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카와 온천5 - 구로카와 온천에서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자리한 야마미즈키 료칸에!
2023년 2월 24일 렌터카를 타고는 아소화산 북부에 자리한 구로카와 온천 에
도착하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배경이 된 곳 중 한 곳이라고 합니다.
구로카와 온천 은 전통적 온천 료칸 이 30여개 자리한 외지 마을로 고즈넉한 휴식을
즐길수 있어서 온천에서 몸과 마음을 쉬는 휴식 이 목적인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관광안내센터 인 카제노야 風の屋(풍노옥) 에서 마을 지도를 받은 다음에 여러
온천을 체험할수 있는 뉴토테가타 入湯手形 티켓 3인분을 구입 합니다.
3곳 온천 노천온천탕 입장에 1,300엔(1곳 입장 500엔) 인데 마을을 보면서 옛날 우리가
왔을 때 조금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자리한 야마미즈키 온천 을 간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을을 구경하고 카제노야로 향하는 이고자카 가파른 골목길 을 올라가는데 이고자카 가파른
언덕길은 목조 기와의 일본 전통집 들도 아름다울뿐더러 단풍 이 고와 걷기가 좋습니다.
오르막 길에는 은행잎이 떨어져 운치 가 있었으며 그릇이며 골동품 같은걸 파는 가게를
지나고 단풍이 붉게 물든 모퉁이 를 지나 위로 올라가니 마침내 넓은 광장 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카제노야 風の屋(풍노옥) 에서 야마미즈키 온천 가는 봉고 버스 타는 정류소
장소 를 물어서 카제노야 여직원 이 지도에 표시해 주는대로 밖으로 나와
산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50미터 쯤 더 걸어서 올라가니..... 알려준 가게 가 보입니다.
야마미즈키 山みず木 온천여관은 여가 마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좀 떨어진 산속 외진곳
에 위치하니..... 여관 셔틀 봉고차 가 15분내지 30분 간격으로 운행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봉고가 없어졌으니 택시가 아니면 걸어서는 25분 정도가 걸립니다.
이윽고 도착한 12시 45분 출발 봉고 버스 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산쪽에는 곧게 자란
스기나무 와 대나무가 울창한 것을 봅니다. 봉고차는 마을을 빠져나가 큰 도로를
만나더니 다시 산속 으로 난 꼬불꼬불한 가파른 길 을 10분을 올라 산속 공터 에 섭니다.
그런데 버스가 모퉁이에 섰기로 미처 야마미즈키 여관의 정면 을 보지 못하고는 숲속에
건물 옆 모습만 보이니... 온천여관은 어디 있는지 어리둥절 하는데, 오른쪽 길로
조금 걸으면 되고 왼쪽 언덕 아래에는 미야마산소(심산산장) 라는 다른 료칸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산속으로 난 좁은 산길 50여미터 를 걸어서 들어가니 거기에 건물이 한 채 보이길래 안으로
들어가니 기념품 숍 인데 외부에서 온 사람의 뉴토데카타를 확인 하고는 지도를 보이며 설명 을 합니다.
여관 투숙객들이 사용하는 본관과 온천 은 이용할수 없으니 남자는 노천탕 한곳 만
이용 하라네요?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실내탕등 모두 3곳 을 이용하라고
말하길래 여기 온천은 혼탕은 아니니 마눌과 헤어지며 한시간후 만날 약속을 합니다.
여긴 깊은 산속 외지고 한적한 계곡 인데 11월 늦가을 인데도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무척 많은 데다가 또 조그만 폭포 도 하나 보이고......
계곡의 경사가 급하니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를 때리니 소리도 요란 합니다!
노천탕 은 계곡에 높직히 바위를 쌓아 만들었는데 11월 늦가을이라 좀 춥기는 해도 넓어 여유가 있으며
더욱이 강변에는 단풍 이 곱게 들어 그 경치 마저 아름다우니 마치 신선 놀음 을 하는 것도 같네요?
