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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프랑스 아를르의 규칙서의 방에 나타난 프란치스코
이 장면에서는 아시시에 있는 프란치스코가 동시에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 나타나는 이처소재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단자들의 쇠망치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대설교가였던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은
프란치스코의 명령으로 프랑스에 성행하고 있던 이단인 카타리파와 싸우기 위해
아를르에 있는 수도원 규칙서의 방에서 형제들을 모아놓고
십자가가 위에 있던 예수님의 죄명판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단자들 앞에서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이 설교한다는 것은
말싸움일 뿐만 아니라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몸싸움이기도 하였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말씀을 듣고 있던 형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하였고 두려움에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순간 안토니오 성인 옆에 턱에 손을 괴고 있던 모날도 형제는
갑작스러운 영감을 받고 문쪽을 바라보았고 성 프란치스코가 십자가 모양으로
양팔을 벌리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예수님처럼 축복하며 공중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머지 형제들은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성인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숙이 느끼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시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그리고 프란치스코도 함께 하고 있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요한 20장 19절)
(19) 라베르나산에서 오상을 받는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의 지상에서 삶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해발 1200미터의 라베르나 산은 성인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여섯 번 올라가신 곳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여
키우지의 백작 오를란도 (Orlando)로부터 받은 산입니다.
1223년은 성인에게 인간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형제들은 엄격한 프란치스코의 수도 규칙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완화된 규칙서로 오노리오 3세 교황에게 인준을 받습니다.
사람 중심의 수도원을 원했지만 수도원 중심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형제들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이 걸어왔던 이 특별한 정체성에 대해
흔들리는 맘을 발견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도망치고 갈바리오 산을 홀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셨던 예수님처럼,
1224년 9월 마지막으로 이 산을 오르던 프란치스코의 마음속엔
형제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끼며 올라갔을지도 모릅니다.
심적으로 느끼는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 천사의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나타납니다.
두 개의 날개는 하늘로 두 개의 날개는 몸과 다리를 감싸고
나머지 두 날개는 공중에 떠 있기 위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섯 군데의 상처에서 빛이 나와
프란치스코에게 똑같은 상처를 남겨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을 올바로 잘 따랐다는 일치의 표시이자 징표였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프란치스코를 늘 곁에서 돌보았던
레오 형제가 이 사실도 모른 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0) 프란치스코 성인의 선종
1226년 10월 3일 성인께서는 포르치운콜라에서 선종을 하셨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두 세계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하여 있습니다.
아랫부분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성인의 유해 앞에서 슬퍼하는 형제들과
아시시의 성직자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구름에 가려진 천상 세계를 표현하고 있고
프란치스코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올라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자매라고 불렀던 프란치스코에게 이 순간은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영원히 만나게 되는 기다림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인은 천상으로 오르는 그 순간에도 팔을 벌려
언젠가는 자기처럼 죽음의 자매를 만나 올라올
세상에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21) 성 프란치스코가 임종 후 아우구스티노 형제와 아시시 주교에게 발현함
성인께서 임종한 직후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앞선 그림과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테라 디 라보로에서 며칠 동안 움직이지도 말도 못 하면서
임종을 기다리던 아우구스티노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성인의 영혼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외쳤고 주변 형제들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고 말한 후 자신도 임종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아우구스티노 형제가 프란치스코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그전 그림 속의 천상으로 올라가는 프란치스코는 머리를 돌려
아우구스티노 형제를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아시시의 주교로서 성인 임종 당시
이탈리아 남쪽 풀리아 지방에 있는 미카엘 대천사의 산에서 순례를 하고 있었고
성인이 임종하는 밤에 그에게 나타나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는 중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아시시에서 임종한 프란치스코의 영혼을
서로 다른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환시를 통해 동시에 알게 되었고
그림에서는 이 지리적 거리를 두 사람이 있던 건물을 앞뒤로 그려 표현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이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무 사실도 모르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연상시켜주고 있습니다.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르코 16장 12-13절)
(22) 기사 예로니모가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확인함
성인의 임종 소식은 온 마을에 퍼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성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정말로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의 오상을 받았는지
의심하는 마음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사려 깊고 교양 있는 예로니모라는 기사도 함께 있었는데
부활한 예수님을 자기의 손가락으로 상처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토마스처럼 오상의 사실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성인 앞에 무릎을 꿇어 손가락을
성인의 옆구리 상처에 찔러 넣어 확인하였고 그 순간 오상에 대한 의심은
예로니모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23) 글라라 성녀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인사
포르치운콜라에서 장례를 마친 후 성인의 유해는
무덤으로 정한 아시시의 성 조르조 성당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동 중에 글라라 성녀와 그녀의 자매들이 있는 성 다미아노 성당을 지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잠시 멈추어 글라라 성녀와 자매들이 나와
프란치스코에게 마지막 입맞춤과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글라라회는 활동적인 프란치스코회와는 달리 엄격한 봉쇄 속에
관상과 기도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따르는 수녀들입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말씀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면
성녀 글라라는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당신의 기도로 드러내신 분입니다.
