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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6. Nederlands Dans Theater Celebrates Jiří Kylían
BELLA-FIGURA
1 Lukas FossⅠ: Salomon Rossi Suite 2:47
2 Giovanni Battista Pergolesi I: Stabat Mater 4:23
3 Lukas Foss Ⅱ: Salomon Rossi Suite 1:29
4 Alessandro Marcello: Oboe Concerto in D Minor 4:47
5 Antonio Vivaldi: Concerto for Two Mandolines and Strings 3:40
6 Giuseppe Torelli: Concerto Grosso No. 6 in G minor 3:59
7 Lukas Foss Ⅲ: Salomon Rossi Suite 3:10
8 Giovanni Battista Pergolesi Ⅱ: Stabat Mater 3:16 [31:29]
Dancers: Nederlands Dans Theater Ⅰ
SLEEPLESS [23:55]
Music by Dirk Haubrich Composition based on W. A. Mozart's Adagio from Quintet for Glass Harmonica in C minor, K 617
Dancers: Nederlands Dans Theater Ⅱ
BIRTH-DAY
1. Happy Birthday 2:52
2. At the table (String Quartet No. 19 in C major & Symphony No. 3 in B-flat major) 7:11
3. Snow shower of feathers 1:18
4. Two mirrors (Quartet for Flute and Strings No. 1 in D major) 3:51
5. Dancing in a bed (Divertimento in D major & Dissonance Quartet) 5:03
6. Where is she? (Overture to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5:42
7. Adagio & Allegro in F minor for mechanical organ 3:05
8. Making a pie (Overture to Le Nozze di Figaro) 4:14
9. Così fan tutte (Terzettino from Così fan tutte) 2:53
♪ End 0:47 [37:00] [1:32:24]
Choreography: Jiří Kylián
Music by W. A. Mozart
Dancers: Nederlands Dans Theater Ⅲ
Jiří Kylián 지리 킬리안 (1947~) - 지독히도 세련되고 정교한 안무
[심정민 저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 무용가들>에서 옮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정교한 선물이 있다면 지리 킬리안의 춤을 꼽을 수 있다. 지독히도 세련된 안무를 스스럼없이 펼쳐 보일 줄 아는 그는 프라하가 낳은 또 한 명의 대가다. 문학에 프란츠 카프카가 있다면 무용에는 지리 킬리안이 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천재성을 꽃피운 곳은 NDT(네덜란드 댄스시어터)에서였다. NDT 역시 그에 의해 세계 최정상급 무용단으로 무섭게 발돋움할 수 있었다. 현재 킬리안와 NDT는 거의 동일어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중에게도 인정받고 있지만 특히 평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지리 킬리안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들여다본다.
프라하가 낳은 예술가
프라하는 파리나 런던, 뉴욕처럼 흔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프라하는 보헤미아33로 알려지는 체코34의 수도로 중동부 유럽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된 주요 도시라 할 수 있다.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한데다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추고 있어 ‘유럽의 시장’ 혹은 ‘북쪽의 로마’로 불려왔다.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애호가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프라하 구시가지에는 유럽 건축의 교과서로 일컫는 건축들이 즐비한데 그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모차르트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래서 모차르트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는 프라하는, 중부 유럽의 음악 학원으로 불릴 정도로 음악과 친숙한 곳이다. 또한 ‘두이노의 비가’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변신’을 쓴 카프카, ‘프라하의 봄’을 쓴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라는 이름만으로도 프라하 문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프라하를 찬란하게 빛내는 또 한 명의 대가가 있으니 바로 지리 킬리안이다.―원래는 이리 킬리안이나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관계로 체코식 발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지리 킬리안은 프라하에서 1947년 3월 21일 태어났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소련의 개입으로 사회주의 경로를 걷게 되었다. 그래서 킬리안이 어렸을 때 해외에서 온 무용단을 구경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러시아계 발레단의 공연이 있곤 했는데 그중 <바하트쉬사라이의 샘>이란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춤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리 킬리안은 아홉 살의 나이로 프라하 발레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장황한 춤 경력의 첫줄을 써내려갔다. 이어서 열다섯 살에는 프라하 예술학교로 전학하였다. 프라하 예술학교에서는 정통 소련식 무용교육인 바가노바 스타일을 주로 가르쳤으나 일부 교사에 의해 민족적인 정신을 배울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소려의 통제 하에 있었으면서도 민족의식을 강하게 유지해온 체코슬로바키아 예술가들의 성황을 엿볼 수 있다. 킬리안 역시 훗날 조국을 떠나 활약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세계에서 민족성이라는 요소를 잃지 않았다.
