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환공(桓公)이
배를 타고 강물 따라 내리는데
하인 하나가 강변에 나와 놀고 있는
원숭이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것을 안 어미가 구슬피 울어대며 뱃길 따라
백 리나 따라와 뱃전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는데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갈기갈기
촌단(寸斷)되어 있었다 한다.
또, 중종 때 학자 어득강(漁得江)의 문집에 보면
조롱 속에서 기르던 꾀꼬리 어미와 새끼 가운데
새끼만을 딴 조롱에 옮겨 길렀더니
어미 꾀꼬리가 식음을 전폐하고 울지도 않으며
머리를 조롱에 찧어대어 자학을 하더니
끝내 죽고 말았다 한다.
죽은 어미 꾀꼬리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창자가 녹아 있었다 한다.
과도하게 슬프면 생리적으로 애(창자)가 닳다 못해
끊어지고 녹는다는 것을 금수가 입증한 것이 된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가장 정서적으로 밀착된 모자 사이임에랴...
어머니!
그 옛날 흰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엄마 손에 이끌려 입학식을 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앞으로 나란히!'라는
구령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
그 광경을 뒤에서 쳐다보는 엄마의 모습...
이젠 그 '엄마'가 '어머니'가 아니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 고운 얼굴에 주름이 패이고,
윤기나던 검은 생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되셨었고.
그 모습이 인자하신 '어머니'의 모습이였는데...
이젠 백골이 진토되어 넉이 구천에 떠돌지나
마시고 편히잠드소서.........
당신과 지내온 모든 일들이 사무치게 느껴집니다.
그저 이 불효자는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을 따름입니다.
근세 사람인 이경근(李擎根)이라는 이의
『고암가훈(顧菴家訓)』에 자신은 60이 넘도록
행실에 어긋남이 있으면 80이 넘은 노모로부터
종아리를 맞았다고 하고 근력이 떨어져
매 치는 힘이 약해진 것을 느꼈을 때
노모를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까지 적고 있다.
이 대목을 읽고 어찌 수신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