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나자 햇살의 촉감이 한결 다르다. 아직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봄을 느끼기에 쌀쌀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이미 봄이 와있다. 긴 추위를 이겨내고 산수유 가지에 발록발록 노란 봄빛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봄을 품은 56명의 길벗들이 원근각처에서 평택역 또는 평택시청에서 시내버스와 카풀 등으로 신대2리 장서방네 노을길의 출발점에 모였다. 매번 느끼지만 우리는 섶길을 알기전에는, 성별은 물론 연령 차이도 있어 서로가 남이라는 생면부지의 낯섬 속에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었을 인연이다. 섶길에 오르는 순간 마음은 이미 열리고 열린 마음속으로 인연은 새로워진다.
길은 언제나 시작이면서 끝이다. 지난 노을길의 끝이었던 신대2리가 장서방네 노을길의 시작이다. 오늘은 순환형인 10km의 장서방네 노을길과 5km의 명상길을 이어서 걷는 코스이다. 어느 한 코스만 걷기에는 부족한듯 아쉬움이 있어서이다. 오늘은 사정상 준비체조 없이 길을 오른다.
섶길에는 평택의 오랜 역사와 자연환경 그리고 문화와 지역민의 모습 등 인문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 섶길은 걷기 뿐만 아니라, 오늘의 평택을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 등을 체험하는 인문 여행이기도 하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신대 2리 입구에 놓여있듯 표석 강돌에 이루 적지 못했던 가사를 옮기며, 장태춘과 노래 배경이 내놓는 길을 따라 장서방네 노을길을 걷는다.
🎶 고단한 삶에 바람 조차 설운 날
먼 산에는 단풍 지고 바닷물도 차더이다
서편 가득 타오르는 노을 빛에 겨운
님의 가슴 내가 안고 육자배기나 할까요
비바람에 거친 세월도 님의 품에 묻고
여러 십년을 한결같이 눌 바라고 기다리오
기다리다 맺힌 한은 무엇으로 풀으요
저문 언덕에 해도 지면 밤 벌레나 될까요
어찌하리, 어찌하리 버림받은 그 긴 세월
동구 아래 저녁 마을엔 연기만 피어나는데
아, 모두 떠나가 버리고
해지는 고향으로 돌아올줄 모르네
솔밭길로 야산 넘어 갯 바람은 불고
님의 얼굴 노을 빛에 취한듯이 붉은데
곱은 허리 곧추세우고 뒷짐지고 서면
바람에 부푼 황포돛대 오늘 다시 보오리다
비나이다, 비니아다 되돌리기 비나이다
가슴치며 통곡해도 속절없는 그 세월을
아 모두 떠나가 버리고
기다리는 님에게로 돌아올 줄 모르네
당신의 고단한 삶에 노을 빛이 들도
꼬부라진 동구길에 풀벌레만 우는데
저녁 해에긴 그림자도 님의 뜻만 같이 흔들리다
멀어지다 어둠속에 깃드는데 🎵 🎶
장서방네 노을길은 이지역 출신인 정태춘의 "장서방네 노을"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유래되었다. 8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적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시골 마을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을 해거름의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으며, 노을이 지는 풍경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과 시간의 흐름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장승을 의인화한 노래의 주인공인 '장서방'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진 채, 그들의 귀환을 기다리는 인물로 묘사하며, 이는 현대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불러 세운다. 또한 노래는 고향과 자연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급격한 경제발전의 이면에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떠난 사람들이 돌아 온다하여도 노래 가사의 바람에 부푼 황포 돛배를 옛날 처럼 다시 띄울 수 있을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길 산길 물길 골목길과 거름내음 사람내음이 있는 섶길을 찾는 이유는 걷기를 통한 만족외에 가슴 깊숙한 곳에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다.
