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안티들이 기독교란 기독교는 모두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듯
나 역시 불교란 불교에는 모두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다.
그래서 안티불교를 하는 것이고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회원들이 카페명을 가지고 뭐라고 할때 고수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에는 많은 종류의 불교가 있다.
다시 말해 불교라고 다 같은 불교가 아니란 뜻이다.
같은 불교 종류라도 종단, 종파로 가면 하나의 곁가지에서 또 다른 곁가지들이 생기듯이
또 수없이 나뉘어 진다.
대부분 불교인들의 경우, 기독교인들의 경우와 같이
그들 스스로는 자신이 믿는 불교가 불교의 진수라든가 진짜배기(?) 불교라고 여기겠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최소 몇단계 걸치고 걸친 불교내의 곁가지에 불과한 하나의 불교류,
하나의 종파류일 뿐인 경우가 보통이다.
내가 아는 불교는
한국불교 및 한국불교의 전 단계인 중국불교에 대해선 전문가에 비해선 훨씬 못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므로 안티불교를 할 수 있는 정도로 조금은 안다고 할 수 있다.
(일본불교의 경우는 그런 것도 불교냐? 하고 생각하는 정도다)
동북아 삼국(중, 한, 일) 불교에서 그들의 불교를 대승불교라 하면서
소승불교라 낮추어 불리는 동남아 불교,
티벳불교,
라마교,
밀교 등은 접해 본 바도 없는 외국불교들이고 관심도 없어 잘 모르겠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만 한국불교와 오십보백보 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모든 불교란 불교에는 모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라고 했는데
불교계의 개신교라 할 수 있는 선불교는 두말할 것도 없고
선불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대승불교도 마찬가지다.
또한
모든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불교에 대해서도 잘은 모르지만
모든 잘못된 불교의 원류라는 이유로 예외가 아니다.
깊이 파고 들기도 싫고 여건이 그렇치 못해 안할뿐이지
인도불교 역시 파고 들면 얼마든지 오류, 잘못, 문제점을 찾아 낼 수 있다.
심지어 난 "불교(佛敎)"라는 용어 자체도 불교란 종교란 이미지 때문에 안 좋게 생각하는데
아직도 불교비판, 안티불교라는 것이 생소한 상태에서
"불교(佛敎)"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서 뭐라고 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판단되기에 다루지 않고 있다.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불교는
붓다 고타마 싯다르타 및 당시의 원시불교와 후세 불가(佛家) 무리들이다.
(참고 주의 - 난 여기서 "불교(佛敎)"란 용어 대신 "불가(佛家)"란 표현을 사용했으며, 이 불가(佛家)도 용어도 만족할 만한 표현은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와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제대로 전달될지 몰라 임시적으로 사용한 것 쯤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불교 원리주의자, 불교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전개될 글을 보면 그것도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흔히들 불가(佛家)나 불교(佛敎)나 같은 의미로 생각하거나 해석하는데 전혀 아니다.
불가(佛家)와 불교(佛敎)의 미묘한 차이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비유하자면
도가(道家)와 도교(道敎)가 둘 다 노자를 시조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태생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buddha"와 "佛 혹은 부처"라는 용어가 있다.
보통 "buddha"와 "佛 혹은 부처"는 같은 의미나 개념으로 누구나 이해하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데
어감(語感)상으로도
"buddha"라는 용어에서는 왠지 친숙하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반면
"佛 혹은 부처"에서는 왠지 불교서적상의 초인적이고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느낄 것이다.
이런 용어상의 다름 및 불교 전반에 걸친 대략적 생각을 다룬 글중 하나로
2년전 모처에서 현직 승려와 토론중에 남긴 글을 참고로 실었다.
승려인 님(님뿐만이 아닌 대개의 승려들)과 일반인인 저하고는
비록 서로가 불교를 배우고 논한다지만 여러부분에서 첫 출발에서부터 너무나 다른 견해,인식,의식을 갖고 있으며 불교적 용어,단어를 사용하는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고
전혀 다른 사고(思考)방식,행위로 불교를 대하고 있음을 쉽게 아실것입니다.
다음은 님의 글에 되도록 자세히 응답하며 불교에 관한 제 견해도 일부 밝힙니다.
제 머릿속엔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개념과 용어가 없습니다.
