시간의 정치 2절 통제적 휴가 담론 1. 노동시간의 가차 없는 연장 2. 산업역군, 자기 시간의 희생 3. 노동을 위한 '피로 회복' 도구로서의 휴가 3절 소결: 국가 발전을 위한 시간의 통제
제4장 선별·배제적 휴가 정치: 1980년대 말~1990년대 말 1절 유연 노동 체제의 등장과 신경영전략 담론 1. 유연 노동 체제로의 변환 2. 신경영전략 담론과 작업 시간의 정치 2절 선별·배제적 휴가 담론 1. 휴가의 보편적 배열 2. 휴가 희생 담론 3절 소결: 유연화를 위한 낭비 제거
제5장 생산적 휴가 정치: 1990년대 말 이후 1절 유연 노동의 일상화와 경쟁력 담론 1. 유연 노동의 일상화 2. 경제위기와 자유 시간의 사회적 의미 3. 경쟁력 담론과 휴가 2절 생산적 휴가 담론 1. 휴가의 확대와 모순 2. 휴가의 경쟁력 재현 3절 소결: 경쟁력을 위한 휴가의 자기 관리
제6장 시간 정치의 전망 1절 시간연구의 함의와 한계 2절 시간 정치의 전망
책을 마치면서 부록 참고 문헌 찾아보기
왜 '잃어버린 10일'인가?
회사에서 누군가가 연차휴가 15일에 앞뒤로 주말을 더해 휴가를 신청한다고 해보자. 주위 사람들은 "머리에 총 맞은 것 아니냐!"며 펄쩍 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월급쟁이에게 15일의 연속 휴가는 꿈에 불과하다. 맘 놓고 월차 한번 써봤으면 하는 하소연은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들린다. 일주일 넘게 휴가를 가기라도 하면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을 감수해야 한다. 긴 휴가를 갔다 오면 책상이 없어진다는 뼈아픈 농담이 오고가기도 한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꽉 채운 휴가는 엄두도 못 내는 노동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당연한 권리인 연속 휴가를 사용할 권리, 자유 시간을 향유할 권리, 여가다운 여가를 보낼 권리를 고스란히 반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쉬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도덕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고용 불안이라는 위기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일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되고 있다.
여느 나라와 비교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한국의 휴가 총량은 크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프랑스처럼 긴 바캉스를 떠나지 않고, 떠날 수 없다. 기껏해야 3~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이다. 휴가는 그저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회복하는 데 소비될 뿐이다. 우리는 왜 2주 연속 휴가를 부자연스럽게 여길까? 우리는 왜 "쉴 수 있는 휴가는 많은데, 쉰 휴가는 별로 없다."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을까?
이 책, 『잃어버린 10일』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이 책은 휴가를 대가로 한 한국의 장시간 노동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탐구이며, 한국 사회에서 박탈당한 잃어버린 10일―2주 연속 휴가를 사용할 권리가 있으나 통상 3~5일의 여름휴가 혹은 하루 이틀의 단절적인 휴가만 사용하기 때문에 통상 10일 정도를 박탈당하고 있다―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다. 이 책은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노동 현실과 휴가 문화를 들여다보며 지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일상적 사회현상을 역사적-논리적으로 허문다.
휴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한국의 노동 현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와 '불연속적 최소 휴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장시간 노동 문화가 과거의 일이며, 현재 휴가의 사용이 충분히 민주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한국 사회가 현재에도 장시간 노동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 비교를 통해 여실히 확인된다. 2009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316시간에 달하며 여타 OECD 국가와 비교하여 한국은 1년에 최소 500시간 이상, 최대 1,000시간 이상까지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0시간이 넘어가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면, 1년에 무려 2달 이상을 더 일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연속적이고 장기적인 휴가를 보장받는 서구의 경우와 달리 불연속적이고 단기적인 휴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장기휴가라고 언급되는 휴가의 대부분도 연차휴가를 잘라 쓰는 단순 재배치 방식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 또한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휴가의 사용률은 30~40%에 머물고 있다. 과거에 비해 휴가다운 휴가가 자리 잡기는커녕 그 자리에는 인센티브류의 휴가가 대거 확대되었는데, 이는 경쟁력 있는 핵심 인재에게만 주어졌다. 근로기준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어 형식적 차원에서 휴가의 민주화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성장·발전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강하게 지속되면서 '실질적인' 휴가의 민주화는 지연되고 있다. 휴가는 성장, 발전, 생산성, 경쟁력 담론들에 갇히고 말았다.
