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09, 1999. Written by C. J. Lee
<개금의 하리마오>
나의 군대 시절에 자주 문제가 된 것이 단기하사와 방위병, 그리고 현역병과의 관계였다. 방위병이야 집에서 출퇴근 한다는 원죄 때문에 항상 머슴 취급을 받았지만 단기하사의 문제는 달랐다. 그 때는 훈련소에서 건장한 장정들을 차출하여 6개월의 훈련을 거쳐서 하사를 만들어 내보냈다. 그 하사관 학교의 훈련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6개월을 집중적으로 훈련만 받는다는 게 오죽했겠는가?
갓 하사를 달고 자대에 배치받아 온 하사들은 병과 마찬가지로 군기가 꽉 차있기 마련인데, 문제는 그 군기와 함께 하사라는 계급에 대한 딜레마이다. 틀림없이 병보다는 높은 계급인데…그러나 군대가 어디 계급만으로 되는 사회인가? 옛말 그대로 군대는 ‘짬밥’이다. 신참 소위가 도무지 해결을 못하는 일도 병장의 한마디로 해결되는 것이 군대 아닌가?
신참 하사들이 전입을 오게 되면 그야 말로 특수공병대 전체가 비상이다. 우선 그 신참 하사들은 예하대로 배속을 받을 대 까지 우리 ‘단 본부중대’에서 며칠을 같이 지내게 되는데 이 때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신참 하사들은 군대생활이 6개월을 갓 넘은 ‘애들’(?)인데, 이 정도면 막 일병으로 진급한 병들과 비슷한 정도다. 게다가 이 하사들은 그 때까지 ‘피교육생’ 생활만 해서 얼빵하기가 그지없다. 같은 정도 군 경력의 우리의 일병들은 그 동안 자대에서 배운 것이 눈치 밥이니 하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첫날부터 우리는 ‘하사 길들이기’를 시작한다.
나 까지 내무반으로 내려오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일이 벌어진 날이다. 하사들이 전입 온 때는 늘 그랬다. 일석점호가 끝나고 주번사관이 나가고 나면 ‘하사 길들이기’가 시작된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일병대신 1년 6개월 이상 군대생활을 한 상병들을 동원한다. 상병들은 고참들한테 맞기 싫으니 싫어도 하사를 굴린다.
하사들 중 가끔 깡다구 있는 애들이 저항을 한다. 명색이 계급상으로 위인 하사가 상병한테 맞고 구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자리의 대부분 사병들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법인데, 이유는 빨리 이 난리를 끝내고 잠을 잤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대충 맞고 끝났으면 하는데 저항하는 놈이 있어 시간을 끌면 짜증이 나는 법이다. 결국 저항하던 하사는 짜증난 일병에게 까지 맞고 나서야 풀이 꺽인다. 불쌍한 하사들… 그들 중 몇몇은 그날 모포자락을 눈물로 적셨을 것이다. 군대생활이 얼마 안되어 집 떠난 설움이 아직 남아 있을텐데, 병한테 까지 맞아야 하는 군생활…나는 그런 것을 볼 때 마다 아무 자부심도 또 원죄도 없는 졸병인 것이 좋았다.
부대의 기존 하사관들은 신참 하사들이 행여 그런 고난을 겪을 까봐 노심초사하기 마련이고, 행여 그런 일이 발각되면 전 중대가 구르고….부대가 온통 뒤숭숭하다. 그래도 하사는 길들여진다. (이 단기하사와 병간의 문제가 너무 커서 후에 하사 제도가 바뀌었다.)
우리 현역병들의 이중 잣대는 참으로 이상하다. 하사를 팰 때는 ‘군대는 짬밥’이라고 우기면서도 방우의 문제는 또 다르다. 물론 그들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맞고 굴러도 저녁에 집에 가서 따뜻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이 현역병들의 시샘을 자극했을까? 그러나 그것도 군대 생활인데… 우리 특수공병대는 이등병이 전입을 오면 제일 먼저 방우 잡는 법을 가르친다. 이등병은 대개 3개월 정도의 군대생활을 한 애들인데 1년 정도 군대 생활한 방우를 쥐 잡듯 한다. 마음이 약해서 주저하던 애들도 하루만 지나면 훌륭한 ‘방우 잡는 유격조교’가 되어 버린다. 황폐화… 나 또한 그렇게 황폐한 ‘야리공삼의 사람’이 되어갔다.
문제의 그 사건이 나던 날은 지극히 평온했다. 나는 너무 조용한 날은 오히려 불안했는데, 군대에서는 평화의 뒤에는 언제나 가혹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감님도 조용히 자기 사무실에서 책을 보시고, 전화마저 없었던 어느 조용한 오후였다.
갑자기 부저 소리가 울렸다. 이 부저는 위병소에서CP로 연락하는 수단인데, 영감님이 출근할 때, 밖에 외출했다 돌아올 때 위병소를 통과하면 부저를 울려서 우리가 영감님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한다. 가끔 위병소 근무병의 근무교대 후 멍청한 신참들이 부저 누르는 것을 잊어버리면 우리 CP가 당황하게 되고, 그런 날은 위병소의 초상날이 되곤 했다. 그런데 영감이 자리에 있는데 부저가 울린다는 것은 사령관과 같은 거물급 상관이 불시에 나타났다는 신호이다.
부저 소리에 당황한 내가 위병소에 전화를 걸어 물어 보려는데, 벌써 우리 부속실의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니까 위병소 근무병들이 이 여자들을 통과시키고 한참 고민하다 부저를 누른 것이다. 수양이 덜된 놈들… 너무 살벌한 병영에만 있다가 분내 풍기는 여자를 보곤 판단력이 없어졌던 모양이었다. 역시 군인은 미인계에 약하다.
나이 많은 여자와 꽃을 든 예쁜 젊은 여자.. 누가 봐도 술집 마담과 그 졸병 아가씨이다. 나는 하도 황당해서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절대로 그 꽃을 든 여자 때문은 아니었다.
‘호호호… 사장님 계세요?’ 영감은 밖에 나가선 사장으로 불린다.
‘아…그게.. 저..’ 내가 말을 더듬고 있는데 부저 소리가 궁금했던 영감이 부속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제 루비콘 강은 넘어섰다.
‘아이구…사자..앙..님…오랫만예요..’ 왜군의 침범보다 더 엄청난 침략사건에 입을 딱 벌린 영감님이 나를 돌아보는 데 나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너 일을 어떻게 하는 거니?’하는 질책의 눈초리… 민망했다. 자존심도 상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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