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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31 쇠날 날씨: 햇볕이 따갑지만 바람도 조금 불어 놀기에 좋다.
아침열기(노래, 말놀이, 책읽어주기, 뒷산가기)-젖은 그림 그리기-점심-청소-낮은샘회의-연재생일잔치-교사마침회
[놀잇감]
동그랑땡땡을 부르며 아침열기를 시작하는데 승민이 얼굴이 어째 푸석푸석합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다는데 오늘은 눈이 부어있습니다. 신통 방통으로 시작하는 말놀이로 한 숨 호흡이 얼마나 길게 갈 수 있는지 신나게 큰 소리로 노래처럼 말놀이를 합니다. 오늘은 현덕의 동화나라 책에 있는 노마 이야기를 두 편 준비했습니다. 아주 옛날에 쓴 이야기인데 지금 읽어도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참 좋은 책이에요. 뒷산 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마주나기와 돌려나기, 어긋나기, 무리지어나기를 찾는 아이들이 참 예쁩니다.
학교에 돌아와 젖은 그림 그리기 준비를 하는데 민주가 물병 나르는 것을 도와줍니다. 물도 떠 놓고 물감도 알맞게 물과 섞어놓고 붓이랑 종이도 모두 챙겨 마루에 둘러앉았습니다.
“자 오늘은 지난번에 한 젖은 그림 그리기에 이어 두 번째 젖은 그림 그리기 시간이에요. 지난번에는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는데 오늘은 선생님과 함께 그릴 겁니다. 선생님이 재미있는 색 이야기를 들려줄 건데 그 이야기에 알맞은 그림을 그려가는 거예요. 파란이와 노란이 이야기에요.”
아이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합니다.
“아주 깊은 바다에 사는 파란이는 동무가 없어 가끔 외로웠어요. 그래서 동무를 찾아 여행을 떠나요. 여기까지만 그려볼께요. 파란색으로 파란이를 그려보는 겁니다. 도화지 아래쪽 1/3쯤을 파란색으로 그려보세요.”
“선생님 막 색이 번져가요.”
“선생님 그리면 물이랑 섞여서 자기 마음대로 가요.”
아이들이 붓을 놀리자 아름다운 그림들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자 이제 위쪽 하늘에 사는 노란이를 만나볼께요. 노란이도 동무를 찾아 여행을 떠난답니다. 그런데 노란이는 아주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어요. 늘 조심조심 걷고 안과 밖을 살피며 가요. 노란이는 저 멀리서 파란이가 다가오는 걸 보았어요. 그런데 파란이는 아주 힘이 세 보이고 거침이 없어 보여요. 그래서 노란이는 몸을 움츠리며 멈추었어요. 파란이도 노란이를 보았어요. 어찌나 반가운지 거침없이 달려갈려고 해요. 그런데 노란이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 노란이가 ‘네가 나를 물들일까 무서워. 좀 천천히 다가오면 좋겠어.’ 말합니다. 파란이는 그리 찾던 동무를 만나서 조금 흥분한 자신을 발견하고 노란이 말대로 조심조심 천천히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노란이도 파란이가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는 걸 보고 용기를 내어 다가갑니다. 서로 어우러져 놀기 시작해요. 그랬더니 푸른이가 생기네요...”
“자 이제는 위쪽에 사는 노란이를 그려봐요. 역시 위쪽 1/3을 노란색으로 그려보세요. 이야기처럼 정말 조심조심 해서 가보세요.”
노랑과 파랑이 서로 만나며 푸른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선생님 초록색이에요.”
“선생님 서로 싸우는 것처럼 퍼져요.”
“싸우는 게 아니라 어울려 노는 것처럼 보이는데.”
“선생님 서로 씨름하는 거 같아요.”
“파란이가 더 세요.”
“물이 엄청 많아서 막 흘러요.”
아이들이 그려 놓은 젖은 그림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함께 뒷정리를 하고 쉬는 시간을 갖는데 마당으로 달려가 비석치기를 합니다.
역시 자유롭게 마음이 가는 놀이를 하는 게 가장 신이 납니다.
1층 쪽마루에는 2학년 아이들이 만든 종이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옹달샘 2학년들이 못 쓰는 종이를 모두 찢어 다시 쓸 수 있는 종이를 만드는 공부를
어제부터 하는데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선생님 우리 종이 만들기 한다요. 진짜 재미있어요.”
많이 만들고 남은 게 많아 푸른샘 1학년 아이들을 불러 우리도 종이 만들기를 하자니 좋아합니다.
