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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태극 원문보기 글쓴이: sheerkhan
흔히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을 신의 나라라고 한다. 그 팔백만 신중에 가장 많이 모셔진 신이 스사노오미고토이다. 일본에 팔만여 신사가 있는데 그 중 반 정도가 이 신을 모시고 팔백만 신이 거의 다 이 신의 자손들이다. 스사노오가 본래 이름이고 미고토는 신에 붙이는 존칭이다. 고토는 현대 한국말 ‘것’을 연음시킨 것과 같다. 일본말로 3도 ‘미’이고 물도 ‘미’, 왕도 ‘미’이고 신도 ‘미’이다. 한국에서는 용을 ‘미’라 하는데 이 네 ‘미’가 동양철학적으로 매우 연관이 많다. 한국말로 3은 세모의 ‘모’인데 일본에서 ‘미’가 된 것이고 물은 일본에서 발음이 힘들어 ‘미’가 된 것이다.
일본말로 신을 ‘가미’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왕을 부를 때 쓰는 ‘상감’의 ‘감’이 ‘가미’로 연음된 것이다. 왕은 신의 자손이므로 일본에서 왕이나 신을 다같이 ‘미’라 한다. 일본말로 옛날의 수도를 ‘미야꼬’라 하는데, ‘미의 곳’이라는 한국말이다. ‘왕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미고토가 ‘미것’이라 하여 불경스럽게 것을 붙였는데 옛날 일본에서는 ‘것’이 단지 ‘종류’라는 의미만 있고 사람에게 붙여도 ‘수컷(숫것)’처럼 천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이자나기, 이자니미가 천지창조한 일본에서 첫째, 아마테라스는 해신이고 둘째, 쓰쿠요미는 달신이고 셋째, 스사노오만 사람 신이다. 스사노오만 실제 일본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실제 조상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다. 이 환웅과 스사노오가 같은 신이다. ‘스사’는 ‘숫’이 일본말에서 연음된 말이다. 환웅(雄-수컷 웅)은 하나의(첫 번의) ‘수컷’이란 뜻이다. ‘스사노오’의 노오는 ‘놈’의 연음되고 ‘ㅁ’이 같은 유성음 ‘ㅇ’으로 치환된 형태이다. 스사노오 한자는 須佐之男命인데 수사(須佐)는 소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男자가 들어간 것은 '스사'가 수컷이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신의 존칭인 命앞에 男이나 女가 들어간 예가 없다. 유독 스사노오에만 男자가 들어간 것은 스사가 ‘수컷’이라는 것을 뜻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에는 스사노오를 제신으로 모시는 수사웅(素盞雄)신사가 있다. ‘스사’가 ‘숫’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 사진
일본 신사에 가면 종종 한글로 제신의 이름이 써진 위패(位牌)가 있다. 일본사람들은 이것을 신대문자 위패라 한다. 신들의 시대에 통용되던 글로 적힌 위패이다. 어떤 신사 위패에 한글로 ‘하야수사노오노오호가미’라 적힌 것이 있다. ‘노’는 소유격이고 ‘오호가미’는 ‘큰 신’이란 뜻이니 이것은 ‘스사노오’의 위패이다. 그런데 ‘스사노오’ 앞에 ‘하야’가 적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대문자는 드물어 ‘스사노오’는 거의 모두 가나나 한자 이두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표기들 앞에는 ‘하야’를 볼 수 없다. ‘스사노오’ 앞에 하야가 있다는 것은 ‘스사노오’의 본명이 ‘하야수사노오’라는 것을 말한다.
