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스물한 번째 성경 ; 룻1:1-18, 막12:28-34, 히9:11-14 제목 ;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리 TV를 잘 안 보시는 분이라도, 이탈리아에서 시집 온 ‘크리스티나’ 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독특한 억양과 말투, 그 리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해서, 그 나름대로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사람입 니다. 외국인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을 든다면, 앞서 말씀드린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티나를 비롯하여, 미국 출신의 ‘로버트 할리’, 프랑스 출신의 ‘이다도시’, 일본 출신의 ‘사유리’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데,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나’는 워낙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 번 그의 말을 들어본 사람은 쉽사리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가 뜨는 바람에, 그의 남편과 시어머니도 자주 TV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 이정자 여사는 크리스티나 때문에 크게 당황한 적 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크리스티나가 목욕을 한 다음, T팬티만 입고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시어머니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기도 하고, 함께 식사하 는 중에 시어머니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남편의 얼굴에다가 뽀뽀를 계속하는 통 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자 여사는 남편 하나만 바라보고 머나먼 타국에 와서 살고 있 는 크리스티나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입니 다. 생각해보십시오. 부모형제는 물론이요, 수많은 친구들과도 헤어져서, 그야 말로 혈혈단신으로 이 낯선 나라에 와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 이겠습니까? 그래서 시어머니 이정자 여사는, 크리스티나의 입장을 충분히 이 해하고, 그처럼 황당한 일을 겪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크리스티나의 사랑은 대단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경을 초 월하고 언어장벽을 넘어서, 오로지 남자 하나만 바라보고 선택한 놀라운 사랑 인 것입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남자가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형제와 친구들까지 다 버리고, 혼자서 이 낯선 나 라에 올 수가 있었을까요? 바라기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을 한 크리스티나가, 앞으로 계속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잘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일쑤 엉뚱하게 행 동하는 며느리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품어주는 이정자 여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읽은 룻기를 보면, 크리스티나보다 더 놀라운 선택을 한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남편이라도 바라보고 한국에 왔지 만, 룻기에 등장하는 ‘룻’은, 남편이 아닌 시어머니만 의지하고서,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 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이 있는 것 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이 고향에 남아 있으면, 그녀는 얼마든지 다시 시집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룻은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를 따라서, 물설고 낯선 유다 땅으로 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시어머니가 룻에게 워 낙 잘해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서, 시어머니를 따라 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아무리 시어머니의 사랑이 지 극했기로서니,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거지나 마찬가지인 시어머니를 따라 서 낯선 나라에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크리스티나는 남 편이 있어서, 사랑하는 그 남편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룻에게는 남편 도 없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 다. 그렇다면, 룻은 어찌하여 그런 시어머니를 따라서 낯선 나라에 왔을까요? 그것은, 룻이 평소에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룻의 선택은 다른 그 무엇 으로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룻은 자신의 입장보다는 시어머니의 입장과 형편을 더 깊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기근을 피해서 낯선 나라에 이민을 왔 다가, 그만 남편도 잃고 두 아들마저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나오미는, 이제 거지신세가 되어서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배려심이 많은 룻이 이러한 시어머니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게 되었으리 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복은 아무나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 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에게는 그런 복을 받을 만한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룻은 이스 라엘의 성군(聖君)으로 일컫고 있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분입니다. 그러 니까, 룻의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군(聖君)이 태어난 것 은, 결코 우연(偶然)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룻은 참으 로 어려운 선택을 했습니다. 진정 그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따를 수 없 는 결정을 하고 실행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르바’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러니까, 시어머니의 입장도 참 딱하지만, 우선 나부터 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 겠느냐고 하는 것이 ‘오르바’와 같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오늘날에 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오르바’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십자가의 정 신’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류를,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 없으신 주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던 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십자가의 진리가 옳은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가 죄에서 구원함을 받았으니, 우리 또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룻이 우리에게 보여준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입니다. 룻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그 남자 가 일찍 죽었고, 그래서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룻 자신도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시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앞날보다는, 시어머니의 입장을 더 염려한 나머지,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나라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룻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우선, 시어머 니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시어머니 나오미가 어찌 룻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나오미는 어쩔 수 없 이 혼자 몸으로 쓸쓸하게 고향땅을 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며 느리가 되는 룻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동행해줌으로써, 나오미는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 을 끔찍이 아끼면서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서두른 일은 며느리 룻의 재 혼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룻이 자신의 몸보다 시어머니를 더 아끼고 사랑한 다는 것을 알았으니, 시어머니가 되는 나오미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를 위한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었습 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이치’입니다. 요컨대,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하여 ‘먼 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 달라. 내가 힘드니, 나를 좀 도와 달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존중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가 된 우리의 본분이 요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삼일운동을 주도하신 분은 남강 이승 훈 선생입니다. 