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p.36)
- 정의론의 핵심이자 롤스의 생각이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난 문장이다. 다수가 절대선인 공리주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생각이며 갈수록 소수의 인권이 침해되는 요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2. 사회란 상호 간의 이익을 위한 협동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해관계의 일치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의 상충이라는 특성도 갖는다. (p.37)
-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정이나, 애국심 같은 도덕적 관념이 아닌 철저한 이익을 위해 협력한 체계라 롤스는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상충해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는데 서구 사상이라 동양사회와 약간 이질감이 든다. 예로부터 정과 애국심 등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를 강조한 유가사상과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3. 상이한 정의관을 가진 사람들은 개인들 간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를 할당함에 있어 어떤 부당한 차별이 없을 경우, 사회생활의 이득에 대한 상충되는 요구를 적절하게 조정해줄 규칙들이 있을 경우 제도가 정의롭다는 점에 합의 할 수 있다.(p.38)
- 우리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제도의 정의라 생각한다. 절대적인 정의가 존재할지는 비록 의문이지만 제도나 법 등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 반드시 숙지해야할 사항이다.
4. 정의관이 갖는 뚜렷한 역할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주고 적절한 배분의 몫을 정해주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방식은 효율이나 조정, 그리고 안정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p.38)
- 롤스는 정의론을 전제로 이익의 분배와 사회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분명 모두가 이 방식을 환영할 것이다.
5. 공리의 원칙은 상호 이익을 위해 모인 평등한 사람들의 사회적 협동체라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p.49)
- 이 생각에는 의문이 든다. 비록 공리주의가 다수의 횡포가 심하기는 하지만 전제는 평등한 개인의 협동체라는 가정 하에 우열을 가리는 이론이 아니었나?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공리주의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6. 목적의 체계들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는 점과, 그리고 각자는 어떤 원칙이 채택되는 간에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을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p.55)
- 인간 상호간의 평등을 나타내고 있다. 롤스는 인간의 목적의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자신의 가치관과 정의감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을 전제로 정의론 이론을 진행하고 있다.
7. 이쪽저쪽을 맞추면서 때로는 계약적 상황의 조건들을 변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판단을 철회하거나 그것을 원칙들에 따라 조정하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는 합당한 조건들을 표현해주면서도 정리되고 조정된 우리의 숙고된 판단에도 부합하는 최초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나는 반성적 평형reflective equilibrium 이라 부르기로 한다.
(p.56)
- 롤스는 반성적 평형이라는 상황 아래서 인간의 합의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만족을 모르며 끊임없이 판단을 수정하고 유보하며 후회하는데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 실제로 적용되었을 때 일어나는 괴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의문이 든다.
8. 나는 이러한 원초적 입장이 순수하게 가상적인 것임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가 실제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러한 원칙들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원초적 입장의 설명 속에 나타난 조건들이 사실상 우리가 받아들이게 될 조건들이라는 것이다. (p.57)
- 위의 질문에 롤스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우리의 목표나 제 1원리는 우리가 원초적 입장이라는 상황 속에서 선택된 조건들이었다.
9. 사회 정의란 집단의 복지라는 집합적 개념에 적용된 합리적 타산rational prudence의 원칙인 것이다. (p.60)
- 정의론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칫 개인의 자유와 평등만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정의론의 최종 목적은 집단의 복지에 있다.
10. 올바른 결정이란 본질적으로 효율적인 관리의 문제이다. 사회 협동체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개인의 선택 원칙을 사회로 확대한 결과이며, 또한 이러한 확대가 제구실을 하도록 공평하고 동정심을 가진 관망자의 상상력의 작용을 통해서 모든 인간을 하나로 합친 결과이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개인들의 차이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게 되는 것이다. (p.65)
-공리주의는 개인의 차이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 반면 정의론은 제도와 법을 통해서 개인의 선택 원칙을 사회로 확대하여 결과를 합치고자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제도와 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시할까.
11. 흔히 공리주의는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또한 이에 대한 정당한 근거들도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자유권과 사상의 자유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또한 그들은 사회의 선은 개인들이 누리는 이득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욕구의 모든 체계를 융합함으로써 보다 자연스러운 사유 과정을 거쳐 한 개인의 선택원칙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공리주의는 개인주의적이지 않다.(p.67)
공리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공리주의는 분명 개인의 자유와 사상을 존중하지만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수의 권리는 분명 침해되고 있다.
12. 반면에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먼저 평등한 장의 원칙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자신의 보다 특정한 목적들에 대한 지식 없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p.69)
특정한 목적들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평등한 장의 원칙을 받아들이면 아무런 의식 없이 작업을 수행한다는 뜻인가?
13. 이러한 것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있어서는 옳음(義)이라는 개념이 좋음(善)이라는 개념에 선행한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p.69)
정의론은 좋음(善)보다 옳음(義)이라는 개념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좋다고 여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모두가 동의하는 옳음이 우선인 것이다.
14.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대한 단순한 사실적인de facto 해결이나, 기존 관습과 통념적 기대에의 의존을 넘어설 수 있는 이해와 합의에 어느 정도 이르기 위해서는, 신조들 간의 우선을 가려 주거나, 적어도 문제를 보다 좁은 범위로 제한해줄 좀 더 일반적인 체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p.75)
목적의 우열성을 가릴 수 없다는 직관주의와 달리 정의론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문제를 좁은 범위로 제한함으로써 구체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이해관계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15. 그래서 직관주의를 논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숙고된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여러 원칙들이 합당하게 가려질 비중을 설명할, 인정받을 만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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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1][1][1].hwp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다면 직관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롤스는 보았다. 그러나 가상의 추론과정을 전제로 한 이론에 모두가 동의할 만한 실제적 기준이 나올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16. 첫 번째 점은 정의의 원칙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될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떤 선택적 상황의 결과이다. 합리적인 존재인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이러한 원칙들의 우선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p.82)
- 원칙과 목적의 우선성을 합리적 존재인 원초적 당사자들은 고려하겠지만 실제의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비이성적인면을 보일 때가 많다. 어디까지나 가상의 상황일 뿐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17. 서열적 배열을 함으로써 모든 원칙들의 경중을 한꺼번에 가리지 않아도 되며, 그 순서상 앞선 것은 뒤따르는 것에 비해 이른바 절대적인 비중을 가지며 예외 없이 타당하게 된다.(p.84)
-롤스는 원칙과 목적에 서열을 두고 앞선 원칙이 더 비중을 가지며 중요하다 여긴다. 이런 목적의 우선성을 고려하다보면 그가 그토록 우려하는 소수의 자유를 뺏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18. 도덕 능력에 대한 기술은 일상생활에서 인용되는 규범이나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원칙들과 이론 구성을 포함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아주 정교한 수학과 같은 정도의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원초적 입장과 거기에서 원칙들에 대한 합의라는 관념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사실상 이러한 관념은 오히려 단순하며 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p.89)
-도덕능력을 아주 정교하며 수학과 같은 구체적인 이론 구성으로 본다는 점에서 놀랐다. 보통의 도덕능력은 추상적이며 주관적이라 생각했는데 롤스는 이를 부정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19. 예를 들면 도대체 반성적 평형 상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p.92)
-롤스는 이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을 회피하고 있다. 그 또한 이 전제가 가상의 것이며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 직관주의는 건설적이지 못하고 완전설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 못된다. 나의 가정은 계약론이 적절히 손질만 되면 이러한 부족한 점들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이러한 방향에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p.95)
-그럼에도 롤스는 정의론이 직관주의와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실현 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분명 이상적인 의미에서 정의론은 합리적이며 실현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실제 현실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