33 보헤미아는 정확히 말해서 체코의 서부지역을 일컫는데 프라하를 비롯하여 많은 공업도시가 발달했으며 체코의 정치, 경제, 산업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보통 체코 전체를 보헤미아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34 체코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되었고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에게 점령되었다. 종전 후 소련의 점령 하에 사회주의 경로를 걷게 되었고 1960년대 들어 관료기구 확대와 전제정치로 경제파탄 직전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따라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이 실현되었지만 1968년 소련을 필두로 한 바르샤바 5개국의 무력 개입으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한 밀란 쿤델라의 문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 책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물론 원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88년 소련의 개혁과 개방이 시작되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거세게 탈 수 있었다. 다음해 비공산주의자 대통령의 취임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민주화를 이뤘다하며 ‘벨벳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존 크랑코, 그에게 길을 열어주다
지리 킬리안은 스물 살이 되던 해 영국문화원의 장학금을 받아 런던에 위치한 로열발레학교로 떠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여러모로 이정표가 되었다. 우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프라하를 떠나 긴 여정을 시작한 시점이며, 진보적인 현대무용을 접함으로써 앞서가는 창작력의 토양을 마련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 존 크랑코(John Cranko)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지리 킬리안은 로열발레학교에서 1년 정도 수학한 후 연계된 로열발레단에 입단하려 했으나 영국민이 아니면 입단을 불허한다는 규정에 막혀버렸다. 로열발레단의 처사에 누구보다 화를 낸 사람은 존 크랑코였던 것 같다. 크랑코는 주저 없이 자신이 이끄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으로 킬리안을 불렀다.
존 크랑코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한국이 낳은 발레리나 강수진으로 인해 이 둘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주역 강수진이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모두 존 크랑코의 대표작인 것이다. 여기서 존 크랑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192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케이프타운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건너와 새들러즈웰즈 발레학교에 들어가 초기 안무작들을 발표했다. 이어서 새들러즈웰즈발레단에서도 여러 안무작을 발표했는데 <파고다의 왕자>(1957)가 특히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예술감독에 취임하여 위에 언급한 대표작들을 내놓았다. 그는 명쾌한 성격묘사와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각광받는 한편, 평이하고 피상적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1973년 미국에서 고향으로 가는 도중 작고했다.
존 크랑코 덕분에 지리 킬리안은 1968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무용수로 고용되었고 차츰 안무가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는 ‘노베르협회(Noverre Society)’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젊고 재능 있는 안무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곤 했다. 존 크랑코는 킬리안에게 자기만의 춤을 창작할 것을 종용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안무에 필요한 많은 것을 도와주었다. 그에게 보답하듯 킬리안은 1970년 <패러독스(Paradox)>라는 주목할 만한 작품을 발표했다.
지리 킬리안과 NDT(네덜란드댄스시어터)의 인연을 만들어 준 장본인도 존 크랑코였다. 크랑코의 추천으로 킬리안은 NDT를 위한 첫 번째 안무작 <관찰자(Viewer)>(1973)를 내놓았다. 그리고 두 개의 안무작을 더 만든 후 NDT의 공동 예술감독에 오를 수 있었다. 그때가 1975년으로 킬리안은 28세에 불과했다. 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음은, 킬리안으로 인해 NDT가 빠르게 세계 최정상급 무용단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에서 증명되었다.
아주 특별한 무용단, NDT Ⅰ 그리고 NDT Ⅱ와 NDT Ⅲ
안무가와 무용단의 관계는 중요하다. 안무가에게는 자신의 창작력을 받쳐줄 무용단이 필요하며 무용단 역시 그 명성을 드높여줄 안무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리 킬리안과 NDT는 서로를 상승시켜주는 최상의 조합을 이뤄냈다.
1959년 창단된 NDT는 1970년대 말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단의 하나로 등극했다. 그 본격적인 시작은 킬리안이 NDT의 유일한 예술감독으로 승격한 1978년에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NDT는 앞서가는 무용단으로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NDT는 주도적인 예술세계만큼이나 시스템적으로도 선진적인 명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NDT는 하나의 조직이지만 면밀히 관찰하면 세 개의 무용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NDT Ⅰ, NDT Ⅱ, NDT Ⅲ가 그것이다. NDT라고 하면 주로 NDT Ⅰ를 말하는데 한창 때의 무용수 서른 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기교나 표현 그리고 외형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는 최정예 군단이다.
종종 세계적인 무용단원들은 메인(main)컴퍼니 이외에 세컨드(second)컴퍼니라고 하여 20세 전후의 젊은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무용단을 하나 더 갖고 있다. 물론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유명 무용단의 일부만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NDT에서는 17세에서 22세까지의 무용수 십여 명으로 구성된 NDT Ⅱ가 세컨드컴퍼니에 해당된다. NDT Ⅱ는 어리다고 얕보면 안 될 정도로 기대 이상의 실력을 자랑하는 신예들로 구성되어 있다.