자본의 시간 기획을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역사적으로 자유 시간 영역인 휴가는 통제의 대상이었다. 자유 시간이 증가하게 되면 게으름, 과소비, 이기심이 나타나고 왜곡된 욕구만 난무할 것이라 여겨졌다. 휴가는 단지 노동을 위한 피로 회복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휴가를 기획하는 지배 담론의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영 담론은 휴가를 절제와 억제가 아니라 생산의 대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휴가가 단순히 직장 밖의 휴식·휴양을 의미했다면, 최근의 휴가는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재충전·재생산·휴테크(休tech)로 묘사된다. 휴가는 더 큰 아이디어, 더 많은 생산성, 더 높은 경쟁력을 위한 수단이자 노동을 위한 재생산의 시간으로 변했다. 여기에는 기업 경쟁력이라는 생산성 논리가 짙게 투영되어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자유 시간을 조직해온 자본의 시간 기획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작업이며, 한국 사회에서 자유 시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동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최초의 경험적 연구이다.
경영 담론의 문서고에 주목한다
"명절 때마다 연휴를 만들어 생산 현장의 리듬을 깨고 근로 의욕을 흩트려놓은 것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한국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도 중요하지만 일본보다 더 놀아서는 국가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
"놀고 쓰는 풍조를 이대로 두고서는 경쟁력 제고, 선진국권 진입을 결코 바라볼 수 없다."
"근로시간을 줄였다가 자칫 생산성을 떨어뜨려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져서도 곤란하다."
"IMF한파 속의 휴가는 한가하고 사치스러웠던 지난날과는 달리 내일을 위한 힘의 비축이라는 점에서 건전하고 생산적인 휴가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외환위기를 겨우 극복한 우리 사회가 주5일근무제 시행으로 다시 사치와 향락 문화에 빠져들고,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되어서는 곤란하다."
"더 늦기 전에 노사정 모두 나라 전체의 파이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위의 인용문들은 1990년대 이후 중앙 일간지 및 경영 관련 잡지 등에서 언급된 대표적인 휴일, 휴가 관련 논의들이다. 산업화 이래 경영 담론은 휴가의 지체를 당연한 사회적 사실로 만들어왔다. 이 책은 한 사회에서 휴가의 의미가 구성되는 과정이 결코 투명하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휴가의 의미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구성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의 언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영 담론'은 휴가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신화를 분석하기 위한 적절한 실타래가 될 수 있다. 경영 담론은 휴가를 대상으로 하는 절차, 전략, 수단, 장치, 기호, 프로그램, 캠페인, 권고 등을 생산해낸다. 이 책은 이를 유형화해 경영 담론이 휴가의 무엇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으며 어떻게 형상화했고, 무엇을 배제해왔는가를 분석함으로써 경영 담론이 휴가의 의미와 성격을 어떠한 방향으로 특정화했는가를 밝혀낸다. 특히 경총, 전경련, 대한상의의 잡지, 기업의 사보, 중앙 일간지 등의 매체에 나타난 휴가 관련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휴가의 의미가 어떻게 기획되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체적인 구성: 통제적 휴가 정치의 기획에서부터 생산적 휴가 정치의 기획까지
이 책은 지배 담론으로서의 경영 담론의 재구조화 과정 속에서 휴가의 의미와 성격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한다. 성장·발전주의를 강력하게 추동해온 경영 담론은 휴가다운 휴가를 계속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는데, 그 담론적 실천들은 역사 시기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 책에서는 1970년대 이후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 제1시기는 통제적 휴가 정치 시기(1970년대~1980년대 말), 제2시기는 선별·배제적 휴가 정치 시기(1980년대 말~1990년대 말), 제3시기는 생산적 휴가 정치 시기(1990년대 말 이후)이다.
