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도 권태기가 있는가 보다.
육지로 임지를 옮긴 첫 해에 맞이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루턱에서
나는 더 깊은 나락에 빠져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임지에 와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는데 소위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해상에 유출된 기름띠에 미역 감은 갈매기가 날개를 펴지 못하듯 무력감이 휘감고 있었다.
우상숭배의 흔적들로 가득한 산골짜기에서 어깨를 추욱 늘어 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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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산골짜기에 들어와 살게된 나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인도이며 은혜라고 하면서도, 기도하면 될 걸 무슨 고민이냐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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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당면한 현실 앞에서 그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홀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강대상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기가 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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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여건은 '미완의 장'처럼 허술한 것이 많았지만 잘 왔구나 생각하는 점도 있었다.
첫째는 평신도로 봉사하던 서문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다.
둘째는 출생지 옆 동네로 왔기에 귀소본능은 아니라 할지라도 안정감도 있었다.
셋째는 비로소 부모님 가까이로 오게 된 점이었다.
수양관에서 십분 이내로 찾아갈 수 있는 거리에 부모님이 살고 계셨다.
섬에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없는 처지를 안타까워하시며
"땅 끝이라도 좋으니 육지로 나올 수 없느냐." 다그치기도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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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곳의 환경은 여전하기에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단문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생각은 많지만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없는 압박감으로 남모르게 지쳐갈 때
'고군산군도 교역자 단기훈련'으로 옥천에 소재한 바나바훈련원으로 초청을 받았다.
비록 섬을 떠났지만 선유도 오흥덕 목사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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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훈련원은 평소에 방문해 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정들었던 고군산군도의 교역자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원장 이강천 목사님은 아버지와 신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했다.
"여주동행 성령사역(余主同行 聖靈使役)"이 모임의 주제였다.
낯설지 않은 용어들인데 새삼스럽게 자극과 도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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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을 통해서 동료들의 합심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성찰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고 주님의 동행하심과 사명을 망각한 까닭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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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다!" 라는 강한 자아중심의 사역이란 언제나 힘들 수밖에 없다.
'주가 함께 하심과 내가 주와 함께 함(余主同行)'이 절대적인 건데
이 사실을 동역자들과 함께 말씀묵상과 중보기도를 통해서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바나바훈련원에서 낙심(落心)을 떨쳐버리고 새 힘을 얻게 되었다.
감사함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전기(轉機)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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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로는 목사도 슬럼프가 있다.
더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때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할렐루야!
-관-
1998년 2월 청천수양관에서
덧글;
초청을 받았을 당시 오토바이로 옥천 산골짜기의 바나바훈련원을
찾아가기란 썩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참석하기를 참 잘했다.
오 목사와 함께 참석했던 고군산군도의 교역자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평소엔 힘들어도 말씀을 전할 땐 힘이 난다."던
원장 이강천 목사님에게도 고맙단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