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만 해도 쨍할 것같은 맑은 하늘이었는데 점차 흐려지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집니다. 오늘 비바람이 거셀 것이라고 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시작될 줄이야...
한달살이 정리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습니다. 제주내려올 때 아이들과 함께 배타고 도와주었던 대학동기가 이번에도 도와주기로 해서 일찍 왔는데도 그 친구 아니었으면 정리는 반도 못 끝내고 왔을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닦고 비우고 버리고 떠나는 날 하루 전후는 온통 살았던 흔적없애기로 혼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비는 차갑고 굵지만 바람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음에도 지난 번 진도항에서 제주올 때 겪었던 심한 멀미 (그 때도 비바람이 아주 심했습니다)의 기억으로 인해 이번에도 걱정이 큽니다. 다행히 완도행 오후 5시배는 규모도 컸고 아이들 장애덕에 차량선적도 모두 차량탑승 상태에서 마친데다 다른 승객보다도 훨씬 빨리 승선하여 특별방에 배정되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승객들과 전혀 섞이지 않고, 마음껏 먹고,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눕기도 하면서 2시간 반을 편하게 보냈습니다. 혹시라도 멀미할 새라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일단 배가 크니 배의 요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갑판에도 나갈 수 있어서 바람도 쐬고, 완이나 리틀준이에게도 이런 기회를 주고 싶었으나 난간을 구성하고 있는 쇠가로막 간격이 너무 넓어 위험도가 너무 큽니다.
제주도 들어올 때, 나갈 때 모두 동행해 준 대학동기가 완이의 변화에 너무 놀랍니다. 한달 전에 비해 너무 좋아졌다고 그게 너무 느껴진다고 합니다. 배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모습하며, 레일바이크 함께 타러갔을 때 매표소입구를 통과하지 못해 생난리쳤던 그 때가 불과 한달도 안된 싯점입니다.
차를 선적하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올라가야 하는데 완이가 거부해서 계단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거부하는 정도나 시간이 지난 날하고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말로 설득이 되고 우리가 앞서가자 지켜보더니 약간의 뜸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정말 감사할 지경입니다.
방 안에서도 함께 놀이가 되고 통제가 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의사표시가 됩니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빛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빛을 적극추구하는 대범함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빛만 보면 팔을 올려 두 눈을 가리던 녀석이었는데 완이의 변화가 너무 반갑습니다.
편하게 누워 형광등 불빛을 쫒는 녀석의 눈빛이편안해 보입니다. 대자연의 쏟아지는 햇빛 속에마음껏 노출되었던 놀이 경험이 이렇게 금방 표시가 납니다.
이제 때가 된건가? 기쁜 기대를 저버리게 않게 배가 거의 완도에 다다를 즈음 베개 정리를 해달라고 하자 이걸 다 해줍니다. 이 모습에 동행해준 대학동기의 입이 딱 벌어져 연실 놀라움을 금하지 못합니다. 이제 완이에게 봄이 온걸까요?
완이의 한달간의 특별한 경험들이 완이에게는 분명 큰 변화에의 신호탄이 된 것은 맞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수두룩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을 것이고 세상에 발들여놓기에 큰 방해가 되었던 시각적 청각적 자극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게 되었을 겁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큰 건물 속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웅성거릴 때 나오는 저주파의 소리들이나 환한 불빛들, 그런 괴로운 자극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기위해 겪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가는 듯 합니다.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야말로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운 교육입니다.
이번 여행동안 준이는 결국 바다들어가기는 실패했지만 사회적 교류에 대한 적극성이 많이 생겼습니다. 끈덕지게 자기에게 달라붙는 두 녀석 덕분입니다. 주말없이 저랑 붙어있다보니 저에 대한 필요성도 더 지속적으로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요.
리틀준이의 시야의 범주도 좀더 확대되어감을 느낍니다. 청각자극 욕구는 더 세어지고 더 많이 하기에 이 기회에 청각훈련이 집중적으로 개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눈만 뜨면 플라스틱통을 두드려대는 것이 최우선, 그 다음 배채울 것 찾기, 소리질러대기 등으로 이어지는 이 행동들은 리틀준이의 감각해소 갈 길이 얼마나 먼 지를 말해줍니다.
울음소리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이기에 쩌렁쩌랑한 소리에 귀가 떨어질 것 같지만 타고난 목근육 성량입니다. 울거나 소리지르기 만으로 소모될 장기는 아닌데 더 효과적인 개선방법을 뻔히 알면서 데리고 살면서도 부모에게 제안을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보충제 제안도 차마 하기가 어려워 제가 그냥 해주고 있습니다. 추가 비용부담 이야기는 저도 늘 부담스럽습니다.
두 녀석 보충제 열심히 해주고, 시간되는대로 바깥으로 끌고다니고, 생활 속에서 필요한 부분 수정해가면서 지금은 이만한 개선방향은 없을 겁니다. 완이의 빠른 전환과 리틀준이의 확실히 빨라진 행동들, 모두 저를 감격하게 만들어줍니다.
완도항에서 다시 돌아가는 대학동기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는 해남 땅끝리조트에 들어왔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어쩔 수 없이 라면으로 때우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통두드리며 저를 기어이 주방 쪽에 세워놓습니다. 이 시간에 제가 주방 쪽에 서있어야 마음이 편한 모양입니다.
오늘은 세 명의 녀석들 모두 집에 돌려보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태균이, 어제 완도에 도착하니 몇 개의 연락처를 찾아 제 눈 앞에 보여줍니다. 완이아버님, 리틀준이 어머님, 준이집 도우미 연락처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니고 내일이야... 하고 알려주니 OK사인을 해보입니다. 휴대폰은 정말 우리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ㅎ
첫댓글 아고 넘 고생하셨습니다. 대학 동기님도 감사합니다. 주말 잠깐이라도 쉬셨음 좋겠습니다만 영흥도에도 소소한 일거리가 있겠죠. 올 해 안으로 준이의 바다로의 진입이 성공하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