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큰 나무를 좋아한다. 너무 커서 다 안을 수 없는 나무를 두 팔 벌려
안으려 하지만, 끝내 안을 수 없다. 나무 밑에 서 있으면, 온 우주를 안은 것
같다. 추부 시향에 맞춰 모처럼 찾은 ‘요광리 은행나무’는 첫 번째 답사 때와
마찬가지로 웅장하며 경이롭고 설레는 마음은 예나 다름없었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 편에는 큰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제사 지내는 곳에 심겨 있는 거대한 나무를 보고 제자가 아주 좋은 재목이라
감탄하자. 목수인 스승이 말한다. “그러지 마라. 그렇게 말하지 마라. 저건 성
긴 나무다. 저걸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저걸로 관을 만들면 빨리 썩고, 저
걸로 그릇을 만들면 빨리 부서지고, 저걸로 문을 만들면 진물이 흐르고, 저걸
로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 것이다.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쓸데
가 없다. 그래서 이처럼 오래 살 수 있었다.”
자신을 쓸모없는 ‘산목散木’, 즉 ‘성긴 나무’라고 부른 것이 기분 나빴을까.
큰 나무는 목수의 꿈에 나타나서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맛있는 과실이 달리
는 나무는 바로 그 이유로 사람들이 가지를 꺾고 괴롭히니, 제 명命대로 죽지
못한다고. 자신은 그 꼴이 되기 싫어서, 일부러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를 원했
다고. 이 쓸모없음이야말로 자신의 큰 쓸모라고. 그러고는 목수에게 되묻는다.
“내가 자잘하게 유용했으면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 나무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무능해서 그렇게 된 것
이 아니라, 자청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오래 살고 이렇게 커
질 수 있었다고. 이런 쓸모없음이야말로 어쩌면 큰 쓸모일 거라고. 이런 심오
한 가르침을 남긴 뒤, 거대한 나무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한다. “너나 나
나 다 사물이다. 어찌 사물끼리 이러쿵저러쿵하리오. 너도 죽음에 다가가는 산
인散人 즉 성긴 사람이니 어찌 산목을 알겠는가?
‘산목’이라고 불렀던 저 거대한 나무는 이제 거꾸로 목수를 ‘산인散人’이라
고 부른다. ‘산散’이란 글자는 성기다. 띄엄띄엄하다. 치밀하지 못하다. 질서가
없다. 야무지지 못하다. 절도와 훈육이 되지 않았다는 뜻을 담는다. 그래서 산
인이란 쓸모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막말에 가까웠던 이 ‘산인’이라는 단어는
점점 그럴듯한 뜻을 갖게 된다. 관직이 없는 지식인, 정치 권력에 다가가지 못
한 선비, 은거하는 예술가 등이 겸양의 뜻을 담아 산인을 아호로 사용하게 된
다. 예를 들면 당나라 시인 육구몽은 ‘강호산인江湖散人’으로 자처했다.
현직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칫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일어나서 청소하랴, 운동에 진지하게 골몰하며,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할 창작
활동에 몰두하기도 하는데, 정작 집 밖에 나가면 서툴다. 하나 은행나무는 천
년을 버티며 고고하게 위용을 자랑하지만 쓸데없는 사람은 그래도 매양 바쁘
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