신대문자도 한글이지만 신대문자에서도 일반적으로 한국말의 받침들이 생략되는 것으로 보아 ‘하야’는 ‘하얀’이 변한 말일 것이다. 환웅에서 ‘환’이 소리나는 대로 표현된 이두이니 ‘환’이 ‘환한’, 혹은 ‘하얀’을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야수사노오’는 현대 한국말 ‘하얀 숫놈’으로 ‘수사노오’가 환웅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신대문자 ‘하야수사노오노오호가미’는 한민족이 우리 조상신, 환웅을 순 우리말로 ‘하얀숫놈오!곰’이라 불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림)
스사노오 위패와 나란히 있는 신은 ‘우가노미다마노오호가미’인데 하찌만신사 만큼이나 많은 이나리(벼-아!나락)신사의 제신이다. 스사노오의 자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글로 해석하면 와가(약한-젊은))노(의)미(신)다마노(담로-국가)오호가미(대신)이 된다. 곧, 환웅의 아들이며 국가의 건립자인 단군이 된다.
스사노오가 숫놈이라면 신에게 어떻게 ‘놈’자를 붙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한자 사전에 ‘者’를 ‘놈 자’라 읽는다. 성자(聖者)처럼 거룩한 단어에도 붙이는 者를 옛날에는 ‘놈’이라 읽었다. 옛날에는 놈이 비하하는 단어가 아니란 것이니 성자에게 ‘놈’ 자를 붙이면 신에게도 붙일 수 있다.
‘스사노오’는 ‘숫놈’의 변형된 말이며 스사노오는 첫 번째 하늘의 숫놈이니 첫 번째 하늘의 숫놈의 한자 표기인 환웅과 같다. 일본의 조상신이 스사노오이고 한국의 조상신이 환웅이고 스사노오와 환웅이 같은 말이니 일본인과 한국인은 동족이다.
일본서기에 보면 수사노오가 하늘에서 쫓겨나 일본 땅 이즈모에 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스사노오미고토의 행위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신들로부터 천좌(千座)의 치호(置戶)라는 곳으로 추방되었다. 이때 스사노오미고또는 그의 아들인 이소다케루노카미(五十猛神)를 데리고 신라국(新羅國) 소시모리(曾戶茂里)에 내려왔다. 그곳에서 「나는 이 땅에는 있고 싶지 않다.」라고 불복하는 말을 했다. 결국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건너가 이즈모(出雲國)에 도착했다.]
일본서기에서 스사노오미고토가 분명히 신라국 소시모리에 내려왔다고 했다. 신라국이라 쓴 것은 일본서기가 신라 통일 이후에 써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라 표현할 것을 그 때의 한국은 신라이니 신라라 한 것이다. 소시모리에서 모리는 머리이며 한자로 표기하면 두(頭)라 할 수 있다. 소시는 소(牛)의 고어이다. 소시모리는 곧 소두(牛頭)가 되고 소두는 단군신화의 신성한 도시 소도가 변형된 말이다. 소도나 소두로 불리던 한국말을 한자를 사용하여 소리를 표현하다보니 소도(蘇塗)라고도 쓰고 소두(牛頭)라고도 쓴 것이다. 스사노오가 신라국 소시모리로 내려왔다는 것은 곧 환웅이 소도로 내려왔다는 것이 된다.
신라국 소시머리가 어디인지 궁금해 하던 일본 학자들이 한일합방 후에 우두봉이 춘천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춘천의 우두봉은 지금도 역사학자나 스사노오를 섬기는 신관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우두봉은 곧, 소도라 한국에는 사람 모여사는 곳곳마다 소도(솟터)가 있어 우두봉이라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한국말을 모르니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춘천의 우두봉만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우두봉에 묘를 쓰면 땅의 기운이 솟아올라 관이 묘를 뚫고 나오며 불같이 운세가 솟아난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묘를 소슬묘(솟을 묘)라 한다. (그림 우두봉과 소슬묘)
야시카 신사를 비롯하여 스사노오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에서는 스사노오를 우두천왕(牛頭天王)이라 표기하기도 한다.(그림)
스사노오는 소도의 천왕이란 뜻이다. 스사노오를 우두천왕이라 부르는 것은 하늘에서 한국의 소도에 내려온 스사(숫雄)란 이름을 가진 신은 환웅이 분명함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이민을 갈 때는 항상 그들의 신과 도시지명을 가지고 간다. 비근한 예로 영국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으로 갈 때 신을 모시고 가서 교회를 세우고 영국의 요크(York)를 옮겨놓은 뉴요크(New York)를 건설했다.
