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요즘의 캐나다 날씨는 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여름에 캐나다를 여행한 사람과 겨울에 캐나다를 여행한 사람에게 비추어진 캐나다에 대한 인상은 정말 대조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시 찾아올 겨울을 생각하면 두려워 지는 이유 또한 추위도 추위지만 너무도 긴 겨울의 기간에서 오는 두려움도 함께 하는듯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성인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840년 1월 4일, 벨기에의 트레멜로라는 조용한 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세례명은 요셉, 요셉은 시골의 맑은 공기처럼 티 없고 건강하게 자라났습니다. 요셉은 나중에 성장하여 몰로카이 섬에서 나병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젊음과 목숨을 바치신 다미안 신부님의 어릴 적 세례명 입니다.
요셉의 집은 성가정 이었고 자라면서 부모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하였으며 요셉의 형과 누나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나 요셉보다 먼저 각각 수도회와 수녀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 역시 형이 있는 수도회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도회에서 다미안이라는 수도명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이 몰로카이 섬에 가게 된 것은 마치 하느님께서 신부님을 그 곳으로 보내시기 위해 준비하신 계획 같았습니다. 선교를 위해 하와이로 떠나기로 되어있던 신부님의 형이 병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다미안 신부님이 형을 대신해 하와이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서품을 받고 신부님이 되셨고, 그 때까지도 미신을 믿던 하와이의 주민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신부님은 얼마 되지 않아 나환자들을 강제로 모아놓은 몰로카이 섬으로 가실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1873년경, 하와이에 맹렬히 퍼지던 나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는 나병환자들을 몰로카이 섬으로 추방하여 격리수용 하였던 것입니다.
몰로카이 섬은 이름 모를 꽃들과 울창한 숲을 가진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그 곳에 살고 있는 나병환자들의 삶은 정말로 비참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몰로카이 섬에는 병원도 하나 없고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곳 주민들과 함께 샘터를 찾아 섬을 뒤졌고, 산중턱에서 샘을 발견한 신부님은 그 곳으로부터 마을까지 물을 끌어오기 위해 파이프를 섬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러나 해변에 쌓여있는 파이프를 나르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나병환자들에게 고생하며 물을 끌어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다리가 불편한 사람 한명이 파이프를 손에 들고 힘들게 끌고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습에 다른 주민들도 하나 둘씩 파이프를 나르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샘으로부터 물을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가족과 친척 등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던 나병환자들에게 집을 새로 짓고 밭을 일구며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지내야할지 깨닫게 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신부님은 그 곳에서 늘 환자들의 몸을 직접 씻어주고, 붕대도 새로 갈아주며, 손수 성당을 짓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가대를 만들고 희망이 없던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미사 봉헌도 아름답게 만들어갔습니다. 신부님의 사랑은 섬 주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삶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리곤 거의 죽음의 섬과 같던 몰로카이에 주교님이 오시어 사람들은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다미안 신부님과 뜻을 같이하는 신부님 수녀님들도 섬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병 환자들을 위해 애쓰시며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던 신부님은 결국 본인도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의 고통을 나누게 되었다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더욱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병환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사시던 다미안 신부님은 1889년 4월 15일 나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의 이런 노력은 많은 사람들의 무뎌진 가슴을 울리고 나병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사랑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미안 성인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들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나누며 살아가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내어주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 마음을 실천으로 우리가 계속 할 수 있도록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아 먹으라.” “받아 마셔라” 그리고 “이것을 행하여라.” 하고 우리에게 실천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체성혈 대축일의 의미 또한 우리가 매 미사 때 마다 받아 모시는 주님의 성체를 세상 속에서 사랑으로 완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의 삶속에는 주님의 성체와 성혈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가 다미안 신부님과 같이 큰 결심으로 특수한 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정신을 본받아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성체성혈대축일의 정신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님께서 실천으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들 가정과 직장에서 우리들의 실천을 통하여 완성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첫댓글 주면 받아야 계산이 딱 맞는 안정감이 드는 걸 바꾸기가 참 어렵습니다.....-_-;;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부터 나눌수 있는 것입니다. 본전은 어디에서 든 체워집니다.
항상 감동의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001년에 캐나다 뱅쿠버에서 지냈습니다. 아름다운 날씨와 많은 공원들에 푹 빠져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랫만입니다. 얼굴이 가물가물합니다. 요즘의 캐나다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나도 캐나다에 살고잡다... 86년도에... 딱 하룻밤 자고 못가봤는데... 온 김에 급히 나이야가라.. 퍼뜩 함 보고... ^^
캐나다도 좋지만 편하게 슬리퍼 끌고 마실가서 소주한잔 할수있는 한국이 더 그립습니다. 나이야가라에 포장마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무도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술값이 너무 비싸서 그런 듯합니다.
다시한번가고 싶은곳 캐나다!!저도 해외연수차 미국,캐나다,호주 돌안본적이 있는데.,갔다와서 우리집사람한테 꼭 캐나다나는 꼭 보여주고 싶은나라라고 예기했는데..아직 무능력으로 인하여..그러나 한번 뱉은말 책임지야죠잉,,고신부님은 소주한잔 마음대로 마실수 있는 한국이 그립지만 저희들은 모든걸잊고 ,배타고 웅장한 폭포한방 더 체험하고 싶은데..역시 인간은 자기가있는곳이 최고 행복한 곳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 ㅋㅋ
나이야가라에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만큼 장관이라 그렇겠지요. 멋진 추억속의 장소는 될지 몰라도 마음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장소와는 거리가 좀 있는 것같습니다.
아하~그래도 당신계신곳이 너무 부럽구만유..내가가면 우리곰돌이도 마음이 따뜻해 질건데 캬!!아쉽다 아직도 내눈에 그장관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꼭 다시한번은 갈겁니다(우리가족들 보여주고싶어서..)그때까지 잘버티고있어줘요
잘 버티고 있겠습니다.
몰로카이 섬의 다미안 신부님의 고귀한 삶보다는 고신부님이 계신 캐나다가 땡기시는 모양이구만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