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너구리
임정희
얼마 전, 출근하던 남편이 현관 밖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 돌아섰다.
"아무래도 너구리가 다 죽은 것 같아."
"설마요."
"누가 다 잡아 간 것 같아."
"에이, 아무리!"
일에 잔뜩 지쳐 보이는 남편이 엘리베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며칠 후 남편은 아침밥상 앞에서 꿈에 너구리 열 세 마리 모두 살아 있더라 하였다. 그 동안 두류산에 밤바람을 쐬러 간지 꽤 되었기에 너구리와의 만남이 한동안 소원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여름밤이면 더위를 피해 자주 두류공원에 산보를 갔다. 그때마다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너구리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항상 무리를 이끄는 대장이 먼저 나타나고 뒤 이어 새끼들이 조르르 나타나곤 하였다. 나는 너구리에게 갈 때마다 음식을 주었다. 먹이 구하기가 여의치 않은지 사람의 움직임을 잔뜩 경계하면서도 1미터 앞까지 다가와서 먹이를 챙겨먹었다. 너구리의 먹이사냥은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을이 등을 보이고 공원에 돗자리를 깔 수 없을 만큼 서늘해지자 너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구리가 땅속에서 겨울잠을 잔다며 편하게 생각하였으나 남편은 그 쪽으로 산행을 할 때마다 새삼스레 너구리 걱정을 하였다. 말이 쉬워 땅굴 속의 겨울잠이지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는 법이라 하였다.
얼었던 땅이 녹고 대지에 다시 봄이 왔다. 초록 잎사귀들이 나비처럼 팔랑이던 오월, 그 산기슭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 날은 대장인 듯 망을 보러 나온 너구리 한 마리를 만났다. 아마도 나머지는 얼어 죽었나보다며 애를 태웠다. 그 다음에 갔을 때는 위로라도 하듯 세 마리가 나타나 슬금슬금 주변을 돌았다. 반가웠다. 그 동안 놀랠까봐 사진 찍을 마음을 내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찍어보기로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후래쉬가 번쩍 켜져도 놀라기는커녕 멀뚱멀뚱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집에 가서였다. 컴퓨터에 업로드 된 사진에는 너구리의 목 가죽이 떨어져 나가 벌건 속살이 보였다. 오랫동안 올가미에 목이 졸렸다가 간신히 헤어난 너구리였다. 털이 밭고랑처럼 패인 목에 생긴 상처가 아찔하도록 흉하고 딱했다. 돌연히 작년에 열 세 마리까지 보았던 너구리의 존재가 의문스러워졌다.
어느 덧 칠월이 되었다.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던 남편이 열차 속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도착 직전이니 오랜만에 두류산에 너구리를 보러 가자는 기별이었다. 출장에서의 결실이 좋은지 그의 목소리가 밝았다. 순간 너구리 열 세 마리가 다 살아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망을 보는 대장이 먼저 어슬렁거리자 세 마리가 따르고 나중에는 어린 새끼를 앞세운 어미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유독 한 마리가 재빠르게 잔디밭을 누비다가 사람들이 던져주는 큰 고깃덩이를 물고 수풀 쪽으로 뛰어다녔다. 혼자 먹으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어린 새끼가 달려나와 길에서 먹이를 받아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니 가히 구경거리였다. 한 마리는 앞다리를 절룩거리며 먹이를 향해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아마 사람이 놓은 덧에 끼어 다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 짝인 듯한 너구리가 다가서더니 혀로 얼굴을 쓸어주고 상처 난 다리를 핥아주었다. 저 쪽에서 너구리 가족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쭈쭈야, 이리 온'을 반복하였다.
"수염 달린 저 몸이 나를 알아본다니까!"
"맞아, 여기 누웠으면 옆에 와서 앉아 있기도 해."
그의 아내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랬다. 알고있던 대로 너구리는 온순했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고개를 조아리고 우리 옆에 공손하게 앉아있기도 했다. '쭈쭈'는 잠시도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숲 쪽으로 나르던 대장 너구리였다. 오월에 보았던 너구리들은 영양부족으로 털갈이를 못해 부스스했지만 여름에 만난 너구리의 털은 매끈해져 있었다. 다만 새끼에게 음식을 물어다 날랐던 대장은 아직 털갈이가 늦어 온 몸의 털이 푸석푸석하였다. 05.07.07
첫댓글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때문에 그들의 야생본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추운 겨울 사람들 발걸음이 끊기는 날에도 살아 남을 수있는 강인한 너구리가 되어야 할텐데
너구리는 잡식성이래요. 두류산에 쟤들이 어찌 살게 되었나 몰라도 쬐그만 두류산에 먹이감이 얼마나 있을까요? 야생본능상실 이전에 먹이감이 부족할 겁니다. 그러니 쓰레기통 뒤지러 나오죠. 그것보고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거구요^^
먹이를 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야생본능상실 운운하지 싶어요. 저는 집에서 애완동물 기르는 사람을 혐오합니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 것만큼 돈이 든다네요, 글쎄. 아직 제대로 못 먹고 커는 고아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 달에 두 세번 내가 먹는 음식을 나누는 것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더러 그리하고 있구요^^
여러 사람들이 합동으로 저렇게 먹이 줘서 키워 놓으면 잡아가서 잡아먹거나 파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요. 먹이주고 잡아먹고, 이를 상부상조한다고 보면 될까요? 먹이 주는 사람은 절대 안 잡아먹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