이즈모는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선포한 시마네현의 옛 이름이다. 일본에서 제일 큰 섬 혼슈(本州)의 서해안 우리나라 동해 쪽 해안가에 있는 도시이다. 신라에 해당하는 경상도 해안에서 막걸리 통을 버리면 해류를 타고 이즈모 해안에 닿는다. 그래서 이즈모 해안에 도달하는 쓰레기는 한국 쓰레기가 많다. 태종대에서 오리보트를 타다 실종된 고등학생 하나가 이즈모 해안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이즈모는 신라 사람들이 가장 쉽게 건너갈 수 있는 땅이다. 이즈모역에 내리면 신화의 땅이라 쓰여 있고 옛날 복장을 한 신이 섬을 로프에 걸어 끌어당기는 그림이 있다. (사진)
어느 신이 한국의 섬을 끌어당겨서 이어붙인 땅이 이즈모라 한다. 이즈모는 한국말 ‘잇음’이 일본에 가서 길게 연음되어 변형된 말이다. ‘잇음’이 ‘이스므’가 되고 이즈모로 변했다.
이즈모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신사 중에 하나인 이즈모신사가 있다.(사진) 스시노오미고토를 비롯한 그 아들 신들을 모시고 있는데 신이 거주하는 본전은 다른 신사들과 다르게 서향하여 한국을 향하고 있다. 한민족이 하늘에 제사하고 가무를 하는 시월상달에는 일본의 팔백만신들이 이 이즈모대사에 모인다고 한다. 여기에 모여 제사를 받느라고 일본의 다른 팔만신사에는 신이 없는 달이 이 상달이다. 여기서 신들이 모여 고향인 한국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또, 일본서기에 다름과 같은 기록이 있다.
[처음에 이소다케루카미(五十猛神)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많은 나무 씨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지(韓地)에 심지 않고 츠쿠시(築紫)를 비롯하여 오오야시마노쿠니(大八州國)안에 까지 뿌려 전부 푸른 산으로 만들었다.] 일본서기 또 다른 곳에는 [스사노오미고토가 말하기를 한국(韓國)에는 금은보화가 있다. 만약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으면 안 될 것이다 라하고 수염을 뽑아 던지자 삼나무(杉木)이 되었다. 눈썹 털을 뽑아 던지자 장목(樟木)이 되었다.......]
스사노오의 아들신 이소다케루노카미의 한자 오십맹신(五十猛神)에서 맹(猛)은 소리를 표현한 한자로 한국말 명에 해당된다. 곧, 아들 신 오십명을 거느리고 온 것이다. 일본서기를 편찬한 사람이 50명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됐던 것 같다. ‘이소다케루’에서 오십은 일본 발음으로 고주 해야하는데 ‘이소’라 한 것은 오십이라 읽는 한국말 그대로 ‘오십’을 쉽게 발음 한 것이다. 다케는 한국말 ‘닿게’가 변형된 말로 정도라는 뜻이다. 한국말로 이소다케의 현대 한국말을 유추해보면 ‘오십명닿게=오십명 정도’로 사람이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즈모의 50맹역
위의 일본서기 기록에서 한지(韓地), 한국(韓國)이 나오는데 원주민인 아이누 족만 살던 일본에 한국 사람들이 한국 신을 모시고 이주해 온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보통 한국에서 삼국시대 전후해서 한(韓)이라 하면 삼한을 말하는데 삼국시대 전에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을 말하고 삼국시대 후에는 삼한이 변한 백제, 고구려, 신라를 말한다.
