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逆麟) -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림
[거스릴 역(辶/6) 비늘 린(魚/12)]
동서에 걸쳐 신화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용은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용과 관련된 성어도 많아 龍頭蛇尾(용두사미), 龍虎相搏(용호상박) 등은 이 난에도 소개됐다.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四靈(사령)이라 칭하며 신령스런 동물 증의 으뜸가는 용은 왕을 비유하여 龍顔(용안), 龍袍(용포), 龍床(용상) 등으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거꾸로 난 용의 비늘 逆麟은 모두 81개 중 목 아래에 단 1개 있다고 한다. 이것의 뜻이 임금의 노여움을 가리키게 된 것은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법가 韓非(한비)가 쓴 ‘韓非子(한비자)’ 이후부터다.
당시에는 지혜로운 자들이 너도나도 군주를 설득하여 벼슬을 얻으려 했는데 등용되기란 그야말로 登龍門(등용문) 넘기였다. 군주라 해서 모두 성인이 아닌 만큼 보통 사람과 같이 약점이 있었다. 유세 중에 잘못 왕의 치명적 잘못을 건드리게 되면 목이 달아날 판이고, 좋은 점만 주워섬기면 벼슬 얻기 위해 아부한다고 여긴다. 여러 가지 그 어려움을 모은 것이 ‘說難(세난)’편이다. 說는 물론 ‘말씀 설’이지만 遊說(유세) 때와 같이 이 때는 ‘달랠 세’.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목 밑에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 바로 역린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기후하유역린경척 야인유영지자 즉필살인). 군주에게도 이 역린이 있으므로 유세하려는 자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徑은 지름길 경, 嬰은 어린아이 영.
오늘날 逆麟이 꼭 군주가 아니더라도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까지 쓰이긴 하지만 왕조시대도 아니고 震怒(진노)와 함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옳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