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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8일
수많은 세계 문화 유산 가운데서도 첫손가락에 꼽히곤 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드디어 직관하게 되었다. 이미 사진으로 영상으로 수없이 봤지만, 그러니 사진도 영상도 없던 시절에 소문으로만 접하다가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감동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문화의 최고봉을 직접 마주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고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였다.
피라미드는 보통명사로 정사각뿔 모양의 고대 유적 일반을 가리는 말이지만, 피라미드 하면 먼저 이집트가 떠오르고 그 중에서도 기자의 3대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에는 300개 이상의 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남아있는 것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밤 11시 45분에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5시 경, 시차가 5시간이니까 실제 비행 시간은 10시간이 좀 넘는다. 조금은 지루했던 환승 대기 5시간 후에 4시간 정도를 더 날아가서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 12시 반 경이다. (시차가 또 두 시간. 한국과 이집트이 시차는 7시간이다.)
12월 9일
이집트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관광객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한 달짜리 도착비자를 샀다. 짐찾는 곳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이 보이길래 여긴가? 하고 서 있다가 보니 여기는 환전하는 사람들. 비자 사는 창구는 다른 곳인데 의외로 한산해서 줄도 안 서고 바로 구입했다. 일인당 25달러, 카드 결제 가능.
카이로 공항 짐찾는 곳에서 유심을 샀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유심 파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다른 터미널 얘기인 듯하다. 짐 찾아서 나온 뒤에 보다폰 매장에서 (몇몇 통신회사 매장이 줄지어 있다. 보다폰이 조금 비싸지만 바로 개통되는 게 장점이라고 들었기에...) 18기가라고 써 있는 유심 두개를 구입, (280파운드 곱하기 2)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18기가라는 것은 판매자들이 임의로 적어 놓은 것이고 공식적으로는 FLEX150 이라는 요금제인데, 데이터와 통화, 문자 등이 플렉스로 환산되어서 어쩌구... 복잡해... 아무튼 18기가는 뻥이고 9기가나 10기가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나중에 데이터가 부족해서 추가 구입함.
유심 끼우자마자 개통이 되었고... 그래서 인드라이브 택시를 불렀는데...
340 파운드에 오케이한 택시가 엉뚱한 곳에 멈춰서 우리더러 오라고 한다. 거기 어딘지 모르겠다. 여기로 와라. 여기 다른 택시들도 들어오는데 왜 안오냐? 소통이 잘 안되어서 답답하던 차에 주차장에서 정복 입고 일하는 남자가 눈에 띄길래 부탁을 했다. 전화기를 넘겨줬더니 호통을 치는 듯 설명을 하는 듯 상당히 길게 통화를 한다. 그러더니 저 앞 길가에서 기다리라 했고, 잠시 후에과연 택시가 왔다.
공항에서 기자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먼 거리였다. 40킬로? 출발 전에 시간도 허비하고 했으니 좀 더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400 파운드를 건넸는데... 600을 달라고 우긴다. 아니, 니가 340에 온다고 했잖아? 증거를 들이밀려고 인드라이브 엽을 열어보니 그놈이 이미 취소를 해 버렸네?. 증거를 없앤거야? 어쨌든 난 더 못 준다. 600 달라. 아니면 500이라도 달라. 못 준다. 400도 많이 준 거다. 경찰 부르자.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400 파운드만 받고 가버렸다. 악명높은 이집트 택시 기사를 이긴 건가? 이집트에서 처음 만난 기사부터 더군다나 길거리 택시도 아니고 인드라이브 기사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택시 타기가 만만치 않겠는데? (나중에 계산해 보니 택시비가 너무 싸다. 그냥 500 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집트는 자유 여행 난이도가 인도 버금가는 나라라더니 과연 처음부터 만만치가 않다? 아니,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공항 주차장 정복 입은 사람이 친절을 베푼게 먼저잖아? 첫날의 해프닝과는 달리 그 후에 만난 인드라이브 기사나 길거리 택시 기사들하고 싸우지는 않았다.
숙소는 Sol Pyramid Inn이라는 작은 게스트하우스, 저렴한 가격과 높은 평점만 보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했다. 근처에 피라미드가 보인다는 숙소들은 - 호텔급이 아니고 게스트하우스 수준인데도 - 일박에10-15만원 정도 하는데, (이름은 피라미드 어쩌구지만 한 골목 뒤에 있어서 방에서는 물론 옥상에 올라가도 피라미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지만) 일박에 2만원대라는 게 너무나 큰 장점이다. 4박에 57달러. 4박을 (취소불가로) 예약했다가 국내선 비행기를 타느라 4일째 초저녁에 체크아웃을 하면서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3박으로 계산해도 하루 2만원대잖아.