먼저 1987년 이전 시기 휴가를 둘러싼 통제의 기획들을 공장새마을운동이라는 경영합리화운동 속에서 살펴본다. 불연속적 최소 휴가의 일상화는 병영적 발전 국가에 의한 통제의 기획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기획은 발전·성장 담론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성장 위주의 발전 담론은 공장새마을운동을 통해 작업장 구석구석에까지 구체화되는데, 공장새마을운동은 '근면'이라는 새로운 노동 윤리를 주조해내고, '성실한' 노동시간 이외의 잔여 시간을 철저히 통제·제거해나간다.
다음으로 1990년대 말까지의 휴가를 둘러싼 선별과 배제의 기획들을 살펴본다. 1987년 이후 유연 노동 체제로의 전환 속에서 신경영전략 담론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낭비 제거를 목표로 하는 시간 관리 규범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신경영전략의 대대적인 담론적 실천으로 낭비 제거가 조직의 운영 질서이자 작업장의 관리 규칙으로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휴가의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휴가는 절제·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재현된다. 휴가의 희생 논리는 과소비 지양, 생산성 제고, 노동 윤리 제고, 글로벌스탠더드 부합, 위기 극복이라는 다양한 담론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유연성·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기업의 낭비 제거라는 복음은 기업 부담으로 여겨지던 휴일·휴가의 덩어리를 불필요하고 비규율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하나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마련된 휴가의 민주화로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지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위기 이후 휴가를 둘러싼 생산의 기획들을 살펴본다. 특히 경쟁력 담론이 휴가의 성격과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특정화했는가를 주목해서 살펴본다. 경제위기 이후 경쟁력이 생활 도덕처럼 여겨지면서 자유 시간의 낭비는 더욱 불가능해졌다. 외양적으로는 휴가의 종류와 내역이 다양해지는 듯 보이지만, 경쟁력 담론 속에서 휴가는 생산적이고 유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자원으로 전환되었다. 경쟁력을 위한 휴가의 자? 관리는 하나의 진리처럼 여겨졌다. 경영 담론은 휴가를 절제·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의 대상으로 동원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주 연속 바캉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오늘날 노동의 세계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외적 노동이었던 비정규직이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넘어 전형적인 고용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은 이제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연차는 없다. 연차휴가를 누릴 수 있는 법적 자격은 '1년 이상 계속 근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차 제도는 자동적으로 비정규 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다. 휴가의 부여 기준을 완화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매일 매일의 야근, 빈번한 특근, 턱없는 휴가라는 우리의 노동 문화 자체를 바꿔나가야 한다. 장시간 노동 사회인 대한민국은 매일 충혈되어 있다.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곤은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가 있다. 맞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휴식'이다. 그리고 우리의 휴식을 노동, 생산을 위한 준비 시간이 아닌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간으로 가꿔나갈 수 있을 때 우리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사실상 "잃어버린 10일"의 권리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한 걸음 내디뎌야 할 때이다. 이 책이 장시간 노동 문화를 해체하는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한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10일』은 노동시간과 자유 시간 간의 갈등이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화되었는가에 대한 최초의 경험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불연속적 최소 휴가' 그리고 '장시간 노동 문화'란 개념을 통해 밝힌 문제들은 60년대 국가 주도 자본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고 신자유주의 아래 현재에도 여전히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 김영선 박사의 역작은 오래 쉬는 것이나 긴 휴가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의 휴가(더 나아가 노동시간과 자유 시간)를 둘러싼 지배 담론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더 나은 건강을 위해 휴가는 법적,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책에서 '휴가 지체'라고 불리는 현상은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 안에는 바람직한 휴가와 바람직하지 않은 휴가를 구분하는 규범 코드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각각의 세력 간의 갈등이 깊이 장착되어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일상적 사회현상을 역사적-논리적으로 허무는 작업이 바로 『잃어버린 10일』 안에 새겨져 있다. -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인의 연차휴가 열흘, 누가 훔쳐갔나
