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 후배들을 만나다.
오랜만에 고향 후배들을 만나다.
오랜만에 고향 후배들을 만났다. 모두들 70대 후반의 나이지만 다들 동생 친구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던가. 한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다정다감한 이웃들과의 만남이라 마냥 반갑고 즐겁기만 했다.
내 고향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月林里)는 마을 뒤로 계향산(桂香山)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그 지명이 뜻하는 대로 달(月)과 수풀(林)이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동고동락했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으니 쏜살같은 세월이 야속하다고나 할까 할 말은 봇물처럼 쏟아지고 모두들 헤어지기 아쉬 워 하는 눈치였다.
나는 가끔 고향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다보면 유년 시 절이 주마등처럼 떠 올 라 온갖 상념이 교차한다. 일제 강점기 코 흘리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해 일본어 교육을 받다 8.15 광복, 뒤이어 몰아친 6.25전쟁,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많은 보릿고개 가정형편에도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은 어렵고 힘들어도 오로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님 덕분임을 어찌 모른다 하겠는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이른바 '보국대'로 징집되신 아버님이 전쟁터에서 지게로 탄약, 연료, 식량, 보급품 등을 운반하실 때 어머님을 도와 농사를 돌본 일,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철 우산도 없이 6년 동안 왕복 60리길을 달려야 했으며 발을 옮겨 딛지 못할 정도로 폭설이 내린 험준한 고갯길을 넘나들며 영어 단어 한자라도 더 외우겠다고 깨알처럼 적힌 종이쪽지를 꺼내 읽다 바람에 날려버리기 일쑤였고 겨울이면 위풍이 심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공부하다 잠이 들거나 어렵게 구한 촛불을 켜놓고 자다 책을 불태울 번한 일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맴돈다. 방학 때면 동네 한문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줄줄 외우고 서당 훈장님을 집으로 초대해 책 시세를 했던 일은 나의 성장기 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추억담이다.
이날 만난 고향친구들은 모두 이 같은 나의 어린 시절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후배들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함께 한 고향 후배들>
류인식 박상규 박흥규 이관식 이수원 조남식 조남휘 정노태(가나다 순>
첫댓글 그동안 바쁘다는 핑게로 몇년만에 고향선배님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신모습에 놀라고 반갑습니다.
모두고향이 같아서 그런지 어릴적 4.5십년전 동내 가족분들 산천놀던애기 등등 애기가 동감하니 다들 좋아하시고 나이가 제일 어리다보니 모르는 사연도 많이 듣게되어서 특히 돌아가신 동내어른들, 가족들애기에 너무나 짦은 시간이 였습니다. 아무쪼록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향의 정서가 듬뿍 담긴 모임 함께한 한분 한분 한분에게 감 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