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고장 보성, 득량면 오봉산에서
(전남 보성군 득량면 도촌里와 해평里에 걸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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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때문에 며칠을 고생하고 났더니 이제는 배탈이 나서 심신을 괴롭힌다.
금요산행일, 산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하다.
그동안 아내가 끓여주는 죽도 실증이 날 정도인데 보온도시락에 죽을 쌌다고 한다.
떡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죽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떡은 경사스러운 날 축하하는 의미로 해먹고 제사상, 고사 상에도 올라간다.
그러나 죽은 소화력이 떨어진 노약자나 아픈 사람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인식돼왔다.
똑같은 곡류로 만든 음식이지만 떡과 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이렇듯 다르다.
떡은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고 화려하며 엄숙한 의례에 빠져서는 안 되는
특식이기에 위상도 높다.
하지만 다른 재료를 받아들여 변용(變容)하는 능력에선 죽을 따라 갈 수 없다.
밥을 할 때는 다른 곡류를 섞어 잡곡밥을 짓거나 감자 콩나물 등 채소류를
쌀과 함께 넣을 수 있다.
떡은 잡곡은 물론이고 무와 같은 채소, 꽃, 과일과 견과류까지 받아들인다.
그런데 죽은 곡류, 채소류, 과일 및 견과류는 물론이고 고기와 해조류, 어패류까지
다 수용해 소화해 낸다.
심지어 약재를 섞어 보양(補陽)죽을 만들 수도 있으니,
죽의 포용력은 무한(無限)하다 할 수 있다.
이번 주 산행은 보성군 득량면 오봉산(五峰山)으로 가기로 했다.
오봉산이 있는 보성은 녹차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茶葉)을 사용해서 만든 차(茶)를 말한다.
녹차의 잎을 약용으로 이용한 것으로 각성작용, 이뇨작용, 해독작용, 소염작용,
살균작용 등에 효능이 있다.
녹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그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茶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우룽차로 나뉘는데.
어떤 차를 제조하든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사용한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며 대개 5월, 7월, 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그 중에도 5월에 딴 것이 가장 좋은 차가 된다.
예전에는 사람이 가마솥에서 직접 잎을 손으로 비벼 말렸으며,
가열을 계속하면서 수분을 제거하고 어느 정도 바삭바삭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증열機, 조유기(粗揉), 유염機(揉捻), 재건機(再乾), 정유기(精揉),
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한다고 한다.
오봉산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도촌里와 해평里에 걸쳐 있는 높이 392m로 높지 않은 산이다.
봉우리가 다섯으로 되어 있어서 오봉산이라 이름이 붙여진 것이며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조한 오봉산성지가 있다.
계곡의 협곡과 산등성에 솟은 기이한 모양의 바위봉우리와 바위벽은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자연미가 빼어나다.
칼바위, 병풍바위, 버선바위 밑에는 마당 굴, 정제 굴, 독 굴 등 수없이 많은 굴들이
뚫려 있다.
보성녹차는 보성읍에서 회천면 사이에 걸쳐 있는 차 재배단지를 말한다.
보성읍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는 18번 국도를 따라 8km쯤 가면 봇재가 나오고
이 봇재 아래로 짙은 녹색의 차밭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정원수처럼 잘 다듬어진 차나무가 산비탈의 구부러진 골짜기를 따라 녹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바람이 일면 녹색 파도를 일으키고 빼어난 주변 경관으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현재 보성군은 한국에서 가장 차(茶)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으로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문헌에 차의 자생지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한국 차의 본고장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보성군에서 생산되는 차는,
전국 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차나무 재배가 활발하다고 한다.
아침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서울이 영하 14도를 오르내리고 전국이 한낮에도 영상을 유지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
“속에 내복은 입었어요?”
“등산파카는 이걸로 입으세요, 영하권이라 하잖아요.”
아내의 엄격한 군장검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역시 아내 말을 들은 것이 좋았다는
생각이 절로난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결이 칼날처럼 예리하다.
오늘도 날씨가 추워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겨우 19명의 회원만이
산행에 참여했다.
산행버스가 보성으로 가는데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나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고 산행이사가 웃으면서 말한다.
부회장이 보성에 가면 꼬막이 유명하다고 입맛을 다신다.
아닌데, 지금은 새조개가 제철이라 하던데.
은근히 달콤한 맛,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을 주는 새조개의 계절이 돌아왔다.
육수에 살짝 데쳐 한 입 가득하면 그 맛은 “진땅”이다.
“몰캉몰캉, 사각사각.” 새조개의 식감이다.
새조개는 황토갯벌이 많은 곳에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잡힌다.
하지만 1월이 돼야 씨알이 굵어지고 맛도 최고다.
우리나라에서는 홍성과 서산, 경남 통영, 전남 여수 등지에서 주로 난다.
초기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돼 국내에선 새조개를 맛보기 힘들었다.