시경에 나오는 한(韓)과 같이 한이라 하면 고조선도 포함하고 춘추전국시대 중국 중원에 있던 한도 고조선이 한민족을 이어받은 삼한에 해당할 것 같으니 이도 또한 포함된다. 중원의 한이 한신(韓信)의 토사구팽 후에 갈라지고 한반도 쪽으로 이동하여 일본사람들이 주장하는 한반도 남부 삼한이 됐는지도 모른다. 초한지에 의하면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기 전에는 한반도를 포함하거나 한반도에 가까운 제나라 왕으로서 유방보다 큰 영토와 세력을 가졌었다. 한신이 토사구팽 당한 후 한신과 함께 한나라를 재건하고자 했던 유민들은 산이나 섬으로 도망갔을 것이고 그들이 재건한 나라가 한반도 남부의 삼한으로 생각된다. 진한은 삼국유사에서 진(秦)나라 유민들이 만든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들은 진에 있던 한나라 유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명확히 밝혀내는 것이 일본이 한국 유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이 책 다음 필자의 연구과제이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왔다고 한다. 백두산보다 높은(3700m) 태백산이 아직도 한나라 옛 영토에 있으니 중원의 한나라는 환웅의 자손들의 영토일 가능성이 있다. 태백산 등산로 입구에 개천관((開天關)이란 도관이 있는데 환웅이 하늘을 열고 태백산에 내려온 개천절을 기념하여 만든 도교 사원이 분명하다. (그림)
삼국이 망하면서 삼국의 유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의 실제적인 역사는 삼국시대와 그 후기의 역사밖에는 없다. 점령한 식민지인 한국을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한국은 일본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중국의 속국으로 역사조작을 했다. 그래서 삼국이전의 역사책을 모두 수거하여 없애버리고 삼국이전은 단군신화, 고주몽신화, 김알지, 석탈해, 김수로왕 신화로 처리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 스사노오 신화처럼 그들이 역사로 믿는 신화 속에 한국이 자주 튀어 나오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삼한을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조그만 부족국가들로 비정해 버기도 했다.
조선사 편찬을 하기 전에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조작에 불리한 자료들을 모두 없애버리거나 위조하고 유리한 자료들은 부각시킨 후 조교 수준의 어리석거나 친일파인 한국의 학자들 소수를 조선사 편수 작업에 참여시켰다. 혹시 한국인 학자들이 이견을 내도 다수의 일본학자들 의견에 묻어가게 했다. 이 조선사 편찬에 참여한 조교들이 해방 후에 역사 교수가 됐고 지금 그 제자들은 삼한을 한반도 남부 밖에서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니 한반도에서 중국 섬서성 태백산 주위에 한국 유물이 나와도 삼한과 연관시켜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역사극을 볼 때 나오는 생소한 지명들이 지금 어디를 말하고 있는지는 모두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대부분 그 지명들이 아직도 중국에 있고, 아니면 중국의 고지도에 그대로 남아있다.
스사노오가 한국에는 금은보화가 많아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구절이 일본사람들 무의식 속에 언제인가는 한국을 침범하여 금은보화를 빼앗아 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만든다. 신라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일본에 정착하며 분한 마음으로 일본서기를 쓰면서 이 내용을 조작한 것 같은데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일본에 건너온 백제계 일본은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국에서 금은보화를 가져오고 도공들을 잡아와 그 꿈을 이룬다.
마르코 폴로는 동양에 가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자기를 처음보고 놀라 동양인들은 보석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고 했다. 도자기가 없던 유럽인이 보면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보석보다 빛나는 그릇에 밥을 담아먹으니 놀랄만하다. 그 후 서양귀족들에게 동양자기는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목숨을 걸고 극동까지 항해해서 실어오는 도자기라 값도 보석만큼 비쌌다. 귀족처녀들은 일본 도자기를 가지고 시집가는 것이 꿈이었고 그 도자기는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고 전시품으로만 쓰였다. 금장식을 벽에 붙여놓듯이 벽에 도자기를 붙여놓기도 했다. 서양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른다.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도공들을 잡아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견해이다. 일본은 한국도공들이 생산한 도자기를 유럽에 팔아 일본근대화에 필요한 엄청난 부를 모을 수 있었다.