기업에 의해 터부시되고 재생산 수단으로 변질된 노동법상 의무 휴가 15일 잃어버린 10일 /김영선 지음 /이학사 /1만9000원
몸이 아프면 먼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설혹 당장 적절한 처방전이 없다손치더라도 이런저런 치유방안이 거론되면서 길을 찾아가는 법이다.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잘못 굴러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순간순간 푸념만으론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한때는 큰 자랑거리로 선전되던 구호가 '세계적으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라는 거였다. 낙후된 나라에서 노동자의 근면 성실한 자세는 분명 내세울 장점이다. 하지만 세계 12위 경제권에 드는 지금도 장시간 노동이 여전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법상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휴가도 직장에 따라 다소의 온도차이는 있지만 마음대로 사용 못한다. 상사 눈치보랴 자기로 인해 동료에게 부담될까봐서다. 그만큼 휴가를 터부시하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경제 발전과 달리 휴가를 터부시하는 장시간 노동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 지은이는 기업가논리인 경영담론이 예나 지금이나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진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정규직 촉구 집회
이처럼 우리의 장시간 노동문화는 알게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우리나라는 연간 노동시간(2009년 기준)이 2000시간을 넘는 유일한 국가다. 이런 소식이 이제 썩 달가운 게 아니라는 것을 다들 느낀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기에 이런 꼬리표를 붙이고 다니나 하는 것을 찾아 나선 게 이 책이라 하겠다.
우리의 장시간 노동문화를 글쓴이는 '불연속성 최소 휴가'란 말로 압축했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10일이란 책 제목과 연관시켜 뜻을 풀이하자면 이렇다. 정규직에 한한 이야기지만 법상 연차휴가가 15일 이상 보장되나 한 번에 4~5일 찾아먹는게 고작이고 그것도 회사 사정에 따라 휴가일이 쪼개지기 일쑤다. 자기가 원하는 장기휴가는 언감생심이고 법상 10일 휴가는 날아가버리고 만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작업라인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 노동자들 모습. 국제신문DB
1970년대 경제개발시기부터 지금까지 휴가를 배타시하는 이런 경향은 철저히 기업가의 논리가 관철됐기 때문이라는 게 지은이의 학술적 판단이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손질한 이 책에서 기업가논리 즉 '경영담론'이 지배하고 구조화된 시대라고 진단한다.
이 논리는 세 시기로 나눠 교묘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지배담론 역할을 해왔다는 거다. 1987년 사회민주화 이전 시기엔 국가발전을 위한 휴가포기 즉 휴가는 곧 생산차질이란 '공장새마을담론'이 득세했다. 1997년 외환위기전까지는 적자 나라에 노는 날이 너무 많다며 성장을 위한 인내 즉 '신경영전략담론'으로 휴가를 멀리하게 했다.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기업 경쟁력담론'이 노동시간을 질식시키고 있다. 법상 의무 휴가도 먹고 놀자는 제도로 비치며 경쟁력을 빌미로 직원들을 겁박한다. 외견상 휴가 실시가 이전보다 나아보이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경쟁이 직원 간에도 살벌하게 벌어져 일터를 떠나 마음 편한 휴가는 애시당초 기대난망인 현실을 조성한다. 경영층은 휴가를 보내더라도 더 높은 경쟁력을 얻는 재생산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장시간 노동문화는 결국 우리 사회 화두 중 하나인 비정규직이나 청년실업, 조기퇴직 등과 직결돼 있는 문제다. 즉 일자리 창출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영담론에 맞선 땀흘리는 사람의 정치한 논리를 찾아갈 필요성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독이다. 학술서라 다소 딱딱하지만 다룬 주제를 감안한다면 흠이 될 수 없다. 남창우 기자 nam@kookje.co.kr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분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을 냈다. 제목은 잃어버린 10일: 경영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정치, 이학사, 2011이고, 저자는 김영선이다. 저자와 멀지 않은 친분이 있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때로는 신랄한 논평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책소개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저자와 출판사의 책소개를 저 아래 계속보기에 그대로 옮겨 둔다 -- 인간은 인정의 동물인 것을 어쩌랴! 그렇지만, 장시간 노동체제인 한국 사회에서, 휴가를 둘러싼 지배 담론, 좁게는 경영 담론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간략히 내용을 요약하면, 먼저 '잃어버린 10일'이란 제목은 법적으로 보장된 2주연속 휴가에서 사라진 10일을 뜻한다. 2주 휴가가 연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본이 휴가 일수를 단속적으로 끊어 유리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하는 기본적인 조치이다. 그렇지만 보통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일반적으로 여름에 3박4일 정도가 최대한의 휴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상식아닌 상식을 만들어낸 관리적, 법적, 제도적, 문화적 실천들을 다루고 있다.