규슈 깊은 산골에서 장년의 일본인과 함께 벌거 벗은채 단풍 드는 계곡 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무심히 온천욕
을 즐기다 보니......“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인 김영랑 의 “오매, 단풍 들겄네” 하는 시가 떠오릅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서울의 휘문의숙에 다니던 영랑 은 1919년 3월 1일 3.1 선언문 을 품에 숨기고
고향 강진 으로 내려오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 를 치르는데,
옥살이를 한 몇년 후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 아오야마 학원 에서 공부를 합니다.
간토 대지진 으로 귀국한 후에는 1930년 시문학 을 통해 등단 합니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위대한
무용가 로 먼 훗날 월북하게 되는 "최승희 와 "목숨을 건 사랑" 에 빠지기도 했던 시인 영랑 은...
낭만파 청년 으로 신사 참배와 창씨 개명 을 끝내 거부했지만 해방후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하루 전날에 서울로 진격하는 군대가 쏘았을 것으로 보이는 포탄에 맞아 숨집니다. 아군의 손에?
일제 시대에 최남선 이며 박영효, 이광수, 윤치호, 최린, 서정주, 노천명, 김활란,
김동인, 주요한과 모윤숙, 유치진, 쵀재서, 김기진, 홍난파, 현제명이며....
김동환, 김상용, 유진오, 채만식, 정비석등이 차례 차례 "친일파로 변절" 했습니다.
3.1 기미독립 선언서 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도 상당수가 변절 했으니해방후 국회에서 설치한 “반민
특위” 에 잡혀온 춘원 이광수 는 구구히 변명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유일하게 혼자 과오를 인정
했는데... 그는 “천황 폐하가 우리 조선인을 폐하의 적자 로 받아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읍할 뿐 이다."
"하여 우리 혼과 뼈와 살도 조선을 버리고 철저히 일본인 이 되어야 한다” 라면서 일본
군대에 징병을 독려한 이유 를 재판관이 물으니... “일본이 저리 허망하게 망할줄
모르고 백년을 갈줄 알았다" 라고 했던가요! 비록 친일을 한 죄인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 중에 친일을 인정한 단 한사람 이었으니... 그럼 춘원은 남자 라 할만합니다.
영랑 은 변절해 친일하지 않고 목숨 걸고 지조를 지켰건만 아군 포탄에 죽을 줄이야?
그러고는 다시 둘러보노라니..... 노천 온천에 몸 을 담갔으니 아랫도리는
따뜻한 데, 늦가을 단풍이 든 물소리 우렁찬 깊은 계곡에 드러낸 윗몸은 서늘하네요!!!
깊은 산속에 외지고 한적한 계곡 으로 11월 늦가을 인데도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고 경사가 급하다 보니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를 때리니 소리도 요란 합니다!
야마미즈키 山みず木 료칸 노천탕 은 계곡에 높직히 바위를 쌓아 만들었는데 11월 늦가을
이라 좀 춥기는 해도..... 단풍 이 곱게 들어 경치가 아름다우니 가히 환상적 이네요?
늦가을 산속 이라 드러낸 윗몸은 춥고 노천탕에 묻힌 아래쪽은 따뜻하니
마치 반신욕 을 하는 기분인데...... 추워지면 물에 온몸을 담급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놓칠 수가 없어 다시 실내로 들어가서 옷 바구니에서 디카 를
꺼내와서는 온천욕을 즐기는 할아버지에게 양해 를 구하고는 몇 컷 찍는데...
깊은 산속 늦가을 단풍이 계곡물에 비추는 모습이 아름다워 현실을 잊을 정도네요?
그러고는 노천탕 을 나와 기념품 숍에서 헤어졌던 울 마눌을 만났는데....
실내탕에서 노천탕까지는 제법 먼데도 맨몸 으로 걸어가야 한다네요?
그러고는 산길을 걸어 공터 로 나오니 거기 안쪽에 여기 야마미즈키 山みず木 여관 의 정문 이 위치해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또 다른 료칸인 미야마산소(심산산장) 가 있는데 유명세를 탄
야마미즈키가 사람들로 미어터지는데 비해 여긴 덜 알려졌는지 사람이 별로 없고 시설을 더 좋습니다.
다시 료칸(여관) 에서 운영하는 봉고 버스 를 타고 구로카와 온천 마을 로
돌아와서는 종합 안내소 인 카제노야 風の屋 (풍노옥) 앞에서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