형들과 권진숙 선생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찢어서 물에 불려 믹서기로 갈아 체에 걸러 종이를 만드는 그 수고로움을 거치며 아이들은 종이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종이가 얼마나 귀한지, 생산하는 놀이의 기쁨을 맛보았을 겁니다.
낮 공부로 높은샘은 기후학교를 하고 낮은샘 1, 2, 3학년은 낮은샘회의를 하는 시간입니다.
원서가 사회를 보고 태인이가 어린이회의를 기록하고 동엽이가 칠판을 맡습니다. 큰 이야기로 거친 몸짓, 아이클레이, 아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거친 몸짓을 주제로 아이들이 말하는데 한참이 걸립니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들어야하는 말이 많습니다. 모두 서로 행복하게 사는데 필요한 말들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져 끝내는 최명희 선생이 도움말을 줍니다. 모두 지금까지 거친 몸짓 때문에 누구를 속상하게 한 것들에 대해 사과하고 다음부터 안하도록 애쓰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누구에게 사과 말을 하고, 아이클레이 동아리 이야기와 아이 이야기는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클레이 동아리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요즘 큰 이야기입니다. 아이클레이 동아리는 2학년 아이들이 만들었는데 자기들끼리 사탕이랑 껌을 가져와 먹고,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서 들어가면 막 뭐라 한다고 아이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놀이 재료로 쓰는 아이클레이 값, 쓰고 나서 곳곳에 굴러다니는 아이클레이도 아이들 이야기에 담겨있습니다. 선생들도 큰이야기로 느끼고 회의를 했는데 아이들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마당을 열어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동아리 활동으로 바느질 동아리, 몸놀이 동아리, 신문동아리, 책동아리, 축구동아리처럼 많은 동아리들이 만들어지고 없어지는데 한결같이 지켜온 소박하고 정직한 어린이 문화와 동아리들이 가꿔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힘을 믿고 선생들과 어른들이 알맞게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클레이가 뭔지 다시 찾아보고 누리집 곳곳을 다녀보니 다시 생각할 게 많습니다. 클레이란 몸에 해롭지 않은 색깔 지점토를 말하며, 이를 써서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클레이 아트라고 합니다. 찰흙이나 석고와 같이 손에 묻거나 더렵혀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뒷정리가 편하며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오물조물 주무르면서 만들기 때문에 유아들의 지능 및 소근 육 발달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클레이아트란 흔히 점핑클레이 라고 하는데 부르는 말도 여러 가지인데 한마디로 고무수지 재료로 만든 점토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인형과 작품들을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클레이를 파는 곳을 가보니 정말 종류도 많고 값도 다릅니다. 콜크클레이 베이스클레이, 라노클레이, 아이클레이, 쿠키클레이, 파인우드클레이, 폼클레이, 샤이니폼클레, 솝클레이, 멀티클레이까지 회사에서 붙인 이름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값을 보니 점핑클레이, 아이클레이, 매직클레이, 파스텔 클레이, 칼라클레이 차례로 보입니다. 옛날 어릴 때 끈적거림이 좋은 검은 찰흙이나 고운 찰흙을 구하러 논이나 산으로 가서 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참 좋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재료들이 좀 찜찜합니다. 광고와 제품 설명에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벼운 요술 점토, 화학성분이 없고 천연 옥수수 전분 수수깡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재료는 폴리비닐알코올(PVA)입니다. 폴리비닐알코올은 폴리아세트산 비닐의 가수 분해로 얻는 무색의 가루. 합성 섬유, 비닐론, 도료, 접착제, 분산제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겁니다. 몸에 해롭지 않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쓰지만 중국에서 수입해 들어오는 것도 아주 많더군요. 차라리 비싸긴 하지만 벌집을 가공해서 만든 밀랍으로 만들기를 하는 게 좋을 듯한데, 여하튼 좋은 점들과 생각해볼 것들을 모두 모아서 좋은 뜻과 놀이를 살려가야겠습니다.