남강 선생은 어릴 적에 일찍이 유기전(鍮器廛)의 점원으로 일 하다가, 나중에는 유기공장을 직접 운영해서, 아주 크게 돈을 벌었습니다. 중 간에 실패도 했으나, 다시 공장을 일으켜서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던 것입니 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강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게 되었는 데, 이때 남강선생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 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만을 위하여 살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오산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신민회 사건과 105인회 사건 관련자로 구속이 되어서 모진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후, 목사가 되어 삼일운동을 주도하고, 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함으로써, 다시 옥살이를 해 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남강 이승훈 선생이 자기 가족과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고 살았 더라면, 얼마든지 편안히 잘 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함으로써, 많 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요컨대, 남강 선생은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자초 하여 겪으셨던 것입니다. 남강 선생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 성경을 세 번 통독했다고 합니다. 뿐 만 아니라, 기도하는 일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강선 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의 비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일생동 안 남을 위하여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강 이승훈 선생이야말로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다가 가신 분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강 선생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에 뛰어들지 않 았으면,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으면, 아마 남강선생은 그 많은 고 초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벌어놓은 돈이 많았으니, 그 돈을 가지고 편안하고도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 만,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남강 이승훈 선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서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 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답변하시기를, “첫째는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 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결국 ‘둘이 아니라 하 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입장과 내 형편을 고려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이해하려고 힘 쓸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께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던 그 율법학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제물을 드리는 것보 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율법학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오.”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룻’에 관한 말씀을 나눔으로 써, 이웃사랑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서, 그에 반대되는 사례(事例)를 하나 들려드릴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음 의 이야기를 들려드림으로써 ‘예수를 믿되,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트 스피치’라는 책을 낸 ‘김미경’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 는 이분이 ‘스타 특강 쇼’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하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습 니다. 이분이 충북의 ‘증평’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대학은 서울에 올라와서 다니게 되었는데,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정착을 하게 된 과정 을 말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돈을 많이 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말씀 중에서, 제 귀에 아주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분 이 원래부터 교회를 다니던 분이었는지, 그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서울에 올라와서 교회를 선택할 때, 그 무엇보다 먼저 큰 교회를 찾아서 갔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를 나가자마자, 음식 배식하는 봉사를 자청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반드시 봉사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하루빨리 교인들과 가까워지고자 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식하는 중에 아이들을 보면 “네 손이 참 예쁘다. 너, 피아노 치니? 피아노 치면 잘 치겠다.”고 칭찬했다고 합니 다. 그것은,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에게 피아노지도를 받게끔 유도하려고, 그 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미경 씨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큰 교회를 찾아갔다기보 다는, 큰 교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듯싶습니다. 만일 김 씨가 정상적인 신앙인이었다면, 일꾼이 많은 큰 교회를 찾기보다는, 우선 먼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갔어 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큰 교회야 피아노를 반주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 반주자가 없는 교회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아노반 주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교인들이 자녀들의 피아노교습을 부탁하는 섭외가 들 어오면, 그때 자연스럽게 피아노교습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미경 씨는 ‘신성하게 여겨야 할 교회’를 피아노교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 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미경 씨는 마치 무슨 큰 성공담이라도 되는 것처 럼, 서울에서 처음 교회를 선택해서 다니게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부부는 서로 ‘섬겨야 할 대상’이지 ‘이용 대 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유익과 편리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이웃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성하게 여겨야 할 교회를, 자신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용대상으로 삼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느 교회로 나가야 나에게 도움이 되고 유리할까?’ 이 런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면 안 됩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고자 원한다 면,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 내가 다니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교회, 나의 재능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 디로 말해서, 내가 정성껏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 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율 법에서 해방시켰다(9:14)’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까봐, 아니면 세상적인 복을 더 많이 받을 생각으로, 억지로 마지못해서 율법 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 생제물이 되셨으니,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 십자가의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인 어떤 목적을 얻기 위해서 예수를 믿거나 교회를 다녀 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게 된 것을 복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 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는 그 인생 자체가 귀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에, 우 리는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으로서,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목적과 유익을 얻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척, 예수를 믿는 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 되,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복되고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 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