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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백제의 목지국 병합시점에 대한 의문...
다물전사 추천 0 조회 901 11.03.20 19:10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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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21 16:04

    첫댓글 온조왕 26년조를 보면 마치 마한이 하나의 국가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마한은 국가개념이 아닌데 말이죠. 마한에 54국이 있었다고 하는데(삼국지 韓傳) 이 54국을 온조왕 26년에 모두 평정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목지국을 병합했다고는 말하고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마한 54국 전체를 평정한 것으로는 해석할 수 없으므로 26년조는 마한의 유력국이었던 목지국을 가리키는 거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백제가 목지국을 병합한 것은 비류왕 대 또는 근초고왕 대라고 생각하므로 드라마에서 근초고왕 대로 설정했다면 적절하다고 봅니다.

  • 11.03.20 22:10

    후한서 마한전에 이런 구절이 있군요. '삼한은 옛날의 辰國이다. 마한이 삼한 중 최대이다. 마한인을 辰王으로 共立하며 수도는 목지국에 있다. 진왕은 삼한의 大王(盡王)이다. 삼한의 왕들의 조상은 모두 마한인이다.' 후한서에서 삼한의 수도가 목지국에 있다고 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온조왕 26년조를 목지국정벌로 보고있는 거로군요. 하지만 백제가 건국한지 26년만에 삼한 최대의 목지국을 정벌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11.03.20 22:13

    시조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해서 후대왕의 업적을 소급해서 기록한 걸로 봐야합니다....온조왕의 기록은 그 신뢰성이 크게 의심받고 있는 걸로 압니다...마한 목지국의 병합은 책계왕때의 기록을 온조왕의 업적으로 기록한것이 아닌가 생각 되어지고....책계왕, 분서왕, 비류왕 , 계왕은 목지국과 여러소국들의 병합과정 또는 병합후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은걸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군요...

  • 작성자 11.03.20 23:56

    근데 솔직히 아무리 시조의 업적을 미화한다고 해도 후대의 왕의 엄연한 업적을 소급시킨다는 발상이 과연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싶네요...삼국사기가 일본서기처럼 그런 성격의 사서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초기기사는 신빙성에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건 자체를 수백년전으로 소급한다더라...

  • 11.03.21 01:29

    역사를 그 자체의 학문 또는 기록으로 봤던 시기가 언제부터 였을까요..역사는 순수한 진실일까요...지금 우리도 과거 몇년전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지 반문하고 싶군요...또한..몇년도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 라고 정확히 기억하시는지요..그리고 님이 기억하는 과거 사건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으로 해석하시는지...반문을 하시면.....쉽게 가야사를 보십시요...어쩜 잃혀지는것보다 잘못된 업적이라도 기록으로 남는게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쓰다보니..가야사는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더 많은 기록이 있고.일본서기라도 없었다면 가야사는...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본적없나요..

  • 11.03.21 12:05

    온조왕 때의 마한통합기사를 조정하여 보는 견해....(전체 마한 통합이 아니라...중심세력인 목지국통합시기로 판단함)
    1. 이병도 고이왕대....(통설적 견해)
    2. 이기동 근초고왕
    3. 전영래 비류왕
    4. 강봉룡 책계왕 구체적으로 290년대로 보는 견해등이 있습니다..

  • 11.03.21 12:28

    노중국 선생같은 경우는 삼국지 위지 한전에 보이는 기리영전투관련기사에서 한을 멸하였다는 기사에서 기리영을 공격한 신지를 마한맹주국인 목지국 왕으로 보고 목지국해체시기를 고이왕대로 보고 있습니다..
    또 강종원선생은 고이왕대로 판단하고 더 구체적으로 좌평제, 관등제, 복식정비및 남당정치실시등이 나타나기 직전인 258년을 하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삼국지 한전의 기리영전투의 결과 한을 멸하였다는 기사를 마한 맹주국인 목지국의 해체로 보고 고이왕의 백제가 목지국을 대체 복속한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부는 아니지만 강종원선생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 11.03.21 12:29

    드라마상의 근초고왕대의 마한정벌관련부분은 삼국사기가 아닌 일본서기 신공황후부분에서 보이는 것으로
    맹주국 목지국의 해체이후 잔여 마한세력에 대한 군사행동으로 판단합니다.

    이는 진서에서 보이는 마한의 조공기사에서 목지국이 아닌 신미국등 여러나라라는 표현에서 보이듯이 목지국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고. 독자적인 신미국등 20여개국이 역대로 조공하였다는 기사로 볼때, 목지국 해체 복속후 잔여세력이 개별적인 활동을 한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작진이 마한의 소멸과정을 잘못이해하여 근초고왕대에 마한이 해체 복속한것으로 해석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삼한일통을 거론하는 예왕지인부분에서 보임)

  • 11.03.21 22:54

    월지국은 충청도 직산으로 보는 견해가 지지를 받는걸로 압니다...또한 기리영전투는 마한의 신분고국이 주도한 전투로 보는 견해도 있고..제가 옳다고 생각되어지는 견해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백제가 고이왕때 경기 서울일대를 장악하였고.. 책계왕, 분서왕, 비류왕 , 계왕의 흔들리는 왕권은 경기일대부터 충청도까지의 병합과정 ,병합후 후유증에서 기인한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지므로 책계왕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 되어집니다

  • 11.03.21 12:40

    백제가 마한을 정벌한 시점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온조왕 이후로 300여년을 마한이 멸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신라 탈해왕대에 항복한 마한은 뭐라고 하여야 할까요?
    과연 삼국시 위서동이전은 사서로써 문제가 없는 완벽한 사서인가요?
    백제가 중국의 사서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시점이 바로 삼국지 위서동이전입니다.
    그것도 마한전이 아닌 부여전에 등장합니다.
    백제를 부여로 기록한 중국인들이 삼한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을 할 정도로 정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유없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배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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