건물에 간판이 없어서 입구를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옆 건물 사람의 도움을 받아 (대문이 잠겨있었고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자 전화를 걸어주었다. 잠시 후에 밖에서 직원이 나타나 같이 들어감. 이집트 관광지에는 돈을 달라고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남의 일에 도움을 주려는 친절한 사람도 적잖이 만났다.) 들어가서 체크인. 짐작대로 작은 방에 시설도 노후하고 서비스도 별로였지만 저렴한 비용을 감안하면 충분히 괜찮은 숙소다. 이틀 동안은 주인이 안 보이고 무뚝뚝한 젊은 남자 직원만 있었는데 (무뚝뚝한 게 아니라 영어가 자신이 없어서 소극적이었을 뿐) 알고보니 착한 청년이었다. 방에 생수가 안 보이길래 (동남아에서는 하름한 숙소라도 하루에 생수 두 병은 기본이잖아) 여기 먹을 물 안 주냐? 물어봤더니 노! 그래? 이 집은 물을 안 주나 보다. 그랬는데 한참 있다가 생수 한 병을 들고 왔다. 다음날 저녁에 들어와 보니 역시 물이 없다. 안 주는 게 맞나 보다. 그래서 프런트로 가서 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라고 운을 떼 보았다. 그랬더니 이 친구, 앞장서서 동네 슈퍼로 데리고 가더니 (바가지 당하지 말라고) 가격까지 확인해 주었다. 1.5리터 한 병에 10파운드. (이후에 우리가 묵었던 이집트 모로코의 거의 모든 숙소에서 식수를 제공하지 않았다.)
첫날 저녁 식사는 미리 점찍어두었던 피라미드뷰 식당인 마스터 루프탑에서 먹었다. 스탭들 친절하고 뷰도 훌륭한데 (우리가 조금 늦었다. 해지기 직전에 갔으면 훨씬 멋졌을 듯) 그러나 맛집이라기엔 음식이 좀 부족하다. 게다가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 팁과 세금으로 25퍼센트가 더 붙는다. 엄청 비싼 건 아니고 두 명 1,200 파운드 (37,000원)
12월 10일
첫 스케줄은 당연하게도(?) 피라미드다. 그 중에서도 오늘 갈 곳은 기자의 3대 피라미드(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 네크로폴리스.
예전 글들을 보면 정문과 후문이 있다고 했었는데, 금년부턴가 서쪽에 새로운 출입구가 생기고 기존의 정문은 폐쇄되었단다. 새로운 정문과 함께 피라미드 단지 내부를 운행하는 무료 셔틀도 생겨서 관람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낙타를 타라고 마차를 타라고 강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지금도 후문 쪽에는 매표소와 입구 근처에 삐끼들로 혼잡하다는 얘기가 있길래 가까운 후문을 놔두고 멀리 새로 생긴 정문을 목적지로 찍어서 인드라이브를 불렀다. 멀다고 해봤자 인드라브 추천 요금 81파운드, 3,000원도 안 된다. 바로 택시가 왔는데 짧은 아랍어로 기사를 상대하면서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다 왔다며 내리라고 한다. 엉? 벌써 왔다고? 그럴리가 없는데? 일단 80파운드를 주고 내려서 보니 여기가 악명높은 (^^) 후문이구먼?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택시비 준 것도 아깝고 해서 아직 근처에 멈춰있는 택시로 가서 여긴 정문이 아니다.새로 생긴 정문으로 가자고 했다. 자기도 찜찜했었는지 가버리지 않고 서 있었던 기사는 웃는 얼굴로 다시 출발했는데 큰 길로 나와 달리다가 갑자기 골목길을 헤치고 다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정문을 가는데 이런 골목길로 간다고? 골목길의 끝은 관광 경찰에 세운 바리케이트였고 경찰들에게서 여기는 폐쇄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지도를 확인하니 아니, 여긴 몇달 전에 폐쇄된 옛 정문이잖아? 뉴 게이트라고 몇번을 강조했건만... 그리고 이 돈에서 밥벌이하는 택시 기사가 정문을 모를리가 없잖아. 이 친절해 보이는 기사가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더 벌겠다고. 다시 먼 길을 돌아서 진짜 새 게이트에 도착한 기사에게 50 파운드를 줬더니 100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에구, 50도 안 줘도 그만인 거잖아? 한바탕 화를 내버릴까 하다가 꾹 참고서, 웃는 얼굴로 50도 많이 준 거야 하면서 내렸다. (기사도 실랑이는 안 하고 웃으며 돌아갔다)
네크로폴리스 단지 입장권을 (일인당 700 파운드) 구입하고서 (대피라미드 내부를 들어가는 표는 일인당 1,500 파운드. 너무 비싸다. 피라미드 내부는 다른 곳에서 들어가는 걸로 했다.) 피라미드를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에 무료 셔틀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3개의 큰 피라미드를 조망하는 피라미드 파노라마.
