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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여주인은 모두 3곡을 선보였다. 남녀의 사랑에 관련된 춤 두 곡과 한일 우호증진을 위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맞춘 춤이 한 곡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마지막 장면. 여주인은 한국 드라마 "일지매"에서 일본 춤을 추는 장면에 출연하기도 하였고, 남편은 사진작가인데 한국에서 전시회를 연 적도 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공연 때의 소품을 하나씩 쥐어주는 정성 내지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이 사진은 종업원이 찍은 것이다. 살짝 흔들린 것이 아무래도 전문가가 찍은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좋아한단다. 왜? 주름살이 안 보인다나... 정말 그렇다. 나도 좀 젊어보이는 듯. 저녁을 먹은 시마모토 식당의 현판. 일본의 식당에서 여러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종업원들이 코스에 따라 내놓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 사람들은 그릇을 거두러 올 때 빈 그릇을 거두러 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거두어가는 것이었다. 밤. 숙소 바깥 풍경. 시골 어촌의 정적과 고요함이 느껴진다. 참 평화로워보인다. 숙소의 화장실. 작은 객실에 어울리게 모든 것을 그 규모에 맞게 우겨넣은 것 같다. 작아도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었다. 비데는 컨트롤러를 둘 공간이 나지 않아 변기의 앞쪽 벽에 달아두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아도 되어 더 편리한 것 같았다. 다만 욕조는 (나만 그런가?) 다리를 뻗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샤워는 이곳을 이용하지 않고 1층의 목욕탕을 이용하였다. 변기. 물을 내리면 위에서 저렇게 물이 채워진다. 청결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일본 사람들이 고안해낸 기가 막힌 작품인 것 같다. 어차피 손을 씻어야 할 것이니까... 목욕탕 역시 규모가 작았다. 우리 택시조인 손, 신선생, 권사장님과 넷이 들어가니 딱 맞았다. 여관 규모에 비례하는 것 같다. 탈의실 쪽은 위쪽이 트여서 서로간에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만제키바시의 공중화장실도 그랬다. 다시 새벽 차를 타러. 정류장 가게는 문을 열어놓았다. 이곳에 와서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상인문화센터의 회원분들. 어느 분의 폼이 더 좋을까? 두 분은 알고 있겠지... 버스정류장의 노선 표시 전광판. 이곳은 이즈하라 병원이고 쓰시마 야마네코 공항을 경유하여 우리가 내릴 히다카츠, 종점은 우에노 히다카츠 병원이다. 버스를 탔다. 깜깜한 새벽에.새벽의 빛 없는 환경이 얼굴의 온기마저 빼앗아간 듯. 원래 이런 분들이 아닌데... 버스는 한국의 버스에 비해 앞뒤의 길이와 폭이 모두 좁았다. 중간에 있는 니이(仁位)에서 일본 사람들이 몽땅 내려 우리 일행 12명만 남았다. 심지어 기사마저 우리 표를 끊으러 가는 바람에 정말 우리만... 학생들도 많이 탔는데 니이에 학교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뒤에 히다카츠까지 가는 동안에는 일본 사람은 3명 만이 이용을 하였다. 이용자는 한국인이 많은 지 모니터에 한글 안내까지 나오고 무심하고 귀찮아보이는 듯한 투로 한국어 음성 안내까지 나왔다. 교통요금은 상당히 비쌌는데 한국인의 경우는 1000엔이었고 표만 있으면 당일에는 무제한 이용 가능한 표였다. 그리고 어떤 학교는 모든 것이 그야말로 유니 폼이어어서 뒷모습이 모두 같았다. 교복에 매는 가방까지 완전 통일이다. 이에 대해 손수룡 선생과 윤영희 선생의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론은 당연히 나지 않았지만. 히다카츠에 도착. 집단 걸식꾼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제대로 된 신사의 토리이를 처음 보았다.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일행들. 목표로 삼았던 식당은 문이 닫혔다. 11시부터 영업이란다. 아직 1시간 반 가량이 남았다. 이곳의 모든 식당은 거의 11시부터 영업 시작이고 들어가면 또 준비 때문에 기다려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배를 못 탈 판이다. 궁여지책. 일본의 빵집에서 빵을 사먹었다. 맛이 있었다. 무엇인들 맛이 없었을까마는... "하이고 우리 어무이 아시면 뭐라카시겠노?" 아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로부터 여비를 무려 "3만 원"이나 받아오신 화곡암 이선생님이 일행과 동일한 조건에서 길거리에 앉아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 항구 가까이의 가게. 