출출해진 길은 엄마손밥상 한식뷔페에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카풀로 국제대교를 바로 점프한다. 다음주 섶길코스 비단길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명상길은 행정구역이 다른 안중 현덕면 신왕2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하여 순환하는 코스이다. 이 길은 약 5km 길이로, 소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이다. 난이도는 보통이다. 이 코스는 명상길이라고 명명한 바와 같이 그대로 호젓한 산길, 마을길, 평택호변을 걸으며 마음을 차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통적인 풍수 지형이다. 산과 물의 조화로 생태적으로도 이상적인 마을인 만큼 먼 과거와 근대와 현대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품은 인문적 이야기가 많았다. 이지연 해설사의 포인트 마다 막힘없는 해설을 귀가 크질 못하여 지면으로 다 옮기지 못함이 애석하다. 재치 있는 문답식 해설은 모두의 집중력을 높혔다.
다만, 방조제 이야기가 나오면서 "장화없이 못산다"라는 뜻밖에 말에 크게 공감하는 기억이 있어 적어본다. 필자는 유년시절을 송탄 미군부대앞 저녘시장 골목에서 보냈다. 아산만 방조제를 쌓기전 74년 5월 이전의 이야기이다. 이 지역에서도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없이 못산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거의 같지 않는가. 이 지역이 지형상 저지대이기도 하지만 비가 오기만 하면 배수가 잘 안되어 골목 골목이 진창이 되기 일수였다. 특히나 바닷물이 밀려오는 밀물 때 홍수가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집안 살림은 물론 집집 변소의 거시기까지 둥둥 떠다니는 난리가 났다. 높은 지대로 피신해야 하는 상황을 몇번 겪었던 유년의 기억이 깊히 저장되어 있다.
평평할 평(平)과 못 택(澤)의 쓰는 평택의 지명 유래와 아산만 방조제를 완공함으로써 수위조절이 가능해져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확보와 갯벌이 축소가 되어 지난했던 농경지 확대가 가능해졌고, 아산과의 교통시간 단축과 수해 염해 한해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나, 한편 수산물의 감소와 절대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야 했던, 마을의 용신제 풍어제 등 각종 민속문화들이 사라졌다는 해설로 노을길의 추억은 아려졌다.
길지 않게 쓰려했지만 길어진것 같다. 오늘 장위원장님도 부끄럽다 말씀하셨듯 섶길의 쓰레기를 줍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본받을 만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고려해볼 과제이다. 끝으로 오늘 길의 빛이 되어준 차량봉사와 자원봉사자 그리고 여러 섶길위원에게 감사드리며 글을 서둘러 마친다.
첫댓글 함께해서 즐겁고 멋진 하루였습니다. 평택
지방에 대해서 전연
몰랐던 역사 문화
등을 해설해 주시는
덕택에 하나씩 알게
되니까 무작정 걷는
것보다 훨씬 값어치
가 있습니다. 남은
구간에서도 많은
내용 알게 되길 바라
며 수고많으셨습니다
늘 건강한 걸음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오늘 함께 길을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지역 사람이면서 평택의 깊은 속살을 모르며 오랜동안 살아왔습니다. 부끄럽지만 배움하며 부족한 글을 옮겨봅니다.
눈으로 훑는 것이 아닌 이 지역의 인문을 함께하며 걷는 섶길여행을 통하여 평택을 더 오래 기억하고 추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걸었던 길을 황의수님의 후기글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회상하여봄니다.
사실 저로서는 바쁜 걸음이라 해설사님의 해설을
제대로 듯지못한 아쉬움이 있는데
자세하고 폭넓은 역사와 그속에 담긴
삶의 애환을 느끼게 되는군요,
창밖에 봄비가내리는 아침에.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하더니
선생님이 계시는 파주에도 비가 오나 봅니다.
창밖의 봄비가 내리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저는 봄비에 촉촉히 젖어드는 아침 산행길을
우산을 없이 걸으며 초록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 보기도 했답니다.
섶길에서 두번을 뵈었습니다만
언어의 사용과 배려와 주의 깊게 들으시는 등 공감력이 좋으심에 귀감을 느낍니다.
부족한 저의 글에 정감있는 댓글을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이번주는 다른 일정이 있어 섶길에 못 오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음 섶길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