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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잠 6:20-26절
제 목 :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
일 시 : 2021. 1. 17.
잠언 6:20-26/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24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며,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소개된 하나님의 사람들이나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어떻게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사람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고 눈에 보인다면 마치 부부가 결혼해서 같은 집에서 함께 사는 것처럼 그렇게 같이 살면 될 텐데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하가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들은 듣고 순종하였으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질문하면 하나님은 거기에 대답하시는 식으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고 그냥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설교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고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책을 읽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설교말씀을 들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소통하며 대화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저는 성경의 인물 가운데 에녹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에녹같이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습니까?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루 24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므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에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네가 다닐 때에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며, 두 번째로 네가 잠을 잘 때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시며, 세 번째 네가 깨어 있을 때 하나님이 너와 더불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특별한 때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비결을 소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받게 되는 유익과 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복을 받아 누릴 수 비결은 무엇입니까?
20-21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며 소통하며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말씀이신 하나님과 말씀으로 소통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에녹이나 노아시대에는 기록된 말씀이 없었지만 지금은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살을 사는 것입니다.
1) 먼저 내 아들아 라고 부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천국에 가면 남자와 여자라는 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고 남.여라는 구분이 없어지고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부를 실 때는 항상 이 명칭을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라고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느냐 하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즉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2) 먼저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아비의 명령과 어미의 법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냥 아버지의 명령이라고만 하면 될 텐데 거기에 추가해서 어미의 법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병행구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잠1:8절에도 나옵니다. 잠1:8/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솔로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 또는 르호보암에게 아버지 솔로몬과 그의 어머니가 주신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원어상 아들이란 말이 그 당시에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에게도 흔히 사용했던 보호와 관심의 의도가 깃든 호칭이었다는 점에서 아들아 라는 호칭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언서에 기록된 여러 예를 보면(2:1,4:10,20:23:15,19,26,31:2) 이는 전자와 후자의 의미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는 스승이 제자에게 사용하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유대민족의 가정교육의 전통을 보면 실제적인 생활지침(훈계)은 아버지의 몫이었으며, 일반적 교훈이나 율법 등의 가르침은 어머니에게 속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자녀를 가르쳤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비의 명령이나 어미의 법이란 곧 하나님께서 목사님이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주시든지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목사이며 교사라고 표현하고 있는 목사님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든, 아니면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든지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됩니다.
3) 세 번째로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란 레베크라고 하는데 인간의 감정과 행동,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지키라고 했는데 곧 전인격적으로, 온 마음으로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키라는 이초르라고 하는데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 라는 뜻으로 명령의 형식으로 주어지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순종과 적극적인 수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잠3: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극적인 권고(잊어버리지 말고)와 적극적인 권고(지키라)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결코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직접 말씀대로 순종하여 체험해 본 말씀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즉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4)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위의 3) 번째 말씀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목에 매어야 합니다.
① 먼저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라고 했는데 이것은 잠3:3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돌 판에다 기록하여 주신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판이란 루아흐라고 하는데 금속, 돌, 나무 등으로 된 서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곧 마음 판에 기록하는 것으로 과거에 십계명의 말씀을 지워지지 않게 돌 판에 새겼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 항상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생활화되고 내면에 자리잡을 때 말씀이 외적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곧 말씀이 곧 생활화되고 삶이 되는 것입니다.
② 그리고 네 목에 메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악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신을 보호 하기 위해 걸고 다니던 부적이 아니라 고대근동사회에서 항상 목에 걸어 지니고 다녔던 장신구용 목걸이(1:9)나 인장반지와(창38:18,아8:6)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목거리나 반지를 항상 착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여 생활화하라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며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거리처럼 삶 속에서 날마다 실천하고 순종한다면 그것은 곧 말씀이신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면 어떤 복을 받게 됩니까? 네 가지의 복을 받습니다.
