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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의 해학미 <>
1, 해학미 우리 민화에는 여러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 대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해학미이다. 극히 독창적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그림이라고 본다.
아마도 이것은 그리려는 대상과 그릴 때의 마음에 거칠 것이 없는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즉 민화에는 자연스러운 해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이러한 그림을 보면 화를 낼 수 없으며, 비평을 가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그림에는 규칙 같은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화에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의 원인을 더듬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예컨대, 무명의 민화류는 규칙 같은 것이 성립되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는 성질이 있고, 또 종종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하였듯이 민화는 낙관도 없고 이름 없는 화공이 주문을 받고 그렸거나 여행하던 화공이 그린 보잘 것 없는 생활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무엇이 깃들어 있다. 장점과 확실성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며, 뛰어난 기술을 엿보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에 못 미치는 쪽에 속하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그린 그림이다. 사생이라고도 그림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이며, 구도도 모순 투성이다.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그림에서는 이치 따위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 사실은 억지 같지만 이러한 곳에서 아름다움이 샘솟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민중의 집단적 가치 감정의 소망을 담아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에 있어서 민화를 서민화로 분류하여 다루고 서술하였지만 위와 같은 견지에서, 즉 그림의 내용적인 면에 의한 미적인 견지에서 해석한다든가 하는 연구는 별로 없었다고 본다. 사실 민중의 집단적 가치 감정의 소망은 한국인의 마음이며 해학적인 아름다움이다.
예술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양식적 특성 속에는 그러한 양식을 낳게 한 근본 원인으로서 그 시대의 세계관이 내재해 있는데, 민화의 세계가 넓은 의미에서 민중의 바람직한 삶의 이념을 해학미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이 민화의 아름다움이며 마음으로, 그 시대의 해학과 풍자가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더 언급하자면, 민화에는 집단적 가치 감정의 상징형이라는 성격으로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림이며, 넉넉한 해학이 넘치는 요소가 간직되어 있다. "이들의 민화 속에는 꾸밈없고 순수하며 어린이의 꿈과도 같은 원색적인 해학적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해학적 아름다움 속에는 장수長壽, 기복祈福, 벽사 邪, 부부화합과 같은 소박한 바램이 담겨 있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시대의 생활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예컨대, 생활 그림인 민화 속에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러한 것을 통해 시대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화 속에 가득한 해학과 풍자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민족 정서의 표현이었고, 민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기복 신앙과 벽사 신앙은 우리 민족이 간절히 염원하는 소망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민화의 등장은 동시대에 부흥되었던 판소리, 탈춤, 그 밖의 각종 민속놀이와 마찬가지로 민속문화가 건강하게 지탱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원형의지(전통)의 꿈틀거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나 민담, 탈놀이나 민간연희, 공동체 문화의 조형물인 장승이나 솟대 등 당대에 발달한 민중 문화 예술처럼 분출되는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형식미와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중의 놀이는 서민의 의식 속에 살아있는 삶의 외적인 형태로 민중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놓음이다. 그래서 이러한 민중의 놀이는 온 마을전체가 함께 하고 자연과 이웃과 화해하는 만남의 장소면서 인간이 만나서 함께 생각하고 감정을 밖으로 표출해내는 축제였다.
이를테면,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겼던 서민들의 심성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웃음과 재기 넘치는 해학이 끈이지 않았는데, 이러한 점은 우리의 전통연희인 탈춤놀이나 꼭두각시놀음 또는 판소리의 사설을 통해 보아도 짐작되어지는 것이다.
특히, 꼭두각시에서 보여주는 양반에 대한 야유라든가, 탈춤놀이에서 보여주는 승려에 대한 타락상, 양반에 대한 조롱과 풍자, 처첩간의 갈등, 벽사진경의 축원이 그러하다. 이는 모두가 슬픔조차 신명으로 풀어내는 흐뭇한 흥이요 익살인 것이다.
