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라는 동네의 작은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바치신다. 지팡이를 가진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엠마오까지 예수님과 동행했으면서도 그분이 부활한 주님이신 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 빵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탁 주변에는 그 마을에 살던 어른들과 아이들이 있고 문 밖에는 아이들을 데려온 신심 깊은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이 작품은 루카 복음이 전하는 엠마오의 만찬을 토대로 그려졌는데 성서에서 언급한 두 제자 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루카 24,29-31).
복음사가 루카는 자신이 성체성사(미사) 중에 가졌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현존 체험을 엠마오의 만찬 기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비록 우리가 부활신앙을 간직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그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 방식과 우리의 현존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 시공의 제약을 뛰어 넘어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기 때문에 시공의 제한을 받고 사는 우리의 눈에는 그분이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그분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게 된다.
우리 성당에서 거행되는 평일 10시 미사에는 할머니와 함께 유모차를 타고 오는 아기들도 몇 명 있다. 그 가운데는 세 살짜리 레오도 있다. 그 아기는 장난꾸러기지만 미사 시간만 되면 어른들보다도 더욱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여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평일 미사가 다 끝났는데도 집으로 가지 않고 성당 마당에서 할머니께 미사가 없었다며 투정을 부렸다. 알고 보니 그날 미사가 봉헌되는 동안 아기는 유아방에서 깊은 잠에 곯아 떨어져 있었고 눈을 떠보니 그만 미사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유모차에 앉아서 미사가 다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레오는 매우 실망 가득한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래도 성당 안으로 가자고 투정하였다. 할머니와 나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텅 빈 성당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기가 제단 쪽을 손짓하여 우리는 커다란 십자고상이 모셔진 제단으로 향하였다. 아기는 유모차에 앉은 채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성당에 머문 후에 아기는 성당을 나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십자가 아래에 머물며 기도하던 레오를 바라보며 “저 아기의 마음속에 담긴 신앙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신앙을 담아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간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레오가 미사에 참례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생생하게 만나는 것처럼 나도 성체성사를 집전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아기의 신앙이 어른이나 성직자보다도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레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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