스사노오가 만든 삼나무는 일본말로 ‘스기’라 하는데 삼낭구〉삼랑기가 변한 말이고 편백나무는 ‘히노끼’라 하는데 사우나에 가면 히노끼 탕이 있어 우리에게 익숙하다. 삼(3)과 해는 신의 상징으로서 ‘해의 낭구’가 변한 말이다. 이들은 신성한 나무로 신사주변에 많이 심어져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일본서기는 스사노오가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스사노오가 이즈모에서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어딘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보니 노부부가 예쁜 딸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사연인즉, 산에는 머리가 8개 달리고 꼬리가 8인 야마다노오로치(八岐大蛇)가 살고 있는데 해마다 산에서 내려와 처녀 하나씩을 잡아먹는다. 그 부부에는 딸이 8명 있는데 그동안 해마다 1명씩 7명을 먹어치우고 오늘이 마지막 한명을 잡아먹으러 오는 날이라 한다. 스사노오는 묘책이 있으니 독한 술 8동이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 뱀이 와서 8개의 머리가 각 술동이를 하나씩 차지하고 술을 비웠다. 술에 취해 자는 뱀을 가라사비(韓鋤)라는 칼로 베니 야마타노오로치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마지막으로 꼬리부분을 자르는데 부딪히는 부분이 있어 꺼내보니 스사노오가 가진 칼보다 우수한 칼이었다. 이 칼이 쿠사나기의 쓰루기(草薙劒, 草那기之大刀)이다. 스사노오는 그 칼을 아마테라스오오카미(天照大神)에게 바치고 그 처녀를 맞아 결혼하여 이즈모에 궁궐을 짓고 자식을 번창시켰다.
이 칼이 천황이 왕권의 상징으로 꼭 지녀야하는 보물인 삼종신기(三種神器)-①동경(구리거울), ②곡옥, ③검)의 하나이다. 그림
삼종신기
이 삼종신기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가져온 천부인(天符人)에 해당한다. 환웅을 모시는 한민족이 일본에 정착할 때 저항세력이 있었는데 그것이 야마타노오로치(八岐の大蛇) 야마토의 울치족이다. 한민족은 일본을 한국보다 산이 많아 ‘산의 터’란 뜻으로 ‘야마토’라 불렀다. 울치족은 주로 북간도의 고아시아족으로 아이누의 한 갈래이거나 아이누와 같은 종족이다. 울치는 한국말 ‘알치’에서 나온 말로 그 집단에서 알이 되는 사람 즉, 부족장 혹은 왕을 뜻한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알지, 을지문덕의 을지가 모두 알치의 다른 표기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홋카이도 북쪽 북간도에서 내려온 아이누가 원주민으로 있던 땅인데 백인이 신대륙에서 인디언을 토벌하듯이 한민족이 이 아이누라 불리는 울치족을 토벌하고 세운 나라이다. 이 과정을 이즈모 신화에서 뱀과 싸우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 때 아이누와 싸웠던 무기가 한국에서 가져온 농기구 가라삽((韓鋤)이다. 아이누와 전쟁에서 노획한 칼은 쿠사나기의 찌르개로 구지(봉)에서 온 사람의 검이다. 예전에 서울 사람들을 ‘서울내기’라 했다. 구지(봉)에서 온 사람이 ‘쿠사내기’고 그의 검이 검의 순 한국말인 찌르개이다.
스사노오의 아들인 오오쿠니누시카미(大國主神)는 나중에 아미테라스의 손자이며 가야에서 온 니니기에게 국토를 이양하는데 국권의 이양 증표로서 쿠사나기의 쓰루기를 니니기에게 반납하게 된다. 이 신화에 나오는 쿠사나기라는 이름은 스사노오가 일본에 먼저 건너와서 나라를 만들었으나 결국 가야계통의 니니기에게 국토를 양보해야 한다는 당연성을 예시한 것 같다. 이 검은 청백전의 유래가 된 평가(平家)와 원가(源家), 일본의 두 무사집단이 싸울 때 평가가 패하면서 평가가 모시던 천황이 이 칼을 지니고 물에 빠져 죽으면서 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