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상쾌하다. 오랜만에 맨발 걷기 해보려고 나선 길이다. 휘파람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아 햇살이 그리 뜨겁지 않으니 신바람 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공원으로 들어섰다. 새벽이라 걷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서로 눈인사를 나눈다. 멀리서 유모차를 밀며 오는 이가 있다. ‘아니 이 새벽에 아기를 데리고 산보 나온 분이 있네.’ 유모차가 가까워진다. 그런데 유모차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개 두 마리. 엄마의 새벽 산책에 아이가 함께 나왔나 했더니...
그런데 개의 얼굴 표정이 뚱하다. 그리 신나는 표정이 아니다. 눈동자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저 멀건이 나를 쳐다본다. 견모차(아기가 안타고 개가 탔으니)를 밀던 이는 젊은이는 아니어서 발걸음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나 자신의 산책길에 개들도 바람을 씌어주고 싶었나 보다. 그들과 스쳐 지나가는데 자꾸 내 눈길이 돌아선다. 개들도 걷고 싶을 텐데, 아니 이리저리 뛰고 싶을 텐데.
연못을 돌아 맨발 걷기 하러 메타쉐콰이어 숲에 들어섰다. 그런데 여기도 견모차가 하나가 입구 길을 딱 막고 서 있다. 개가 못 뛰어나오게 아예 그물망으로 덮어 버린 채 놓여 있다. 그런데 개는 편하게 앉아 있지 않고, 귀를 쫑긋 세우고 서서 걷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인다.
숲 정자에 신발을 벗어 놓고 발을 뗀다. 첫걸음은 언제나 따갑다. 편리함을 위하여 갈수록 두꺼워지는 운동화 바닥에 편하게 부드럽게 놓여 있던 발이 딱딱한 땅을 금방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큼성큼 발을 옮겨본다. 9개월 동안 맨발로 걷지 않았더니 발이 적응을 잘 못한다. 종종걸음을 치니 더 따갑다. 그리 크지 않은 숲을 두어 바퀴 돌고 나니 이제 좀 편해졌다. 견모차가 서 있는 앞을 지나려니 나를 보고 있는 개의 눈동자가 느껴진다. 뒤통수까지 따라오던 눈동자가 자기 주인을 따라가는 걸 돌아보며 개 주인이 ‘왜 개를 데리고 나왔을까’ 생각해 본다. 짖지도 않고 숲을 도는 사람들을 따라 눈동자를 돌리고 있는 그 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질없이 하는 생각들을 접고 그저 걷는다. 걷기 멍 시간이다. 둥글게 걷기가 싫증나면 나무 사이에 난 길들을 이용하여 지그재그로 걷는다. 천천히 쉬지 않고 걷기가 오늘의 목표이니 약간 오르막길은 큰 발걸음으로, 내리막길은 종종걸음으로 변화를 주며 걷는다. 이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혼자 걷는 길에 갑자기 흰 공 하나가 휙 지나간다. 아니 웬 공? 주먹만 한 개가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간다. 저쪽 오르막길에서 주인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부른다. 주인은 몸집이 큰 남자. 성큼성큼 걸으니 오르막길 하나가 금방 끝난다. 작은 강아지로서는 그걸 도저히 못 따라 가게 생겼다. 강아지가 뛰어가다가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가 반짝반짝한다. 주인이 다시 오라고 부르자 나무 사이로 금방 주인에게 달려간다.
“요 녀석이 약아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내가 돌아서 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나무 사이 지름길로 뛰어와 버려요,” 작은 개를 바라보는 내게 강아지 주인이 말을 건다. “아이고 아저씨, 강아지 다리가 너무 짧아서 아저씨 따라 같이 뛰기는 어렵겠네요. 그래도 그렇게 머리를 써서 따라 다니니 얼마나 좋아요.” 대답하는 내게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건넨다.
신나서 반짝이는 눈동자를 내게 보내는 작은 개를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