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저패니메이션은 헐리우드 SFX 영화와 함께 세계 영화의 중심을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일본 영화산업 전체가 저패니메이션의 박스오피스로부터 수혈받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저패니메이션의 내부는 붕괴일로를 향해 치닫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런 현상이 생겼을까? 여기 저패니메이션의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본다.
지금 일본 영화계에 있어서 애니메이션은 영화 흥행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의 일본 박스오피스 1위는 스튜디오 지부리의 <귀를 기울이면>(토호)이었다. 배급 수입은 18억 5천만엔으로 94년의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의 26억보다는 떨어졌지만, 2위의 <고지라 vs 스페이스 고지라>의 16억 5천만엔과 2억엔이나 차이를 내서 2년 연속으로 애니메이션이 흥행의 톱을 차지했다. 작년의 흥행 랭킹을 살펴보면, 3위는 <남자는 괴로워>, <낚시바보 일지 7>으로 15억 5천만엔, 4위는 <학교의 괴담>으로 15억, 5위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노비타의 창세 일기>으로서 13억엔, 6, 7위도 애니메이션으로 <95 토에이 아니메 페어> 12억 7천만엔,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 10억 5천만엔이었다. 흥행 랭킹 10위의 절반이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은 흥행에 있어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일본 영화를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이고 외화 중심의 멀티플랙스 씨어터에 걸리는 일본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90년대가 시작되는 1990년에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거대 레코드점 HMV가 뉴욕에 지점을 열면서 저패니메이션 코너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세편이 꽂혔다. 그리고 4년 후 이 코너에서는 천여 편의 저패니메이션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해 프랑스에서는 자국 애니메이션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텔레비전 방영 애니메이션을 규제하여 전체에서 1할 이상의 저패니메이션이 잘려나갔다. 저패니메이션은 90년대를 맞으면서 빠른 속도로 유럽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동시에 월트 디즈니가 <인어공주>으로 다시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중심에 복권하였고, 텔레비전에서는 [심슨 가족]과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들이 새로운 인기를 얻었다. 저패니메이션은 사방에서 도전을 받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저패니메이션이 90년대 영화현상의 가장 중요한 중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영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맞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장은 어떠한가? 일본 내에서의 배급, 흥행에의 공헌도와 겉보기의 화려함, 앞으로의 가능성과는 반대로 저패니메이션은 갈수록 약체화되고 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 붕괴 직전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붕괴 직전이라는 말에 긍정하게 되는 사태는 전부터 있었다. 92년 3월 일본의 성우들이 데모를 일으켰다. 데모의 이유는 임금 때문이었다. 그들의 개런티는 20년 가까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원인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류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제작비가 약 5, 6백만엔의 수준에서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안정됨의 실태는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얀 바탕, 선대로 녹음’이라고 하는 성우가 움직이는 그림 없이 하얀 바탕과 선밖에 보이지 않는 스크린을 앞에 두고 녹음하는 방식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원인은 모두 제작 스케줄의 지연 때문이다. 성우들만이 불만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90년 7월에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하청회사 조직, 애니메이션 사업자 협회의 총회가 열렸고 결국 1화당 100만엔 증액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은 현재 일본 전국에 200개 이상이 있지만 그 중 반수 정도가 사원 5명 이하이다. 전체의 3분의 2가 9명 미만이고 20명 이상의 프로덕션은 스무곳 정도이다. 즉 원래대로 하자면 1화, 즉 1회당 백명 이상의 스탭이 필요하지만 도저히 그 정도 인원을 사원, 계약자로서 채용할 수 있는 프로덕션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현장의 하청 구조는 제작회사에 떨어진 일과 제작비(1화당 600에서 800만엔)를 다수의 영세 프로덕션들이 나눠서 맡는 식으로 되어 있다. 초기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그 후에는 태국이나 필리핀 등의 인건비가 싼 지역에 발주를 해서 자국에 떨어지는 액수를 늘리는 노력을 했지만, 그러나 아시아 지역들의 인건비도 높아져서 최근에는 해외에 하청작업을 맡기는 것으로도 상황악화를 막기 어려워지고 있다. 점점 더 저패니메이션 산업 전체의 ‘자동붕괴론’이 제시되는 까닭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총 방송시간이 83년에는 월간 3,000분을 넘었던 것이 94년에는 월간 1,500분에 미치지 못할 만큼 제작편수가 줄어버린, 시장규모의 빠른 축소이다. 애니메이션 제작편수가 줄고 방송국에서 자체 제작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애니메이션계에서 일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 알려져서 신인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고, 성장한 인재들도 같은 이유로 게임 소프트 개발회사 등의 다른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
이미 저패니메이션은 일본 내에서도 사양산업이다.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어디에서도 대형제작 규모의 스튜디오와 매우 예술적이고 독립적인 인디펜던트들로 양극화되고 그 중간이 없는 것은 바로 애니메이션의 경제학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은 화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작화 매수의 감소가 그 한가지이다. 71년의 [루팡 3세]은 1화 30분당 작화 매수가 6에서 7천매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들이고 있는 히트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통상 3천매 정도가 상한선이고 그 이외의 프로그램은 2천매 정도라고 한다. 3천매라는 것은 한 커트에 10매 정도의 애니메이션이 성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라인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버텨나가고 있는 것’은 캐릭터 상품화의 머천다이징 수입과, 비디오와 해외 수출 등의 2차 사용수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비디오 렌탈 숍을 바라보고 만드는 비디오, 즉 오리지날 비디오 애니메이션(OVA)이다. 이 오리지날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통해 줄어든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의 구멍을 필사적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애니메이션 작가 자신이 애니메이션 붐에 희의를 느낀다는 점이다. <기동전사 건담>으로 일대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토미노 요시유키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길바닥에 나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위기 때문에 커머셜 쪽으로 옮기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커머셜에 손을 대면 싫더라도 상업주의에 섞이고 만다는 사실이 싫어서 포기했습니다만. 그러나 그런 제가 실제적으로는 건담을 만듦으로 인해 상업주의에 손을 더럽히고 말았지요. 사실은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들 언제까지나 로보트 만화나 보고 있을 거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작품에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틀려서 저의 작품을 보고 반다이에 입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본심을 말하자면 ‘너희들 그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기분입니다.”
세계영화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저패니메이션의 실제 상황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줄 위를 걷고 있는 곡예와 같다. 저임금, 중노동, 제작편수 감소로 인해 현장의 인력은 줄어가고 그로 인해 작품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오시이 마모루도 어쩔 수 없이 영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각기동대>을 만들었고, 미야자키 하야오도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제까지의 원칙을 포기하고 디즈니와 손을 잡고 세계배급에 나선 것이다. 2000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저패니메이션은 눈에 훤히 보이게 (그러나 일본 국외의 저패니메이션 팬들은 놀랄 만한 이런 상황은 잘 모르고 있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저패니메이션은 유럽에서 문화침략이라고 비판받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제2의 가미가제 아니메 기습’이라고 불린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패니메이션은 정작 점점 더 많은 서방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아이디어와 작화 그리고 인물과 스토리만을 제공하며 어떻게 해서든 최악의 ‘총체적 붕괴’만은 막으려고 버티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패니메이션은 산업이며, 예술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