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정토종 제10조 행책 대사
행책 대사 진영을 본따 만든 그래픽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얕보지 말라. 일념을 지혜광명으로 돌리면 곧 본래의 깨달음과 같다(莫輕未悟 一念回光 便同本得) - 〈행책대사 정토경어〉
깨달음의 비결은 ‘일념회광’에
예로부터 도를 찾고 깨달음과 열반, 부처를 찾는 구도자들은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근기와 수행력에 좌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승의 가르침은 ‘본래 부처’를 가린 분별ㆍ망상ㆍ집착만 제거하면 본래의 성품, 깨달음(覺ㆍ붓다)을 회복해 진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진 구도자들은 오랜 역경과 슬럼프를 극복하고 자성불을 회복하여 스스로도 해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깨달음의 행을 원만하게 구족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조사스님들은 구도자들에게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무한한 불성의 힘을 꺼내 쓰라고 조언을 하신 것이다.
행책(行策) 대사가 〈정토경어(淨土警語)〉를 통해 밝힌 것처럼, 예로부터 조사ㆍ대덕이 개오(開悟)한 비결은 바로 ‘일념회광(一念回光)’에 있다. 여기서 ‘회(回)’는 고개를 돌린다는 뜻이고, ‘광(光)’은 자성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지혜광명을 말한다.
천태교의 통달, 정토결사
불칠법회 전통 만든 당사자
염리심 가져 왕생 쉬워
‘일심불란’ 돼야 자성의 지혜ㆍ공덕 현전
그렇다면 자성의 지혜광명을 어떻게 돌리라는 것일까? 그 답은 ‘이념(二念)’이면 돌릴 수 없기에 오로지 ‘일념(一念)’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일념은 곧 일심불란(一心不亂)이다. 이 일념을 닦으려면 다른 생각과 뒤섞지 않으면 된다. 한편으로 염불하면서 한편으로 망념과 뒤섞으면 공부가 진보할 수 없다. 수행자가 망상에 휘둘리지 않고 순일하게 염불하게 되면, 이 일념이 곧 ‘아미타불’이고 ‘나무아미타불’이다. 자나 깨나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한다면 진정으로 자성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지혜와 공덕이 현전할 수 있다.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염불인들이 오랫동안 공부해도 한 덩어리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열심히 염불을 하면서도 일어나는 온갖 잡다한 망념에 관여하고, 그 망념에 대해 걱정하며, 그 망념을 상기하고, 그 망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념에 상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공부의 비결이다. 망념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된다. ‘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단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염하고 또렷하게 들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일념회광(一念回光)이다. 근대 중국 정토종의 대덕인 하련거 거사는 〈정어(淨語)〉에서 “망념에 상관하지 않는 것을 제1념(第一念)이라” 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제2념, 제3념에 떨어지지 말고 제1념을 사용하여 일념회광을 닦으라”고 하였다. 염불인이 생활하는 가운데 사람을 상대하고 일을 처리하며 사물을 접하는데 제1념을 사용한다면,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제대로 염불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리라.
5년 장좌불와로 선(禪)의 종지 깨쳐
이와 같이 염불행자들에게 실질적인 수행지침이 되는 〈정토경어〉를 남긴 행책 대사는 훗날 정토종 제10대 조사로 추존되었으며, ‘윤회의 흐름을 끊다’란 뜻을 지닌 절류대사(截流大師, 1626-1682)로도 불린다. 명나라 희종(熹宗) 천계(天) 6년(1626)에 태어나 청나라 초에 활동한 대사는 중국 강소성(江蘇省) 선흥(宜興) 사람으로 속성은 장(蔣)씨이며 휘(諱)가 행책(行策)이며, 그의 부친은 전창(全昌)이라는 분이다. 부친은 유교의 선비로서 일찍부터 유불선에 달통한 감산(?山, 1546-1623) 대사와 교류해 왔다. 그런데 감산 대사께서 세상을 떠나 등신불이 되셨는데(남화선사에 육조 대사와 나란히 모셔져 있음), 3년 후 꿈에 대사께서 주장자를 짚고 방에 들어와 은연히 앉으심을 보고 임신이 되어 낳은 분이 행책 스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이름이 몽감(夢?)이었다.
행책 스님이 성년이 될 즈음 부모님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자, 세간을 떠나 도를 닦겠다는 발심을 하게 된다. 드디어 23세에 무림(武林, 지금의 절강浙江 항주杭州) 이안사(理安寺)에 출가하여 약암문공(若庵問公) 선사 문하에서 공부하는 법을 배웠다. 거기서 무려 5년간 옆구리를 바닥에 닿지 않으며 눕지 않고 애써 정진하여 마침내 깊은 진리의 근원(法源)을 깨달았다.