어떠한 가식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행동인 것이다. 탈춤이나 꼭두각시 등 민중놀이 자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민중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 한편으로, 삶의 생명력과 결합되어 있는 노동과 생산의 산물이기도 한데, 그 노동과 생산의 이원적 풀이가 신명으로 표출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때 삶의 구체적인 모습, 건강성들이 단순히 지배계급에 대한 직접적인 야유가 아닌, 표현의 극소화 즉 억눌림의 해학이란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민화의 형태나 문양에서 흥을 취하기도 하지만, 탈춤을 춘다, 농악이 퍼져나간다,
판소리와 육자배기에 어깨가 들썩거린다. 모두가 흥취와 익살이 그득하여 '얼씨구' '좋다' '아' 여음구가 터져 나오고 여희하는 이보다 주변 청중이 어깨를 으쓱대기 시작하면 그만 모두가 어울려 한마당이 된다." 거기에는 서민들의 의식이나 사상, 심성이 가장 많이 응축되어 해학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민화는 이처럼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미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결과물로 일반 서민들의 미적 체험이나 세계관이 자연스럽고도 원초적인 표현 형태로 드러나 있다. 이처럼 민화의 표현은 희노애락의 일상적 감정을 소통하게 해주는 표현양식이며 민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민화에서 그 시대의 인간의 사상, 생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 남긴 것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언어에 의한 정치적 기술은 기술하는 자의 의도가 깔려있음에 반하여 미술품에는 그런 위장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화는 그런 면에서 소재에 있어서나 정취에 있어서 조선 자체의 것을 채택하여 조선의 화가로서 해학미를 충분히 표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리하여 해학미를 완전히 별개의 주제로 처리하여 살펴보면, 그 가운데에서 즉 해학미(諧謔美: 익살궂은 말이나 짓)를 통해 본능지향의 원색적 성향이 우리 민족 심리 저변에 어떻게 깔려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민화에 민족의 정서는 담는 가운데, 얼른 보면 어색하게 그렸지만 대담,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그 형태 또한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뛰어난 조형으로 결코 완벽한 것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대담하고 탈속하여 자기를 버린 대담한 조형이며 객관성, 합리성, 사실적인 회화성보다는 주관적이며 합리성을 배제한 독특한 미적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를테면 한껏 자유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담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규격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신선한 아름다움이 있는 바, 그림에는 더 많은 의미가 숨어있으며 해학이 깃 든 대범한 아름다움이 된 것이다. 따라서 민화의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민중의 욕심 없이 살다간 천진성과 건강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며 민중 미술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민화는 영혼과의 대화라는 영적 이미지가 살아 있어 우리 가슴에 공명한 바가 다른 것이다. 말하자면 표현이 잘 되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문제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각도로 연구되고 검증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우선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요체는 내용에 있어서 생명의 힘이 있고 영적 이미지가 있다 할 것이다.
거기에 형식에 있어 파격미로 얼른 보면 어리숙한 것 같은데 오히려 열 마디 익살스러운 설경보다 더 깊게 마음속을 즐겁게 해주는 흥취가 있다. 예컨대 이는 단아한 선비의 높은 절개와 안목을 중히 여기는 문인화에 반하여 민화는 꽃, 책거리, 호랑이, 스라소니 등을 상형한 재미있는 것들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실적으로 그 형상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대담하게 생략하고, 재미있는 것을 조금 더 변형 과장하여 재미있고 특징적인 면을 드러냄으로써 만든 사람이 흥미있고 보는 사람의 마음이 즐겁다. 또한 건조함보다는 자연스런, 얼른 눈에 띄지 않는 변화가 사람의 마음을 무심중에 끌어 흥겹게 하는 힘이 된다. 애초부터 형태를 상형해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나 생명력을 지닌 아름다운 것으로 보여 그런 재미있는 상황이 되고 있는데, 생동감이 넘치고 활달, 대담하고 때론 해학이 넘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과 생활을 옮겨 놓아 신선하고 그 대상을 변형, 재구성함으로써 거기에 해학이 있고 재구성의 깊은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과학적이고 지적인 정리가 전혀 행해져 있지 않으나 그러면서도 일종이 진실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어 있다.
평생을 농사일로 보낸 농민, 온갖 힘과 일과 억울함을 당했으면서도 그것이 인생이려니 생각하고 어떤 장소라도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단순하지만 품위 있는 주제들은 대부분 그 뒤 바로 행운을 가르키는 상징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다.