NDT는 세컨드컴퍼니뿐만 아니라 써드(third)컴퍼니까지 보유하였으니 진정으로 앞서가는 무용단이라고 할 수 있다. 킬리안의 강력한 지원으로 1991년 설립된 NDT Ⅲ는 현장에서 은퇴할 나이인 40세 이상의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다. NDT에서 가장 연륜과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 모여 있는 데 쉽게 말해서 왕년에 한 가닥 했던 무용수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예술적 깊이나 풍부함을 탄력 있는 몸놀림과는 또 다른 감흥을 선사하는 것이다. 대단히 드문 형태의 써드컴퍼니라는 점에서 주목해야겠지만 처음부터 재정적인 문제로 존속의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0년대 초에 영구적인 무용단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NDT는 또한, 여러 안무가를 발굴하거나 초빙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 열린 무용단이다. 이는 24년간이나 NDT의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킬리안이 길을 잘 닦아놓은 결과일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다소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그것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지리 킬리안은 자신의 과업을 뽐내며 스스로를 신격화하기보다는, 존 크랑코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듯이, 재능 있는 안무가들을 발굴하고 역량 있는 안무가를 초빙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실제로 NDT의 홈페이지에는 안무가 24명이 알파벳 순서로 나열되어 있는데 한스 반 마넨, 마츠 에크, 오하드 나하린, 테로 사리넨, 웨인 맥그리거, 윌리엄 포사이드 등 우리에게도 알려진 안무가들이 즐비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킬리안이 그 명단의 일부로 놓이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NDT는 우리와도 인연을 갖고 있다. NDT의 세 무용단이 차례로 내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1999년과 2002년 NDT Ⅰ, 2004년 NDT Ⅲ, 2008년 NDT Ⅱ가 우리의 안방무대를 찾은 것이다. 무용 애호가라고 자부한다면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무용단이다.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리 킬리안은 현대무용의 나침반, 안무가의 천재성, 위대한 절제미, 우아하고 유연한 춤, 예견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춤 등 온갖 찬사를 달고 다니는 예술가다. 그것은 경이로운 정도로 탁월한 안무능력에 근거한다.
지리 킬리안의 안무 레시피(조리법)는 호화찬란하다. 우선 고전발레의 우아한 테크닉과 현대무용의 정서적 표현에서 환상의 조합을 보인다. 거기에 민족적인 소재나 주제를 깔고 있으면서도 그 색채를 절제하고 승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음악성은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음악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킬리안은 자신의 춤이 거의 항상 음악으로부터 자극받는다고 한다. 그의 심오한 음악적 해석은 경이로울 정도다. 여기에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무대장치와 조명, 누구나 인정하는 무용수들의 탁월한 춤 실력까지 첨가된다. 이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커다란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신이 주신 가장 정교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지리 킬리안의 춤일 것이다.
더욱이, 킬리안은 천부적인 재능만을 믿는 경솔한 안무가가 아니다. 그의 작업과정은 대단히 진지하고 밀도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안무해 나가는 타입의 작가이다. 미세한 부분을 조절하는 데는 대단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창작을 한다고 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발견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아주 참을성 있게 시간을 소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킬리안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안무능력만은 아니다.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마음가짐에 있다. “젊었을 때 모차르트나 바흐를 들으면서 나도 그들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역사에 어떻게 이름이 남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늘 여러분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쯤 되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다른 한편, 킬리안의 말은 반어적으로 자신만만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데, 왜냐하면 그는 이미 무용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킬리안은 역사적인 대가에 걸맞게 영예나 상도 두둑하게 받았다. 예술감독 취임 20주년을 맞은 1995년에는 네덜란드 최고 영예인 ‘오랑제 나소 가시작위(The Order of Orange Nassau)’를 받았다. 이는 영국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기사 작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강수진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브누아 드 라 당스’의 경우는, 1993년과 1999년 두 번이나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세계적인 무용축제 ‘모나코댄스포럼’이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준하는 무용상 ‘니진스키상’을 제정한 바 있다. 여기서 세계 135개국의 평론가와 기자들이 영광스러운 첫 수상자로 지리 킬리안을 뽑았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밖에도 체코 대통령훈장이나 프랑스 문화훈장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다.
킬리안은 1999년 NDT의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60여개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중 <잃어버린 나라(Forgotten Land)>, <결혼(Svadebka)>, <여섯 개의 춤(Six Dances)>, <무용 학교(Tanzschule)>, <추락하는 천사(Falling Angels)>, <달콤한 꿈(Sweet Dream)>, <작은 죽음(Petite Mort)>, <이르침볼도(Arcimboldo)>, <벨라 피구라(Bella Figura)>, <생일(Birth-day)>, <슬립리스(Sleepless)>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후 NDT의 예술고문이자 상임안무가로 활동하다가 2009년 10월 말에 NDT를 완전히 떠났다. 바로 직전에 킬리안이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숨을 돌리기 위해서 혹은 뭔가 다르게 쌓기 위해서는 때로 무너뜨리기도 하는 법이다.”
