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한국 창원에서 열린 ‘세시봉 콘서트’에서 윤형주·송창식·김세환씨가 노래 중간 사회자 이상벽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최근 각종 노래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성들이 눈물을 머금거나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우는 중년 남성이 늘고 있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히 나이 먹음에 대한 서글픔이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옛 추억과 삶에 대한 회의 소외감이 섞인 복잡.미묘한 감정의 표현이다. 사회학자들은 이제까지의 생활방식에 의미를 잃은 중년 남성들이 또다른 성장통을 겪으며 나타나는 징후라고 설명한다. 인생을 다시 세우려는 절규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갱년기에 따른 남성호르몬 감소도 중년 남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다. 최근 이들은 TV를 보며 동변상련을 느낀다. '나도 그땐 그랬지'라는 말을 자주 되뇌인다. '세시봉'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서바이벌-나는 가수다' 열풍을 통해 이들의 눈물을 알아본다.
▶추억의 그리움
지난 1월 환갑을 훌쩍 넘긴 네 가수의 콘서트가 7080세대의 마음을 울렸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 통행금지.장발.청바지.통기타로 상징되는 젊은 날을 회상하며 중년 남성들은 기꺼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움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의 자리는 크게 변했다. 권위적인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감성터치 시대를 맞이했다. 수직관계에 익숙한 중년 남성들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지만 사실은 겉돌았다. 가정에선 무뚝뚝한 가장으로 밖에선 고집 센 상사로 전락했다. 특히 폐쇄적인 이민사회에서 중년 남성들은 더욱 설 곳을 잃었다. 인간관계도 매우 제한적이다.
기독교상담소 염인숙 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울면 안 된다고 배운 중년 남성들이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에 위로를 받은 셈"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불안하고 소외되는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적다"고 분석했다. 지난 24일 LA에서 공연을 가진 윤형주씨는 "같은 노래를 불러도 해외에 계신 분들에겐 감회가 남다른 것 같다"며 "그리움의 깊이가 다르다"고 전했다.
▶경쟁과 낙오사이
40대 김준호씨는 오디션 탈락자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잔뜩 긴장하고 주눅든 모습이 젊은 날 자신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젊은 날의 실패는 많을 수록 좋다고 하지만 아픈 건 아프다"며 "가장 상사로서 자식과 후배에게 눈물 쏙 뺄 만큼 신랄한 충고를 해야하는 지금의 나 자신도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경쟁구도가 주축이 된 위대한 탄생은 '멘토-멘티' 관계를 통해 스승의 중요성을 알리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장 눈여겨 볼 포인트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다. 사회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믿는 중년 남성들은 갈팡질팡했던 젊은 날과 서서히 지고 있는 자신의 위치 사이에서 고민한다. 나이가 들어도 인생은 어렵다.
'이제는 설 곳이 없나, 가족의 짐이 되고 있나'하고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데도 충고해 줄 멘토가 없어 슬프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서점가에서는 '서른 공감' '아프니까 청춘이다' '인생에 대한 예의' 등 인생지침서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감동과 '지금의 나'
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 분야에서 최고들이 모인 자리였다. 최고의 꿈을 가졌던 중년 남성들에게는 노래를 떠나 '꿈의 향연'에 가깝다. 지금 현재 위치가 그런 최고의 자리가 아니라는게 때론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낄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런 복잡한 심정으로 열정을 뿜는 최고들의 가창력은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7위로 탈락이 결정된 후 재도전해 논란이 됐던 김건모의 열창에 왈칵 눈물을 흘렸다는 남성도 많다.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다.
50대 김일순씨는 아둥바둥 살아남으려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울었다. 김씨는 "더 슬픈 건 경쟁에 나설 자신감도 에너지도 없는 내 처지"라며 "남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40~50대 남성들은 신체 변화를 비롯, 실직·권위상실·경제력과 싸우고 있다. 감정을 제 때 표현할 수 없어 우울증에 걸리는 중년 남성은 부지기수다. 고작 술마시고 취중 호기롭게 하는 쓸데없는 말에서 위안을 받을 뿐이다.
김태경 임상심리학박사는 "뒤쳐진다는 것에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신경쇠약 상태"라며 "젊은 층과 소통하는 법, 스트레스 해소법 등을 몰라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