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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지 -- 남산제일봉
산 행 일 -- 2021,09,22 (추석연휴마지막날)
누 구 랑 -- 지인과 같이
산 행 코 스 -- 황산주차장 - 청량사- 왕관바위전망대 - 남산제일봉 - 해인호텔 -(가야소리길) 농산정 - 황산주차장
이동거리 14.5km 소요시간 6시간32분 이동시간 5시간34분 휴식및점심시간 28분
오름 950m 내림 988m 출발,도착점해발 332m
ㅡㅡ산 행 지 도ㅡㅡ
ㅡㅡ산 행 기ㅡㅡ
추석연휴동안 비가 와서 어디갈데도 없는데 마지막날엔 맑음이라 가야산국립공원과 홍류동계곡을 걸어 보려고 집을 나선다 오래도록 산행을 못했던 탓으로 장갑도 어디 있는지 못찾아서 산청휴게소에 들려 장갑을 하나 구입해서 간다
(09:00) 출발을 알리는 첫발걸음을 시작으로 황산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멘트포장 급경사 오름길을 걸어 올라갈것이다
청량사 주차장까지 약2km정도의길 황산저수지 올라가는길은 차량이 다니는길이지만 차량교행이 되지않는 아주좁은길이며 급경사길이라 그길오르는동안 등언저리에는 비지땀이 흐른다 지난해에 청량사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끝자락에서 급경사길로 올라갈려고 하니 지처있는몸이 너무힘들어서 오늘은 힘이 있을때 힘든 오름길을 소화시키고 마지막고비에는 수월하게 내림길에서 마무리 하고자함이다
(09:49)전년에 이어 올해도 추석연휴에 남산제일봉을 답하려 왔다 청량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남산제일봉을 거쳐 소리길을 지나 주차장까지 올라오는데는 산행 마지막 시간이어서 힘들고 해서 올해는 황산주차장에 주차하여놓고 약 2km 의포장도로을 걸어 올라오니 청량사를 알리는 멋진 표지석이 반긴다 표지석에는 남산제일봉이 아닌 "천불산청량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연유는 나중에 청량사 유래에서 찾아 보기로 하고 된비알길을 비지땀을 흘리면서 올라갑니다
(09;53)청량사의 모습을 보면서 절의역사를 알아본다 청량사는 해인사 산내암자로써 창건연대의 정확한기록은 없으나 전해오는 말로는 해인사(AD802창건)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최치원조에 이절은 최치원(857~?)이 즐거찾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문화재로는 9세기초부터 이절을 지켜온 돌부처님 (청량사석조여래좌상 보물265호) 신라석탑의 대표적인 양식을 지닌석탑(석탑 보물266호) 9세기 끝무렵의처리수법이 아름다운 석등(석등 보물253호)등이 있다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는 산이름은 본래는 천불산(千佛山1010m) 이며 남산제일봉,매화산이란 천불산의 다른이름이기도 하다
(10:41)청량사를 뒤로 하고 깔딱고개을 올라서서 잠시숨한번고르고 올라서니 왕관봉전망대에 도착한다 디카로 당겨보는데 성능이 이정도밖에 안된다 이럴때 성능좋은 카메라가 필요하다 싶어진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디카는 기록 사진직는 수준의 사진기에 불과하다 육안으로 보아도 정말 왕관 같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얼마나 좋은 풍광으로 보여질까?
