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 것 아닌 조그마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가 온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자그마한 보석 알 하나가 더 큰 장식품을 빛나게 한다. 부처님도 ‘비록 작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왕자, 뱀, 불씨, 그리고 수행자’라고 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의 중요성 또한 그와 같다고 할 것이다. 왕자는 자라서 나라를 다스리며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뱀은 한 번 물리면 그 독에 의해 사람이 죽으며, 불씨가 비록 작아도 수천, 수만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 있는 큰불로 변하기 때문이다. 작은 수행자는 어린나이에 출가한 수행자를 말하는 것으로 비록 작지만 그 마음을 오롯이 하여 마음을 닦아 번뇌를 제거한 성자가 되면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생하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뿐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 안에서의 의사소통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말 즉 언어라고 할 때 한마디 말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복잡하다. 미국 대선에 영향이 있는 메뉴 중에서 이란과 북한 및 우리 대한민국의 핵실험 문제로 또 나라 안의 과거사 문제와 보안법 폐지, 방사능폐기장 문제 등에 관해서 각자의 처한 위치와 단체의 이념과 이익이 걸려 있어서 뾰족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지식인 등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임은 새삼 말할 거리가 못된다고 할 것이다. 한 마디 말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때인 것이다. 이런 때는 국민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모으는 방법론의 확립과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조선 후기의 정치가로 남들보다 앞선 지식과 생각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던 정약용의 말을 들어보면 이 시대 지식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탐학질 하는 바람이 크게 불어 백성들이 초췌해졌다. 골똘히 생각하면 털끝하나 머리카락 하나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지금 고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해버릴 텐데 충신이나 지사로서 팔짱 끼고 방관할 수 있겠는가?” 다산(茶山)이 법과 제도개혁의 청사진인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지으면서 머릿글에 밝힌 내용이다. 썩어빠진 조선 후기 사회를 제대로 살핀 다산의 한탄 섞인 주장이다. 그대로 지켜만 보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에 뜻있는 선비(志士)의 한 사람으로, 지식인의 대열에 있는 사람으로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식인 계열에 끼고, 지도자 반열에 오르면 기득권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에, 입을 꼭 다물고 지내면 먼저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사회가 어려워졌을 때 지식인들이 손놓고 있지 않고 분연히 들고 일어나 제 역할을 분명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라가 어려워지자 목숨을 버린 매천 황현(黃玹)이나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의 행동이 그러했다. 그래서 모두들 자기 의사를 표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관해서는 온 국민이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간 느낌이다. 모든 단체가 찬성과 반대의 의사표시에 나서고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종교단체도 이 문제에 사활을 건 듯이 교단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진보적인 교단은 즉각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보수적인 교단은 폐지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시위한다. 어찌 보면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일수록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골똘히 그리고 전체가 참여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갖추어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든 폭압정치나 제도의 문제는 그 제도 속에 들어있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는 삶을 한동안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의사결정의 의식구조가 주체성을 가질 수 없도록 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질서를 찾아내더라도 혼란의 시기를 거쳐서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다른 합리적 행동 양식을 찾아내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인데도 주어진 질서를 합리적이라고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보안법 유지론자들의 주장이 거의 다 그런 논리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여러 가지 물질적 도움을 주고 있는 21세기에 와서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의 근거로 되어 있는 법률의 폐지문제를 다루느라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면 국민 스스로가 빠짐없이 참여해서 합리적인 의사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 몇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찬성과 폐지는 모두 자기가 선 자리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속한 단체의 의사를 결집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 단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중의 생각을 정리해서 단체의 의사가 합리적으로 결정되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표출하는 방법론을 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산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만히 훈고학이나 하지 않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경세유표를 지은 참뜻을 새겨야 한다.
첫댓글 보안법은 페지되어야 한다고 저 개인은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합리적으로 수렴하는 시스템의 도입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