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영선생님께서 2015년 1월 25일 13시 24분 별세하셨습니다. 빈소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2가 54-63번지 다송장례식장 발인 2015년 5월 27일 10시“ 문자가 왔다.
동양에 피카소라 불리던 하반영선생님께서는 100수전을 목전에 두고 저승으로 가셨다. 최소한 전북시민, 누구나 내 그림 한 점씩 주기를 원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점을 찍으셨던 선생님, 생전에 찾아뵙지 못함이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목사와 불신자와 관계가 아닌 친 아버지와 딸의 관계속에서 그림을 설명해 주고 삶의 여정을 정답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신 임목사님과 강장로님과 함께 하반영선생님 영전 앞에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선생님의 영정 모습을 보았다.
지난해 98세인 선생님께서 신리에 있는 지인화실에서 100수 전시 준비를 위하여 열심히 그림을 그리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뵈올때 불편한 몸을 일으키시면서 반갑게, “왜? 이제와, 오느냐”고 불평조로 말씀하심이 귀가에 쟁쟁 울린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함을 용서 구하고 마지막 생을 돌봐주시는 막내 사모님과 반영상운영위원회 법인 구성과 “반영상 수상” 논의만하고 생전에 실행하지 못함이 너무도 죄송스러울 뿐이다.
다행이 그동안 3년 동안 하반영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군산시청에 100점을 기증하시고 기증 작품을 근대미술관에 상설 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게 하셔 선생님께서 하시고져 하는 일들을 그나마 이루시고 가셔서 행복한 화가의 삶을 사신분이라 생각된다.
"내가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직도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2012년에 세례를 받으시고 매일 새벽에 기도와 십일조를 성실하게 믿음으로 드린다는 말이 제일 기뻤다.
"나는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과업을 마지막으로 성취하는 과정이다"
“지금, 그림을 그리는 이순간의 현실을 무척 감사하다”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다”등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고 듣는 나에게도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가슴속 깊이 솟구치게 하는 강한 영성을 느꼈다.
표현한다는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경험하고 사유하면서 확신에 찬 생명의 커다란 세계를 말씀하실 때 풍요로워져 가는 생명변화의 증폭은 나로 하여금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게 되는 새로운 길을 트이게 하셨다.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유기적 대상세계와의 연관성은 나의 내면에 색채와 화면구성에 의한 “생장”으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내가 화폭 앞에서 붓을 들면 리드미컬한 묘미로 가득 찬 형태나 화면 구조가 밝은 색채와 뚜렷한 붓질로 거침없는 표현세계로 나아가게 된 것이 다 선생님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생님의 대담한 붓질로서 강약의 색채에 의한 단속의 넓은 색선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작품이든지, 아기자기한 질서에 의한 색채와 공간간의 속삭임이 들릴 듯한 소형 연작들이든지 간에 작품에 스며있는 선생님의 자신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북돋우어 주는 일종의 묘한 힘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선생님께서 표현하신 거기에는 마치 음악에서 들어 나는 화음처럼 생명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구조가 일종의 리듬들이 쏟아져 나온다. 손끝의 붓질에서 직감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도 평온하게 만드는 일종의 치유의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훈정아! “그림을 잘 그릴려고 하지 말아라” “욕심을 내려 놓아라” 하시면서 인륜의 道의 작품을 주셨다. 그림그리기 작업을 계속하면서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금쪽같은 말씀이다. 순간 순간 한계에 봉착할 때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되는 소중한 말씀이라는 것을 더욱 더 새삼 느껴진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인, “마을을 항상 청결케 하라”, 뜻에서 淸과 ‘이웃에게 덕을 쌓아라“, 뜻에서 德의 작품 7점을 주셔서 동행 지인에게 2점을 나누워 주었다.
함에 넣어 두었던 선생님의 표현의 작품을 꺼내 보느라면 선생님게서는 인륜적인 淸과 德를 초월하여 하늘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묵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