(11;02)형제 바위에 도착한다 사람키의세배이상인 이바위는 언제봐도 신기 하기만 하다
올만에 동행하는 선영이가 뽀대(썬클라스 선영이가 하는말)까지 임대해서 걸치고 여유롭게 포즈을 취합니다 힘들지도 않는지 제법 여유만만 합니다
저런바위속을 철계단을 타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도 예전엔 저런 철계단도 없이 허름한 밧줄들이 걸려잇었지요 그래도 요즘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부터는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수 있어 좋습니다 항상 국립공원에 감사 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런 바위군들이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산길주변의 풍광들은 산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안전산행을 안내해줍니다 오르는 산길이 힘들어도 괴서괴암들의 풍광에 넉을 잊고즐기다 보면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힘들고 피곤한줄도 모릅니다
선영이는 가파르고 아찔한 철계단을 지나고 나면 여유부리며 포즈을 취하며 모델이 되어 줍니다
여기는 괴암괴석으로 쌓아놓은 성벽같아 보입니다 국립공원에서 등산로를 개설할때 풍광 좋은 곳으로만 길을 내어 놓은듯 합니다
산전체가 수석전시장 처럼 푸른융단위에 수석을 전시해놓은 모습처럼 보입니다
저철계단을 올라야합니다 마구빨리 걸어갈수 없습니다 주변풍광이 너무너무멋져서 빨리지나기버릴수가 없습니다 산에대한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요 열걸음걷고 풍광에 감탄하고 또 네다섯걸음걷고 되돌아보며 감탄하며 느린보걸음으로걸어갑니다 저런철계단을 오르내릴때에는 선영이는 옴마야을 연발하면서도 잘도 오르내립니다
이렇게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노송의 나이는 몇백년은 되었을것 같아 보입니다 천박한 환경속에서도 생명이 무엇인지 인간의 환경과도 비교가 되는것 같아요 어떤나무는 기름진토양에서 무럭무럭 호화호식하며 살지만 천박한 바위틈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천수와 이슬에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송의 애환에 가슴이 아려 옵니다
이바우는 무엇이라고 하면 좋을까요 ?
우주을 이고있는모습이라할까 저렇게 크고 둥근 바위를 안고 있는모습이 돌고래가 공놀이 하는 모습 같기도하고 보는이로 하여금 개성에 따라 다릉 모습으로 보이겠지요
이바위는 키재기라도 하는듯 합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바위에 올라서서 풍광을 즐기는 산객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옵니다 산전체가 기암괴석으로 가득차있고 푸른 소나무들은 흰바위에 좋화를 이루듯 해보입니다
(12:04)남산제일봉에 올라섭니다
정상인정샷은 필수입니다 남산제일봉은 가야산남족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란다 그리하여 남산제일봉은 "가야산 남쪽의 최고봉우리"라는뜻이다 그리고 기묘한바위봉우리들이 우후죽순처럼솟아 불가(佛伽)에서는 마치 천개의 불상 같다하여"천불산(千佛山)"이라고도 불렸다 한때는 남산제일봉과 이봉우리에서 약1.1km가량 떨어져있는 매화산(954m)을 구분하지않고 같은 산으로 취급했는데 그래서 아직도 일부 많은 산인들은 매화산이 남산제일봉인줄 알고있다 그러나 두산은 엄연히 다른 산이다 1972년 가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매화산과 남산제일봉 명칭을 바로 잡았다 이봉우리를 10여차레나 올라와 봤지만 올때마다 기묘한 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눈과마음을 즐겁게하여 가파른 오름길에도 피고하고 지루함이 없이 오를수있어좋은산이다 예전에는 정상네기퉁이에 소금항아리가 묻혀있었는데 요즈음은 찾아보기 어럽습니다 소금항아리는 해인사에 화재를 에방하기위한 방편이라고 들었는데 소금기운은 항상 습한기운을 간직하기 때문이라고합니다
남산제일봉은 산세로보나 괴암괴석들의 향연과 나무랄데없는 등로주변의 풍광으로보나 남한에서는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싶은데 ~~~ 망구본인생각 당일코스로는 남산제일봉과 소리길을 연계해서 걸으면 충분한 하루코스로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상왕봉과 칠불봉 이건너오라고 손짖합니다
정상부근의 괴암괴석들입니다
치인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서는 철계단길 예전에는 이철계단이 설치되지 않아 암벽밑으로 빙돌아 올라오는 등로가있었지요 약300여m는 더걸어야 정상에 올수 있었지요 정상석도 없었구요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관리하고 있어 안전시설이나 모든 안내이정표도 잘되어 있어 국립공원에 감사함을 다시한번 전합니다