셔틀에서 내려 피라미드를 감상하려니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한다. 노머니 노머니를 강조하면서. 그냥 우리끼리 찍을래, 사양을 해도 계속 집적거렸고 직원이라는 말에 옆지기가 폰을 넘겼다. 이런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는 와중에 낙타 몰이꾼들이 합세해서 두건을 둘러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좋은 분위기? 결국 낙타를 타라고 들이대는데, 기념으로 낙타 한번 못타볼 것도 아니지만, 굳이 여기서 비싼 돈을 주고 낙타나 마차를 탈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낙타는 모로코에 가서 탈 계획이 있기도 하고... 가만히 보니 호객꾼들이 새로 생긴 전망대(?콘크리트 바닥이 있는 곳)로는 올라오지 못하고 모래밭에서만 호객을 하는 것 같다.
다시 셔틀을 타고 다음 정거장인 카프레왕 피라미드 근처에서 내린 다음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까지 걸어서 돌아다녔다.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이렇게 대단한 걸 남겨준 이들에게 (왕과 기술자와 노동자들) 감사하면서.
스핑크스를 본 다음에 다시 셔틀을 타고 두 번째 내렸던 정거장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Mazmazza라는 이름의 친절한 식당. 관광지 한복판 치고는 맛도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쉬다가
셔틀을 두 번 타고 (일단 정문으로 돌아갔다가다 다른 색 셔틀을 타고) 피라미드 9개가 보인다는 파노라믹 뷰로 이동했다. 식당이 있길래 커피나 한잔 하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와! 성수기가 아닌데도 그리고 점심 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하네. 대부분 단체 손님들인데 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보였다.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인드라이브 택시를 불러 숙소에서 가까운 까르푸를 들렀다가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셀룰러 데이터가 먹통이 되었다. 대리점을 방문해서 여권을 제시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공항에서 개통시킬 때 여권 정보를 잘못 입력하기라도 했다는 걸까? 두 사람 여권 내밀었더니 내 여권 하나만 있으면 된다면서 사진찍고 돌려줬었는데... 구글맵에서 (이런 저런 상황을 대비해서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아 두었지.) 보다폰 대리점을 검색해 보니 제일 가까운 곳이 걸어서 12분 정도, 까르푸보다 좀 먼 곳이다. 열심히 걸어갔는데 지도에 대리점이라 나온 곳은 주택가, 아예 점포 자체가 없다. 왔다갔다 하다가 어떤 청년에게 물어보니 여기 아니고 까르푸 반대편 쪽에 보다폰 대리점이 있다고 한다. 구글맵에서 알려달라고 하니 건물 위치를 알려주는데 지도에는 보다폰이 아니고 오렌지가 보인다. 여긴 오렌지 텔레콤인데요? 가 보세요. 그 옆 가게에요. 가보니 정말 오렌지 대리점과 보다폰 대리점이 나란히 있다. (지도에는 왜 안 나온 거야? 엉뚱한 데로 헛걸음이나 하게 만들고. 역시 구글신이 전지전능은 아니라는 거지.) 가게 안에는 일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친절한 수위 아저씨 덕분에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데 금방 차례가 왔다. (외국인 찬스로 빨리?) 여권 정보에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며 여권을 꺼냈으나 돌아온 대답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없긴? 지금 인터넷이 안 되잖아요? 여긴 실내라서 그래요. 나가서 해 보세요. 뭐라? 나가서 해 보니 정말 인터넷이 된다. 하 참. 이 나라 셀룰러데이터는 건물 밖에서만 터진다는 거야? 어쨌든 되니까, 되잖아...그럼 괜히 힘들게 돌아다닌 거잖아? 그 후에는 대리점을 찾아가라는 메시지가 오는 일은 없었고 인터넷이 딱 끊기는 일도 없었지만 실내에서는 카톡으로 사진을 주고받기가 어려울 정도로 느린 경우가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