살짝 데친 새조개 살은 일본에서 초밥 재료로 인기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국내 식도락가의 미식한담(美食閑談) 소재로 등장하면서
국내에도 대중화됐다,
새조개의 매력은 사각거리는 촉감,
풍부한 핵산에서 나오는 은근 달콤한 감칠맛이다.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 성분이 풍부하다.
새조개는 각종 채소를 넣은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샤부샤부” 방식이 최고다.
샤부샤부는 넓은 냄비에 대파, 무, 버섯, 다시마, 멸치를 넣고 끓인 국물에 새조개를
살짝 데쳐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는다.
샤부샤부로 먹은 뒤 쌀뜨물처럼 뿌옇게 된 패즙(貝汁)에 라면이나 칼국수를 넣어
먹으면 환상적이란다.
산행버스가 산행기점인 득량남초교 앞에 우리일행을 내려주고 하산지점인 용추 골
주차장으로 떠났다.
오늘산행은 득량남초교정문에서 출발:-
돌탑주능선 -칼바위 -오봉산정상 -용추폭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약 5시간 소요
코스다.
산행은 오전 10시에 곧 바로 시작되었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속에 껴입은 내복도 불편하지 않고, 두툼한 파카도 벗지 않아도
좋았다.
털벙거지를 쓰고 오르는 산길은 추위 때문에 힘이 덜 드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가 무섭게 머리위로 지나간다.
바닷바람이 아니고 육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인 것 같다.
어느 지점에서는 바람에 날려갈 것 같아 몸을 웅크리기도 했다.
넓은 득량만과 다도해의 옹기종기 들어앉은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보기가 좋았다.
바다를 가로막은 해평제방 안 넓은 간척지 들판은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나뉘어있고
길 따라 울긋불긋한 마을은 길게 늘어져 꿈꾸듯 졸고 있다.
주능선을 따라 세워진 수십 개의 돌 답들은 건축가의 치밀함과 조각가의 정교함에
토속신앙의 믿음이 베어든 작품이었다.
능선은 완만하게 계속되었지만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사망신고서와 같이 접수해야
할 아찔한 절벽의 연속 부분도 있었다.
해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굴 까는 도구 모습인 조새바위를 지나고,
첨성대모양의 돌탑지대를 지나니 원효가 수도 터로 삼고 불도를 닦았다는 칼바위가
나왔다.
내가 보기에는 커다란 두꺼비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보였다.
입천장 안 부분에 부처님의형상이 엷게 새겨져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 곳곳의 너덜지대에 쌓여 있는 돌들은 널찍하고 반듯하여
질 좋은 구들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한다.
다섯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용이 승천했다는 용추폭포로 내려갔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소리 지르며 떨어지는 모습도 볼만했다.
회죽천을 따라 한참 내려갔더니 산행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으로 보았으나 내면을 들여다보니 거대한 암벽이 장대하게
펼쳐져있는 바위산이었다.
시간이 남아 보성 득량면 오봉里 강골마을에 들렸다.
강골마을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里에 있는 전통 한옥마을이다.
그 중에도 이용욱 가옥은 전통 한옥마을인 강골마을 중앙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가옥으로 중요민속자료(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골은 강동(江洞)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11세기 중엽 양천 허氏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원주 이氏를 거쳐, 16세기 말에 광주(廣州) 이氏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광주 이氏
집성촌이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가옥의 대부분은 19세기 이후 광주 이氏 집안에서 지은 것들이다.
마을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 30여 채가 오봉산(五峰山)을 바라보면서 작은 골짜기
안에 접시 꼴로 똬리를 틀고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벚나무, 목련, 석류나무 따위 고목이 솟아 있고,
가옥과 가옥 사이에는 담쟁이덩굴과 대나무로 뒤덮인 돌담길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전형적인 씨족마을 잘 보여준다.
특히 규모가 30여 채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3채의 가옥과 1개의 정자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금재(李錦載)가옥, 이용욱(李容郁)가옥, 이식래(李湜來)가옥, 열화정(悅話亭)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세운 것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채와 안마당, 사랑마당 등을 갖추었다.
강골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하산酒를 끓여 먹었는데 오늘은 생굴을 넣은 떡국이었다.
생굴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생굴 반 떡국 반이었다.
날씨가 추우니 떡국과 소주가 바닥이 났다.
오늘도 김종수 동부학원장이 15만원의 발전기금을 내주었고,
고통분담을 하겠다며 최사장이 10만원과 밀감 한 상자를 기증해주었다.
날씨는 칼바람처럼 추워도 금광사랑의 온도계는 식지 않고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13년 1월 25일)
첫댓글 많은 자료와 문장의 유연한 연결, 흥미있는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나이 탓일까? 바람부는 날씨가 너무나 춥다.
이런 추위가 2월 초순까지 이어 진다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