가야산홍류동계곡은 울창한소나무림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서 1960년대까지 송진을 의약품,화학약품등의 원료로 이용되었으며 속겹질은 어러운시절 끼니를 이어주던 구황식품중의 하나였다 이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관리보호되고 있으나 송진채취가정에서 생겨난 빗살무늬 상처는 치유되지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14:40)적멸보궁(寂滅寶宮)
석가모니부처님의진신사리를 봉안한도량을 지칭하여 적멸보궁이라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적멸의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부처님생존시에는 인도마가타국 남쪽 보리수아래서 화엄경을 설파한 적멸도량임을 뜻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로 부처님의진신이 상주하고있음을 의미하며 이곳 길상암 가야산중 묘길상봉 천진보탑 천불동에 천불부처님이 상주하신다하여 영암노스님과 명진은사스님의 기도정진에 힘입어서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다
숲속의 청소부 버섯
버섯은 낙엽과나무 습한토양과 동식물의몸과 배설물에서 자랍니다 버섯은 숲속의 나무와 식물등을 분해하여 분해된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납니다 양분을 빼앗긴것들은 썩어 흙으로 돌아 갑니다 이런의미에서 버섯은 균류 또는 "숲숙의청소부"라고 부릅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작용을 가진것은 균류인데 균류인 버섯은 유기물을 간단한 무기물로 분해하는 환원자 역할을 합니다
(14:34)농산정(籠山亭) 이곳은 신라말의 거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둔하여 수도 하던 곳이다 본래의정자의 창건시기는 알수없으나 지금의것은 고운선생의후손과 유림에 의해1936년에중건된것이다 이후 1990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자의건너편에는 치원대 혹은 제시석이라 불리는 석벽이 있고 거기에는 고운의진언절구 둔세시가 새겨져있다 정자의 이름도 그시의 한귀절을 빌어 농산(籠山)이라 하게 되었다 정자는 정면2칸 측면2칸규모의 단아한 정방형목조기와건물이다 정자현판에는 김영한이쓴 농산정기(籠山亭記)와 찬양사(讚揚辭)4수가 기록되어 있고 고운선생의둔세시를 차운한시8수가 있다 시중에는 검필개,김종직선생이차운시도 들어 있다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法寶宗刹伽倻山海印寺)의 유래를 알아본다
80순이 넘는 내외가 가야산골짜기에 살고 잇었다 자식이 없는 이부부들은 하루하루을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어느날 도토라응 주으려나서는 이들 앞에 복실복실한 강아지 한마리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선다 1년내내 사람의 발길이 없는 깊은산중에서 좀이상했으나 하도 귀여운 강아지 인지라 좋은 벗이 생겼다싶어 붙들어 키우기로 했다 노부부는 마치 자식키우듯 정성을 쏫았고 강아지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이렇게 어연 3년이 흘러 강아지는 큰개로 성장했고 꼭만3년이 되는날 아침 이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밥을 줘도 눈도 돌리지않고 먹을 생가고 핞던개가 사람처런 말을 하는 것이였다 "저는 동해용왕의딸인데 그만죄를 범해이런모습으로 인간세계에 놨습니다 다행히 두분의 보살핖으로 속죄의3년을 잘보내고 이제 다시 용궁으로 가게됐습니다 두분의은혜가 하해(河海)같아온지라 수양부모로 모실까 하옵니다" 이렇게 말한다 개가 사람이라니 더구나용왕의딸이라니 놀랍고도 기쁜일이였다 "우리는 너를 비록 개지만 자식처럼길려 깊은정이 들었는데 어찌부모자식의 의를 맺지않겠느냐?" 