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19) -5코스(2-2)
동백꽃 붉게 핀 풍경을 그리며 마을로 들어서니 정자 하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정자 아래는 올레 간세가 다정하고, 정자 옆의 작은 개울은 물 없는 도랑이다. 도랑은 작고 길다고 細川이고, 세천이 있다고 여길 세천동이라고 한다. 이래서 이름에는 다 유래가 있는 모양이다. 그 정자에 올라 배낭을 풀고 목도 축이니 비가 그친다. 비가 그치니 바람도 따라 멎었다.
목을 축인 우리는 세천포구를 뒤로하고 해변을 걸었다. 저 멀리 바다에 떠있는 게 섬인지 배인지 짐짓 구별키 어렵다. 마침 지나가는 청년에게 물으니 지귀도가 아닐까요? 한다. 자세히 보니 배보다는 덩치가 크다. 예전에 9코스를 걸으면서 본 가파도가 생각난다. 비슷하다. 실같이 바다에 누운 섬, 원래 오름은 봉우리인데, 봉우리 없는 저 섬은 오름이 아니로다(?)
지귀도, 예전에는 물고기들이 많아 위미리와 신례리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고, 성어기에는 해녀들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섬에 들어가서 물질도 했다는데, 이제는 다툴 일도 물질할 일도 없다고 하니 세월이 무정하다. 지금은 모 종교재산이라 한다.
한적한 해변으로 이어기는 올레 길은 위미항에 다다른다. 항 입구가 앞개포구요, 포구 들머리가 조배머들코지다. 그만큼 위미항은 고품격이다. 조배머들코지에는 구실잣밤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는 없고 기기묘묘한 바위들만 늘려있다. 그래도 옛 사연은 많은지 표지석에는 잔 글이 가득하다. 글만큼은 아니라도 관광객이 제법 거닐고 있다.
소문대로 항은 산남(한라산 남쪽을 제주에서는 그렇게 통칭한다) 최대의 천연포구답다. 일제 때에는 여기서 오사카까지 정기 여객선이 내왕하였다하나 옛 영광은 찾을 길 없지만 그 위용만은 여전하다. 포구에서 올라선 길은 마을로 들어선다. 말이 마을이지 위미리 중심상가지역이다. 마침 농협 마트가 있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거리를 챙기고,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마을회관을 돌아 서니 어둠이 다가온다. 비는 그쳤는데 바람이 심통을 부리는 저녁이다. 해변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마침 전망 좋은 숙소 하나가 우리를 유혹한다. 주인장의 안내로 2층 방에 들어서니 풍경이 기가 차다. ‘바다에 누워’라는 이름답게 바다가 온몸으로 몰려온다. 우리는 거기서 하룻밤을 유하면서 살아있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되어 길을 나서는데 잔비가 뿌리고 있다. 연 이틀을 내렸으면 오늘은 그칠 만도 하건만, 오락가락이다. 길은 해변을 끼고 2층짜리 카페 ‘서연의 집’앞을 걷는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촬영현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영화를 보지 못한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해변을 조금 걸으니 검은 돌담에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있는 초가집 하나가 바다를 바라다본다. ‘마음빛그리미’라는 사진 전문갤러리 겸 카페라는 간판이 고요하다. ‘술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오시라’는 문간의 안내문이 이런 외진 해변의 갤러리 모습만큼이나 정겹다. 대문이 열려있지 않는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갤러리 내부를 일람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길은 주택가 언덕의 무인카페 ‘한잔합서’를 지나는데, 아직은 한 잔 생각이 없으니 애석하다. 애석한 마음을 지우면서 숲길을 잠시 걷는데 다행히 비가 멎는다. 비옷을 벗고 길섶을 보니 굳게 닫힌 대문 옆으로 물구나무선 꼭두, 망보는 꼭두 등등 여러 모양의 꼭두들이 웃는다. 꼭두는 망자의 시자들인데, 여기가 어딘가, 대문의 간판을 보니 ‘꼭두 문화연구소’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연구하겠다니 고마운 일이다. 올레 길은 이처럼 다양하다.
만남의 올레 길은 신례2리 바닷길과 카페 ‘유나’를 지나 검은 모래 해변의 공천포도 지나고 시골냄새 물신 나는 밥집, ‘공새미’도 지나니, 보기 드문 개천하나, 얼마나 비가 내렸던지 다리 아래로 물이 철철 넘친다. 다리를 건너 불광선원을 돌아 보타사도 지나니 망장포구가 청명하다. 그 옛날 제주산 말을 중국으로, 중국으로 실어 날았다하는데 지금은 고요할 뿐이다.
이어지는 숲길은 잠시 불편하던 다리를 주물러준다. 포근한 길이다. 포구를 지나니 섶섬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남쪽으로 난 바다절벽이 절경이라는 예촌망(옛날 호촌봉수대가 있어 일명 망오름)을 돌아 내려서서 신작로를 조금 걸으니 효돈천이다.
여기가 바로 쇠소깍 상류다. 쇠는 소(牛)고 沼는 웅덩이고 깍은 끝 지점이라, 소를 닮은 바닷가 큰 웅덩이라는 말이다. 달리 용소라고도 한다. 쇠소깍 다리에서 부터 용소까지는 바닥을 아스콘으로 깐 길이 이어진다. 편안하고 황홀한 길이다. 길을 따라 걸으며 길 아래 沼을 바라보니 이승의 풍경이 아니다. 과연 용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쇠소깍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생물권보전지역이다. 더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제주의 명소다. 올레 5코스와 6코스의 시종점이기도하다. 올레 출발 간세 부근은 관광객으로 만원이었다. 때마침 지루하던 비도 그치고 하늘도 쨍쨍하니 사람들도 활기가 넘친다. 유독 신혼부부로 보이는 쌍들이 많다. 아직은 아니지만 예비부부도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오래된 부부들도 제법 보인다. 그렇게 보니 이곳이 부부들의 순례길 같다.
유원지 정자에 마침 빈자리 하나가 있어 우리도 그곳에서 꽈리를 틀고 관광객을 바라보니, 강화도 시인 함민복이 그의 시, <부부>를 부여잡고 그들 사이에 머문다.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 걸음을 옮겨야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한다 /한 발 /또 한 발-
결혼은 ‘한 아름에 들 수 없는 긴 상’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미생이 부끄럽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높은 정자에 앉아 몸을 식히고 배를 채우니, 마치 18홀을 돌고 클럽하우스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기분이다. 코스는 끝났지만, 아직도 한나절이 남았으니 우리는 또 배낭을 챙겨 정자를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