골라보는 지리 킬리안 작품들
지리 킬리안의 <결혼>은 니진스키의 누이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결혼(Les Noces)>(1923)을 약 60년 후인 1982년에 새롭게 만든 것이다. 러시아 농민의 소박한 혼례 풍속을 그려내고 있지만 민속색을 확연히 강조하지 않고 은근하게 깔아놓았기 때문에 이를 의식해서 보거나 혹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
젊은 신랑과 신부는 양측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결합의 의례를 진행한다.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결혼에서 두 남녀는 행복과 희망을 꿈꾸기보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더 짙게 뿜어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자유에서 책임으로 무거운 이행, 처녀성 상실에 대한 공포 등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춤이 펼쳐진다. 특히 신부의 소용돌이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거친 춤 동작 속에 만연하다. 여기에서 배경음악인 스트라빈스키의 칸타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몰아치는 리듬으로 보는 이의 심박동을 끊임없이 고동치게 만든다. 결혼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추상적인 춤 이미지로 그려낸 이 작품은 킬리안의 대표작이다.
2000년에 발표한 <생일>은 NDT Ⅲ를 위한 작품이다. 아주 독특한 써드컴퍼니 NDT Ⅲ에 소속된 40세 이상의 무용수들은 탄력 있는 몸놀림은 이제 불가능하지만 표현만큼은 베테랑이다. 다섯 명의 나이든 무용수들이 18세기 궁정의복을 입고 긴 테이블에 앉아있다. 그들은 서로 뽐내듯이 앉아서 부채를 부치거나 고개를 흔든다. 그들 위로 투영되는 영상에는 바로 자심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있다. 킬리안은 천의 면모를 가진 안무가로 유명한데 여기에서도 유머와 우울함을 기묘할 정도로 잘 조화시키고 있다. 무용수들은 과장되고 엉뚱하고 부조리한 행위를 펼치는데 코미디의 일편을 보는 듯하다. 또 무용수의 움직임을 2배속으로 빨리하는 영상연출은 찰리 채플린 식의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연상시킨다. 우스꽝스런 행태는 전면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유머 뒤에는 우울함이 잠적해 있다. 킬리안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출생증명서가 사실상 사망선고와 닿아있다는 것을 심오하게 느껴왔다.”고 말한 바 있다. 생일은 시간과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생일>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가 묻어나온다. 특히 킬리안의 부인이기도 한 사비네 쿠퍼버그(Sabine Kupferberg)가 거울 앞에서 깃털을 날리며 추는 춤은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한다. 노년의 지리 킬리안이 안무하고 노년의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리 킬리안의 <슬립리스>(2004)는 독특한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는 여성무용수의 그림자는 마치 스스로 장막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실체인 여성무용수 역시 그 그림자를 따라 들어간다. 이어서 펼쳐지는 춤은, 최근의 컨템포러리발레에 근간을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는, 현대무용과 발레를 이상적으로 융합한 킬리안의 스타일을 되짚어보게 한다. 유연하고 섬세한 선은 발레의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으며 명쾌하고 민첩한 동작 표현력은 현대무용적인 개성을 발산한다.
킬리안의 예술을 논할 때 음악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무용과 음악이 태초에 하나의 영역에서 논의되었던 것과 같은 어울림을 실현시킨다. 모차르트의 원곡을 난해하게 편곡한 더크 하우브리히의 음악을 사용하는 이 작품에서도, 킬리안은 음악의 특성을 치밀하고 예민하게 춤으로 도식화 한다. 음악을 시각화하는 일단의 안무가들 중에서도 킬리안이 극상의 경지에 올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레퍼토리는 NDT의 세컨드컴퍼니인 NDT Ⅱ의 것이다. 불과 17세에서 22세까지의 아직 앳된 무용수들이 첨예하고 심미적인 안무구성과 세련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완벽하게 실현함으로써 더욱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춤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고 춤에 대해 별 관심 없는 관객들조차 빠져들게 하는 지리 킬리안의 특별한 능력이 여실한 작품이다.
지리 킬리안의 춤은 전통적이고도 현대적인 영향 안에서 말해질 수 있다. 전통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고정된 관습에 의해 묶이기보다 현대의 새로운 요소들을 끌어당길 줄 안다. 이러한 성숙한 포용력이야말로 킬리안의 춤을 21세기에도 각광받게 하는 근간이다. 그의 춤은 세련되고 정교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천재적이고… 등 극찬에 가까운 수식어를 전혀 과장돼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용애호가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안무가 리스트를 만든다면 최상위그룹에 그를 올려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