그리기에 이 두 분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체가 되는 것이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잘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 열정적인 아이의 모습과 함께
성인의 유해를 따라오는 군중의 행렬은 다미아노 성당에서 나오는 수녀들과
대치적인 그림의 구도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비록 성인의 유해는 성 조르조 성당에 묻히게 되지만
성인의 삶은 성녀 글라라를 통해 계속 드러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24) 프란치스코의 시성
성인께서 임종하신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1228년 7월 16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있던 조르조 (Giorgio) 성당에서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죽은 후 순교자가 아닌 이상 기적이 있어야만 복자가 되고 성인품에 오를 수 있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살아생전에 이미 많은 기적을 보여주며 하느님의 사람임을 증명하였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
물론 1231년에 선종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이례적으로
같은 교황으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11개월 만에 성인품에 오르면서
가장 빨리 성인품에 오른 사람으로 기록됐습니다.
(25) 오상의 진실을 그레고리오 9세 교황 꿈에서 확실히 함
성인이 선종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믿었지만
미사 중에 빵의 성변화를 의심하듯 곳곳에서 의심의 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후원자이고 시성식까지 주례했었던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도 이 의심은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성 프란치스코가 그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팔로 피가 흐르는 옆구리 상처를 보여주며
왼팔로는 교황의 팔을 들어 유리잔을 가져와 흐르는 피를 담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교황은 누구보다도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확신하였으며
교회에서는 처음 공식적으로 예수님 오상의 상처임을 선포하게 됩니다.
(26)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 나타난 프란치스코
28편의 그림 중 지금부터 등장하는 마지막 세 편은 천상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 사람들의 일에 관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은 하나의 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대에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붕대를 감고 있는 환자가 있고
그 옆에는 성 프란치스코와 두 천사가 있습니다.
왼편에는 환자의 가족과 함께 머리에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는 의사가
등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옆에 두 천사가 있다는 것은 성인께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환자는 성 프란치스코를 매우 존경하던 요한이라는 사람이었고
의사가 나간 후 성인에게 의지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요한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성인과 같은 수도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는 자신이 프란치스코라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치유의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있는 곳의 붕대를 풀고 약을 바르듯이
성인의 거룩한 오상의 손이 닿는 순간 요한은 자신의 몸이 새로워지듯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움을 얻었습니다.
(27) 죄의 상태에서 죽은 여자의 부활
이탈리아 남부 캄파냐 (Campagna) 지방의 마라노 산 근처에서
성인을 존경하며 닮으려고 했던 한 여인이 임종을 하였습니다.
가족들과 본당 신부는 그녀의 시신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죽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앉아
옆에 있던 신부님을 불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죽기 전 알고 있던 큰 죄를 고백하지 않아 지옥으로 갈 처지였는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다시 깨어나
고백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통회한 여인은 신부에게 총고백을 하였고
그녀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했던 사탄은 천사에게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편 위에 무릎을 꿇고 여인이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전구를 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가 보입니다.
육신에 대한 치유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천국을 가기 위한 영혼의 치유는 온전한 성찰과 반성을 통한 회개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고백성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28) 회개한 죄수의 해방
그레고리오 9세 교황 시절 이단을 믿고 있던 알리페의 베드로라는 사람이
티볼리에 있는 한 감옥소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있었습니다.
감옥소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믿는 이단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 마음으로 회개하였고
성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달라고 간곡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축일 저녁 베드로가 묶여있던 감옥에 성인이 나타났고
그의 손과 발에 묶여있는 수갑과 쇠사슬을 풀어주었습니다.
티볼리의 주교는 사제들과 함께 와 간수의 증언과 베드로가 풀린 쇠사슬을 들어
성인이 어떻게 자기에게 기적을 보여주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회개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성인을 통해 일어난 사실임을 알고
주교는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이 있던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처럼
프란치스코를 보내 죄수 베드로를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이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냥꾼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한 가지만 생각하는 습성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나무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놓아둡니다.
원숭이는 과일을 꺼내기 위해 손을 넣어 과일을 잡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손을 뺄 수가 없습니다.
구멍에서 손을 빼내기 위해서는 맨손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원숭이는 과일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과일에 대한 욕심때문에 자유와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데도 끝내는 놓지를 못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사는 동안 우리도 이런 덫에 종종 걸려들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놓으면 되는데 오히려 더 잡으려고 합니다.
더 가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놓는다는 단순함을 버리고 더 잡는다는 복잡함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손은 잡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청하면 주실 것이라는 말만 생각하고
매일매일 '주소서'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청하는 대로 주십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오는 은총의 선물을 잡을 손이 없는 것입니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받으려면 먼저 버려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보여준 분이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성인은 가난하실 때 풍성해졌고 겸손해질 때 들어올려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부족함이 아니라 나눔이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처럼 물질도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기적을
주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은 그가 가진 재물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도 아버지처럼 부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나눔의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물의 종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렸습니다.
우리는 놓는 순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놓을 수 있는 용기가 바로 믿음입니다.
어쩌면 이 믿음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놓아버리는 것처럼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비워진 손으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랑과 은총을 차고 넘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은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과 나누었고 세상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선종하신 이후에는 자신이 받은 은총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와서 나누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유일한 희망은
주님이 원하신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Roma Vian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