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청사에서
유병덕
수필과 비평 등단, 수필울 동인
행정학박사, 평생교육사, 자산관리사
충청남도 복지보건국장, 공주시 부시장 역임
길섶에 노란 은행잎이 한 잎 두 잎 내려앉는다. 이맘때쯤이면 옛 청사 부근에 있는 병원을 찾는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건강검진을 받아오던 곳이기 때문이다. 검진을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데 낯익은 옛 청사가 반긴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경내로 들어섰다. 은행잎이 소슬바람 소리에 맞추어 깊어가는 가을의 추임새를 넣는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구는 모습을 보며 회억에 잠긴다.
한때 방황했다. 가슴속에 수많은 꽃이 피고 질 때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시골에서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어 근근이 호구지책 하는 중이다. 그런데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라고 노래하던 선친의 말이 가슴을 짓누른다. 가족을 챙기느라 주저주저했다. 세상사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젊은 혈기에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는 고시밖에 없었다. 고시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다가 겨우 일차에 합격했으나 포기해야 했다. 공교롭게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여 긴급하게 병구완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건 운명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얼마나 될까.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옛 충남도청사로 첫 출근을 하던 날이다. 이른 새벽에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와서 대전역에 내리니 석가탄신일 봉축 행사가 화려하다. 역에서 도청까지 불자들의 거리행렬이 장관이다. 마치 시민들이 나와 초라한 내 모습을 위로하는 듯했다. 봉축행렬 사이로 아장아장 걷던 아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옛 충남도청사는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 중앙청사로 자리했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사 와서 자리 잡고 대전광역시를 잉태하여 출산하였다. 이어서 행정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를 탄생시켰다. 이곳은 충남도 행정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새로운 청사가 내포로 떠났으나 한평생 추억이 옛 청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주야장천 이곳에서 지냈다. 밤을 낮 삼아 일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처음에 예산실로 부임했다. 예산실은 돈을 다루는 부서다. 돈은 사람의 피와 같아서 한곳에 뭉치면 병이 난다. 피가 온몸으로 골고루 퍼지야 건강하듯 돈도 골고루 퍼져야 사회가 건전하다. 그늘진 곳에 볕이 들게 하고 소외된 곳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느라 노심초사했다. 출근은 하는데 퇴근은 언제 하는지 알 수 없다. 예산작업이 한창 무르익으면 밤인지 낯인지 가리지 못한다. 예산편성 순기를 맞추느라 도청에서 먹고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정생활은 엉망이다. 아내는‘검둥이가 세수하나 마나고, 장님이 눈뜨나 마나’라며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아들도 아버지와 추억이 없다고 가끔 툴툴거렸다.
도지사실은 옛 모습 그대로다. 옛 도지사실 문을 여니, 문득 혼났던 기억이 스친다. 각 부서에서 예산 요구한 내용을 나름대로 꼼꼼하게 챙겼으나 보고하다 보면 한두 가지 실수가 나온다.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고 했건만 매정하게 나무랐다. 평소 찾아오는 이들에게 역지사지하라고 당부하던 이가 밤새 야근한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고 걱정해서 야속했다. 하나 예산 부서는 중요부서다. 자칫 빈틈이 생기면 도정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랬으리다.
한때는 내무부 장관이 시도예산을 승인했다. 지금은 지방의회에서 예산안을 심의‧의결하지만, 당시는 도지사가 편성한 예산안을 장관의 승인을 받아 확정했다. 따라서 예산 승인을 받느라 서울에서 오랜 시간 보냈다. 관선 자치 시대라 장관의 힘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그 부하직원이 빨간 사인펜을 하나 들고 춤추면 거기에 놀아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도지사가 관심 두는 예산은 용케 찾아내어 삭감한다. 삭감한 예산을 살려내느라 그들과 술밥 먹어가며 숱한 실랑이 했다.
한평생 즐풍목우櫛風沐雨의 세월을 보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 걱정이다. 휴가는 물론이요. 주말이나 공휴일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일 중독자처럼 사무실에 나오지 않으면 불안했다. 오로지 직장 일에 충실했다. 그러니 집에서는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른다. 이뿐 아니다. 지인들이 찾아와도 바쁘다는 핑계로 돌려보내곤 했다.
갑년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낯설고 생경하다. 그간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를 살피지 못한 탓이 크다. 어리석게 직장 일 하나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기차처럼 직진해왔다. 현직에서 물러나 보니 직진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동차 운전처럼 때로는 좌회전이나 우회전, 그리고 후진이 필요하다. 사실 여럿이 어울려서 살려면 타인을 위해 때로는 돌아가기도 하고 가끔은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삶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어리석게 살아왔다. 멍하니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한여름 푸른 나뭇잎이 혼자서 숲을 이루지 못한다. 다른 나무와 어울림은 물론, 보이지 않는 뿌리가 땅속으로 내려가서 수분을 섭취하기에 가능하다. 어리석은 이는 제가 잘나서 성공한 줄 알지만,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들이 뿌리처럼 단단하게 버티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푸르던 젊은 시절을 모두 잊고 새봄을 준비한다. 어리석은 이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지나간 영광 타령이다. 나무처럼 내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부질없는 성공만 자랑하고 있다. 성공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곡예사처럼 여러 개의 접시를 동시에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어느덧 해가 이울어간다. 만시지탄이나 지나간 영광은 가슴에 묻고 가족과 이웃을 살피고 친구와 어울려 지내고 싶다. 옛 청사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 그립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