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멋있다』, 공선옥, 창비.
<라면은 멋있다>는 공선옥의 청춘소설로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민수.의 이야기다. <라면은 멋있다>는 <나는 죽지 않겠다> 공선옥 소설집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다. 책은 청춘소설로 이민수가 주인공이다. 민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민수 여자 친구인 연주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둘은 사귄 지 한 달 정도 된 사이다.
예전에 사귄 여친 이름은 진희였다. 민수는 진희와 연주의 행동과 말투를 종종 비교한다. 진희에게 하면 할아버지 같다는 둥, 꼰대 같다는 둥 핀잔을 들었다. 솔직히 진희는 내가 꼰대 같아서 떠났다고 말했지만 민수는 알고 있다. 가난한 남자친구가 싫었을지도. “진희가 나를 떠난 이유를. 그것은 내가 가난한 집 애이기 때문이다. 저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내게 없기 때문이다. 그 애는 제 생일인데도 내가 선물을 사주지 않았다고 잔뜩 삐쳤던 것이다.”(p.72)
민수의 집은 학원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형편이다. 누나가 대학에 입학하자 집안 경제는 초비상 사태다. 누나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장례식장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민수는 맘 잡고 공부를 하려고 엄마에게 독서실 비를 달라고 하자 줄 수 없는 눈치를 보낸다. 겨우 누나가 독서실 비를 끊어서 다니게 되었는데 그만 거기서 연주를 만난 것이다. 사실 여자애들이 독서실에 많이 다녀 꼼수도 있었던지만 말이다.
엄마는 ‘소문난 갈비’집에서 기름때 묻은 불판 닦는 일을 하고, 아버지는 길거리 좌판을 벌여놓고 “메이커 기지바지가 한 벌에 단돈 만 원!”(p.75)을 외치는 일을 한다. 민수는 좀 창피했다. 연주에겐 집이 가난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연수가 집에 가면 뭐하나는 질문에 흔히 아이들이 집에서 하는 일 “밥 먹고 책 좀 보고 컴도 좀 하다가 음악도 듣고 그러다가 자는”(p.75)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민수는 그럴 형편이 못 된다. 민수는 집에 오면 책을 보는 대신 식구들 밥을 해놓아야 한다. 국도 끓여야 한다. 김칫국도 끓여도 넣을 두부가 냉장고엔 없다. 먹고 사는 일이 빡빡한 민수네 가족이다.
부모님은 치킨 가게를 하다 망했다. 차압 딱지가 붙었을 때 용케 살아남은 게 라디오다. 민수는 라이오를 벗 삼아 지낸다. 연주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민수는 다세대주택에 산다. 예전엔 지하에서 살았는데 2층에 살게 된 건 다행이다. 지하보단 훨씬 나은 형편이니까. 엄마는 “환경이 아무리 안 좋아도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p.77)고 한다. 지하방보다는 백배 나은 다세대주택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연주는 진희와 다르다. 연주는 진희처럼 “재섭써,”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착한 아이다. 연주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민수는 아뿔사 사고를 치고 만다. “연주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너 생일 선물로 폭신한 코트 한 벌 사줄게.”(p.78)라는 말을 뱉어버린 것. 연주의 생일은 무심하게도 일주일 뒤라는 것이다. 민수는 연주에게 사줄 코트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구하러 다닌다. 여드름이 났다는 이유로 햄버거 가게엔 퇴짜를 맞고 친구 용우를 찾아간다. 용우는 친구들 사이에 ‘알바창구’로 통한다. 용우는 편의점 알바를 소개해줬다. 민수는 처음으로 알바를 해본다. ‘돈만 아는 짠돌이라 여겼던 용우가 새삼스레 위대해 보였다. 어디 용우뿐인가. 연주도 있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왜 한 번이라도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르바이트 한번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보내버린 시간들이 무지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p.82)
연주네 아버지는 높은 건물에 간판을 다는 직업을 한다. 그래도 남자친구 민수에게 떳떳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민수는 “너희 아빤 뭐하셔?”(p.85)라고 연주가 묻자 “울 아부지는, 음, 그냥 상업이지 뭐.”(p.85)라고 얼버무린다. 아버지 직업이 부끄럽기도 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는 민수다.
연주와 민수는 똑같이 가난한 집 안의 자녀들이다. 연주는 그래도 당당하다. 아버지가 남들이 보기엔 그럴싸한 직업이 아님에도 떳떳하게 말한다. 반면 민수는 아버지 직업이 부끄럽다. 아버지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한 번 더 부끄럽다. 민수는 연주를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연주랑 얘기를 하면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민수.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사서 민수와 연주는 공원으로 간다. 어떤 대화를 나누어도 즐거운 민수다. 연주는 담임에게 들은 말을 민수에게 하며 사회에 일어나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다.
-나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때야, 또 다른 아파트 광고가 생각났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단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줍니단가? 하여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광고 문구 말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 양극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이따금 텔레비전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했던 말을 내 말인 것처럼 해서 나는 얼른 말했다. “세상이 갈수록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게 되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살게 되는 게 문제야.”(p.84)
둘은 학생이고 돈이 없다. 민수는 연주가 하는 햄버거 아르바이트를 끝내면 공원에서 캔커피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고 헤어지는 게 전부다. 연주에게 생일 선물을 사주기 위해 편의점에서 가불을 해서 만난 민수는 들떠있다. 옷 가게로 같이 연주와 가면서 취향을 물었다. 빨간색 코트가 좋다는 연주. 빨간색이 보이는 코트 가게 앞에서 연주는 멈칫거린다.
“이제 됐어.”,
“옷 안 사?” 이제 곧 연주가 입게 될 빨간색 코트 생각에 내 뺨이 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참이었다. “넌 이미 나한테 옷 사 준거나 마찬가지야.”
“아직 옷 안 샀잖아.”
“그 마음이면 됐어.” 순간, 분한 마음이 엄습했다.
“야, 내가 니 옷 사주려고 편의점에서 가불 땡겨가지고 왔단 말이야!”
“그러니까 더 못 쓰지. 그 돈 엄마 아빠한테 갖다 드려라 야. 너희 집도 우리 집 못지않게 힘든 것 같던데 니가 이렇게 함부로 돈을 쓰면 되겠냐? 사람이 양심이 있지.”(p.90)
연주는 옷은 마음으로 받겠다며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넌 멋있어.”, “라면 먹어서?” (p.92)
연주는 민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코트를 사 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코트를 사기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자신에게 코트를 사 주고 싶다는 마음만 받겠다는 연주다. 연주는 이런 민수가 멋지다. 특히, 라면을 먹을 땐 더욱 멋져 보인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 이야기지만 기특한 행동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연주와 민수를 통해 가진 거 없고 힘든 상황에서도 남을 위할 줄 알고 배려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라면은 서민의 음식이다. 싼 값으로 한끼 해결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멋지게 먹을 줄 안다. 품위 있는 음식이 아닐지라도 어떻게 먹냐에 따라 라면을 근사하게 보일 수 있다. 학생 신분에서 돈도 없고 가난하지만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멋지다. 많은 걸 가졌다고 멋있는 건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멋이 달라진다는 걸 민수와 연주를 통해 보여준다.
책은 가볍고 슬림하다. 내용은 따뜻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게 된다. 다소 신간이 아니어서 시대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길 추천한다.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마음을 지킬 줄 아는 멋진 민수를 알게 될테니까 말이다. 민수같은 친구가 어디 없을까 찾게 될지도 모른다. 아님, 자신이 멋진 아이가 될런지도.
서평-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