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문을 열어 40년간 영업한 함지박은 적자가 쌓이면서 이날 점심 식사를 마지막으로 폐업했다.
빳빳하게 다린 하얀 셔츠에 푸른색 넥타이를 맨 ‘함지박’ 지배인 이승만 씨(53)는 목이 멘 채로 말했다.
열아홉 살 막내 종업원으로 시작한 그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중식당 ‘함지박’이 21일 점심 식사를 끝으로 40년간의 영업을 마쳤다.
이날 함지박은 ‘마지막 식사’를 하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이었다. 손님들은 음식을 기다리며 가게와 얽힌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3대째 단골이라는 성경순 씨는 “자식이 자식을 낳아서 또 다 같이 오는 곳이었다” 면서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순영 씨는 “문 닫을 줄 알았으면 자주 올 걸 그랬다”면서 휴대전화로 가게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돌아갔다.
저녁에 가족들과 먹겠다며 양장피, 게살볶음밥 등 음식을 포장하는 손님들도 줄을 이었다.
1978년 문을 연 함지박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찾으면서 이 동네의 명물이 됐다.
인근에 법원·검찰청이 있어 법조계 인사들이 자주 방문했고, 학계 인사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이 가게의 이름을 따 근처 거리의 이름을 ‘함지박 사거리’라고 붙였을 정도다.
그렇다고 이곳이 이른바 ‘높으신 분’들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었다. 이 지배인은 “대통령이 오신다고 특별한 음식을 내놓지 않았다. 어르신이 오면 내 부모같이, 아기가 오면 내 자식같이 대했다”고 자부했다. 순 우리말인 함지박에 한자인 ‘머금을 함(含)’ ‘연못 지(池)’ ‘넓을 박(博)’이라는 한자를 붙여서 간판을 단 이유다. 너른 연못처럼 모두에게 푸짐한 음식을 내놓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30여 년 동안 사랑을 받던 이 가게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3, 4년 전부터다. 이 지배인은 “외환위기 때에도 장사가 잘됐는데 최근 몇 년 새 매출이 계속 줄었다”고 말했다. 가게에서 25년 동안 일한 장진기 씨는 “처음에 일할 때는 종업원이 40명이 넘었는데 점점 줄어 이제는 절반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이 음식점의 다른 관계자는 “주변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중식당이 들어오면서 체감될 정도로 손님이 적어졌다”며 “재료비와 인건비는 계속 오르는데 손님이 없으니 유지가 어려웠던 것”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016년 청탁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의 식사비 한도가 3만 원으로 제한됐고, 근래에 회식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매출 감소의 요인이라고 음식점 관계자들은 진단했다. 결국 적자가 점점 커져 지난달 폐업을 결정했다. 요리사와 종업원 25명은 다른 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다.
함지박 건물은 다음 달 허물어진다. 지난달 가게 부지가 매각됐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된다.