뭐라고나 할까,,,, 이 나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불교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토대로 내 생활속에 받아들인건 받아들이고,
더 이상 불교계의 꼴을 지켜만 볼 수가 없어
내 능력닿는대로 불교의 오류,잘못,문제점을 지적할뿐이고 제가 옳다면
그로인해 불교가 바뀌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불교 자체에 대해서는 기독교와는 달리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와 불교계의 오류,잘못,문제점에는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흔히 경전이라고 불리는 불교 서적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오류투성이니까요.
불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거나 생활화,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교 서적들 (이른바 佛經들)이
기독교인들의 바이블(성경)같이 신성하거나 특별한 책일 수 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같은 세상 사람에겐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책들중에 한 종류일 뿐입니다.
저는 불교 서적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많은 것을 거부해 습니다.
한권의 책에서 조차
옳은것 참된것 가치있는것은 배우고 취하지만
그릇된것 거짓된것 허무맹랑한것은 과감히 버려습니다.
종교(,신앙)와 학문(,과학)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종교는 산(山)과 같다면 과학이나 학문은 흐르는 물(水)과 같다고 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종교(,신앙)든지
그리고 어떤 학문이라도 종교적 성격을 띤 학문은
그 창시자보다 더 나은 인물이 후세에 배출된 예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보다 더 나은 인물이 없었으며
기독교에선 예수보다 더 나은 인물이 없었으며
도가(道家)에선 노자(老子),장자보다 더 나은 인물이 없었고
유가(儒家)에선 공자,맹자보다 더 나은 인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문(,과학)은 출발은 보잘것 없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맨 처음의 물방울 한 두 방울이 모여 실개천이 되고
실개천이 하천이 되고
하천이 강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는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여습니다.
저는 항상 붓다 고타마 싯다르타를 강조합니다.
그렇다하여 붓다 고타마 싯다르타 시절의 불교로 돌아가자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바라지 않습니다.
자연계의 산(山)은 좋아하지만 인간세계에서의 산(종교나 종교적 학문)은
극도로 싫어합니다.
제가 붓다 고타마 싯다르타를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시조인 싯다르타의 죽음 이후에 후세의 승려들에 의해 세월이 흐를수록
붓다의 정신과 가르침이 온전히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왜곡,변질되고 심지어
오류,잘못된 부분들이 첨가되였기에 그점을 지적하고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최소한 싯다르타가 가르침을 전한 그때 그 시절 그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저는 붓다의 가르침이
불교(佛敎 - 현재와 같이 종교 혹은 신앙으로서의)가 아닌 불학(佛學- 일반적 학문으로서의)으로 역사의
방향을 틀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어습니다.
지금이야 다 포기해버린 생각들이지만 지난 저의 청춘시절엔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대의 불가(佛家)가 종교,신앙으로서의 불교로 고착화 되였는지를
나름대로 분석도 해보던중 많은 오류와 잘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여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의 불교인들이 무심코 쓰는 불교 단어(용어)중에
부정적이고 거부감마저 갖는 단어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나 "석가모니"등 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래니,세존이니 하는 등의 신격화,극존칭 용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처의 경우
혹자는 부처의 유래는 산스크리스트어 Buddha(붓다)의 중국식 번역어인 佛이
한국에서 발음을 부처라 할뿐이라고도 하겠지만
사람들이 보통 쓰는 부처라는 단어엔 붓다라는 친근하고 가까운 이미지보다
왠지 우리네 인간들과는 다른 차원의 특별한 존재나 신격(神格)의 범접기 어려운
그 어떤 신앙적 대상이라는 느낌을 받고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붓다"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즐겨합니다.
그 이유는 소설가 하유상님의 변이 제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분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검색어로 "하유상"입력하면 자세히 나옵니다.
하유상님의 "예수와 붓다"라는 책의 머리말에 나온
글을 일부를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석가모니를 부처 또는 불타라고 부리지 않고 구태여
붓다라고 부른 건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물론 Buddha란 원어에서 말미암은 건데, 내가 원어를 고집하는 건
이 책에서만은 우리 머릿속에 선입관념으로 들어있는 재래의 부처나
불타의 개념에서 탈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신변(身邊) 불가사의한 붓다의 개념에 물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