놀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아이의 자발성과 주도성이 사라지는 순간 놀이의 즐거움은 줄어듭니다. 그렇기에 선생들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놀 거리를 꺼내놓긴 하지만 노는 몫은 오롯이 아이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놀이는 놀이 자체로 즐기면 그만이지 목적이 없고, 어른들이 정해 준 규칙 없이 내 마음대로 노는 놀이가 아이들 세상에서는 중요하기도 합니다. 놀고 놀다 보면 저절로 규칙도 만들고 서로 마음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생기는 걸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하는 비석치기를 보면서 확인할 때가 많습니다. 알맞게 몸을 쓰고, 놀면서 안전을 찾아가며, 마음껏 빠져 놀며 놀이나 동무들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놀고, 끊임없이 상상하며 놀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뒹굴뒹굴 거리다 스스로 뭔가 찾아내도록 기다려주는 선생과 부모가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놀이의 주도권을 아이가 갖도록, 아이가 시작하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아이가 하도록 부모와 선생은 그저 따라가며 도와주는 노릇도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불확실하고 다양함이 살아있는 자연이야말로 아이들이 진짜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놀잇감이 많다고 놀이가 풍성한 건 아니며 아이가 잘 노는 건 아닌 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짜 놀이에는 흔한 놀잇감이 가장 좋습니다. 새로운 장난감으로 조심스럽게 노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장난감으로 반복해서 놀 때 뇌와 창의성에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갖고 노는 흔한 놀잇감이 진짜 놀이를 하게 합니다. 장난감은 놀이의 소품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 찰흙(물과 흙), 공, 소꿉놀이, 블록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거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놀이도 놀이지만 나는 자연과 텃밭과 논에서 노는 것도 아주 아이들에게 좋다는 걸 날마다 교육 활동에서 확인합니다. 일하고 놀고, 놀면서 일하고, 해야 하지만 하는 순간 놀이로 만들고, 어느 때는 푹 빠져서 몰입의 순간을 맛보는 일과 놀이 교육이 주는 힘은 날마다 아이들을 자라게 합니다. 물론 대운동장에 가서 마음껏 공을 차고, 교실에서 블록 놀이와 손끌활동을 하고,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아주 필요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어떤 자연물로도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이기에 우리는 되도록 돈 주고 사는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는 놀잇감을 찾아주고 만들어주려고 애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도 역시 비싼 장난감이 주는 즐거움을 늘 갈망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장난감들을 만들어내는지 어른이 봐도 혹하는 게 참 많은 세상이고 놀잇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놀이 도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하는 놀이, 자연에서 노는 놀이로 어린이 삶을 가꾸는 게 참 어렵습니다. 한두 어린이가 새로운 놀잇감을 사는 순간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향을 받아 집마다 사달라는 조르기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문화는 오롯이 어린이들끼리만 만들어가기 어려운 때가 생깁니다. 어른들과 선생들이 나서서 공동체와 마을이 나서서 가꿔야 할 몫이 있는 것이겠지요.
잘 놀 줄 아는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사실은 놀이 예찬을 펴는 수많은 전문가와 교육가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잘 놀고 어울려서도 잘 놀 줄 아는 아이야말로 문제 해결 능력도 창의력, 사회성 능력도 좋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뢰벨은 놀이가 아이의 내적 힘을 발현시키는 완벽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놀이로 세상을 배워나갑니다. 높은 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 발달 과정에 알맞게 놀이를 찾아가지만 일과 놀이를 함께 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빠져 놀고 몰입하는 순간이 많도록 아이들처럼 사는 사람이 즐겁게 놀 거리를 찾아내며 아이들과 함께 온전히 빠져서 노는 선생이 되어야 함입니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더 재미있어서 빠져놀아야 아이들 세상에서 줄곧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며 행복하기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잘 놀아주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놀 수 있도록 몸을 잘 챙기는 게 선생이고 보면 대안학교 선생들은 참 애쓸 게 많은 셈입니다. 아이들 힘을 믿고 아이들 세상에서 아이들 처지와 마음으로 천천히 기다리며 어른과 선생이 할 몫을 찾을 때입니다.
첫댓글 지안이가 아이클레이 동아리를 몇명 아이들과 시작한다고 해서 별 생각없이 재료를 사줬네요. 그날 지낸 이야기를 물어보니 어른없이 자기들끼리 놀아서 너무 재밌었다고 해서 재료를 재활용할 수 있게 잘 관리하라고만 당부했었는데 놀잇감에 대한 생각이나 동아리를 하면서 두루두루 살펴야 할 이야기는 못나눈것같네요. 이렇게 저도 지안이와 함께 성장하나봅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놀이문화를 잘 가꾸도록 어른들이 잘 살펴야겠네요.~ 아이가 놀고 싶을 때 실컷 놀 수 있도록 돕는 일, 빈둥거리며 스스로 놀잇감을 찾도록 지켜봐주는 일~ 성질 급한 저는 자꾸 잊게 됩니다.^^;; 아이들 놀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보다 놀이에 깊게 빠져 놀줄 아는 선생님은 맑은샘 선생님이 단연 으뜸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