예컨대, 민화에서의 미는 그것이 조형의 원리에 의하여 제작된 예술 창작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과 노동과 예술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즉 혼연일체로 어울리는 상태에서 제작된 해학미가 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민화는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민중의 공동체적 생활 속에서 삶의 정서를 조형적으로 표출해 낸 위대한 예술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이 추구한 미적 이상은 어쩌면 원시적 건강성이라 할 만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단순함과 소박함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동의 이상으로 다가가는 살아있는 미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민화라고 해서 모두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민화의 아름다움에는 이상과 같은 해학적 성질이 짙게 깔려있다. 2, 색, 문양, 양식, 구도 등의 미 우리나라 사람은 예로부터 담담한 색조와 단순한 형태를 사랑하였다. 물론 민화에도 다채로운 색도 있고 각 사물의 색채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색동저고리 같은 호사스럽고 번잡한 형태가 있으나 이는 작은 부분이다. 예컨대 한국 사람들의 빛깔에 대한 감각은 중국, 일본 사람들의 습성과는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양은 약속된 기호처럼, 언어처럼 의사전달의 한 수단으로, 문양에는 각 민족의 정서가 표출되어 있으며 공통된 소망이 담겨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선사시대에 나타나는 문양은 대체로 자연과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종교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문양이 다양화되면서 문양 하나 하나마다 상징성이 부여되는데, 그 내용은 오랜 세월 동안의 경험에서 인간에게 이익을 주어 왔던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믿어왔던 천명관天命觀 속에서 음陰, 양陽, 팔괘八卦와 태극太極, 일월성신日月星辰 등 만물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요소들을 다각적으로 변형시켜 문양을 형성시켜 왔다. 양陽은 하늘을 근본으로 하고 음陰은 땅을 본체로 한다." 민화의 문양과 형태에서는 위와 같은 사상을 같이 하면서도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해학미가 있다.
예컨대 식물과 동물 문양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경지를 이루어 놓았으며, 그러한 문양은 상식적인 의도만이 아니었고 예쁘게 보이려고만 하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조상들은 자연이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에서 문양을 취하되 설명적이고 직설적인 것이 아니며, 문양이 지니는 뜻을 흥취있게 나타내기 위해서 단순화되고 간명한 표현으로 회화성과 공예성의 조화된 상태를 이루었다고 본다.
이러한 문양은 한참보고 있으면 재미있고 그 속에 누군가가 있어서 언제나 심심찮게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이처럼 너그럽고 대범하고 익살스러운 것은 문양뿐만 아니라 형태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조선후기 민화의 양식은 되풀이 그림으로서의 상투적 양식을 보는바,
"그 모든 것들은 거의 도안처럼 문양처럼 양식화되어서 그것이 원작을 지속적으로 복제하는 동안 하나의 틀(양식)로 정착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민화의 표현양식이 다양해지고 해학과 재치가 넘치며 정형을 무시한 파격적 변용이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림의 깊이가 차츰 얕아지자 매우 도안화되었지만 그림의 주된 유형, 구도가 뿔뿔이 흩어져 다양성을 이루는 화풍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민화 그림에는 원근이 거꾸로 되거나 경중이 반대로 되어있고 또 강약이 한데 섞여 있거나 수평이 수직으로 되어 있거나 하여 오늘날의 입장에서 상식적으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또한 민화에서는 각 사물의 상호비례관계는 무시된 것도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대신 힘이 있고, 필치가 산뜻한 만큼 경쾌한 느낌이 있다고 본다.
민화의 가장 보편적 형식은 재미난 내용의 장식성과 간결한 형식미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민화산수(소상팔경 형식)화조, 책거리나 기명, 장식 문양 등이 그러한데, 현재에도 재미와 신기한 조형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계속 발전되고 있다.
또한 민화는 대칭형, 나열형 구도가 특징적이며 시간성 표현이 자유자재이다. 이들은 상징물의 조화, 형식을 구체화하는 상상력, 꾸며내는 장식 무늬와 색감 등 신선한 감각으로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결론적으로 "세부보다는 전체가 잘 조화되어 보여지는 아름다움, 그것이 민화의 위대성이다.
다시 말해서, 세부의 부분 부분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거칠기도 하고 서툴기도 하고 미흡한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같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었을 때, 그 하나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민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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