모든 가게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병기하였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우리네밖에 없다는 사실. 표기는 한쪽에서는 "푸도 코트" 한쪽에서는 "푸드 코토"로 하여 다르긴 하지만 한국인이 대접 받는다는 우쭐한 느낌이 들게 하기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 항구는 공항과는 다른 설렘을 갖게 한다. 게이트 웨이 맞은 편에는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당이 하나 있었고, 토리이를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하나의 업체가 모두 달랐다. 각기 다른 회사에서 제작 기부한 것으로 보인다. 언덕에 층층이 서 있는 토리이들 저 현판이 아마 이 사당의 이름인 듯 토리이 사이에 드리운 새끼와 그곳을 장식한 장식물. 신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항구 가까운 게이트 웨이라는 쇼핑점에 있는 일본 인형.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은 듯. 게이트 웨이는 면세점이라는데 일본관광공사에서 직영하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항구 맞은 편의 왼쪽으로 조금 비껴 있는 과자 가게. 여행시 남은 잔돈을 노리는 가게일 듯. 오히려 이런 곳이 장사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이 아주 많은 곳도 아닐테고. 히다카츠 항구 청사. 울릉도의 항구나 비슷하다. 타고 갈 배 비틀. 승선 수속처 광안대교가 보인다. 다시 한국이다. 부산에 내리자마자 다시 새벽의 히다카츠에서의 모습을 보였다. 비가 와서 이영환 선생이 추천한 국제시장은 포기하고 윤영희 선생이 안내한 일식집 길(吉)이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때까지 일본에 있다가 와서 다시 일식집으로... 비 내리는 항구의 주차장. 나갈 사람은 다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택시 잡기도 힘들었다. 점심과 저녁의 중간 시간에 찾은 일식집 길. 역시 푸짐하기로 따지면 한국에서 먹는 것이 정답일 듯. 히다카츠항에서 팔던 인형과 비슷한 포즈의 인형. 인형까지 한국서 보니 더 예뻐보인다. 다시 부산역으로. 마지막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비는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할 정도로만 차분하게 종일 내렸다. 맞아도 그만일 정도로... 우리는 대전 종점 5시 52분발 무궁화호를 탔다. 서울로 바로 올라가야 하는 권사장만은 30분발 KTX를 탔다. 우리는 시간적으로 25분 차를 타도 되었지만 좌석이 없었다고 한다. 부산역 대합실은 대구와는 달라 보였다. 입점한 가게를 보아도 그렇고. 대구는 우리가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 건가? 무궁화호는 옛날에는 새마을 다음 급이었지만 지금은 옛날의 비둘기호나 다름 없다. 그래도 객실 차량은 깨끗해서 옛날의 비둘기와는 비교불가였고 시간도 같은 노선의 고속열차와 10분 차밖에 나지 않았다. 특히 박은숙 선생과 나는 경산서 내렸으니 소요시간이 같았던 셈. 부산. 다음은 구포. 플랫폼의 안내 간판. 어둠 속에 이동한 시간이 참으로 많았던 여행이었다. 무궁화호 객실 안 모습 박은숙 선생과 나의 종착역 경산. 한 역 덜 간만큼 요금 낭비가 있었지만 시간적으로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아꼈으니 아무 아쉬울 것이 없다. |
첫댓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신.... 거의 쓰리꾼 수준이랄까?! ^^*
순간의 예술이 이렇게도 많은 스토리를 담아 낼 줄이야!
정말 이 번 여행에서 沙月님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저는 카페에서 이제껏 沙月님을 여성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沙月이라는 닉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이제 지독한 펜 하나 추가하셨습니다^^*
카메라는 제 펜(pen)이지요. 지독한 팬(fan) 하나 추가에 행복감을 느끼는 1인(人)입니다. 제명(내지는 호)이 조금 야하지요 저는 집에서 형제로 네 번째이고 생월이 음력으로 4월입니다. 그러다가 사월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때부터는 이 닉네임을 씁니다.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대마도 여행을 상세히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마도 수학여행기를 잘 보았습니다. 모든분들 표정이 즐겁고 행복해 보입니다.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상세한 설명으로 저도 여행을 다녀 온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