시기적으로 주마간삭 견으로 살펴보면, 우선 1970년대, '산업역군'으로 호명된 노동자들은 국가 발전이란 상위 목표에 종속되고 억압적이고 병영적인 온정주의 관리방식에 따라, 단순히 생리적인 '피로회복'을 위한 휴식만을 누렸다. 당시에는 휴가가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도 인식되지 못했으며, 일요 휴무조차 시혜적인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전태일의 외침을 상기해보라. 사실 지금은 당연히 하는, 일요일 휴일, 토요일 반휴제가 시행된 것 -- 주 5일제, 주40시간제가 아니라 -- 도 1980년대 말에 와서이다. 이 당시 휴가는 노동을 위한 생리적 기계, 즉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제에 불과했고, 영원히 오지 않을 언젠가는 도래할 휴식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자!'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박카스' 같은 휴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기를 거쳐, 1980년대 말에 오면, 휴가가 재정의되는 몇 가지 맥락이 등장한다. 생산의 위기는, 노동과 자본 양측의 조정을 수반한다. 특히,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그리고 자본의 유연 축적체제로의 전환으로 인해, 휴가는 선별적인 보상 메커니즘으로 재정의되고, 유연화를 위한 합리적 계획 상으로 재배치된다. 당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의 사회적 시나리오가 유행했다. '열심히'와 '떠나라', 뒤집어 말하면, 휴가를 떠나긴 떠나는데 열심히 일해라가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 당시도, 휴가, 즉 여가에 대한 병리화, 부도덕화, 노동규율 약화, 그리고 경쟁력의 소멸이 강조되었다. 당시의 문제란, 휴가와 자유시간을 어떻게 생산적인 노동시간, 합리적인 생산성(휴테크, 시테크 등)과 연결시킬 것인가, 게다가 과거 1980년대와 같이 강제와 억압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런 경향은 1990년대 말, 그러니까, 이른바 신자유주의 하에서 보다 강화된다. 그리고 새로운 휴가 담론이 등장해서 여기에 얽혀든다. 휴가는 일상화된 유연화와 함께 경쟁력 담론으로 재규정된다. 휴가가 자기계발과 자기관리의 장치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단순히 정리되기에는, 이 책의 많은 내용을 포괄하기 어렵다. 이 책에는 휴가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기업의 전략과 기법, 노동자의 반응과 대응 등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장시간 노동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떠받쳐지고 있는가를 휴가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보고 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이 비록 경영담론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해두자. 또한 한 시대에 나타났던 휴가 담론이 다음 시대에 없어진 것이 아니라, 중첩되고 소멸했다가 다시 강화되는 점도 염두에 두자. 그리고, 계급, 젠더, 인종, 지역 등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현상을 추적하지 못한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유' 시간이 있으시면,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분들은,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이상, 공짜로 책 받은 값은 했나 모르겠네...여하튼, 주례사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