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
-김복희 著/달출판사 2023년판
시인의 자질
1
시가 좋아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주저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시인이 체험한 경험과 일상 속에서 느끼거나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성들을 단락별로 엮어 다정한 어감과 필치로 일러주며 시를 향해 주저하는 발길들에 은근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먼저 시도하고 돌아볼 것!
2
시를 쓰는 행위는 일종의 일탈이자 해탈이다. 시 쓰기와 삶이 가급적 일치해야 하는 이유는 이래서 자명하다. 시를 쓰면서 시인은 자신과 삶을 이해하고 현실을 극복해나간다.
김복희 시인은 시인이라는 세상사회가 주는 결과적인 명성에 앞서 온전히 주어진 삶을 체험하고 누릴 것을 권한다. 시인 말대로 자신이 먼저 추체험을 한 후에 독자들과 나누는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방안에 있던 오랜 동거자인 세탁물 행거가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카페 가던 길에 바닥에 누군가 설치(?)해 둔 종이에 적힌 일련의 낱말들을 보며 문득 언어의 관념에 젖어들고,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으며 그 작품 안의 진실과 아울러 다른 관점에서 상상해보기도 하는 참신한 발상 등은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과정의 시간들이 축적되며 내 안의 우물은 채워지며 마침내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넘치는 감성들을 글로 먼저 과감하게 써보라고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3
오래 생각하게끔 한 부분이 있었다. 단락 제목은 ‘당신만을 위한 얼굴을 마주한다면’에 나오는 일련의 이야기와 시인의 곁들여진 추체험과 느낌들을 읽으면서다(물론 다른 단락도 무척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를 앞둔 어느 선비에게 누군가가 이제 갓 태어나 어느 아낙의 등에 업혀있는 아기가 자신의 미래의 배필이라고 알려주자, 무슨 심보인지 아기의 얼굴 한쪽을 칼로 흉터를 내고 달아난다. 시간이 흘러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어느 마을에서 몇 번의 결혼 실패(대부분 신부가 사망) 끝에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첫날밤 아내의 흉측한 얼굴을 맞닥뜨린 선비는 자초지종을 묻게 되는데 신부의 기괴한 모습과 기구한 과거의 삶은 알고 보니 젊은 날 자신이 저지른 만행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기겁을 한 선비는 그 자리에서 용서를 구하고 그 후 자식들을 낳아 잘 살았다는 대략의 이야기를 놓고 시인의 참담한 심경과 느낌 등을 적어놓은 단락이다.
-선비는 왜 그런 기괴한 만행을 어린 아기에게 저질렀을까.
-그 아이는 그런 얼굴을 하고 꿈 많은 소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신부는 과연 그런 만행을 자신에게 저지른 선비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용서가 되는 부분일까.
-이 이야기를 지은 지은이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유포하는 걸까.
시인은 일상 속의 독서라는 평범한 한 행위에서도 이런 추체험적 감성과 더불어 의식의 자각을 키워간 것이다.
나 또한 작가의 맥락을 따라 같은 공감을 하면서 시인이 품은 의문과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시인과 방향을 약간 튼 ‘남자’라는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떠올려보았다.
성인 남자가 되어서, 아기에게 그런 흉측한 짓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시인 평가대로 이 이야기는 매우 엽기적이고도 기괴하다. 지은이의 의도를 알아야 적절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다. 그리고 신부가 된 여자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불행하게 보낸 사실에 대해 신랑인 남자를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불행했을 사춘기 소녀의 시절을 상상해보라. 항간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들-구전문학을 포함한 신화, 전설, 소설 등-속에는 이런 유의 불공평한 성차별적, 계급적 희생과 불합리들이 무수히 섞여있음에도 독자인 우리들은 쉽게 간과한 채 즐겁거나 감동받거나 하며 맥없이 그 순간을 지나쳐 가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4
모든 아름다움은 과정에 있다. 시인이 이 책에서 밝히거나 소개하는 내용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를 쓰고자하기 전에 느끼거나 경험하게 되는 각종 일상들로서 자신의 삶의 과정, 혹은 순간순간들을 온전히 누리는 자들만이 결과적으로 시든, 소설이든 혹은 다른 분야든 각종 열매를 맺는다는 점이다.
즉, 먼저 삶의 주체가 되어 온전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시인은 그 과정들의 결과물로서 태어나는 것임을 알리려고 책에서 시종여일 줄기차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잘 주지할 필요가 있겠다.
그럴진대, 열매를 맺기 전의 숱한 고통조차 아름다운 시세계로 껴안으며 훌륭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2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