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느슨하고 헐렁한 괴물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 (1996)
산문의 마술사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열정과 유머와 활력으로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테니스든 정치든 랍스터든, 두려운 마약 금단 현상이든 복잡한 영어 문법이든, 호화 유람선 생활의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운 문제든 분주히 주의를 딴데로 돌리지 않으면 마주하게 되는 두려운 인간 실존의 문제든. 월리스는 무한한 것과 극미한 것, 신화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보여주고 가장 아방가르드하면서 포스트모던한 현란한 기교를 전통의 도덕적 진지함, 자기성찰과 융합할 줄 알았다.
<무한한 재미>는 헨리 제임스가 어떤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용한 “느슨하고 헐렁한 괴물들”(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인 19세기 소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소설을 두고 한 말)이라는 표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 길고 현란한 소설은 이상한 일화, 괴상한 인물,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각주뿐 아니라 농담, 독백, 그리고 곁가지로 벗어나 놀랍도록 민첩하게 불어나는 여담들을 모두 담고 있다. 월리스가 자신의 원기왕성하고 수다스런 목소리를 포용하고 있음을 보여줄뿐더러 서사 관습, 즉 시작과 끝과 종결에 대한 우리의 모든 예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게 될 세상, 불연속성이 유일한 상수인 세상을 비춘다.
<무한한 재미>는 쓰인 지 25여 년이 지나 획기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이미 우리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그 미래상은 어느 때보다도 21세기에 시의성이 있어 보인다.
월리스는 이 소설에서 야생 햄스터 떼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미국의 부조리한 미래를 상상하는 한편, 광고가 우리의 삶을 도배하고 사람들이 오락, 자기만족, 마약성 약품에 과도하게 빠져 있는 나라를 이미 잠식한 부조리를 기록한다. “견본품 크기 도브 비누의 해”, "디펜드(요실금 등을 위한 일회용 속옷브랜드) 성인 속옷의 해” 등 해마다 특정한 제품명을 따 그해에 이름을 붙이고, 자유의 여신상은 거대한 광고판 역할을 해서 예전의 횃불 대신 거대한 가짜 햄버거와 다른 품목들을 높이 쳐들고 있는 나라를 묘사한다.
사후에 출간된 <창백한 왕(The Pale King)>과 마찬가지로, 이소설은 월리스가 자신의 놀라운 재능을 모두 활용해 스스로 만든 사일로 속에 고립돼 있는 사람들의 소외감과 고독감, 매일 매순간 쏟아지는 데이터와 뉴스와 잡다한 정보, 풍경부터 취미와 중독까지 모든 것의 가차 없는 상업화 등 새천년을 맞이한 미국의 불협화음과 광기를 포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로버트 플랜트는 현실 자체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된 현대 미국의 삶에 무수한 “심각하고무의미한 양상”을 이야기했다. 윌리스는 바로 이를 포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