1) 다닐 때에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22절에 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내가 걸어 다닐 때에 나를 인도한다고 뜻입니다. 대단한 축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기르시는 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약한 양이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는 일은 험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야수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양으로 불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목자 잃은 양과 같아서 유리 방황하며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밥이 되어 온갖 고통과 억압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양의 삶이란 시23:1-3절이 말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 될 것입니다. 시23:1-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선한목자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부족함이 없는 풍성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한 삶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렘17:5-6/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삶은 곧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며 광야 간조한 곳(건조한 땅), 건건한 땅(사막, 황무지, 소금),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삶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입니다. 최빈국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불행하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탈북해서 한국으로 오게 되면 드디어 자신들의 불행한 삶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말씀이시고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면 한 마디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시34:10절 말씀처럼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2) 잠잘 때에 주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두 번째 복은 우리가 잠을 잘 때 나의 영혼이 보호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은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 동안에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피곤했어도 밤에 잠만 제대로 잔다면 어떤 피곤도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이 보약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불면증에 시달려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잠을 자기는 하는데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선 잠을 자거나 잠을 자면서 설치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고, 단잠 즉 꿀맛과 같은 잠을 잘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잠을 잘 동안에 말씀이신 주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단잠을 잔다는 것은 잠을 잘 때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주님의 지켜 주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밤에 단잠을 자지 못한다면 그가 낮 동안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낮 동안에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예를 들면 잠들기 전에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면서 잠이 들었다면 잠을 잘 동안에도 말씀이 잠자는 나의 영혼을 지켜 주어서 숙면에 들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면서 잠이 들면 결코 잠을 설치거나 악몽을 꾸거나 쫓기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정말 깊이 잠들고 숙면에 들게 됩니다.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것은 그 마음속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낮 동안에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잠들어 보세요.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깊은 잠과 숙면을 자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 줍니다.
단잠과 관련해서 잠언 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3:21-24/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3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잠을 자기 전이나 일어나기 전에 가위 눌린다거나 악몽을 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잠3:21절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즉 단잠을 자게 되는 비결은 눈으로 보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낮에 즉 잠들기 전에 무엇을 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공포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마음을 해치는 동영상을 보았거나 싸우고 죽이는 게임을 하다가 잠을 잔다면 결코 단잠을 자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을 암송하거나 묵상하면서 잠을 자면 악몽을 꾸거나 잠을 설치는 일은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수없이 많이 경험해 보았습니다.
3) 깨어 있을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말한다란 테시헤카라고 하는데 문자적인 의미는 숙고하다, 친근하게 대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을 때란 활동하며 일을 할 때라는 뜻입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일을 해야 보람을 느끼고 건강하게 되고 밥을 먹어도 맛이 있고 잠을 자도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사람은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근심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놀고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4) 음녀(마귀)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지켜 주십니다.
음녀란 사람으로 하여금 한 조각 떡만 남게 되고 귀한 생명(영혼)을 사냥하는 영혼사냥꾼입니다. 마귀는 요10:10절에 기록된 것처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입니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음녀인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도둑맞게 되고 죽임을 당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멸망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음녀(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원수보다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므로 마음 판에 새기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원수보다 지혜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결코 마귀보다 지혜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박사학위 10개를 받아도 그것으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과 24시간 365이 동행하는 삶을 삶으로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면 말씀이신 주님께서 나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도록 지혜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어떤 복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진리의 말씀되시는 반석 위에 세우심으로 길을 갈 때나 잠을 잘 때는 깨어 있을 때에나 항상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잠6:20-26절을 읽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4.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주어지는 네 가지 복은?
5.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삶의 비참함은?
6. 밤에 잠을 잘자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원인은?
아멘
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삽니다
2.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고 대화하고 소통이 이루어지는것입니다
3.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말씀에 순종하는것입니다
4.다닐때에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잠 잘 때에 주님의 보호를받습니다 깨어 있을때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않게 지켜줍니다
5.삶이 도둑맞게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 당해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6.주님의 지켜주심이 없다는 뜻이고 낮시간의 삶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주님과 말씀으로 동행하는삶을살지 않아서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