이말을 들은개는 꼬리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곧용왕으로 돌아가 아버지 용왕님께 수양아버님의은혜를 말씀드리면 우리아버지께서 12사자(使者)를 보내 수양아버지를 모셔오게할것입니다 용궁에서는 용궁선사로 모셔 극진한 대접을 할것이며 저를 키워주신보답으로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져 가라고 할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모두 싫다 하시고 용왕의자에 놓안 "해인(海印)"이란 도장을 가져 오십시요 이도장은 나라의 옥새같은 것으로 3번을 툭툭치고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뭐든지 다 나오는 신기한물건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여생을 편히 사실것입니다 말을 마친개는 허공을 3번뛰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노인은 꿈만같았다 이런일이 있응후얼마지나 보름달이 중천에 뜬 어느날밤이였다 별안간 사립문밖에서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12사자(사자)가 마당으로들어닦쳤다 "용왕님께서 노인을 모셔오랍니다 시간이 바쁘오니 어서가시지요"노인은 주저하지않고 따라나서 문밖에세워놓은 옥가마을 탔다 12사자(使者)는 바람처럼달렸고얼마안있어 가마는 찬란한 용궁에 도착했다 산호기둥, 황금대들보,추녀에달린호박구슬진주등 형형색색의 보화들이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9채궁궐모두가 이런보물로 장식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큰궁전으로 안내된 노인은 그저 어떨떨했다 "아이구 수양아버지 어서 오십시요 제가 바로 아버님께서 길려주신 강아지옵니다"예쁜공주가 버선말로 뛰어 나오며 노인를 반긴다 아름다운 풍악이 울리자 용왕이 옥좌에서내려왔다 "먼길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딸년을 3년이나 더리고 계셨다니 그고마움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용상놃은자리에 용왕과 노인이 나란히앉고 좌우시녀들이풍악에맞쳐 춤을 추며 음식상이 나오고 공주는 한시도 수양아버지곁을 떠나지 않고 금수저로 음식을 고루집이 주며 수양어머니 무안과 함계 가야산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렇게 용궁에서 한달을 지나자 노인의 풍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노인 은 갑짜기 부인생각이 나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먼길오시기도 어러운데 오신김에 조금만더 쉬었다 가시지요" 말씀은 감사하오나 처자의소식이궁금하여내일 떠나겠습니다 ""정그러시다면 할수 없군요 떠나시기전에 용궁보물을 구경 하시디가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요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노인은 불현듯 해인(海印)을 가져어라던 공주의말이 떠올랐다 보뭉창고에 보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순금의왕관,금강석화로,옥가마,산호피리,은구슬말등 진귀한 보물이 쌓여 있었다 노인은 그저 보기만 할뿐 달라고 하지 않으니용와은 이상했다 구경이다끝날무럽 오인은 까만쇠조각처럼생긴 "해인(海印)을 가리켰다 용왕님 이미천한사람에게눈부신보배는 어울리지 않을것 같사오니 저것이나 기념으로 가져가겠습니다 " 노인의말에 용왕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어쩔도리가 없었다 " 허참그것은 이용궁의옥새로 정녕 소중한것이외다 허나 무엇이든 드린다고 약속했으니 가져가십시요 잘보관했다가 후일 지상에 절을 세우면 많은 중생을 가질것이옵니다 용왕은 해인(海印)을 집어 황금보자기에 정성껏싸서 노인에께줬다 이튼날 용왕부부는 구중대문밖까지전송했고 공주는 옥가마까지 따라와 작별의눈물을 흘렸다 "수양아버지부디안년히가세요 용궁과 인간세게는 서로 다르니 이제 다시는 뵈올수가 없겠군요 부디 해인(해인)을 잘보관하시어 편히사세요그것으로 은혜의 만분의일이라도보답되기를 ~~~~~~ 공주는 목이메어 말끝을 흐렸다 노인은 이별의 아쉬움을 이기지 못한채 가야산에 도착하여 아내에께 용궁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며가지고온 해인(海印)을 3번 두들기며 말했다 "내가먹던 용궁음식나오너라" 주문대로 선해진미의음식상이 방안에 나타나자 노인내외는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그뒤뭐든지 안되는것이 없었다 이렇게 편히오래살던내외는 죽을 나이가 되면서 절을 하나짓고 해인(해인)을 그절에 보관시켰으니 그절의 이름이 바로지금의 합천해인사(陜川海印寺)다
참고자료 (한국불교전설99)
(14;42)해인사을 알리는 법보종찰가야산해인사(法寶宗刹伽倻山海印寺)에들어가는 입장료을 받는곳입니다
(15:23)소리길 출입구이며 되돌아오면 끝나는곳입니다
오늘 소리길 걸으며 물소리들으면서 걷는산길 참좋은산을 걸었다싶어 너무너무 기분이좋습니다 오능도 좋은산을 보여주신 하느님감사합니다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
길섶에는 가을꽃이 피어 하늘거립니다
올해농사도 풍년을 알리는듯 들녁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녁을 보면 내가 부자된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