법화삼매 닦아 천태종 정수 통달
청나라 순치(順治) 8년에 문공 선사가 입적한 후, 행책 스님은 주로 보은사(報恩寺)에 머물다가 우연히 식암 영(息庵瑛) 선사를 만나 정토법문을 듣고 염불을 열심히 하게 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전당(錢塘)에 있는 초석(樵石) 법사를 뵙고 천태(天台) 교리를 열람해 보고는, 함께 정실(淨室)에 들어가서 법화삼매(法華三昧)를 닦았다. 행책 스님은 이 법화삼매를 수행하면서 숙세의 지혜가 갑자기 돈발되어 천태교의의 정수를 철저히 통달하게 된다.
강희(康熙) 2년(1663)에 이르러 행책 스님은 항주 법화산 서쪽 시냇가에 연부암(蓮?庵)이라는 암자를 하나 지어 그곳에서 전적으로 염불수행에 매진해 득력했다. 그곳에서 7년 간 주석한 스님은 그 후 강소성 오산(虞山, 지금의 상숙常熟 땅) 보인원(普仁院)에 가 염불을 창도하고 정토결사(蓮社)를 만들자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아울러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염불정진 하는 불칠(佛七, 7일 참선정진은 ‘선칠’이라 한다)법회를 열면서 대중이 함께 모여 정진하는 큰 염불도량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불칠법회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정토종의 시원인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경우 한 번에 무려 2천여 불자들이 모여 7일간의 ‘나무아미타불’ 염불정진에 매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칠’법회로 7일 용맹정진도량 세워
행책 스님은 정업(淨業)을 닦는 수행자가 오랫동안 염불해도 윤회를 벗어난 청정한 세계인 정토에 왕생하는 자가 드문 이유를 통찰하고, 제자들의 근기와 성향에 맞는 방편을 선택하여 간절한 노파심으로 약방문을 제시하듯 지도하였다. 대사가 파악한 바로는, 사람들이 왕생하지 못하는 원인은 모두 탐욕과 애정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그 굴레에 메여있기 때문이었다. 왕생극락이 비록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의 힘(本願力)’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염불행자가 현생에 대한 집착이 강할 경우는 왕생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행책 스님은 염불행자들이 왕생극락에 대한 진실한 서원을 발하는 동시에 사바세계의 삶을 싫어하는 염리심(厭離心)을 갖고 삼계를 벗어나려는 출리심(出離心)을 가져야 한다고 간절히 당부했던 것이다.
대사의 광명 보고 2인이 지옥에서 환생
그토록 활발하게 정토법문을 열어보였던 행책 스님은 당신의 정토업(淨土業)을 성취하시자 조용히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보인원에 주석한 지 30년 때 되는 강희(康熙) 21년(1682) 7월 19일 세수 57, 승랍 35세를 일기로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에는 스님의 왕생과 관련한 기이한 일화 두 건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손한(孫翰)이란 사람이 병으로 앓다가 죽었는데, 하루를 지나 다시 깨어나서 하는 말이 “명부(冥府)에 가서 심판을 받던 중 갑자기 밝은 광명이 천지를 밝게 비추니 염라왕이 엎드려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방금 이 광명은 청나라 행책 대사께서 왕생극락 하시면서 비추신 광명인데, 너희들이 다행히 그 빛을 받은 인연으로 많은 죄업이 소멸되어 다시 환생시켜 주니 나가서 많은 공덕을 짓도록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남관 밖에 살고 있는 오씨(吳氏)의 아들도 역시 깨어나서 손씨와 똑같은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 두 사람은 크게 발심하여 염불수행을 철저히 행한 것은 물론이다.
대신심 있어야 염불삼매ㆍ왕생 가능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된 이러한 기록을 요즘 사람들이 보면 진위여부를 따지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종에서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스승과 공안(公案)에 대한 대신심(大信心)을 강조하듯이, 정토종에서도 ‘믿음’이 왕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알아야 한다. 〈대혜선사어록〉에 ‘신득급(信得及)’을 강조했듯이, 어떤 수행방편이든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信)이 있어야만 체험하여 증득(得)할 수 있고, 수행의 과지(果地)에 도달(及)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임종시 윤회 벗어나는 생사해탈법
오늘날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만년에 질병이 몸에 달라붙고, 임종시에 매우 큰 고통이 따를 것이며, 어떤 분들은 치매로 몇 년 끌다가 운명하는 때에 혼미하고 정신이 맑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의 큰일(大事)로 정토에 왕생함을 가장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진실한 믿음, 간절한 염불로 시시각각 마음에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다면, 눈빛이 땅에 떨어지는(眼光落地) 크나큰 고통의 순간에도 여여하게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여 육도윤회의 고통스런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기연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염불이 아닌 참선과 위빠사나를 통해 견성성불하거나 아라한이 된다면 그 또한 생사해탈의 큰 길이겠지만, 그 확률은 과연 60억 분의 몇이나 될까? 냉철한 판단으로 생사해탈의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지름길이 담긴 제불보살과 조사스님들의 특별법문(정토법문)에 귀 기울여 보시길 간절히 발원한다. 나무아미타불!
출처 : 현대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